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그들이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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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 뺏길 까 걱정말라…전문가가 추천한 AI와 친해지는법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실제 AI 툴을 사용해 이미지를 제작하는 과정. 사진 변사범 인스타그램 올해 초 생성형 AI로 지브리 이미지 만들어보신 분들 많으시죠. 이제 지나간 유행이긴 하지만, 이를 계기로 ‘AI가 정말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왔구나’ 느끼신 분들도 적지 않으실 텐데요. 실제로 영화·광고·디자인 업계 현장에서도 많은 시각 콘텐트들이 AI를 활용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AI 생태계를 바로 아는 것뿐 아니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제대로 아는 것이 무척 중요해지는 지금, 일찍부터 판이 달라짐을 예상하고 실제 업무에서 적극적으로 적용해 온 인물이 있습니다. 경험디자인 전문 회사 ‘플러스엑스’ 공동 창립자이자 AI 모델에이전시 ‘블러블러’ 변사범 대표입니다. 변사범 플러스엑스 공동창립자·블러블러 대표 변 대표는 디자인 에이전시와 네이버 디자인실을 거쳐 회사를 공동 창립한 이후 다양한 기업 및 브랜드의 경험 디자인을 기획해 왔습니다. 디자이너이자 기획자로 20여 년 동안 웹사이트 구축부터 모바일 UI·UX 디자인, 뷰티·패션 브랜드 론칭까지 다양한 창작 업무를 맡아왔어요. 최근에는 AI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AI가 디자인 업계를 위협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오히려 지금 디자이너가 할 일이 많아졌다”고 답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 인력과 예산의 한계로 접하게 된 AI, 전문가는 이렇게 활용한다 AI 모델 에이전시 블러블러는 상황과 컨셉에 맞는 모델의 연출 이미지를 제안하는 신개념 콘텐트 서비스다. 사진 블러블러 언제부터 AI에 관심이 있었나요. “회사에서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할 때가 계기였죠. 상황에 따라 회사에서 인력을 다 갖추고 시작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요. 한 사람이 기획자이자 디자인이나 마케팅까지 다 해야 했죠. 당시 배너에 카피 쓸 사람이 없어서 챗 GPT를 써보게 됐는데,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미드저니’라는 툴이 있더라고요. 결과물을 보니 가능성이 보였어요.” 기존 작업과 비교해 얼만큼 효율적이었나요. “처음에는 훨씬 시간이 많이 들었어요. 연구하고 구축하기까지의 시간을 합치면 오히려 그냥 찍는 게 더 빠를 정도로. 하지만 AI의 장점은 만드는 과정보다는 유지 과정의 효율성이죠. 하나의 이미지를 구축 후 베리에이션 하는 것이 무척 편리합니다.” 인종, 나이, 성별은 물론 공상 캐릭터까지 가능하다. 사진 블러블러 AI 모델 에이전시를 만든 계기가 있다면요. “앞서 말했던 브랜드 론칭 때 모델을 섭외하려고 보니 촬영부터 초상권 갱신 등 많은 과정이 필요했어요. 이걸 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AI 모델을 활용한 이미지를 만들게 됐죠. 사람을 하나의 캐릭터로 본다면, 많은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델 에이전시를 구상하게 됐어요.” 많은 업계에서 AI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데요. “업무에 바로 접목하긴 어려운 경우가 있죠.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AI를 처음 접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 데다, 일은 내가 하는 게 더 빠르기 때문이죠. 저는 그래서 업무보다 평소 관심 있던 분야를 먼저 해보라고 권해요. 일상에서 필요로 했던 걸 AI로 해보다가 점차 일과 접목하는 걸 추천합니다.”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는 AI, 변 대표는 프롬프트의 규칙을 잘 짜는 대신 어떻게 질문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고 말합니다. 좋은 시각물을 얻기 위해 언어로 모든 것을 주문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죠. 실제 디자이너가 쓰는 AI 툴은 무엇이고, AI 사용 시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비크닉 ‘업계 사람들’ 인터뷰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관련기사 패스트패션 아닌 오래 입는 일상복으로…유니클로의 새로운 도전 [비크닉] 로켓 연구자까지 뭉쳤다…16만 발 터질 불꽃쇼, 의외의 명당 [비크닉] "사진 찍느라 2시간, 쇼핑도 잊었다" 성수에 뜬 괴짜 건물 [비크닉]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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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풍경 보며 중력 레이싱…F1 열기보다 뜨거운 테마파크 어디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제주 자연 풍경을 보며 중력 레이싱을 즐길 수 있는 9.81파크 전경. 9.81파크 이번 추석 연휴, 인천공항 이용객이 245만에 이르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엔데믹 이후 해외여행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가운데 최장 명절 연휴까지 맞이했으니까요. 반면 여행객의 발걸음이 줄어든 국내 관광지는 새로운 실험에 나서며 고군분투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역시 예외가 아닌데요, 최근 몇 년 새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낸 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애월읍 언덕 위에 자리한 대규모 레이싱 테마파크 ‘9.81파크’입니다. 핸들만 쥐고 언덕을 달리며 중력가속도(g=9.81m/s²)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죠. 그간 레이싱은 ‘보는 스포츠’에 머물렀지만 9.81파크는 차를 소유하거나 개조해야만 참여할 수 있었던 높은 장벽을 무너뜨렸어요. 덕분에 레이싱 스포츠 팬덤이 두터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입소문이 났죠. 여기에 최근엔 관객수 5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F1: 더 무비’ 흥행 열기가 겹치면서, 2020년 개장 후 3년 만에 누적 방문객 25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지난 8월엔 월매출 22억1000만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14.6% 늘었는데, 같은 기간 제주 입도객 증가율(4.7%)을 훌쩍 웃돌았죠. 이쯤이면 ‘관광 특수’만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흡인력을 만들어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올 만한데요, 비크닉이 9.81파크를 이끄는 김종석 대성파인텍 대표를 직접 만나 그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관람에서 참여로…테마파크의 진화 9.81파크를 기획 및 설립해 운영 중인 김종석 대표. 9.81파크 IT 벤처 투자 업계 출신인 김 대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과 모바일이 세상을 바꾸는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봤습니다. 특별히 그는 “여가가 늘자 소비자는 단순 관람보다 체험하고 공유하려는 욕구가 커졌다”는 흐름에 주목했죠. 그래서 2010년, 착시 미술을 활용한 체험형 미술관 ‘트릭아트뮤지엄’을 제주도에 열어 시장을 시험했어요. 관람객이 직접 찍은 사진이 소셜미디어(SNS)에서 퍼지며 ‘체험+공유’ 모델의 힘을 확인했지만, 도내 전시 콘텐트 특성상 비 오는 날에만 사람이 몰리는 구조적 한계도 경험했고요. 결국 “제주다운 경험은 인공물이 아니라 자연과 맞닿아야 한다”는 문제의식 끝에 9.81파크를 구상했다고 해요. Q. 9.81파크 아이디어는 어디서 시작됐나요. A. 100년 전 유럽 골목에서 아이들이 즐기던 ‘소프박스(Soapbox)’ 에서 출발했습니다. 소프박스는 눈썰매 같은 카트를 타던 동네 놀이였는데, 지금은 엔진이나 모터가 없는 수제 무동력 카트를 타고 내려오는 레드불의 글로벌 대회가 됐죠. 이 문화를 제주도의 지리적 장점을 활용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전용 경기장과 무동력 레이싱 차량을 만들고, IT 기술로 랩타임·속도·브레이킹 데이터를 기록화했죠. 주행 영상은 앱에서 실시간 공유할 수 있고, 마리오카트 같은 게임 요소(부스터·보상 시스템 등)도 결합해 경쟁의 재미를 더했고요. 9.81파크의 핵심인 앱 서비스 화면. 주행 속도와 영상, 순위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다. 그래픽 김세린 Q. 앱 서비스까지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A. 같은 조건에서 순수 실력으로 겨루는 ‘페어플레이 스포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여기에 게임적 요소를 얹어 ‘관람형’이 아닌 ‘참여형 경험’을 설계하려면 앱이 필요했어요. 데이터로 기록이 쌓이고 참여자들끼리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재도전’을 할 이유를 심은 거죠. 일정 기록을 달성하면 라이선스를 부여하고, 개인화된 피드백이 누적돼 한 번의 체험이 성장 경험으로 바뀌고요. 9.81파크의 레이싱카. 자동화된 기계 설비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9.81파크 Q. 기존 테마파크와 규모 외 다른 점을 찾자면요. A. 전통 테마파크는 롤러코스터 하나에만 300억 원이 들고, 어트랙션이 20개쯤 있어야 조 단위 투자가 필요합니다. 하드웨어 중심 구조라 경험은 공급자 설계에 묶이고, 업데이트도 쉽지 않죠. 이 공식을 깨고 싶었어요. 레이싱카부터 운영 소프트웨어까지 자체 개발해 매년 새로운 콘텐트를 업데이트할 수 있게 말이죠. 자동차·로봇공학 박사까지 포함한 개발 및 운영 인력 100여명이 자율주행 제어–앱–데이터를 통합 관리합니다. 조성비도 전통 방식의 10~20% 수준에 불과해, 중견 사업자도 도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어요. ━ ‘제주다움’과 ‘특별함’은 어떻게 설계됐나 레이싱 코스 전경. 제주의 자연적 요소에 맞춰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9.81파크 Q. 레이싱 체험이라 입지 선정이 중요했을 것 같은데요. A. 제주 전역을 30m×30m 셀로 나눠 GIS(지리정보시스템)를 직접 구축하고, 50곳 후보지를 뽑았습니다. 이후엔 직접 중립 기어로 언덕을 달려 중력가속도를 측정하고, 드론 촬영까지 거쳐 최종 10곳으로 압축했죠. 지금의 코스는 협재 바다와 비양도를 내려다보며 출발해, 오름과 한라산을 보며 돌아오는 길이라 ‘제주다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습니다. 레이싱 팬덤을 겨냥한 '마스터 라이센스' 라운지 전경. 9.81파크 Q. 운영 초기와 비교해 달라진 방문객의 특징이 있다면요. A. 코로나 정점기에 파크를 열어 초반엔 쉽지 않았습니다. 4인 이상 입장 금지, 거리두기 제한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2021년부터 “이 상황에서도 놀아야 한다”는 심리가 커졌고, 특히 20·30세대가 새로운 경험을 찾는 욕구가 폭발했습니다. 해외여행이 막히자 제주에서 할 수 있는 이색 콘텐트가 대체재로 주목받았고, 당시 매출은 70억 원에서 130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죠. 지금은 패키지보다 자유여행(FIT) 중심 구조라 경험의 ‘질’이 더 중요해졌어요. 외국인 비중도 회복세라 샤오홍슈(중국 SNS)같은 채널을 활용해 인플루언서 마케팅도 적극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외국인 자유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무료 셔틀버스 운행과 택시 호출 등 서비스도 공을 들였죠. 포켓몬스터와 협업해 만든 '메타빌라' 콘텐트. 컬렉팅하는 재미를 더해 재방문율을 높였다. 9.81파크 Q. 재방문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A. 맞아요. 대표적 장치가 ‘GROC 챔피언십’입니다. 예선을 통과한 상위 10명이 파이널에 오르는 시즌제 리그인데, 이 구조가 매달 재방문을 만듭니다. 덕분에 숙박·교통·식음료 소비가 지역 경제와도 연결됩니다. 섬이라는 한계에도 ‘다시 올 이유’를 만든 셈이죠. 특히 20·30세대는 같은 경험을 반복하지 않으니 경기 방식과 코스를 계속 바꿉니다. 최근엔 포켓몬과 협업한 ‘메타 빌라’ 프로젝트도 큰 반응을 얻었어요. 주행 중 캐릭터 이름을 외치면 부스터가 발동하고, 성공하면 포토카드와 영상이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아이돌 굿즈를 모으게 만든 구조와 비슷한데, 실제로 F&B·스토어 매출이 늘고, 체류 시간과 재방문율도 동시에 올랐습니다. ━ 신개념 K테마파크를 향해 포켓몬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메타빌라' 실내 스포츠 게임 콘텐트. 9.81파크 Q. 추가로 구상 중인 아이디어가 있나요. A. 2027년 인천공항 제1터미널 인근에 두 번째 파크를 열 예정입니다. 제주에서 검증한 모델을 확장한 도심형·실내형 K-테마파크죠. 고척돔 크기의 10층 실내 공간(높이 50m)에 1.5㎞ 트랙을 설계했습니다. 오르막 구간은 전기차를 활용한 아이템 레이싱, 내리막은 중력 기반 스피드 레이싱으로 구성했습니다. 날씨나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365일 운영할 수 있고, 야간에는 조명과 미디어 연출을 극대화해 ‘마리오카트 현실판’ 같은 몰입감을 구현할 계획입니다. Q. 테마파크 업계의 전망은 어떻게 보시나요. A. 저희가 지향하는 건 ‘스페이셜 게임 파크(Spatial Game Park)’라는 새로운 장르입니다. 1세대가 놀이기구 중심 어뮤즈먼트 파크, 2세대가 스토리텔링 중심 테마파크였다면, 3세대는 게임·스포츠·데이터가 결합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객은 성장·기록·경쟁을 반복하며 연결되고, 콘텐트는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살아 있는 파크로 진화할 것으로 봐요. 인공지능(AI)·증강현실(AR) 등을 활용해 메타버스에서 글로벌 이용자가 이어지는 ‘네트워크형 콘텐트’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관련기사 패스트패션 아닌 오래 입는 일상복으로…유니클로의 새로운 도전 [비크닉] 로켓 연구자까지 뭉쳤다…16만 발 터질 불꽃쇼, 의외의 명당 [비크닉] "사진 찍느라 2시간, 쇼핑도 잊었다" 성수에 뜬 괴짜 건물 [비크닉] 김세린 기자 kim.se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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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연구자까지 뭉쳤다…16만 발 터질 불꽃쇼, 의외의 명당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2024 불꽃축제 장면. 한화 오늘 저녁, 한강의 밤하늘은 거대한 공연장이 됩니다. 올해로 21회를 맞이한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열리기 때문이죠. 단 90분 공연에 한강을 중심으로 100만 명 인파가 북적이다 보니 행사는 매년 도시에 활기를 가져오는 서울 대표 문화 콘텐트로 자리 잡았습니다. 단순한 불꽃축제 이상의, 음악과 조명·영상·스토리텔링 등이 결합한 복합 미디어 아트로 성장하고 있고요. 이 특별한 이벤트를 만드는 건 한화그룹입니다. 회사는 2000년, 그룹을 알리고 시민들에게 문화예술 공연을 선물하자는 사회공헌 사업으로 불꽃축제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회사 차원을 넘는 서울 대표 행사가 되었죠. 실제 2023년 한화 자체 조사에 따르면 서울세계불꽃축제로 인한 직접적 경제 효과가 296억 원, 간접 경제 효과까지 합치면 1218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올해 불꽃축제를 총괄하는 박소율 차장. 박소율 차장 매년 다른 방식으로 서울 하늘을 디자인하기 위해 회사 내 불꽃사업팀은 1년 내내 불꽃만 연구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황홀과 감동의 순간을 전하기 위한 이 팀만의 노하우도 점점 쌓여가고 있고요. 