국산 마을버스 전무… “중국산 없인 못 달린다” [위기의 마을버스中]

도내 마을버스 절반 이상 중소형... 국내업체, 소형 전기버스 생산 안해
버스업계, 기존 경유차 재구매하거나 울며겨자먹기로 중국산 선택
“소형 전기버스 공백 메울 대안 시급”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AI를 통해 제작된 일러스트. 경기일보 AI 뉴스 이미지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AI를 통해 제작된 일러스트. 경기일보 AI 뉴스 이미지

 

부천 지역에서 30년 가까이 마을버스 회사를 운영해 온 A씨는 최근 깊은 고민에 빠졌다. 관내 아파트 단지와 좁은 골목길을 오가며 ‘서민의 발’ 역할을 했던 마을버스의 ‘대체품’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소유한 마을버스 30대 중 절반가량은 2~3년 이내로 내구연한이 다해 교체 대상에 오르지만, 현장에서 당장 쓸 수 있는 국산 소형 전기버스는 하나도 없다.

 

A씨는 “정부는 무공해차인 전기·수소버스로 바꾸라고 하지만 국내에선 7m급 전기버스를 아예 만들지 않는다”며 “결국 중국산을 들여올 수밖에 없는데, 중국 업체가 언제 국내에서 철수할지 모르고 A/S도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현재 운행 중인 마을버스는 크게 25인승 7m급, 35인승 9m급, 45인승 11m급으로 나뉜다.

 

7m급은 골목길·아파트 단지·산간 벽지 등 대형차가 진입하지 못하는 노선에, 9m급은 주택가와 상권 밀집지에 주력으로 투입된다. 11m급은 수송력이 크지만 도로 사정상 마을버스 노선에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경기도 전체 마을버스 2천972대 가운데 7~9m급 중소형은 1천881대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문제는 이런 수요가 뚜렷한데도 국내 업체들이 소형 전기버스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렉시티’로 대표되는 현대차 전기버스는 9m 이상 중·대형 모델에 집중돼 있고, 우진산전·KGM커머셜 등 타 국내 제조사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마을버스 업계는 울며 겨자 먹기로 기존 소형 경유버스 재구매를 고려한다. 하지만 7m급 경유버스의 대표 차종인 현대 ‘카운티’가 2030년 단종될 수 있다는 말이 업계 내부에서 퍼지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현대차 측은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없으며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친환경 전환 기조 속에서 언제까지 경유차 생산이 지속될지 불확실하다는 업계의 현실적인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국산 대안이 전무한 상황에서 운수업계는 결국 부품 단종 등에 대한 우려로 중국 BYD·하이거 등 제조사의 7m급 모델을 들여올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중국산 전기버스는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고 성능에도 큰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받지만, 지난 요소수 사태처럼 국제 관계 변수로 갑작스럽게 국내에서 철수하거나 부품 수급이 막히면 장기적으로 안정적 A/S를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를 선택하는 데도 부담이 따른다.

 

특히 국내 제조사였던 대우버스가 2023년 경영난으로 철수하면서, 지금까지도 그 차량을 구입했던 업체들이 부품을 구하지 못해 멀쩡한 버스를 세워두거나 보유 차량에서 부품을 뜯어 쓰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에 업계는 “국산 업체가 철수해도 부품을 구하지 못하는데 중국 업체를 어떻게 믿겠느냐”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수원시내 한 마을버스 관계자는 “제조사가 갑자기 발을 빼면 대우버스 악몽이 또 반복되는 꼴”이라며 “소형 전기버스의 국산 생산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교통연구원 관계자는 “시민의 발 역할을 하는 마을버스가 특정 국가에 점령당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며 “국내에서 소형 전기버스 공백을 메울 근본적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기사와 직접적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기사와 직접적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 중국산 의존도 높아지는 마을버스…산업 생태계 흔드는 ‘딜레마’

 

국산 소형 전기버스의 부재로 마을버스 업계가 중국산 차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이어지면서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과 지역 교통망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을버스 업계는 친환경차 전환 기조에는 동의하지만, 국산 선택지가 없어 결국 중국산을 고를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중국산 전기버스가 꿰찬 국내 버스 시장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1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22~2024년 전국에 보급된 전기버스 8천505대 가운데 중국산은 3천722대로 43.8%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경기도에서만 3천742대의 전기버스가 도입됐는데, 이 중 61.5%인 2천300대가 중국산이었다.

 

이처럼 버스업계 전반이 잠식되는 가운데 마을버스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소형 전기버스를 사고 싶어도 국내 자동차 제조사에서는 9m 이상 중·대형 전기버스를 위주로 생산하고 있고, 중·대형 전기버스는 국산 모델이 있지만 보조금 집행 지연과 물량 부족이 이어지며 현장에서는 신차를 신청해도 최소 1~2년을 기다려야 한다. 내구연한이 임박한 차량을 마냥 세워둘 수 없는 업체들로서는 결국 중국산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업계가 중국산을 택하는 이유는 출고 속도에 있다. 국산 전기버스는 물량 대기만 수년이 걸리는 반면 중국산은 공급이 상대적으로 빨라 돈을 더 지급하면 내구연한이 다한 차량을 쉽게 전기버스로 대체할 수 있다. 결국 보조금 혜택을 포기하더라도 당장 버스를 굴려야 하는 업체들은 중국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랜 대기 끝에 국산 전기버스를 구매해도 혜택을 보지 못하는 보조금 구조도 문제다. 국산 대형 전기버스는 차량가가 약 3억5천만~5억원에 달해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을 최대치(약 2억4천만원)까지 받을 경우 1억원 가량의 비용을 자부담해야 한다.

 

중국산 차량의 경우, 환경부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장착 차량의 보조금 산정 기준을 강화하면서 국산 차량보다 1억원 가량 적게 지원되지만 차량 출고가 자체가 저렴하다. 이에 실제 구매자는 약 1억원의 자부담으로 중국산 전기버스를 구입할 수 있다. 즉 버스업체가 오랜 기간 기다려서 국산을 구입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마을버스 업계의 구조적 한계와 중국산 확산이 맞물리면서 국내 산업 전반에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정화 경기대 도시교통공학 교수는 “마을버스는 대중교통망의 말단을 책임지는 핵심 수단인데, 중국산 의존이 커지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내 제조사들이 소형·중형 전기버스 라인업을 서둘러 개발하고, 정부도 보조금 체계를 국산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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