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양평 면장, 생명 포기하면서 수사관 이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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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군 모 면사무소 인근에 추모 현수막이 걸려 있다. 황선주기자

 

2009년 5월23일 일어난 비극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이다. ‘박연차 의혹’ 등에 대한 수사를 받고 있었다. 20여일 전 대검 중수부에 소환됐다. 망신 주기, 모욕적 심문 등이 제기됐다. 검찰은 수사를 끝내야 했다. ‘피의자 사망 공소권 없음’은 겉으로의 명분이었다. 직접 원인은 수사를 향한 여론 악화였다. 인격 말살, 모욕 주기·결론 유도 등 폐습이 터졌다. 진보 진영에는 반(反)검찰의 효시가 됐다.

 

비교도 안 될 공무원의 죽음이다. 작은 지자체 양평군의 5급 공무원이다. 현장에서 민원인을 대하는 면장이다. 그런 공무원이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면장은 10월2일 민중기 특검에 소환됐다. 김건희 여사 일가의 양평 사업 특혜 조사를 받았다. 2011~2016년 공흥지구 개발 사업과 관련된 개발부담금 면제 의혹이 있다. 2016년 군청 개발부담금 업무 담당자가 그다.

 

유서는 고인과 유족 뜻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대신 생전에 작성한 메모가 알려졌다. 그 속에 특검 조사에 대한 유감이 빼곡하다. “수사관의 무시 말투와 강압에 전혀 기억도 없는 진술을 했다”, “김선교 의원은 잘못도 없는데 계속 회유하고 지목하라 한다”. 수사관의 이름이 등장한다. 죽음과 회한을 암시하는 마지막 부분이 맘 아프다. “주민을 위해 공무원 열심히 했는데... 세상이 싫다. 수모와 멸시 진짜 싫다.”

 

극단적 선택은 미화될 수 없다. 살아서 풀어갔어야 옳았다. 하지만 그는 숨졌고 우리에게 과제가 남았다. ‘특검 수사가 수모스럽고 치욕적이었다’고 했다. 특검의 합법성이 아니라 특검 수사 과정의 합법성을 짚고 있다. 망인의 메모는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특검 자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특검 수사 과정’이 문제라고 호소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논쟁은 이런 면에서 고인 뜻과 무관한 헛소리다.

 

양당도 고인의 명복을 말한다. 그러면 ‘고인의 한’을 풀어야 한다. 한(恨)의 실체는 10월2일에서 10월3일 새벽 사이에 있다. ‘강압, 무시, 수모, 멸시, 강요’를 18번이나 써 놨다. 모든 걸 봐야 한다. 수사 녹화 파일을 공개해야 한다. 지목된 수사관의 역할을 봐야 한다. 최초 조서와 후속 조서를 비교해야 한다. 심야 조사 동의가 있었다면 그 진정성을 살펴야 한다. 세 차례 줬다는 휴식의 형식·장소도 봐야 한다.

 

사망 소식 직후 특검은 ‘강압 없었고 회유 없었다’고 했다. 감찰·조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문제 없다고 발표했다. 이래서 특검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전직 대통령과 시골 군청 면장. 사회적 무게는 비교도 안 된다. 하지만 헌법에 보장된 생명권의 크기는 같다. 평생 공직자가 생을 마감했다. 죽음을 결심케 한 수사관 이름을 적었다. 밝혀줘야 한다. 그래야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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