지난 9일, 비크닉은 2015년부터 기획 실무를 맡아 오다 올해 첫 행사를 총괄하게 된 박소율 한화 불꽃사업팀 차장을 만나 행사의 비하인드를 들어봤습니다. ━ 100만 명이 같은 곳을 향한다…올해는 ‘데칼코마니’ 무대 서울세계불꽃축제는 이제 화제의 연중행사예요. 올해 역시 기대가 되는데요. 어떤 행사보다 아무래도 한강을 가득 채우는 압도감이 있으니까요. 올해는 공연을 볼 수 있는 공간을 확장해 이를 극대화했어요. 기존 한강철교~원효대교 구간에서 마포대교까지 공연 공간을 넓혔죠. 여기서 좌우에서 동시에 같은 불꽃을 터뜨리는 ‘데칼코마니’ 연출을 시도할 예정이에요. 그래서 주제도 ‘함께하는 빛, 하나가 되다(Light Up Together)’로 잡았습니다. 사회적으로 힘든 시기에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화합하자는 메시지를 담았죠. 동시에 관람객 분산으로 안전 관리 효과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2025 서울세계불꽃축제 행사장. 한화 1년 내내 이 행사만 준비하는 팀의 구성이나 역할이 궁금한데요. 불꽃사업팀은 기획자 4명, 불꽃 디자이너 3명, 설치·관리자를 포함해 총 15명으로 구성돼 있어요. 로켓 추진제(로켓이 추력을 얻기 위해 연소하고 분사하는 물질) 연구자부터 산업 디자인 전공자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죠. 팀은 서울 축제뿐 아니라 부산불꽃축제, 포항국제불빛축제 등 지역 행사도 기획하고 다음 달엔 APEC 개막 행사도 참여할 예정이에요. 연간 30여 건의 불꽃 공연을 기획·운영합니다. 90분짜리 행사의 규모나 예산을 어떤 수준으로 운영하나요. 대략 약 16만 발의 불꽃을 터뜨립니다. 불꽃축제 연간 예산이 110억 원인데, 한 발당 7만원꼴이죠. 1976년부터 시작된 뉴욕 독립기념일 불꽃행사가 약 8만 발을, 100만 명이 방문하는 시드니 새해맞이 불꽃축제가 8~10만 발 터뜨리는 것과 비교하면, 서울세계불꽃축제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규모의 축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 30분 공연에 6개월 준비…1000평 무대에 16만 발의 불꽃 2025 서울세계불꽃축제 기획 노트. 박소율 차장 불꽃 연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불꽃 연출의 핵심은 디자인입니다. 불꽃의 종류·각도·색깔·높이 등을 초 단위로 조합하는데, 꽃꽂이와 비슷해요. 한국팀의 경우 30분 공연에 기획 기간만 6개월 정도 걸립니다. 올해 공연 주제는 ‘Golden Hour-빛나는 시간 속으로’인데, 과거에 가장 빛났던 순간을 떠올리는 타임슬립 콘셉트를 담았죠. 이를 표현하기 위해 올해 회오리 모양 불꽃을 새롭게 디자인했는데, 이 점을 집중해서 봐 주시면 좋겠어요. 음악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같아요. 음악은 불꽃의 언어예요. 같은 불꽃이라도 어떤 음악과 함께 연출되느냐에 따라 관객이 느끼는 감정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과거엔 음악을 부수적 요소로만 활용했는데, 2018년부터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수단이 되면서 공연의 일부가 됐어요. ‘불꽃축제 플레이 리스트’도 인기를 끌죠. 그러다 보니 음악은 불꽃 디자이너들이 마지막까지 고심하는 부분이에요. 최근에 인기를 끈 노래를 추가하기도 했는데, 어떤 곡인지 행사 때 확인해보세요. 2025 서울세계불꽃축제 기획 노트. 박소율 차장 불꽃 설치 과정도 알려주세요. 공연 기획만큼 행사장 준비도 방대하게 이루어집니다. 행사 2주 전부터 선유도 앞에 바지선 34척을 띄웁니다. 합치면 3305㎡(약 1000평), 축구장 절반 크기죠. 여기에 약 16만 발의 불꽃을 설치한 뒤, 여의도 앞으로 옮겨 정박시켜요. 리허설이 불가능하다 보니 모든 화약에 전자 신호를 연결해 불량품을 가려내며 최종 점검을 합니다. 2015년부터 행사를 준비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해가 있나요. 2018년도요. 서울이 태풍 영향권에 있어 행사 당일 아침까지 큰비가 내렸거든요. 법적으로 풍속이 초속 10m 이상이거나 강우가 시간당 20mm 이상일 경우 불꽃 발사를 중단해야 돼요. 전날부터 잠 못 이루며 걱정하고, 새벽 내내 한강 공원을 점검했죠. 오전이 지나며 기적처럼 하늘이 맑아져 축제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서울세계불꽃축제 디자인 시뮬레이션. 박소율 차장 ━ 환경 문제·유료화 논란…이제는 글로벌 관광상품으로 불꽃의 화려함 뒤, 환경 문제 지적도 있습니다. 불꽃이 미세먼지와 파편을 남기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최근엔 파편이 거의 남지 않는 ‘에코 불꽃’을 많이 씁니다. 또, 환경 영향 평가를 통해 데이터를 쌓고 있어요. 지난해 기준으로 불꽃축제 후 대기 질이 약 3시간 이내에 원래 수준으로 돌아왔어요. 데이터를 근거로 앞으로 점점 개선해 나가려 합니다. 지난해 유료 관람석 논란이 있었는데, 올해도 이어지네요.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B2B 티켓만 판매하고, 수익금은 전액 운영비로 재투자했습니다. 유료 관람석 운영 목적은 관광상품화예요. ‘코첼라’ ‘글래스톤베리’를 위해 사람들이 미국과 영국을 찾는 것처럼, 외국인들이 서울세계불꽃축제를 위해 서울을 찾게 하고 싶어요. 불꽃축제가 지난 20년간 시민 축제로서 외형을 갖췄다면, 이제는 글로벌 콘텐트로 성장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내년엔 K팝과 연계한 외국인 대상 관광 패키지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바지선 위에서 서울세계불꽃축제를 준비하는 모습. 박소율 차장 ━ 불꽃은 서울 브랜딩 자산…민간 주도 대규모 행사가 차별점 매년 2~3개 해외팀을 초청하는데,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나요. 국제대회 수상 경력을 가졌거나 오랜 전통을 가진 팀을 초청합니다. 올해는 120년 역사의 이탈리아 ‘Parente Fireworks’ 팀과 몬트리올 국제 불꽃축제 경연대회 수상팀인 캐나다 ‘Royal Pyrotechnie’ 팀이 참여해요. 두 팀 모두 전 세계에서 매년 수백 번의 불꽃 쇼를 진행하는 유명한 팀들이죠. 해외팀은 한국에서 일주일 남짓 짧은 기간 동안 축제를 준비해야 하는 데다 리허설이 불가능한 행사를 준비하기 때문에 안전성과 기술력이 검증된 팀을 초대합니다. 이탈리아는 화약 산업 내에서 긴 역사를 가진 팀답게 자국에서 생산한 불꽃만으로 공연을 만들어요. 캐나다는 음악과 불꽃의 정밀한 싱크가 특징입니다. 공연을 직접 보면 정교함을 크게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다른 나라 불꽃축제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해외 대형 불꽃 쇼는 대부분 공공기관 주도로 열리지만, 서울세계불꽃축제는 민간기업이 20년 넘게 주도한 장기 대규모 축제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또, 도심 한복판에서 시민 100만 명이 동시에 불꽃을 감상하는 건 해외에서도 보기 드문 장면이죠. 2024 서울세계불꽃축제를 보기 위해 서울 여의도한강공원에 모인 시민들. 뉴스1 마지막으로 올해 불꽃축제 명당을 알려주세요. 집이 명당입니다. 물론 경찰·소방·서울시 공무원 등 4000여 명, 한화 인력 3500여 명이 함께 안전 관리를 하지만, 현장은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모여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한화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 영상을 볼 수 있어요. 또 ‘오렌지 플레이’라는 불꽃축제 플레이리스트 앱을 다운받아서 영상과 함께 틀면 집에서도 현장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관련기사 SNS서 '육아템·가족룩' 구매…키즈시장 키우는 MZ 부모들 [비크닉] '운동화계의 애플' 다시 뛸까… "브랜드 DNA로 돌아갈 것" [비크닉] 매출 없는 전쟁터…정책 ‘파는’ 공공 홍보맨들의 브랜딩 비결 [비크닉]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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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계의 애플' 다시 뛸까… "브랜드 DNA로 돌아갈 것"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올버즈 ‘공동 창업자’ 겸 ‘최고 혁신 책임자’ 팀 브라운 2015년 뉴질랜드 축구 대표선수 팀 브라운(46)은 생명공학 엔지니어인 조이 즈윌린저와 함께 운동화 브랜드 ‘올버즈(Allbirds)’를 세상에 내놨습니다. 창업자금은 불과 닷새 만에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은 11만9000달러(한화 약 1억6500만원)였어요. 흔한 플라스틱 합성 소재 대신 천연 소재를 적용한 ‘울 러너(Wool Runner)’ 운동화는 나오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고, 실리콘밸리 벤처 투자자와 IT업계 사람들이 신는 신발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운동화계의 애플’이라는 별칭도 얻었습니다. 2021년 창립 6년 만에 미국 증시에 상장, 주가는 두 배 가까이 뛰었답니다. 올버즈 공동창업자이자 최고혁신책임자인 팀 브라운. 사진 올버즈 하지만 장밋빛 스토리는 여기까지. 이 드라마틱한 성장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이후 주가는 최고점 대비 95% 이상 폭락했고, 2024년 매출은 22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죠. 올해 2분기까지도 반전의 기미는 희미해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3%나 감소했으니까요. 올버즈는 이런 롤러코스터를 타는 가운데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았어요. 그 어느 때보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반등의 칼을 갈아야 할 것 같지만 최근 한국을 찾은 공동 창업자 브라운은 “본질로 돌아가겠다”는 말로 교과서적인 소회를 밝혔습니다. 비크닉이 지난달 20일 그를 만나 그 속내를 물었습니다. “급성장하며 핵심 고객과 품질에 대한 집요한 놓쳐” 그는 2023년 공동 CEO에서 물러나 ‘공동 창업자’ 겸 ‘최고 혁신 책임자(Chief Innovation Officer)’라는 타이틀을 달았어요. ‘혁신’의 의미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꿈을 심어주는 일, 미래에 도움이 되는 차세대를 위한 무언가를 만드는 역할’이라는 답을 내놨는데, 스타트업의 초심이 느껴지는 대목이었죠. -IPO 이후 하락세가 이어지는데, 자체적으로 분석한 요인이 있나요. “초점을 잃었던 게 주효해요. 글로벌로 사업을 확장하고, 팬데믹 와중에 IPO까지 진행하는 과정에서 핵심 고객과 제품 품질에 대해 집요함을 놓쳤던 거죠. 우리보다 앞서 많은 브랜드가 겪어 온 실수를 우리도 범한 셈이에요. 하지만 이를 계기로 브랜드를 본래 핵심 DNA로 단단히 재정렬할 수 있게 됐죠. 소재의 혁신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충성 고객에 대해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집중한다’를 구체적으로 말한다면요. “지난 몇 년간 더 많은 고객을 빨리 만나려 하다 보니 신발 카테고리뿐 아니라 매장 수, 의류 등으로 제품군이 계속 늘어났어요. 하지만 정작 올버즈를 찾았던 초중년 전문직이나 크리에이터들은 여기에 시들했죠. 뒤늦게서야 알았어요. 이 부류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더 큰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라는 걸. 그래서 제대로 탐구하고 관심 가질 만한 제품들을 만들어야 우리의 비즈니스가 성공한다는 걸요. 1년 해 나올 20여개 신제품이 여기에 목적을 두고 나올 거예요.” 탄소 제로 운동화 개발…지속가능성의 지표 마련 그래서일까요. 최근 올버즈의 제품에는 그 어느 때보다 ‘자연 소재 기반’ ‘지속가능’ 이라는 키워드가 돋보입니다. 올해 초 선보인 ‘문샷 제로(M0.0NSHOT Zero)’는 이런 올버즈 DNA의 집대성이죠. 뉴질랜드 재생 농장에서 생산한 메리노 울과 사탕수수 폼을 사용해 제작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 0.0㎏을 증명해 낸 데다, 제조 방식과 탄소 저감 전략을 담은 기밀을 세상에 공개했어요. 올해 초 선보인 탄소 제로의 ‘문샷 제로(M0.0NSHOT Zero)’. 사진 올버즈 –친환경·지속가능성이 마케팅 수단으로 변질한 경우도 많은데, 진짜 탄소 제로를 실현했네요. “누구나 지속가능성을 말하지만 모두 각자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죠. 그래서 우리는 탄소를 음식의 칼로리처럼 제품의 환경 영향을 측정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지표로 삼았죠. 그리고 그것이 창의성의 원천이 됐죠. ‘사람을 달에 보내는 것처럼 탄소 제로 신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현실로 옮긴 거예요. 이렇게 하는 이유는 분명해요. 이 시대에 사람들은 그냥 착한 제품이 아니라 훌륭한 제품을 사고 싶어하고, 거기에 지속가능성은 반드시 포함돼야 하니까요 수년이 걸린 도전이었지만 차세대를 위해 길잡이가 된다는 것도 원동력이었어요.” 올버즈 신발에 표시된 탄소 발자국 수치. 탄소 발자국이란 제품이 생산되면서 유통, 소비, 그리고 폐기 단계까지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총량이다. kg과 심어야 할 나무의 숫자가 병기됐다. 사진 올버즈 -하지만 실제 수익화하기가 어려운 게 문제 아닐까요. “우리가 단순히 착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에요. 강력한 비즈니스적 근거가 있어서 하는 거죠. 문샷 프로젝트처럼 오픈소스로 정보를 공개하면 다른 기업들이 영감을 받아 행동에 나서고, 또 참여시키면서 규모의 경제, 비용 절감, 공급망 확장 측면에서도 이득을 볼 수 있으니까요. 실제 2018년 세계 최초로 사탕수수 기반의 탄소 절감 스위트폼을 오픈 소스로 공개한 이후 리복·팀버랜드·어그등 100개 이상의 기업이 이 소재를 사용하고 있어요. 옳은 일을 하는 동시에 건전한 사업화로 이어가는 것, 이게 올버즈가 일하는 방식이에요.” -과거 올버즈처럼 최근 운동화 시장에선 호카나 온 같은 또 다른 신흥 강자들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시장이 커진 건 사실이지만 대부분 기능 중심이에요. 우리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게 해주는 신발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느끼는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그게 소비자가 신발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전통적으로 ‘편안함’은 ‘못생김’과 동의어로 여겨졌어요. 올버즈는 이걸 바꿔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요란한 로고 대신, 모든 디테일·스티치·섬유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디자인으로 차별화를 만들어내는 거죠. 색의 대명사인 팬톤과 협업한 크루저가 곧 출시되는 것도 한 예가 될 거예요.” 2021년 올버즈와 아디다스가 협업한 ‘퓨처크래프트-풋프린트’. 탄소발자국을 2.94kg CO2e 미만으로 낮췄다. 중앙포토 “평가는 시즌 끝나고서야…다음 10년엔 충분히 이길 자신 있어” 그는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뛴 축구선수이자 디자인과 경영을 전공했다. 창업부터 ‘아웃사이더’로 출발했다고 했지만 대신 호기심이 브랜드를 이끌어왔다고 설명했다. 힘든 시기가 있을 때도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고 했다. -그럼에도 지금 올버즈에서 지켜야 할 것이 있나요. “어떤 상황에서도 더 좋은 제품을 더 잘 개발하는 것이요. 이제 10년 정도의 업력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구현되지 못한 기술은 많으니까요. 다만 제가 6살, 7살 아이들을 둔 아빠로서 드는 생각은 있어요. 기술이 아무리 달라져도 공동체 의식이나 깨어 있는 열린 자세는 기술이 절대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요.” -올버즈의 다음 10년은 어떤 모습일까요. “스포츠 선수 경험에서 배운 건 매 경기에서 이길 때도, 질 때도 있지만, 평가는 시즌이 끝나고 나서야 내려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역시 최근 몇 경기에서 패배를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우리가 가진 팀은 올버즈 역사상 가장 뛰어난 팀이라고 믿어요. 다가오는 10주년은 상징적인 순간일 뿐 아니라, 브랜드를 자연 중심의 새로운 포지셔닝으로 재정렬하는 과정이기도 하죠. 지금은 흥미로운 새 장의 시작이고, 반드시 그리고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지 집중과 성찰의 시기를 지나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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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못 쓰겠다"…지난해 2조원어치 팔린 수세미, 뭐길래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미국 전역을 휩쓴 수세미 브랜드 '스크럽대디'. 스크럽대디코리아 주방용 수세미 하나가 이렇게 ‘사고 싶은 물건’이 될 줄 누가 예상했을까요. 지루한 설거지 시간을 ‘작은 이벤트’로 바꿔버린 브랜드가 있습니다. 웃는 얼굴 모양 덕에 ‘스마일 수세미’로 전 세계에 알려진 미국 청소용품 브랜드 ‘스크럽 대디(Scrub Daddy)’입니다. 최근 3년간(2021~2024년) 매출이 410% 뛰었고, 지난해엔 무려 2조 원어치를 팔아치웠어요. 한국에서도 반응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지난 8일부터 17일까지 열흘간 부산에서 열린 팝업스토어엔 3만명이 넘게 몰렸습니다. 이 기간 판매된 수세미만 3만1521개로, 1인당 1개씩 사간 셈이죠. 그런데 시중 제품보다 5배가량 비싼, 개당 5500원짜리를 몇만 원어치씩 쟁여간 이들 중 상당수는 20·30세대였다고 해요. 전체 방문객의 70~80%를 차지할 정도였는데, 수세미를 ‘굿즈’처럼 소비한 모습입니다. 부산 팝업 현장을 찾은 이주형 스크럽대디코리아 대표. 스크럽대디코리아 이 낯선 풍경 뒤에는 한국 시장 진출을 이끈 이주형 스크럽대디코리아 대표가 있습니다. 창업자 애런 크라우스(Aaron Krause)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그는 월마트·타깃부터 이마트·롯데마트까지 굵직한 글로벌 유통사와 제품 개발을 함께했는데요, 스크럽대디의 브랜드 철학과 현지 전략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입니다. 비크닉이 한국에서 ‘수세미 신드롬’을 만든 그를 직접 만나 스크럽대디의 성공 스토리를 들었습니다. ━ 미국서 시작된 ‘샤크탱크 성공 신화’ 세간에 알려진 스크럽대디의 창업 스토리는 한 마디로 ‘우연이 빚은 발명’입니다. 세차 사업을 하던 크라우스는 2000년대 초 차량 흠집 방지용 스펀지를 개발했는데, 2008년 회사를 3M에 매각하면서 이 소재를 창고에 묻어뒀다고 해요. 그런데 몇 년 뒤 곰팡이 핀 가구를 닦다 이 스펀지가 찬물에서는 단단해지고, 뜨거운 물에서는 부드러워지는 성질을 지녔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는 여기에 웃는 얼굴 모양을 더하고, 눈구멍은 컵과 병의 입구를, 입 부분은 젓가락과 숟가락을 세척할 수 있게 디자인하면서 지금의 수세미 모양을 만들었어요. 2012년 샤크탱크 출연 당시 투자자 로리 그라이너(왼쪽), 창업자 애런 크라우스(오른쪽). 스크럽대디 그로부터 1년 뒤, 스크럽대디가 미국 전역에 알려지는 기회가 생깁니다. 2012년 미국 투자 리얼리티 쇼 ‘샤크탱크’에 출연한 크라우스는 대형 홈쇼핑 채널 QVC의 유명 투자자 로리 그라이너에게 20만 달러(약 2억7800만원)를 투자받게 되죠. 그리고 방송 하루 만에 100만 달러(약 14억) 매출을 올리며 단숨에 스타 브랜드로 떠오릅니다. 그가 선보인 특허 기술 ‘플렉스텍스처(FlexTexture)’는 소비자들의 뇌리에 ‘온도에 따라 경도가 달라지는 수세미’라는 점을 각인시켰어요. 이후 입소문은 SNS에서 폭발했고, 유통망은 순식간에 확장됐어요. 2023년에는 생활용품 공룡 유니레버와 손잡으며 유럽과 아시아 시장까지 발을 넓혔죠. 오리지널 수세미 하나에서 출발해 160여 종의 라인업을 갖췄고, 현재는 75개국에서 판매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왼쪽부터) 이주형 대표, 창업자 애런 크라우스, CSO 윌 아우겐브라운. 스크럽대디코리아 Q. 크라우스와의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고, 이후 어떤 역할을 맡았나요. A. 우연히 2013년 독일 소재 업체 담당자의 권유로 만나 금세 협업 파트너가 됐죠. 그는 독자적 원료를 주방용으로 적용하기 시작한 시점이었고, 저는 다년간 다양한 생활용품의 원재료·기능 개선을 주도해온 때였죠. 자연스럽게 초기 제품 개발 과정부터 손발을 맞췄고, 2023년부터는 한국 시장을 겨냥한 전략 설계에 제가 직접 뛰어들었어요. 현지 콘텐트와 인플루언서 네트워크를 구축해 공식 론칭 전부터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회자되도록 만들었고요. 스크럽대디의 마스코트 인형탈이 부산 시민들과 교감하는 모습. 스크럽대디코리아 Q. 브랜드의 성공 가능성에 일찌감치 주목했던 건가요. A. 집안일은 지루한 노동이지만, 웃는 얼굴 모양 수세미 하나로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말이 와 닿았어요. 아이코닉한 디자인, SNS 시대에 맞게 경험 중심 소비를 유도하는 점이 ‘청소 용품을 넘어 즐거움을 파는 브랜드로 진화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줬습니다. 실제로 팬들 사이에서는 스마일 로고를 문신으로 새기는 일도 있었어요. 미키마우스가 월트디즈니의 상징 자산(Symbolic Asset)이 된 것처럼, 스크럽대디 역시 ‘브랜드 캐릭터화’에 성공한 셈이죠. Q. ‘비싼 수세미’라는 인식을 피해갈 순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어떤 요인 때문일까요. A. 숨겨야 했던 물건을 자랑하고 싶은 아이템으로 바꿔줬기 때문이죠. 하찮아 보이는 수세미도 틀을 깨면 아이콘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고요. 보통 수세미보다 비싸지만 2~3개월을 써도 악취와 변색이 적고 세척력이 좋아 장기적으로는 더 경제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여기에 인덕션이나 코팅팬을 흠집 없이 닦을 수 있는 ‘스크래치 프리’ 기능은 차별화 포인트고요. 충동구매가 아니라, 한 번 써본 뒤 “다른 제품으로 못 돌아가겠다”는 경험이 재구매를 이끌었어요. ━ ‘굿즈’로 진화한 수세미, 한국식 기획의 힘 스스크럽대디의 베스트셀러가 전시된 모습. 김세린 한국에서의 반응은 초반부터 뜨거웠습니다. 지난해 5월 코스트코 입점을 시작으로 올해 1월 CJ온스타일 새해 첫 방송에선 분당 3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지난 5월 더현대 서울 팝업에는 일주일간 5만3000명이 몰려 3만 개 넘게 팔려나갔죠. 이후 컬리·오늘의집·29CM 등 온라인 채널로 뻗어 나가며 유통망을 단숨에 넓혔어요. 유튜브 숏츠에 올라온 스크럽대디 제품 관련 후기 및 자발적 바이럴 영상. 유튜브 캡처 성장 동력은 자발적 입소문입니다. 소비자의 SNS 후기가 폭발적으로 확산하며 브랜드를 키운 것이죠. 스크럽대디의 공식 팔로어 수는 틱톡이 440만명, 인스타그램이 69만명에 달하고, 국내에서도 출시 6개월 만에 숏폼 누적 조회 수만 5000만 뷰를 기록했어요. ‘스크럽대디 가품과 진품 구별법’ 관련 숏폼 영상은 유튜브에서만 480만 뷰가 터지는 등, 진정성 있는 리뷰와 유쾌한 콘텐트가 재가공되며 브랜드 영향력을 키웠죠. 이 대표는 “전통적으로 주방용품은 저관여 실용재였지만, 이제는 MZ세대에게 ‘취향을 표현하는 아이템’이 됐다”고 분석했어요. 이런 이유로 스크럽대디코리아는 본사도 시도하지 않았던 전략을 과감히 실행했다고 해요. 지비츠·키링·텀블러 같은 굿즈를 제작하고, 롯데자이언츠·삼진어묵같이 지역 소비자들의 정체성과 자부심이 반영된 대표 브랜드와의 한정판 수세미를 만든 것이 그 예시입니다. 스크럽대디코리아가 부산 팝업을 위해 한정판으로 선보인 삼진어묵과의 협업 제품. 김세린 Q. 주방용품이 새롭게 소비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A. MZ세대의 소비 패턴은 이제 기능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디자인·스토리·경험까지 함께 고려하면서 ‘경험 → 공유 → 재구매’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죠. 스크럽대디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 진출 첫해 매출 100억원, 재구매율 70%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특히 한국은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수용성이 높고, SNS 확산력이 세계적으로 독보적이에요. 팬덤 문화가 결합하면서 브랜드가 가장 빠르게 시장 반응을 확인하고 전략을 검증할 수 있는 무대가 됩니다. 디저트 전문 가게 콘셉트로 구현된 스크럽대디 부산 팝업. 스크럽대디코리아 Q. 스크럽대디코리아는 현지화 전략을 어떻게 세웠나요. A. 한국 소비자들이 선택의 재미를 중시한다는 점에 착안했어요. 20여종의 형형색색 수세미를 디저트처럼 진열해 고르는 재미를 극대화했고, 실제로 소비자들이 도넛 고르듯 하나하나 담아가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또 부산 한정판은 시민들의 정서와 문화를 존중한 시도였어요. 글로벌 브랜드가 진정한 현지화를 위해서는 수도권을 넘어 각 지역의 특성을 이해하고 반영해야 합니다. 여기에 포토존과 캐릭터, 구매 과정 자체를 콘텐트화해 ‘경험을 공유하는 문화’에 맞춘 설계도 더했습니다. ━ 청소도 이제는 콘텐트다…경험이 주는 가치 부산에서 열린 스크럽대디코리아 팝업에 몰려든 인파. 스크럽대디코리아 Q. 스크럽대디는 청소용품 브랜드 그 이상의 기능을 할 수 있을까요. A. 수세미를 ‘내 스타일’이라 자랑하고, 선물하며, 다시는 다른 제품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현상은 그만큼 경험 가치가 강력하다는 증거입니다. 디쉬대디(세제 일체 스틱형 수세미), 댐프더스터(먼지·수분 제거 스펀지), 스크린대디(액정 클리너) 등으로 카테고리를 넓히고 있지만, 본질은 ‘일상을 즐겁게 만드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진화하는 데 있습니다.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A. 스크럽대디의 매력은 ‘I love my Sponge(난 수세미를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비재 브랜드라는 점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설거지, 늘 그냥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작은 변화가 생겼다. 스펀지가 이렇게 귀엽고 독특하며 기분 좋은 물건일 수 있다니.” 한 소비자가 (지난 5월 국내 첫 팝업 이후) SNS에 이런 글을 남긴 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Smile While You Scrub(웃으며 닦으세요)” 철학처럼, 일상의 모든 순간에 미소와 즐거움을 더하는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관련기사 "팬덤만으론 안되더라"…한국서 맥 못춘 '커피계 애플'의 전향 [비크닉] 덕질 넘어 공부까지 한다…요즘 20대女, 야구에 미친 이유 [비크닉] 100만 MZ 술꾼 분석…목요일 오후 5시에 BTS 뷔 와인 산다 [비크닉]김세린 기자 kim.se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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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 뿐인 안경 만든다…하버드 교재에도 실린 회사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안경에 사람을 맞춘다’라는 관습은 13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처음 안경이 등장한 뒤 최근까지 700여년간 이어졌습니다. 안경다리·코받침이 등장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는 등 안경 산업에도 혁신이 이어지긴 했지만, 소비자는 늘 안경에 얼굴을 맞추라는 선택을 강요받았죠. 이런 고정관념을 뒤흔들고 있는 한국 브랜드가 있습니다. 3D 스캐닝, AI 스타일 추천, 가상 시착을 활용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맞춤형 안경을 만드는 ‘브리즘’입니다. 2018년 서울 역삼동에 1호점을 연 뒤 누적 매출 300억 원, 올해 상반기에만 60억 원의 매출을 올린 브리즘은 1조 5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안경 시장에선 여전히 작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큰 관심을 얻고 있습니다. 2022 CES 혁신상, 독일 레드닷·iF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며 기술력과 디자인을 인정받았고, 오는 9월부터는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혁신 사례로 소개될 예정이죠. 한국의 작은 안경 스타트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이처럼 큰 관심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7일 브리즘을 운영하는 박형진(50) 콥틱 공동대표를 만났습니다. 박 대표는 2006년 ‘안경도 패션이다’라는 목표를 가지고 ‘알로(ALO)’라는 브랜드로 15개 매장, 연 100억 매출을 달성한 경험을 가진 안경 시장 연쇄 창업가입니다. 비크닉은 그가 안경 산업에서 포착한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이를 풀어가고 있는지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박형진 콥틱 공동대표. 콥틱 ━ 9월 하버드서 다룬다…안경 공급망을 뒤집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브리즘을 혁신 사례로 다룬다고 들었습니다. 9월 열리는 가을학기 수업부터 브리즘 사례가 교재에 포함됩니다. 지난 1년 동안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후안 알카세르 석좌교수 연구팀이 브리즘 한국 매장과 공장을 둘러보며 브리즘 사례를 탐색했어요. 알카세르 교수는 수백 년간 공급자 중심으로 이뤄지던 안경 산업의 구조를 브리즘이 맞춤형 안경을 통해 ‘소비자 중심’으로 재정의한 점, 3D·AI 등 기술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모델을 만든 점에 주목했습니다. 저도 강의에 참여해 학생들과 토론할 예정인데 무척 영광스럽습니다. 오는 가을학기부터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쓰이는 브리즘 사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홈페이지 캡쳐 기존 안경 산업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우리나라 안경점에선 안경사의 추천에 따라 적당히 맞는 안경을 구매하는 구조다 보니 정밀한 시력 교정에 한계가 있어요. 게다가 소비자가 몰리는 시간에는 충분한 상담을 받기도 어렵죠. 공급자 입장에서도 어려움이 큽니다. 국내 안경 유통은 보통 중국 공장에서 1년 치 물량을 선주문하고, 7~8개월 후에 받는 구조입니다. 미래를 예측해 주문하다 보니 독창적인 디자인 도전은 불가능해요. 팔리지 않으면 악성 재고가 되니까요. 또, 일반적으로 안경 매장은 비싼 상권에 몰려 있어 마케팅과 임대료 비용도 과도하게 들어요. ━ 1시간에 1명만 응대…유럽 시장가 절반으로 줄여 브리즘은 이런 문제에 어떻게 접근했나요. 먼저 소비자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보려 했습니다. 브리즘은 예약제로 운영해 1시간에 단 한 명에게만 집중합니다. 3D 스캐닝으로 얼굴에 1221개 좌표를 찍어 얼굴 형태를 분석하고, 시력 검사와 진단 과정을 바탕으로 안경을 설계해요. 80여 개 디자인, 12가지 사이즈, 10가지 색상에 안경다리·코받침 소재와 모양까지 조합하면 수십만 가지 경우의 수가 나와요. 내 얼굴에 딱 맞는 안경을 만들 수 있는 이유죠. 공급자 입장에서도 좋아요. 예약제로 운영하다 보니 비싼 상권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 상권이 없거나 지하에 매장을 낼 수 있죠. 맞춤형이라 가격이 훨씬 비쌀 것 같아요. 브리즘 안경 가격은 보통 20만~30만 원대입니다. 물론 일반 안경보다는 가격대가 있죠. 그런데 맞춤 안경 시장 안에서만 본다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 맞춤형 안경은 70만~80만 원 정도는 줘야 살 수 있거든요. 브리즘은 주문 제작을 통해 직접 고객에게 판매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제작·유통 과정을 없애고 비용을 줄였어요. 맞춤형 안경 제작을 위한 진단 과정. 서혜빈 기자, 콥틱 ━ 문과생이 차린 기술 기업…“기술은 수단, 문제 진단이 먼저” 3D 스캐닝 기술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처음엔 자로 직접을 얼굴을 재다 한계를 느꼈습니다. 3D 스캔이 답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시엔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쓰던 기술이었죠. 그러다가 2017년 아이폰 10이 등장했는데, 여기에 페이스 아이디 기능이 추가된 거예요. 이거다 싶었죠. 브리즘에서 사용하는 1221개 얼굴 좌표 기능이 바로 애플의 기술이에요. 애플이 기술을 오픈 소스로 공개한 덕분에 브리즘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됐죠. 다른 최첨단 기술도 접목했는데요. 대량생산이 아닌 개인 맞춤 제작이라 3D 프린팅도 도입했어요. 필요한 만큼의 재료만 쓰기 때문에 기존 안경 시장 대비 폐기물을 80~90% 줄일 수 있죠. AI와 머신러닝 기술은 안경 스타일 추천에 활용해요. 약 8만4000개의 소비자 데이터가 쌓여있다 보니 얼굴 형태별 선호 디자인을 머신러닝을 통해 분석할 수 있어요. 가상 시착으로 실제 안경을 써본 듯한 경험도 할 수 있고요. 티타늄 안경 제조 공장 내 모습. 콥틱 문과생 공동창업으로 안경 기술을 만든 건데요. 저는 P&G 코리아에서 브랜드 마케터로, 공동창업자 성우석 대표는 삼일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일했어요. 전형적인 문과생들이죠. 과거엔 기술 기반 사업을 하려면 공대 박사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오픈소스와 상용 솔루션이 많아요. 기술은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일 뿐, 중요한 건 문제를 정의하고 소비자 니즈를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 미국 잡으면 글로벌 잡는다…스마트 안경 시장도 눈독 창업 초기부터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했는데, 이유가 있나요. 미국은 안경이 의료기기로 분류돼 전문의 처방 후 구매하는 구조라 가격이 비싸고, 시장 규모도 한국의 20~30배에 달해요. 다인종 사회라 얼굴 구조도 다양하죠. 가장 다양한 나라를 사로잡을 수 있다면 글로벌 진출은 그리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 곳곳에서 1년 반 동안 팝업스토어를 열어 미국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지난해 3월 뉴욕 1호점을 열었죠. 미국에서 진행한 팝업스토어 모습. 콥틱 스마트 안경 시대에 브리즘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10년 내 스마트 안경이 일상화될 거라고 예상합니다. 하지만 무겁고 불편하면 오랜 시간 착용이 어려워요. 앞으론 착용감이 중요한 시대가 될 거예요. 얼굴 측정을 통해 최적의 코받침을 설계한 ‘스마트 안경을 위한 스마트 핏 솔루션’을 준비하는 이유입니다. 내년도 CES에도 출품할 계획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다음 달 서울 성수동에 3D 프린팅으로 안경 공장과 쇼룸을 엽니다. 오는 11월에는 미국 시장을 겨냥한 앱을 출시해 매장 방문 없이 얼굴 측정, 안경 처방전 업로드, 제작 및 배송이 가능한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에요. 장기적으로는 근시 아동부터 노안을 가진 노인까지, 누구나 ‘보는 것’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관련기사 100만 MZ 술꾼 분석…목요일 오후 5시에 BTS 뷔 와인 산다 [비크닉] 빨간 간판에 코카콜라…팝업 없이 단숨에 '핫플'된 시장 골목 [비크닉] 700만뷰 '여신 직캠' 터졌다…2030 핫플, 워터밤의 비결 [비크닉] 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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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만뷰 '여신 직캠' 터졌다…2030 핫플, 워터밤의 비결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는 요즘, 화제가 되는 행사가 있습니다. 바로 ‘워터밤(WATERBOMB)’이죠. 관객과 아티스트가 팀을 이뤄 물총 싸움을 하며 음악을 즐기는 이색 행사인데요, 2015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처음 열린 이래 힙합·EDM·댄스 DJ에서 K팝까지 장르를 넓혀왔고, 2018년부터는 전국 투어로 진화하며 명실상부한 국내 대표 여름 축제가 됐어요. 올해도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 크롭티에 고글, 방수팩까지 장착한 수만 명의 관객이 어김없이 무대 앞으로 몰려들었고요. 워터밤 서울 2025 현장 열기. 메이드온 워터밤의 시그니처는 ‘워터파이팅(물총 싸움)’입니다. 대형 워터캐논이 터지면 사방에서 물줄기가 쏟아지고, 무대와 관객의 경계는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지난 2023년 가수 권은비의 직캠(1인 피사체를 강조해 찍은 영상)은 그 현장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로, 유튜브에서만 약 7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그를 ‘워터밤 여신’으로 등극시켰죠. 올해는 가수 박진영이 핫핑크색 ‘비닐바지’를 입으면서 SNS 키워드를 점령했고요. 서울과 부산 공연을 마친 워터밤은 오는 23일 속초에서 대장정을 마무리한다고 해요. 이 행사는 어떻게 2030의 여름 ‘핫플’이 됐을까요. 비크닉이 공연을 기획한 메이드온의 콘텐트기획팀 임우성 팀장을 만나 흥행의 비결을 들어봤습니다. 워터밤 서울 2025에서 무대를 선 가수 박진영이 '핑크 핫가이'라는 수식어로 SNS를 달궜다. 메이드온 ━ 발상의 전환으로 음악 축제의 틀을 깨다 Q. 워터밤은 어떤 아이디어로 시작했나요. A. 처음부터 ‘아티스트 중심’이 아니라 ‘경험 중심’ 축제로 만들고 싶었어요. 첫 회인 2015년은 힙합이랑 EDM이 주목받던 시기라 관객들은 단순히 무대를 보는 걸 넘어서, 직접 놀 수 있는 콘텐트를 원하고 있었죠. 마라톤·호캉스·액티비티처럼 경험형 여가가 뜨기도 했고요. 그래서 도심 한가운데서 즐기는, 어른들을 위한 ‘풀(pool)파티’가 있다면 어떨까 상상했어요. 풀파티가 조금씩 건강하고 유쾌한 분위기로 인식이 바뀌던 때였으니까요. 무엇보다 뮤직 페스티벌 자체가 점점 대중화하고 있었죠. 워터밤 2025 부산 현장에서 관객들을 향해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장면. 메이드온 Q. 물과 음악의 결합, 파격적인 시도였을 텐데요. A.여름은 덥고 습하고, 비라도 오면 금세 지치잖아요. 그렇다고 실내에서 행사하면 워터밤만의 콘셉트를 살리기 어렵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차라리 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죠. 당시 SNS에서 물총이 놀이 아이템으로 떠오르던 때였는데, 거기에 한창 2030세대가 열광하던 게임 배틀그라운드에서 전체적인 구조를 착안했어요. 음악, 물총, 컬러풀한 룩까지, 여름의 상징을 모두 한데 모은 셈이에요. 워터밤 직캠 영상으로 '워터밤 여신' 타이틀이 생긴 가수 권은비. 메이드온 Q. 매년 워터밤직캠 여신이 화제죠. 그 타이틀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A. 워터밤은 관객과 ‘함께’ 뛰어놀 줄 아는 아티스트를 찾아요. 물총을 들고 무대 위에서 직접 젖고, 호흡하고, 페스티벌의 흐름을 이해하면서 몰입해주는 분들이요. 섭외할 때부터 단순히 ‘출연자’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팀원’이라는 걸 분명히 전달해요. 퍼포먼스· 의상·이미지까지 여름에 맞춰 철저히 준비해 오는 아티스트일수록 무대 위 반응도, 관객 반응도 훨씬 뜨거워요. 그렇게 생긴 직캠 영상들이 SNS로 퍼지면서 ‘워터밤 여신’ 타이틀도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고요. 단순히 ‘노출’이 이슈가 되는 게 아니라 건강한 매력과 긍정적인 에너지가 관객에게 전달되는지, 그 퍼포먼스가 축제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부 부정적 시선은 있을 수 있지만, 저희는 아티스트가 더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관객이 즐겁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집중해요. ━ 축제의 하루, 디테일까지 설계된다 워터밤은 관객의 ‘하루 전체’를 하나의 콘텐트처럼 설계하는 체험형 축제예요. 라인업·장비·입장 동선·물 분사 타이밍과 강도까지 디테일하게 조율하죠. 여름이 끝나면 바로 다음 해 기획을 시작한다고 해요. 유튜브 리뷰, 현장 피드백을 분석하고, 10월이면 유럽 무대 디자이너와 연출팀이 머리를 맞댑니다. 올해는 실시간 워터파이팅 중계를 통해 우승팀에 굿즈를 주는 시스템도 도입했어요. 2025 워터밤 서울에서 스프라이트 모델 카리나가 무대를 즐기는 모습. 코카콜라사 Q. 이제 ‘워터밤’이 하나의 문화 아이콘처럼 여겨지는데요. A. 워터밤은 1년에 딱 한 번뿐인 특별한 경험이에요. 그 희소성이 워터밤만의 정체성을 더 강하게 만들죠. 특히 요즘 세대에겐 ‘인증샷’이 곧 자기표현이고, ‘어디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도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예매 단계부터 두 팀을 나눠서 응원 몰입도를 높이고,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워터밤만의 고유한 ‘코드’를 만들어가요. Q.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A. 관객이 입장 줄에 선 순간부터 퇴장할 때까지, 우리는 늘 ‘어디서 불편을 느끼는가’를 먼저 봐요. 지금은 평균 5~10분이면 입장이 끝날 정도죠. 물품보관소 예약, F&B 사전 주문, 쉼터와 포토존의 위치까지, 2만 명이 움직여도 혼잡하지 않게 전체 동선을 짜요. 줄 서는 시간조차 하나의 ‘콘텐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전체 관객의 60~70%가 여성인데, 그분들의 경험은 더 섬세하게 설계해요. 줄이 길어질 땐 협찬 부스와 연계해 굿즈를 나눠주고, 포토존에는 대기 인력을 둬서 흐름을 부드럽게 만들고요. ‘어디서 쉬고 싶은지’, ‘어떤 사진을 남기고 싶은지’, ‘기다리는 동안 뭘 원할지’를 계속 관찰하고 분석해요. ‘주차장 없는 맛집 안 간다’는 말처럼, 축제도 일상에서 당연하게 누리던 편의를 충분히 갖춰야 더 오래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어요. 다양한 '페스티벌룩'을 소화한 2025 워터밤 서울 관객들의 모습. 메이드온 Q. 요즘 워터밤에서 브랜드의 역할도 커졌다고요. A. 브랜드도 이제 무대의 일부예요. 단순 로고 노출을 넘어서, 연출과 경험을 함께 설계하는 공동 기획자에 가깝죠. 대표적으로 타이틀 스폰서의 경우 브랜드 색감이 자연스럽게 관객 룩과 음악 콘텐트에 녹아들게 했어요. 또 SNS에서 자발적 브랜드 콘텐트가 퍼지고, 여름 페스티벌용 스타일링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면서 뷰티 브랜드 참여도 늘었죠. 브랜드들이 ‘성수동 팝업’ 급으로 자신들만의 콘텐트를 기획해온 덕에 관객의 즐길 거리가 많아지고, 축제 밀도가 훨씬 높아졌어요. ━ 핫플을 넘어서…‘한국형 페스티벌’의 세계 진출 워터밤은 이제 ‘K페스티벌’의 글로벌 모델로 진화하고 있어요. 2023년 일본 도쿄·나고야, 태국 방콕 투어를 시작으로, 2024년엔 미국·중국·두바이 등 10개국에서 무대를 열었죠. 올해도 하이난·발리·호치민·마카오 등으로 계속 넓혀가는 중이에요. 하지만 넘어야 할 과제도 분명해졌죠. 그중 하나가 ‘물’이에요. 도시마다 기후와 환경에 대한 감수성이 다르다 보니 ‘과도한 물 사용’에 대한 우려도 늘 따라붙어요. 이제 ‘놀고 즐기는 축제’를 넘어서, 한 도시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나눌 것인지까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워터밤의 야외 무대 현장. 조명과 물줄기, 관객들의 환호성 등이 어우러진 장면이다. 메이드온 Q. 해외에서는 워터밤을 어떻게 보나요. A.‘K팝 페스티벌’로 보는 경우가 많아요. 누가 출연하느냐에 관심이 많죠. 하지만 저희는 그 무대 밖에서 벌어지는 경험까지 함께 전하고 싶어요. 재밌는 건, “이렇게 친절한 축제는 처음”이라는 반응이 많다는 거예요. 팬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줄을 서는 동안도 지루하지 않게 구성하고, 심지어 화장실마다 에어컨과 인테리어까지 신경 써요. 해외 페스티벌은 의외로 이런 기본적인 편의시설이 부족한 경우가 많거든요. 워터밤에서는 가수와 관객이 '물'이라는 요소로 하나가 된다. 메이드온 Q. 워터밤이 지향하는 축제는 어떤 모습인가요. A. 결국, 워터밤이 추구하는 건 ‘누가 와도 재미있는 여름’이에요. ‘어떤 경험을 만들까’를 매년 더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올해는 물총에도 유저 경험을 담아보자고 해서 아예 직접 디자인 특허까지 냈고요, 요즘 커스터마이징 트렌드에 맞춰 지비츠(꾸미기 파츠)도 넣었어요. 물론 물을 활용한 콘텐트인 만큼 환경에 대한 고민도 늘 함께 갑니다. 물 사용량엔 제한을 두고, 사용된 플라스틱 물총은 환경단체와 협업해 포토존 오브제로 리사이클링하고 있어요.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처럼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합니다. 결국 우리가 만들고 싶은 건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놀이 플랫폼’이에요. 단순히 공연을 보는 게 아니라, 워터밤이라는 세계 안에서 나만의 여름을 만드는 축제요. 워터밤이 매년 여름이면 떠오르는 하나의 문화, 한 시즌을 통째로 기억하게 만드는 이벤트가 됐으면 해요. 관련기사 "입어보고 사고 싶다"…1조 패션 공룡된 무신사 성공비결 [비크닉] 복잡해서 불편? "판매 전략"…돈키호테, 35년째 매출 우상향 비결 [비크닉] 고쳐 입는 '재미'와 다시 입는 '의미'에 주목…유니클로 실험 [비크닉]김세린 기자 kim.se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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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살려야" 그 마음 담았다, 요즘 책 알록달록해진 이유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요즘 서점에 가면 익숙한 책들의 낯선 모습을 종종 발견합니다. 출간 10주년, 100쇄 기념, 작가 특별전 같은 명분으로 표지 디자인을 바꾼 리커버(re-cover), 일명 ‘표지갈이’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죠. 지난달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리커버 도서를 전면에 내세운 주요 출판사 부스들이 여럿 등장했고, 온라인 서점도 자체 프로젝트를 통해 단독 리커버 도서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20여 년간 400여 권의 표지 디자인 작업을 해 온 정지현 북디자이너. 사진 본인 제공. 리커버 붐은 치열한 출판계의 현실을 반영합니다. 수백 권의 신간이 쏟아지는 가운데, 책 표지는 독자의 눈길을 끄는 첫인상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책은 단순한 상품이라 하기엔 까다로운 대상이죠. 다양한 주제와 깊이가 담겨 있고, 표지는 몇백 페이지 이야기의 감성과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줘야 하니까요. 비크닉은 그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좀 특별한 인물과 마주했어요.『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물 만난 물고기』『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등 20년 가까이 400여 권을 작업한 정지현(42) 스튜디오 즐거운생활 북디자이너입니다. 업력도 업력이지만 정씨가 남다른 건, 지난달 『책의 계절』이라는 책을 내며 직접 표지까지 맡았기 때문이죠. 책의 시작과 끝, 겉과 속을 모두 경험해 본 그에게 서점가의 요즘 이슈들을 알아봤어요. ━ 저자가 된 북디자이너…전 세계 책의 공간을 소개하다 정 디자이너가 펴낸『책의 계절』. 사진 즐거운생활. 디자이너로 오래 일하다 책을 낸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출판사 ‘김영사’에서 북디자이너로 일하던 2013년부터 여행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서점이나 도서관, 또 책 관련 거리와 축제를 기록으로 남겼어요. 그러다 지난해에야 제 여행을 관통하는 주제가 ‘책 여행’이었다는 걸 깨달았죠. 에피소드가 참 많은데 저만 알기엔 아깝더라고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의 공간’을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을 쓰게 됐어요. 책 디자인도 당연히 직접 했고요. 저자가 되어보니 디자이너로 일할 때와는 다른 점이 있었나요. 보통 마감을 지키는 작가가 많지 않아요. 그러면 디자인 작업이 덩달아 늦어져 마음이 촉박해지곤 했죠. 그런데 책을 써보니 글이라는 게 의지를 갖는다고 해서 써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원래는 지난해 가을쯤 출판 목표를 잡았는데, 거의 1년 가까이 늦어졌어요. 작가의 고충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아우데만하우스포르트 중고 서점 거리. 사진 정지현 디자이너 ━ 마지막 쪽까지 디자인한다…논리 없는 디자인은 실패한 것 지금까지 400여 권을 작업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이 있나요, 2011년에 나온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요. 무라카미 하루키와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의 대담집인데, 음악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대놓고 드러내는 대신 음악의 ‘느낌’을 표현하려 했어요. 제목 글자를 해체해 음표처럼 보이게 했고, 음률이 느껴지도록 배치했죠. 다음 장엔 빨간 속지를 넣어 피아노 건반 덮개를 연상시켰고요. 저는 가급적 정해진 디자인 규칙을 조금이라도 깨보려 노력하는 편인데, 이 책 역시 그런 시도를 많이 한 작업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정지현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 사진 본인 제공 표지에서 책 디자인이 끝나는 게 아니네요. 책은 여러 장으로 묶여 있잖아요. 디자인을 통해 책을 펼치고 덮는 순간까지 긴 호흡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해요. 예를 들어, 글이 너무 많거나 복잡한 개념이 등장할 때는 비어 있는 면을 배치해 독자가 숨을 고를 수 있게 하고, 장면 전환이 필요할 땐 색깔이 있는 면을 과감하게 넣죠. 글자 크기나 스타일을 조절해서 이야기의 강약을 전달하기도 하고요. 종이 종류·두께·색감까지 모든 디자인에 의도가 있다고 보면 돼요. 디자인에도 저자와 편집자의 의도가 많이 반영되지 않나요. 디자인 시작 전, 저자와 편집자에게 아주 집요하게 질문을 던져요. 그다음엔 원고를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키워드를 뽑고, 그걸 바탕으로 제 나름대로 재해석하면서 디자인 방향을 잡아요. 디자인이 감각적인 작업처럼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논리적인 영역이에요. 선 하나, 색 하나, 이미지 위치까지 왜 그 자리에 특정 형태로 있어야 하는지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거든요. 설명할 수 없는 디자인은 설득도 할 수 없고, 결국 실패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북 디자인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든 경험도 있나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은 10만 부 넘게 팔렸고, 『물 만난 물고기』『간송 전형필』 등의 책은 스테디셀러로 사랑받고 있어요. 물론 작가의 이름과 책 내용이 중요하지만, 디자인의 영향이 아예 없었다고 말할 수 없어요. 독자들의 서평을 찾아보면 책을 선택한 이유로 디자인을 많이 언급하거든요. 정지현 디자이너의 캘리그라피와 아트워크. 사진 본인 제공 ━ 미적 감각 높은 한국인…리커버는 생존 수단 최근 책 출판에 디자인이 점점 중요해지는데요. 중요한 요소가 된 지 꽤 됐어요. 서점에만 가도 형형색색의 예쁘고 독특한 책들이 열심히 존재감을 뽐내잖아요. 외국인들도 한국 서점에 가면 마침 백화점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요. 한국 독자들의 미적 감각이 높기 때문일 거예요. 리커버 도서도 이런 배경에서 나오는 건가요. 일각에서는 상업적이라는 비판도 있는데요.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현실을 고민하며 나온 전략이라고 생각해요. 또 매년 수많은 책이 쏟아지다 보니 조명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좋은 책도 많아요. 그런 책들을 어떻게든 다시 살려보고 싶다는 출판계의 의도가 담긴 시도이기도 하고요. 내용은 그대로인데 디자인만 바꾸는 일이 꼭 책에만 있는 건 아니에요. 많은 소비재가 리패키지되면 다시 주목받기도 하잖아요. 책도 마찬가지죠. 출판 시장도 자본주의 안에 있는 산업군이고, 수익이 나야 지속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너무 가혹한 시선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해요. 2025 서울국제도서전 모습. 연합뉴스 북 디자인도 시대별 유행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북 디자인을 시작한 2000년대 중·후반엔 캘리그라피가 굉장히 유행했어요. 당시 웬만한 책 제목은 다 붓글씨로 썼을 정도죠. 2010년대 들어서며 일러스트·캘리그라피·타이포그래피 등 다양한 디자인 기법이 혼합되면서 북 디자인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유행을 따르지 않는 흐름이 강한 것 같아요. 잘 팔리는 디자인 공식이나 문법보다 책의 콘텐트에 집중한 결과물이 많아지고 있거든요. 젊은 디자이너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자책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 표지 디자인에도 변화가 있나요. 전자책에서 북 디자인을 구현하기엔 한계가 있어요. 북 리더기에서 제공하는 서체와 배경·여백 형태에 맞추면 원래 디자인이 사라지니까요. 물론 PDF 형태로 디자인을 살리는 방식도 있죠. 이번에 낸 『책의 계절』도 PDF 형태로 전자책을 낼 예정이에요. 독자들이 제가 의도한 디자인대로 읽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미래엔 북 디자이너의 디자인까지 담아낼 수 있는 제3의 북 리더기가 나오면 좋겠어요. ━ 전자책부터 숏폼까지…요즘 출판 시장이 살아남는 법 책을 안 읽는 시대인데, 도서전 같은 행사는 점점 더 인기를 끄는 것 같아요. 도서전마저 흥행에 실패했으면 암울했을 것 같아요. 독서 인구가 줄고 있다곤 하지만 독자는 여전히 존재하고, 도서전은 숨어있는 독자와 작가, 출판사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책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도서전 같은 공간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도서전에 가면 책만큼이나 굿즈도 많이 보여요. 2010년대에 알라딘에서 시작한 굿즈샵이 큰 반향을 일으켰죠. 지금은 아예 하나의 시장이 형성됐고 ‘텍스트힙’이라는 트렌드로 북 커버 같은 아이템도 인기를 끌고 있죠. 책 굿즈를 소비하는 건 러닝이나 등산을 하기 전 장비를 준비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본질을 더 잘 즐기기 위한 부가적인 즐거움인 거죠. 유튜브 채널 'ODG'와 교보문고가 협업한 프로젝트 '책 추천 해주세요' 영상 화면. 교보문고 출판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앞으론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까요. 전자책이 등장하고, 숏폼 등 자극적인 콘텐트가 늘면서 책의 경쟁자가 많아졌죠. 하지만 동시에 책이 가진 고유한 의미를 다시 돌아보는 흐름도 보여요. 최근 유튜브 채널 ‘ODG’가 교보문고와 협업해서 책을 주제로 한 콘텐트를 만들었어요. 다른 사람은 어떤 책을 읽는지, 책 읽는 이유는 무엇인지 들어보는 콘텐트죠. 그동안 책은 혼자 읽는 매체라고 여겨졌지만, 이제는 책을 매개로 사람들이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련기사 슬리퍼 끌고 가서 한 잔…생활맥주는 어떻게 '자영업 실험실'이 됐나 [비크닉] 팝업·쇼 하나도 안했는데 전세계서 터졌다…마뗑킴 성공비결 [비크닉] '전국구 분식' 김밥 두고 지자체마다 축제 벌이는 이유 [비크닉]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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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랑 보다가 엄마가 눈물 핑…해외도 반한 티니핑 비결 [비크닉]
아이와 어른세대까지 홀린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작 '사랑의 하츄핑' 스틸컷. SAMG엔터테인먼트 귀여움은 기본, 모으는 재미는 덤. 아이는 물론 부모까지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캐릭터가 있어요. ‘하츄핑’ ‘오로라핑’ 등 품절대란 캐릭터를 만든 국내 3D 애니메이션 ‘캐치! 티니핑(이하 티니핑)’이 그 주인공입니다. 지난 2020년 팬데믹 당시, 아동 채널을 통해 조용히 데뷔했는데, 무서운 속도로 ‘국민 캐릭터’가 됐죠. 최근 2년간 만 3~9세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1위를 기록했으니까요(2024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캐릭터산업백서). ‘뽀로로’가 장기간 지켜온 왕좌를 넘겨받은 것만 봐도 인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캐릭터로 대성공을 거두기까지, 비결은 분명합니다. ‘단순하지 않다’는 겁니다. 소비자들이 좋아하고, 공감하고, 팬으로 거듭나는 ‘문화’가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해요. 티니핑도 마찬가지입니다. 140여개에 달하는 캐릭터가 얽히고설킨 복합적인 세계관, 정교한 서사, 팬덤을 설계하는 것이 어딘가 K팝의 흥행 전략을 닮아있습니다. 소속사가 아이돌 그룹의 ‘자컨(자체 콘텐트)’으로 일반 대중까지 끌어오는 것처럼요. 비크닉이 티니핑을 만든 SAMG엔터테인먼트 김수훈 대표를 만나 캐릭터 성공의 뒷이야기를 들어봤어요. ━ ‘업계 공식’ 비튼 시도, ‘국민핑’ 만들기까지 비크닉과 인터뷰를 진행한 김수훈 SAMG엔터테인먼트 대표. SAMG엔터테인먼트 SAMG는 2000년 설립된 이후 ‘미니특공대’ ‘메탈카드봇’ 등으로 국내와 중국에서 히트작을 선보인 3D 애니메이션 제작사입니다. 티니핑은 2017년부터 기획한 작품으로, 처음부터 목표가 분명했다고 해요. 오랜 기간 남아용 콘텐트에 집중하다 4~7세 여아를 타깃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한 거죠. 당시 아시아 애니메이션 시장은 히어로물·로봇물처럼 남아가 주류였고,의상·머리카락·표정 같은 세밀한 CG 기술이 요구되는 ‘요정물’은 상대적으로 드물었으니까요. 티니핑은 공주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끄는 전형적인 ‘여아물’ 문법을 비틀면서 출발했어요. 모으는 재미로 팬덤 소비 트렌드를 파고든 티니핑의 캐릭터 피규어. SAMG엔터테인먼트 Q. 뽀롱뽀롱 뽀로로, 핑크퐁 아기상어와도 다른 인기 행보인데요, 티니핑만의 셀링 포인트가 있나요. A. 티니핑은 하나의 캐릭터에 의존하지 않아요. 시즌마다 세계관을 확장해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죠. 개성도 성격도 다른 캐릭터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둘씩 모으는 ‘컬렉팅’ 전략을 세웠어요. 특히 2020년 출시 당시 전 세계적으로 캐릭터 수집 열풍이 있었고, 이미 해외에서 검증된 포맷이었기에, 한국 시장을 선점하자는 취지였죠. 팬덤 소비를 이끌기 위해 ‘파산핑’ ‘등골핑’ 같은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트)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아이들이 진심으로 캐릭터를 모으는 재미에 빠졌다는 뜻이고, 다양하게 불리는 것만으로도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Q. 수집 욕구를 자극하려면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이어야 할 텐데요, 접근법이 궁금합니다. A. 철저한 시장 및 트렌드 분석이 필요해요. 미야자키 하야오(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감독)처럼 창작자의 독자적인 세계관이 매력적이라 팬을 끌어들이는 방식도 있지만, 저희처럼 기업 단위로 움직이는 곳은 다릅니다. 시장과 문화에 대한 정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해요. 애니메이션도 결국은 문화 상품이에요. 최신 기술, 트렌디한 디자인, 팬덤 설계까지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제대로 작동하죠. 특히 코어(핵심) 타깃인 아이들이 캐릭터를 좋아하는 논리·정서·행동을 깊이 이해하고 정밀하게 분석해 설계했어요. ━ 어른 울린 ‘하츄핑 신드롬’은 단순하지 않았다 '사랑의 하츄핑' 무대인사 당시 현장. SAMG엔터테인먼트 지난해 개봉한 극장판 ‘사랑의 하츄핑’은 티니핑 인지도 상승의 일등공신이 됐어요. 로미 공주(티니핑 세계관의 주인공)의 성장 서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MZ세대와 3040 부모 세대까지 감정적으로 끌어들이며 ‘N차관람 열풍’을 일으켰죠. 124만 관객을 모으며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 국내 애니메이션 영화 역대 흥행 2위라는 기록을 세웠고요. 에스파 윈터가 부른 OST ‘처음 본 순간’은 ‘한국판 렛잇고’라는 별칭까지 얻었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IP(지식재산권) 가치가 높아지면서 대형마트나 편의점 어디에서든 협업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됐어요. 최근에는 현대자동차와 함께 스핀오프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하며, 캐릭터와 기업 브랜드가 하나의 콘텐트로 결합한 첫 사례도 만들었습니다. ‘보는 콘텐트’를 넘어 ‘소비하는 세계관’이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영화 '사랑의 하츄핑' 영화 주인공 로미와 하츄핑이 마주한 순간. SAMG엔터테인먼트 Q. 유아물이 어른의 마음마저 자극한 비법은 뭘까요. A. 애니메이션 영화는 보통 두 가지 방식이 있어요. 하나는 TV 시리즈를 확장하는 것, 또 하나는 디즈니처럼 완전히 독립된 패밀리 무비로 만드는 건데, 저희는 그 중간 지점을 고민했죠. 안정적인 선택은 TV 시리즈를 확장하는 방식이에요. 제작 예산도 상대적으로 명확한 편이고, 시장 반응이나 관객 규모도 예측할 수 있죠. 그런데 영화는 좀 더 보편적인 이야기, 더 깊은 감정선을 담아야 한다고 봤어요. 그래서 본질은 귀엽고 유아 지향적인 이미지가 강한 요정물이지만, 극장판에선 ‘처음 친구를 사귀었을 때’, ‘처음 반려동물을 만났을 때’처럼 애틋한 감정 중심의 서사가 나왔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 덕에 관객 연령대도 넓힐 수 있었고요. 현대자동차가 캐치! 티니핑과 협업해 제작한 스핀오프 필름. 현대차 Q. 콘텐트로 늘어난 소비층을 사업화하는 과정이 궁금한데요. A. 자체 완구기획팀을 두고 IP를 활용한 유통시스템을 구축했어요. 인지도가 높아지면 타깃 확장을 위한 협업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니까요. 포켓몬도 그랬고요. 현대자동차와의 협업 역시 흥미로운 사례에요. 키즈·패밀리 마케팅에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보다는 캐릭터성이 강한 파트너를 선호하면서 협업이 나왔죠. 티니핑은 아이들뿐 아니라 온 가족이 좋아할 수 있는 구조라 이런 확장이 잘 맞는 편입니다. 최근엔 20~30대 여성 팬층까지 생기면서 화장품,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도 활발해졌어요. ━ 해외팬까지 홀린 K애니…티니핑이 꿈꾸는 미래 유튜브에선 사랑의 하츄핑 OST를 부른 에스파 윈터가 직접 출연한 '장난감 언박싱' 영상으로 국내외 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유튜브 채널 '티니핑TV' SAMG는 이제 ‘글로벌 티니핑’을 위한 장기전에 들어섰어요. 지난 4월 인기 동영상 플랫폼 틱톡(Tiktok) 출신의 글로벌 전략가 배정현 총괄을 영입한 것도 그 일환이죠. 김 대표는 “과거엔 TV 채널에 기대야 했지만, 지금은 유튜브·넷플릭스·틱톡처럼 글로벌 팬덤과 직접 연결되는 통로가 열려 있다”고 했어요. 실제로 이미 티니핑은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글로벌 총 조회 수 323억회를 훌쩍 넘으며 아시아, 북미, 유럽까지 팬덤을 확장했죠. Q. K애니메이션의 중심에 서 있는 입장에서 시장 전망은 어떻게 보나요. A. 저는 K팝과 흐름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화려하고 귀여운 것’에 열광하는 글로벌 Z세대는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캐릭터를 발견하고, 팬덤을 만들고, 자발적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니까요. 한국은 지금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 트렌드 감각, 글로벌 유통 인프라를 모두 갖췄습니다. 이제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지속 가능한 브랜드’로 연결하느냐죠. 또 콘텐트 수출 및 판매와 브랜드 확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거든요. 영상 유통을 넘어, 현지화된 감성 브랜딩을 핵심 과제로 보고 있습니다. Q. SAMG의 장기적인 목표도 궁금합니다. A. 닌텐도처럼 슈퍼 글로벌 IP를 만드는 것이에요. ‘사랑의 하츄핑’과 같은 강력한 벨류 체인이 만들어지면, 데이터와 팬덤에 기반을 둬 새로운 콘텐트를 선보일 수도 있겠죠. 또 티니핑을 좋아하는 감정이 10년이 지나도 ‘좋은 기억’으로 남고, 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 구조로 설계하려 해요. 이런 요소를 계속 자극하고 확장하면 디즈니의 미키마우스처럼 브랜드도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요. 관련기사 1.5조원짜리 피자로 시작된 기부…비트 든 윤남노도 나섰다 [비크닉] '지드래곤 음악' 우주로 쏘아 올렸다…카이스트는 대체 왜 [비크닉] 지구 25바퀴 도는 68억갑 팔렸다…국민 간식 50년의 여정 [비크닉]김세린 기자 kim.se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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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드래곤 음악' 우주로 쏘아 올렸다…카이스트는 대체 왜 [비크닉]
과학 예술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지드래곤’ 사진 KAIST 아트앤테크놀로지 센터 지난 4월 9일, 가수 지드래곤의 음악 ‘홈 스위트 홈’을 우주로 송출하는 과학 예술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지드래곤’이 공개돼 화제를 모았습니다. 카이스트 우주연구원의 위성 기술을 통해 79억 광년 떨어진 사자자리를 향해 쏘아 올린 건데요. 거대한 안테나에는 지드래곤의 홍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 아트 작품이 투사되어 장관을 이뤘어요. 지드래곤은 현장에 참석해 “지구에 사는 누군가의 감정이 우주를 떠돌다 다시 와 닿을 수 있다면, 그건 아주 멀리까지 닿은 깊은 위로일 것”이라는 소감을 밝혔죠. 4월 9일, 송출 현장에 참석한 이진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오)와 가수 지드래곤(가운데). 사진 갤럭시 코퍼레이션 이 프로젝트는 누가 왜 만든 걸까요. 주인공은 미디어 아티스트인 이진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입니다. 이 교수는 여러 전문가 협업해 세계 최초 예술·과학 융합형 송출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1984년 백남준 작가의 전설적인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정신을 계승해 ‘굿모닝 미스터 지드래곤’을 발표한 거죠. 인공위성을 통해 지구 곳곳 방송을 내보낸 백남준과 달리 이번에는 우주로 시선을 돌려 발상의 전환을 이뤄냈습니다. 이 교수는 융합 분야의 전문가로 통하는데요. 비크닉이 만나 이번 프로젝트 이야기와 AI 시대의 방향성을 물었습니다. ━ 첨단 기술과 예술의 결합, 본질은 인간의 ‘상상력’ 이진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사진 진준리 스튜디오 ‘굿모닝 미스터 지드래곤’은 어떻게 기획된 프로젝트인가요. 기획을 구상하던 때가 올해 초였는데,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전 세계가 떠들썩했고 국내는 탄핵 이슈로 혼란스러웠죠. 사람들이 편을 가르고, 열띠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말한 ‘페일 블루 닷(Pale Blue Dot·창백한 푸른 점, 보이저 1호가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를 뜻함)’이 떠올랐어요. 저 멀리 우주에서 보면 우리는 먼지 같은 존재거든요. 찰나의 인생에서 과연 중요한 게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고 싶었죠. 총장님과 오래 전부터 우주 센터의 위성 안테나를 이용한 프로젝트를 논의했었는데, 마침 지드래곤이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초빙교수로 부임하면서 ‘엔터 테크’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의 소속사도 기획 단계부터 적극적인 도움을 주었고요. 지드래곤의 홍채 이미지를 이용한 AI 아트 이미지(왼). 실제 구조물에 빛과 영상을 투사하여 시각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프로젝션 매핑 기술로 안테나에 송출했다.(오) 사진 KAIST 아트앤테크놀로지 센터 송출 당시 우주 안테나에 홍채 이미지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왜 ‘눈’이었나요. 인간의 홍채에는 많은 생체 정보가 담겨 있어요. 제가 맡은 TX LAB(Total eXperience LAB)은 기술과 예술을 융합한 총체적 경험을 연구하는 조직인데, 주로 인간의 생체 신호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와 작품 활동을 해요.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지드래곤의 홍채 이미지 데이터를 여러 AI 기술로 증강 및 생성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안테나에 빛과 영상을 투사하는 ‘프로젝션 매핑’을 입혔고, 송출 현장에서는 지드래곤의 목소리와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소리를 AI로 재해석한 사운드아트가 동시에 흘러나왔습니다. 종소리를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지금은 타종을 못 하니까 국립경주박물관의 녹음 자료로 들을 수밖에 없는 귀한 소리인데요. 우연히 이 소리를 녹음하신 분의 스튜디오에서 듣고, 말 그대로 영혼이 깨어나는 느낌이었어요. 신라 시대부터 현재까지 시공간을 초월하는 ‘천 년의 울림’이죠. 이번 프로젝트 역시 내면의 공간과 우주의 공간을 연결하는 ‘초월’의 개념이 있거든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글로벌 프로젝트를 통해 에밀레 종소리를 전 세계에 들려주고 싶어요. ‘굿모닝 미스터 지드래곤’은 카이스트 우주연구원, TX LAB, 갤럭시코퍼레이션, 아마스튜디오와의 공동 협업을 통해 완성된 세계 최초의 예술·과학 융합형 우주 송출 실험이다. 사진 KAIST 아트앤테크놀로지 센터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했는데, 애로사항은 없었나요. 카이스트 우주센터에서 그 큰 위성 장비를 움직이게 한다는 게 가장 큰 이슈였죠. 연구원들이 안 해본 걸 시도한다는 점에서 재미있어하고 이해해 주셨어요. 기술적으로 워낙 전문가들이셔서 데이터를 송출하는 건 큰 어려움이 없었죠. 그런데 송출 전날, 리허설로 실제 안테나를 움직여보니 생각보다 기계음이 크게 나더라고요. 그날 바로 연구실에 가서 밤새 그 소리에 맞춰 음악을 다시 만들었어요. 아찔한 순간이었죠. 영상 KAIST 아트앤테크놀로지 센터 제공 AI·생체정보·우주위성기술 등 첨단 기술로 주목받은 프로젝트지만, 인간의 감정과 상상력을 강조합니다. 미디어아트가 기술 시연회처럼 되어서는 안 돼요. 예술가들은 기술 자체가 아닌, 기술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거잖아요. 그리고 정말 좋은 기술은, 좋을수록 눈에 잘 안 보이는 법이거든요. 지금은 AI가 만든 알고리즘 속에 갇혀 있는 ‘감금의 시대’라고 생각해요. 알고리즘이 개인을 규정하고 구조화된 시스템이 차별과 혐오, 분열과 논란을 방치하고 있죠. 여기에서 빠져나오려면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거나 다른 차원으로 깨부수고 나올 장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상상의 범위를 우주 혹은 천 년 이상의 시간 차원으로 돌려보고자 했던 거고 저는 그것이 예술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 AI를 ‘동시대의 물감’으로 삼아야 이 교수가 처음부터 예술가였던 건 아닙니다. 그는 서울대 경영대학을 나와 1년여간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PD로 일했어요. 이후 서울대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을 마치고 영국으로 건너가 왕립예술대학에서 석사를,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순수예술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세계 석학들이 평가하는 박사 심사에서 ‘Empty Garden(빈 정원)’ 철학을 주제로 만장일치 통과한 뒤, 추천을 통해 영국 왕립예술학회 종신석학회원(FRSA)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죠. 이진준, 방황하는 태양(Wandering Sun), 2024.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게임 엔진, NASA 지구 관측 데이터, 2.4m x 57.6m, 2.6pt, 4분 15초. 사진 이진준 예술의 어떤 점에 매료됐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궁금하면 끝까지 파보는 성격이거든요. 직장도 좋았지만, 창의적이거나 실용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어요. 그렇게 학교에 돌아갔고,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왔더니 결국 예술의 본질은 사유와 철학이더군요. 영국왕립예술학회 종신석학회원이 됐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요. 박사를 받고 FRSA가 됐을 때 누군가는 ‘우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는 그때 비로소 자유로워졌어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서구 관점에서 만들어진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 기술 철학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연대하며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특히 미디어아트는 동서양에서 역사상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분야예요. 요즘처럼 AI가 폭발적으로 성장할수록 더 탐구해 볼 것이 많으니 흥미진진하죠. 우리는 이런 기술을 ‘동시대의 물감’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진준, 해피 뉴 이어 - 온 에어 가든 시리즈(Happy New Year - On Air Garden Series), 2024.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프로젝터, EEG 장치, 공명 스피커, 시스템 컴퓨터, 4분. 스틸 이미지 가끔 변화가 너무 빨라 두렵기도 합니다. 어떻게 AI와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챗 GPT의 등장으로 뭔가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고 느껴지지만, 이미 30여년 전부터 알고리즘 같은 규칙 기반 시스템이 작용하는 생성예술이 탄생했고 AI의 개념 역시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어요. 메타버스 역시 이전부터 엑스버스라는 개념으로 존재했고, 지금도 현실과 가상이 결합한 공간으로 유효하게 작동하죠. 한국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속도를 맞출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앞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앞서 말한 TX LAB은 예술·디자인 분야의 크리에이터, 기술 기반의 테크니션, 인문학·사회학·심리학 연구원까지 총 세 파트가 결합한 조직으로 다양한 창작물을 만들어요. 여러 프로젝트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데이터, 그중에서도 생체 신호에 집중하고 있는데요. 인간의 뇌파를 이용한 영화를 만들었고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대 상영 예정입니다. 이밖에 AI를 활용한 영화 시나리오 작업, 동화책, 미디어 퍼포먼스, 개인전(올해 9월 서울 및 내년 태국) 등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지드래곤과 지속적인 협업을 위한 ‘엔터 테크’ 연구 센터가 올 가을 개소될 예정입니다. 비크닉 관련기사 흑백요리사가 차려준 '술상' 대박…요즘 술 브랜드 '필승 공식' [비크닉] 광목 쓰던 76년 전 수건 생산…타월의 역사가 되다 [비크닉] 예비부부 3쌍 중 2쌍 택했다…55년 청첩장 파는 이 업체 비결 [비크닉]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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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답게 아닌, 나답게"…작가로 변신한 진서연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힐링·건강·자기계발 등 '셀프 브랜딩'의 아이콘 배우 진서연. 그래픽 김세린 나 스스로를 브랜드로 만들어 가치를 키우는 일, 이른바 ‘셀프 브랜딩’의 시대입니다. 연예인이나 유튜버가 아닌 평범한 이들 역시 자신만의 콘텐트를 만들고 개성과 색깔을 드러내며 ‘상품성’을 만들어 가는 데 관심을 보입니다. 실제 직장인 10명 중 9명 이상(95.3%)이 ‘커리어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20대는 이직을 위해, 30·40대는 자신의 성장을 기록하기 위해 셀프 브랜딩을 시작한다고 해요(2024 잡코리아×눜 설문조사). 나이를 먹고, 일터를 옮기고, 자기계발에 힘쓰는 과정에서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핵심이고요. 최근 배우 진서연이 내놓은 에세이집『견딜겁니다』는 이런 셀프 브랜딩의 추세에서 눈길이 가는 신간입니다. 오랜 무명 시절을 보낸 그가 9년간 차곡차곡 써온 일기를 엮은 것으로, 그저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버텨왔던 세월 속 ‘견딤’의 이야기를 담아냈죠. 이 책은 ‘자기 확신’과 ‘진짜 나를 지키는 여정’이 셀프 브랜딩의 핵심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데요, 그는 어떻게 ‘나답게’ 존재하며,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냈을까요. 비크닉이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배우 진서연의 첫 작가 데뷔작 에세이 '견딜겁니다'. 사진 진서연 ━ ‘있는 그대로’의 나 보여주기…‘진서연식’ 브랜딩 『견딜겁니다』책의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진서연은 내면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거칠게 풀어내는 것에서부터 브랜딩 철학을 확립했어요. 작품활동 외적인 부분에서도 ‘진서연’이라는 브랜드의 진정성을 강조하고 있고요. 인스타그램을 통해 요리하고 운동하거나 독서모임을 가지는 등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식으로 말이죠. '별제이'라는 필명으로 자신의 일기를 인스타그램에 기록해왔던 진서연. 그래픽 김세린 Q. '나'를 책으로 담아낸 계기와 여정이 궁금합니다. A.힘들 때마다 써온 일기를 인스타그램 비공개 계정에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2016년부터 ‘별제이’라는 필명으로 일부를 공개했고, 이를 본 출판사 대표님의 제안으로 책 작업이 시작됐어요. 책으로 엮기까지는 2~3년간 고민이 필요했어요. 책으로써의 필요성을 스스로 설득해야 했거든요. 그런데 모은 글을 정리하며 확신이 생겼죠. 글을 3인칭 시점으로 기록한 덕에 제3자의 시선에서 저를 바라보고, 감정을 이성적으로 다듬을 수 있었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힘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강해 보여도 누구나 고통스럽고 연약한 순간을 견디며 살아간다는 걸, 그리고 결국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싶었고요. Q. 그 과정에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요. A. 책을 쓰는 과정은 결국, 저 자신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었어요. ‘나는 어떤 사람이고,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를 되짚으며, 두렵고 불안했던 시절에 쓴 글들을 다시 마주했죠. 그때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로 용기를 내기 위해 쓴 글들이니까요. 글을 정리하며 깨달은 건, 누구나 자기 인생의 ‘철학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신념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어요. 모두 제가 직접 겪은 일이기에 더 단단하고 진하게 다가오고, 그 경험에서 나온 말들이 자연스럽게 힘을 만들어줬고요. 제가 살아가면서 ‘왜’를 찾기 위해 일기를 썼듯, 누구에게나 ‘왜’를 견고하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요. ━ 배우-작가의 연결점…내면의 강한 힘 기른 여정 배우 진서연이 출연한 tvN 예능 '무쇠소녀단' 스틸컷. 사진 tvN 232쪽에 달하는 이번 책의 무게만큼, 진서연에게도 내면의 강한 힘을 기르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해요. 이런 모습은 여배우들의 철인 3종 경기 도전기를 담아내 화제가 된 tvN 예능 ‘무쇠소녀단’을 통해서도 드러난 바 있습니다. 진서연이 평생의 트라우마였던 바다 수영을 해냈으니까요. ‘완벽해서 하는 도전’이 아닌, ‘극복하고 채우고 성장하는 과정’이 관전 포인트였던 것처럼, 그는 책에서도 “과정 안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매일매일을 견디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쫓지 마십시오”라고 말합니다. Q. ‘배우로서의 진서연, 작가로서의 진서연’의 연결점이 있다면요. A. 배우 진서연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실현하는 사람이고, 작가 진서연은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 직접 써내려가는 사람이에요. 이 둘은 결국 연결된다고 봐요. 배우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는 다양한 인생을 살아볼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기 때문이었어요. 작품에 들어가면 몇 달간 한 인물로 몰입하는데, 충만한 감정이 얼굴과 눈빛에 고스란히 배어요. 그렇게 쌓인 삶의 조각들이 결국 저를 더 단단하고 깊이 있게 만들고, 꾸미지 않아도 눈빛 속에 이야기와 무게가 스며들게 하죠. 우리 모두 ‘나’로서 존재하고, 그 자체로 사랑받는 존재라는 식의 메시지가 자연히 책에 녹아들게 됐죠. 영화 '독전'에서 명연기를 펼친 진서연. 해당 필모그래피는 진서연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독전' 스틸컷 Q. 배우 생활 중 ‘견딤’이 중요하다고 느꼈을 텐데, 극복 방법이 있었나요. A. 배우는 ‘필요한 시점’과 ‘맞는 캐릭터’가 될 때 기회가 옵니다. 불안정함 속에서 배우라는 삶에 집착하지 않고 ‘나’를 찾는 과정과 공부가 필요한데, 저는 요가·명상·운동으로 몸과 마음을 다잡는 훈련을 해요. 누가 나를 풀잎이라 해도, 내가 소나무처럼 단단하다는 믿음도 필요해요. 고독을 받아들이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일부러 선택해 두려움과 마주하는 연습도 중요하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면, 무작정 뛰기라도 해보세요.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따라가니까요. 동기부여 책만 읽는 것보다, 뭐라도 행동하고 실천해야 와 닿는 게 남다를 테니까요. ━ 긴 터널 지난 뒤, ‘엄마적 사고’가 이끌 오늘과 내일 배우 진서연. 사진 앤드마크 결국 ‘단단한 사람’이라는 게 진서연의 브랜딩 포인트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는 셀프브랜딩을 도전하는 이들에게 “‘누군가가 좋아할 나’를 만들기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가 되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기존에 있는 무언가에 내 색을 입히는 것만으로도 ‘나의 아이덴티티’가 생길 수 있다”고 조언했어요. ‘여배우답게’가 아닌 ‘진서연답게’. 기준은 남이 아닌, 나의 철학으로 이끌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죠. ‘엄마적 사고’라는 진서연만의 철학도 뒷받침되었다고 해요. Q. 진서연님만의 ‘엄마적 사고’가 SNS에서도 화제를 모았는데요, ‘멘탈 관리’ 비결이 궁금합니다. A.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바쁘셨고, 형제자매들도 각자 일에 몰두하느라 제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그래서 일찌감치 깨달았죠. 나를 아끼고, 사랑해줘야 할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걸요. ‘엄마적 사고’도 같은 얘기입니다. 내가 나에게 ‘엄마처럼’ 애정을 쏟고, 몰입하기 시작하면 단단하고 멋진 사람이 될 수밖에 없어요. 고통을 이겨내고 좋은 습관을 만들어내면 작은 것들에도 충만함과 감사함을 느끼게 되고, 그 에너지가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되죠. 매일 일기에 감사한 일을 세 가지씩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달리 보여요. 진서연이 모닝루틴을 실천하는 모습. KBS 예능 '신상출시 편스토랑'에서 공개된 진서연의 건강레시피는 SNS에서 큰 화제를 모으며 헬시플레저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사진 KBS Q. 배우, 작가를 넘어 ‘넥스트 진서연’은 어떤 모습일까요. A. 저는 되고 싶은 것도, 경험하고 싶은 삶도 많아요. 언젠가는 뉴욕 모마(MoMA) 미술관 같은 공간에서 퍼포먼스와 전시를 선보이고 싶어요. 영상 제작, 시나리오·소설·에세이 집필 등 다양한 창작 활동도 계속하고 싶고요, 팝업스토어를 열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저의 ‘건강 레시피’를 소개하며 먹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이 모든 활동은 내가 주체고 ‘나’를 표현하는 방식의 일부로 이어져요.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될 것 같은 미래의 제가 기대됩니다. 관련기사 반려견 산책, 뜨개질 교습…"도와줘요" 미담 퍼진 동네 '알바씬' [비크닉] 밤 12시 되면 트래픽 폭주…'운세'에 푹 빠진 MZ들, 왜 [비크닉] 샤넬·디올 제치고 '넘버1' 꿰찬 K뷰티…도쿄 시부야 홀렸다[비크닉] 김세린 기자 kim.se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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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산책, 뜨개질 교습…"도와줘요" 미담 퍼진 동네 '알바씬'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당근알바 팝업스토어 현장에 마련된 '짐 옮기기 알바' 체험 코너. 당근 ‘당근하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중고거래의 대명사가 된 당근 플랫폼. 이제는 ‘일자리 플랫폼’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3년 차에 접어든 ‘당근알바’ 서비스인데요, 알바몬·잡코리아 같은 기존 알바 플랫폼과 차별점은 확실합니다. 집 근처 카페, 자주 가는 분식집, 동네 어귀의 미용실까지, 모두 내 활동 반경 안에서 이뤄지는 구인·구직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알바’라는 단어에 덧입힌 그간의 이미지와는 결이 다른, 동네 일자리 연결 서비스를 지향하는 것이죠. 실제로 이 서비스는 가까운 동네 주민들이 빠르게 지원한 덕을 제대로 봤습니다. 채용을 확정한 사장님 중 63%가 24시간 내에 매칭이 이뤄졌고(지난해 4월 기준), 공고 게시 24시간 내 지원 문의받는 비율은 89%에 달했으니까요. 로컬이 핵심이다 보니 이웃에게 뜨개질을 배우고, 냉장고 정리를 돕고, 심지어 반려견을 대신 산책시켜 주는 일감이 오고 갑니다. ‘일’이란 이름표가 붙지만 결국 ‘사람’이 남는다는 회사의 철학과 맞닿아 있기도 하죠. 당근의 전체 서비스가 ‘동네 생활’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이 연결은 더 가깝고 어딘가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이 특별한 서비스의 시작을 당근알바팀에서 적극적으로 이끌어온 한주연 프로젝트 매니저(PM)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근알바 첫 기획단계부터 함께해온 한주연 PM. 당근 ━ 중고거래부터 구인·구직까지…‘동네 연결’이 핵심이었다 당근알바 서비스 소개 문구. 당근 공식 홈페이지 캡처 Q. 당근이 구인·구직 서비스를 도입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당근은 ‘당신 근처’라는 콘셉트 아래 동네에서 일어나는 모든 연결을 지향해요. 중고거래 서비스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난 2021년 10월 구인구직판을 본격화했죠. 앱 초기부터 게시판으로 운영하던 걸 확장한 형태로요. 직장인과 대학생 등 단기 알바를 선호하는 젊은이가 많거나, 유동 인구가 많은 동네 수요가 특히 높아요. 사용자들이 많아지면 생길 수 있는 문제점 방지도 필요하다 보니 중고거래금지 물품을 걸러내는 식의 머신러닝 시스템으로 불법 구인공고를 막고 신뢰감을 더했죠. Q. 생활 반경 내 구인·구직이 갖는 의미는 어떤 걸까요. A. ‘근거리 연결’이에요. 동네라는 생활반경 안에서 일자리를 찾고, 이웃을 도울 사람들을 매칭해요. 현장조사도 ‘동네 사장님들’에 집중했는데, 서비스 출시 초기에만 해도 “중고거래 앱에서 사람을 구해도 괜찮나” “믿을 수 있나” 등 반응이 있었어요. 그런데 동네 연결의 이점을 경험한 이후엔 분위기가 확 달라졌죠. 근로자의 출퇴근거리가 짧아 결근이 적은 것 등이 큰 장점으로 작용했으니까요. 동네라는 공간의 장점인 ‘오프라인 입소문’ 덕도 봤어요. 당근이 잘하는 ‘연결’을 통해 이웃 간 신뢰와 도움을 주고받는 구조를 극대화할 수 있었죠. Q. 중고거래 신뢰 지표였던 ‘매너 온도’가 구인구직 서비스에도 적용되나요. A. ‘모범 구인자 배지’ 제도가 있어요. 상냥한 응대, 빠른 답변, 예의 있는 채팅 등을 실천하는 사장님들에게 부여됩니다. 텍스트로만 보는 공고는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실제 만나보면 다를 수 있다는 걸 객관화한 수단이죠. 이런 배지는 그간 구인구직 시장에서 보이지 않던 ‘사람 대 사람’의 온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쓰이고 있어요. 구직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진데요, 동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받은 추천 글이 평판이 되고, 사람들은 이를 자기소개서나 이력서의 ‘셀링 포인트’로 활용해요. 가볍게 시작한 일도 추천이 쌓이면 경쟁력이 되는 셈이죠. ━ 일자리를 넘어 따뜻함을 찾는 시대 당근 '이웃알바'에 올라온 유저들의 공고문. 당근 Q. 구인·구직 개념이 동네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다 보니, 재미있는 사례들도 많을 것 같아요. A. 요즘은 1인 가구가 많아지고, 누군가에게 가볍게 도움을 요청할 기회가 줄어들면서 ‘소일거리’ 수요가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있어요. 과거 친구나 가족에게 부탁하던 일이 이제는 ‘이웃 알바’ 서비스를 통해 온라인화되고 있죠. 유저들은 대형 플랫폼에 올리기 부담스러운 사소한 동네 일거리를 접할 수 있다는 걸 좋게 평가해요. 예를 들어 ‘자전거 바람 넣기’ ‘게임 플레이 과외’ ‘컴퓨터 프로그램 설치’ 등 요청이요. 가구 수리 알바를 맡긴 게 인연이 되어서 5번이나 일거리를 주고받은 사례도 있어요. 한 번 좋은 경험을 쌓은 게 신뢰감·친밀감을 형성한 거죠. 이런 미담들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퍼지기도 하는데요, ‘이색 알바’를 넘어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연결이라는 인식이 쌓이고 있어요. 반려견 돌봄 요청 글. 해당 공고는 여러 이웃의 관심 속 인기를 끌었다. 당근 Q. 잠깐 도움을 구하던 이웃의 요청이 시스템화하는 모습인데요. A. “누구네 집에서 뭐 좀 도와 달라”와 같이 동네 온정, 서로 돕는 문화가 디지털 공간에서 복원되고 있다고 봐요. 이런 흐름은 앞으로 더 많아질 거고요.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유튜브로 뜨개질을 배운 젊은이가 당근알바에 도움 요청 글을 올린 사례인데요, 뜨개질을 오래 해온 한 어머니가 응답하면서 친구 관계로 발전했다고 해요. 함께 작품을 만들고, 뜨개질 모임에 나가는 등 이웃 이상의 관계가 된 거죠. 이처럼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닌, 사람 대 사람의 연결이 이어지면 의미가 생겨요. ━ ‘알바씬’ 내 경계 없는 연결로 바뀌는 일상 지난해 12월 진행된 당근알바의 '원마일워크클럽' 팝업스토어 현장. 당근 Q. 당근알바로 팝업까지 한 이유가 있을까요. A.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동네 일자리’라는 개념을 문화·경험적인 관점에서 해석한 시도였어요. ‘원마일워크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알바’를 경쾌하고 동네답게 풀어낸 공간이었죠. 집 근처에서 일하고, 연결되고, 즐기는 일자리라는 메시지를 담았고요. ‘슬세권(슬리퍼 신고 나갈 수 있는 생활권)’같은 용어가 생겨난 것처럼 동네에서 일하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새롭게 정의하자는 취지였어요. Q. 당근이 바라보는 앞으로 구인·구직 시장 전망은 어떤가요. A. 자영업자들의 폐업 비율이 높아지고, 키오스크와 같은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고용이 줄어드는 움직임이 있어요. 하지만 현장에서 사장님들의 목소리를 청취하면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가운데 일자리의 형태도 점점 가벼운 것들이 많아지고 있고, 플랫폼을 통해 쉽게 연결되는 시대가 되었죠. 직장인들까지 자투리 시간에 동네에서 단기 알바를 하는 모습이 점차 일상화되고 있고요. 결국 좁은 의미의 아르바이트가 다양한 일로 확장되고, ‘경계 없는 연결’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Q. 당근알바를 통해 당근이 나아가고자 하는 서비스 지향점이 있다면요. A. 현재는 공공기관까지 지역 사회의 중요한 연결망으로 보고 협업을 넓혀가고 있어요. 지난 2023년에는 광주 광산구와 협력해 공공 일자리를 앱에 올려 지역 주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고, 올해 2월에는 경기도와 베이비부머 세대를 대상으로 한 일자리 홍보 협약도 진행했어요. 앞으로도 ‘동네 연결’이라는 핵심 철학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본질을 잃지 않으려 해요. 관련기사 샤넬·디올 제치고 '넘버1' 꿰찬 K뷰티…도쿄 시부야 홀렸다[비크닉] 61년 전 에티오피아로 첫 수출… K-뷰티 헤리티지를 만든 이 회사 [비크닉] 밤 12시 되면 트래픽 폭주…'운세'에 푹 빠진 MZ들, 왜 [비크닉]김세린 기자 kim.se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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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돼도 꿈이 있잖아…그 틈 파고든 '어른이 체험 놀이터'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키자니아에서 진행한 '키즈아니야' 이벤트 현장에 성인들이 북적이는 모습. 키자니아 꿈과 희망이 가득한 세상, 놀이공원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지난 3월 14일 도시를 실제 크기(성인 기준) 3분의 2로 축소한 곳에서 잔뜩 상기된 얼굴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이들을 마주했어요. 소방관처럼 불을 끄고, 마약 수사관·재판관 역할을 하며 진중한 표정을 짓던 이들, 놀랍게도 전부 만 18세 이상 성인입니다. 어린이 직업체험 테마파크 키자니아가 마련한 ‘키즈(Kids)아니야’ 행사에서나 볼 수 있는 신기한 광경이었죠. 키즈아니야는 3~15세 어린이가 주 고객층인 키자니아가 어른들을 위해 만든 성인 직업 체험 이벤트입니다. 단돈 3만6900원으로 동심과 꿈을 사러 올 이들을 모집했는데요,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행사가 열릴 때마다 300~400명가량의 한정된 인원만 수용하는데, 지난 2023년 12월 1일 첫 시즌부터 8회차(지난달 14일)까지 ‘매 회차 조기 매진’을 기록했거든요.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과 동심을 떠올리게 하는 희망찬 체험이 ‘어른이’들을 사로잡은 것이죠. 파크 내 마련된 공간에서 소방관 직업 체험을 진행 중인 성인들의 모습. 키자니아 이 기발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이는 MBC 아나운서 출신 강재형 키자니아 대표입니다. 우연한 ‘발견’으로 ‘어린이가 주 고객’이라는 원칙을 깼다고 해요. 그는 2003년 브랜드 수익성 강화 등 미션을 받고 대표 자리에 올라선 이후 유튜브 콘텐트 출연과 신규 파트너사 창출에도 적극적이에요. 아나운서 시절 “늘 아이디어와 관심사가 많아서 일을 벌여놓는 성격”이라고 밝힌 그답게 올해로 15주년을 맞은 키자니아의 분위기도 한껏 반전시킨 것이죠. 비크닉이 강 대표를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어른도 꿈이 있다”…한때 키자니어 경험한 취준생 공략 '키즈아니야'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강재형 키자니아(MBC플레이비) 대표. 키자니아 아이를 둔 부모에게 키자니아는 익숙한 공간입니다. 아이들이 ‘롤플레잉’을 통해 주체적으로 어른들의 직업 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데, 그간 국내에서 보기 드문 에듀테인먼트(에듀+엔터테인먼트) 콘텐트로 개장 초기부터 화제였으니까요. 키자니아는 지난 2010년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 옆에 처음 들어선 이후 서울권 초·중학교 현장체험학습부터 가족 단위 고객을 끌어모으며 누적 1000만명 이상의 방문객을 기록했죠. 삼성전자·현대제철·대한항공·오뚜기 등 국내 굵직한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꿈 찾아주기’를 하는데, 이젠 어른들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Q : ‘키즈아니야’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A: 키즈아니야는 ‘발견’의 개념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우연히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를 찾아낸 셈이죠. 그간 키자니아를 찾는 어른들은 ‘어린이 고객의 보호자’에 그쳤습니다. 그런데 창립 13주년 기념 CEO 메시지를 준비하며, “7살이던 어린이가 20살이 되었다”는 멘트를 읽다 문득 생각했어요. 왜 키자니아에 ‘성인 직업 체험 탐구’는 없을까. 우선 모객이 쉬운 키자니아 유경험자들을 타깃으로 잡았죠. 꿈을 찾던 시절 경험했던 추억의 프로그램을, 13년이 지나 취준생 또는 직장인이 된 지금 체험하게 하자는 취지에서요. 자아 발견 욕구는 강한데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고, 취업할 직장은 마땅히 없는 이들에게 문을 두드렸죠. SNS에서 화제가 된 키즈아니야 이벤트 홍보 포스터. 키자니아 Q: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까지 과정이 궁급합니다. A: 대표가 직접 낸 아이디어를 유관부서에 제안하니, 직원들은 처음엔 우려했어요. ‘이게 될까’ ‘운영 시간 조정은 어떻게 하지’ 등 이유 때문에요. 끝까지 밀고 나가 직원들이 믿어준 끝에 채택됐죠(웃음). ‘어른들도 꿈을 꾸고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작명은 직관적으로, 또 유쾌하게 풀어내 의미를 담으려고 했고요. 초기에는 큰 반응이 없었는데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점차 입소문이 나더니 티켓이 ‘완판’되더라고요. SNS로 이색 이벤트, 재미있는 정보 등이 빠르게 공유되는 세상 덕을 봤죠. 2회차 때부터는 당근·번개장터 등에서 암표 거래가 될 정도였고요, 8회차에 들어서 잡코리아 X 알바몬에서도 러브콜을 보내 함께하게 됐어요. 환경 위생 연구소 체험관을 체험 중인 성인들. 키자니아 Q: 어른들도 직업 체험을 통해 꿈을 찾을 수 있다고 보시나요. A: 학생을 비롯한 성인들이 강의를 들을 때 15분이 넘어가면 보통 집중도가 떨어진다고 봐요. ‘꿈을 가져라’ ‘좋은 직장으로 취업해라’는 식의 얘기를 수업처럼 원론적으로 하면 체감이 안 될 겁니다. 100명 중에 80~90명에게 물어보면 본인의 꿈을 모른다고 답할 거고요. 여기서 핵심은 직접 부딪히면서 알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들도,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단순 플랫폼처럼 각 회사 취업 정보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이 공간에 들어오면 가능성이 열린다’ ‘어른도 몸소 체험하며 꿈을 알아갈 수 있다’는 모토를 가지고 있어요. 이용객 개개인이 주체적으로 움직여 꿈을 알아가게 하는 게 핵심이죠. ━ 현실에 꿈 잃었던 청년들 ‘꿈틀’…‘네버랜드 신드롬’ 통했다 지난 3월 14일 키즈아니야 행사에서 직업 체험을 하며 파크 곳곳을 누비는 성인들. 김세린 기자 그럼 이곳을 찾는 성인들은 꿈을 찾을 목적으로만 이곳에 방문했을까요? 키자니아는 ‘네버랜드 신드롬’이라는 현상이 키즈아니야 인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합니다. 네버랜드 신드롬은 성인들이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나 자유로움을 유지하려는 강한 욕구를 가진 상태를 뜻해요. 사회적 변화·경제 불황·미래에 대한 불안정성이 결합하면서, 많은 사람이 과거의 순수하고 행복했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됐다는 것이죠. 키즈아니야에 방문하는 것은 단순히 즐거운 경험을 할 뿐 아니라 추억을 되새기며, 어린 시절의 정서적 행복감을 되찾고자 하는 욕구가 맞물렸다는 설명인데요. 업계에서 거론하는 2025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가 ‘나의 발견’인데, “MZ세대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즐기고, ‘진짜 나다움’을 찾아가려는 노력의 하나로 자신을 적극적으로 돌보고 탐구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해요. 잡코리아X알바몬과 키자니아의 협업으로 열린 '어른이 이벤트' 현장. 김세린 기자 Q: 요즘 젊은이들은 워낙 체험형 콘텐트에 열광하잖아요, 키즈아니야는 그중 어떤 포인트를 잡은 건가요. A: 현실 세계에서 마주하기 어려운 다양한 직업체험으로 되찾는 동심과 추억 때문이요. 이 두 가지가 적중하려면, 이벤트 기획·공간 구성·소비자 경험(서비스) 삼박자가 잘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른들에게도 손을 흔들며 어린아이처럼 유쾌하고 활발하게 맞이해야 하고요. 방문객 중에선 어릴 때 키자니아 공간에서 크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어른 되어서 보니 너무 작게 느껴져 울컥했다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꿈을 꾸었던 세대가 어느새 성인이 되어버린 점, 어른이 끌어가는 사회를 축소한 공간에서의 이색 체험, 성인이 되니 달리 보이는 것의 흥미로움 등 심리요소를 자극했죠. Q : 판을 더 키우고 싶으신 생각은 없나요. A: 향후 파트너사들과 협력해 취업 박람회 형태로 확장할 계획도 있어요. 키즈아니야 역시 잘되면 프로그램화할 것을 검토 중이고요. 다만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기존 어린이 위주로 가던 오리지널리티 비중을 축소하고 어른 쪽으로 가는 건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키즈아니야 콘텐트를 디딤돌로 삼아서 성인 프로그램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전략으로 가려 해요. ━ 시대 흐름 따라가야…‘어린이 전문관’의 과제 서울 잠실 키자니아 전경. 서울과 부산 지점 통틀어 총 100여가지 직업 체험을 할 수 있다. 키자니아 Q: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넥스트 키자니아’는 어떻게 구상하시고 계시나요. A: 정보가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키자니아는 일반 취업박람회와 다르게 가야 한다고 봐요. 정보 제공 플랫폼이 아닌, 놀이를 통한 깨달음을 얻는 공간으로요. 그러려면 우선 이곳을 찾는 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해요. 대외적 불안한 환경에 너무 몰입하지 말고, 내가 행복하고 잘살기 위한 방법을 찾아 미래지향적으로 나갈 방법을 제시하고요. Q: 그럼 키즈아니야도 계속될까요. A: 10년 뒤에도 키즈아니야 프로그램이 남아 있다면 성공했다고 봐요. 콘텐트는 다양할수록 좋겠죠. 꿈을 찾고 실현하기 위한 선택지는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특히 요즘 세대는 취향이 세분되어있으니 키자니아도 고객의 니즈에 맞춰 변화해야 하다고 봅니다.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본질은 잃지 않으면서, 모든 세대가 즐겁고, 행복한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관련기사 '착한 침대'가 돈까지 벌어다줬다…2년 연속 매출왕 오른 비결 [비크닉] 한땀 한땀, 뜨개로 연매출 130억…MZ 홀린 '니팅힙' [비크닉] 전광판에 웬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비트코인 거래소 이색 공헌 [비크닉]김세린 기자 kim.se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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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훈 '아조씨' 탄생 비결…아귀찜 사장님이 바꾼 유튜브 판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요즘 유튜브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 바로 종합격투기 선수 출신 추성훈입니다. 그의 일상이 담긴 영상은 매번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오르며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죠. 콘텐트가 차고 넘치는 유튜브 시장에서 채널 오픈 한 달 반 만에 골드버튼(구독자 100만 이상)을 받은 사실은 업계에도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채널의 흥행 포인트를 찾자면 주인공 셀럽만 아니라 제작자들입니다. 한국계 일본인인 추씨의 한국어 발음을 흉내 내 ‘아조씨’라는 유행어를 만들었고, 유머 있는 장면마다 AI를 활용한 독특한 배경음악을 깔면서 감각적인 편집 실력을 드러내기 때문이죠. 구독자 댓글에도 제작자들에 대한 호평은 꾸준히 등장합니다. 한끗 다른 남다름이 우연만은 아니라는 걸, 이들이 속한 ‘스튜디오 에피소드’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조승연의 탐구생활’(184만)부터 ‘강형욱의 보듬 TV’(213만)·‘시즌비시즌’(176만)·‘오늘의 주우재’(126만)까지, 유튜브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한 채널이 이들의 포트폴리오에 있습니다. 초등학생부터 톱스타까지 모두가 경쟁하는 유튜브에서 무조건 먹히는 성공 방정식을 만든 겁니다. 대체 비결이 뭐였을까요. 비크닉이 지난 14일 서울 논현동에 있는 스튜디오 에피소드 사무실을 찾아 한정훈(40)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스튜디오 에피소드가 운영하는 채널 출연자들. 스튜디오 에피소드 ━ 셀럽과 PD의 찰떡궁합이 성공 요인…추성훈 팀 안 만난다 추성훈 채널은 처음부터 화제가 됐는데요. 잘 될 거라곤 생각했는데,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지는 몰랐습니다. 솔직히 한국 유튜브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례예요. 특히나 요즘같이 구독자나 알고리즘을 얻기 어려운 시장 속에서 말이죠. 저희는 예전부터 추성훈이 유튜브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여겼어요. 격투기 선수 출신으로 남자답고 멋있는 이미지가 있지만, 예능에서 망가지는 모습과 딸 바보 같은 반전 매력을 동시에 가졌다고 생각했거든요. 시청자들도 이런 모습을 매력적으로 여긴 것 같아요. 주인공만큼 편집이 재밌다는 평도 많아요. 출연자에 대한 제작진의 애정이 담긴 결과물이죠. 에피소드 PD들은 각자 원하는 뮤즈가 있어요. 그래서 출연자와 PD 매칭은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관심 없는 출연자의 영상을 맡으면 무조건 실패하거든요. ‘아조씨’같은 재밌는 자막과 독특한 배경음악 역시 뮤즈에게 영감을 얻어 탄생한 거죠. 추성훈 채널 팀. 스튜디오 에피소드 이건 에피소드 PD의 역량이 남달라서일까요. PD가 하고 싶은 영상을 만드는 게 회사가 잘 되는 길이에요. 그런 콘텐트가 보통 반응이 좋고, 여기서 얻은 작은 성공 경험으로 채널을 더 잘 끌고 갈 수 있는 자신감도 생기죠. 사전에 영상 업로드 승인도 안 합니다. 채널 담당 PD들에게 모든 걸 위임해요. 상급자의 취향을 담는 순간 개성이 안 살 거든요. 요즘 추성훈 채널 팀도 안 만납니다.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요. ━ 셀럽 콘텐트 성공의 3가지 조건 최근 많은 셀럽이 에피소드에 문을 두드리는데요. 맞아요. 하지만 모든 분과 협업하진 않습니다.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해요. 요청이 들어오면 내부에서 이 일을 하고 싶은 PD가 있는지 찾아봐요. 그다음 출연자가 유튜브에 얼마나 간절한 사람인지 알아봅니다. 유튜브는 구독자와의 약속이기 때문에 한 달에 최소 영상 4편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을 들여야 해요. 여기에 출연자 본인만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나 전문성이 필요하죠. 인물에 어떤 색깔을 입힐지도 중요할 것 같아요. 없던 걸 새로 만드는 건 불가능해요. 기존 이미지를 확장하는 게 좋은 방법이죠. 그래서 시청자 반응 데이터를 철저히 살핍니다. 댓글이나 시청자가 만든 쇼츠 등 2차 가공 콘텐트 등을 보면서 키워드를 뽑아낸 뒤 빠르게 적용해요.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요. 예를 들어 모델 주우재 채널을 운영하면서 시청차 반응을 통해 ‘개노맛먹방(맛없게 먹는 먹방 콘텐트)’ 키워드를 잡게 됐고 이걸 부각했더니 흥행했어요. 결국 주우재는 버거킹·하겐다즈 광고도 찍었죠. 스튜디오 에피소드가 맡은 첫 채널인 '조승연의 탐구생활'. 스튜디오 에피소드 한번 협업하면 좋겠다 싶은 셀럽이 있나요. 요즘엔 ‘추구미(내가 원하는 모습)’가 확실하지만 약간의 결함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관심을 받아요. 추성훈 채널만 봐도 그렇죠. 멋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내려놓고 유튜브에 나올 때 시청자들도 콘텐트에 공감하거든요. 그래서 김연아 선수와 함께 해보고 싶어요. ━ MCN·미디어 커머스의 한계…에피소드가 발견한 지속가능한 BM 제작사도 회사잖아요. 구독자가 많은 거로 수익을 낼 수 있나요. 유튜브 비즈니스는 결국 광고성 콘텐트 수주가 중요해요. 그러려면 다양한 채널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어야 하죠. 예능·지식·먹방 등 다양한 주제 구성도 필요하지만, 타깃 구독자 설정을 위한 세대별 분류도 필요해요. 광고주 관점에서 볼 때 광고 선택지를 넓혀주는 거죠. 셀럽 채널은 구독자를 모으기가 쉬울 텐데요. 사실 셀럽이 전면에 있지만, 에피소드의 본질은 유튜브 제작사가 아니라 커머스예요. 물건을 팔기 위해 콘텐트와 셀럽 트래픽을 이용하는 겁니다. 에피소드를 ‘콘텐트 IP 커머스’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MCN(유튜버 지원·관리 모델)’과 ‘미디어 커머스(미디어로 제품 홍보·판매 모델)’ 모델의 한계를 보완한 비즈니스 모델이에요. MCN은 크리에이터 계약 종료 후 빠르게 대체될 수 있고, 미디어 커머스는 브랜드 재구매로 이어지게끔 하는 기획이 어려워 지속할 수 있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에피소드가 가진 콘텐트 IP에 자체 브랜드를 홍보하는 방식으로 수익 극대화를 노리는 겁니다. 인터뷰 중인 이정호 총괄, 한정훈 대표, 박건희 총괄. 장우린 성공한 사례가 있었나요. 한혜진 시카밤으로 알려진 제품이 있어요. 에피소드와 공동운영하기 전엔 7억~9억원 매출에 불과했죠. 저희는 무작정 홍보하기보다 브랜드의 본질을 찾으려고 시장조사를 시작했어요. 원래는 겨울에만 팔리던 제품인데 여름용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걸 발견하고 곧바로 여름용 제품을 만들었죠. 한혜진과 제품 홍보를 함께하게 됐고요. 이 제품의 주요 고객은 주부였는데, 더 많은 여성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죠. 제대로 전략이 먹혀서 1년 만에 매출이 90억원으로 뛰었고, 이듬해엔 160억을 찍었어요. ━ 아귀찜 장사가 준 교훈…마케팅 잘하는 회사 만들고 싶다 에피소드를 설립한 계기가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장사가 하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수십 개 했어요. 22살 땐 서울에 있는 해물탕집에서 주방 청소부터 시작해 요리 비법을 배워 고향 청주에 아귀찜 가게를 차렸죠. 당시 네이버 블로그 서비스가 등장했을 때라 식당 홍보 게시글도 올렸어요. 독특해야 눈에 띌 것 같아서 온라인 홍보 포스터도 만들고, 메뉴 구성도 새롭게 했죠. 그 글이 우연히 KBS ‘무한지대큐’ 작가의 눈에 띈 거예요. 방송 덕분에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는 식당이 됐어요. 콘텐트와 마케팅에 관해 관심을 둔 게 이때부터죠. 금융위기 때 폐업을 하게 됐지만, 바로 대학에 복학해 PR·마케팅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마케팅을 진짜 잘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고, 그 마음이 에피소드에 담긴 거예요. '무한지대큐'에 출연한 한정훈 대표. 스튜디오 에피소드 향후 목표가 있다면요. 재밌는 콘텐트를 만들기 위해선 다양한 걸 시도하고 실패를 용납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해요. 그러려면 안정적인 회사가 돼야 하죠. 경영진의 역할은 세일즈를 잘해서 현금 흐름을 만드는 거예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콘텐트와 커머스와 셀럽, 세 축의 균형을 잘 만들어 가고 싶어요. 관련기사 한땀 한땀, 뜨개로 연매출 130억…MZ 홀린 '니팅힙' [비크닉] 경주월드 '드라켄밸리' 팬덤 있다···디즈니랜드 성공서 찾은 비결 [비크닉 영상] 리사도, 졸리도 반했다…파리 좁은 골목 자리한 이 편집숍 [비크닉]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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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땀 한땀, 뜨개로 연매출 130억…MZ 홀린 '니팅힙'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환하게 불켜진 영화관, 좌석에 앉은 사람들 손에 제각각 뜨개질감이 들려 있습니다. 얼마전 화제가 된 ‘뜨개 상영회’ 현장의 모습인데요. 최근 OTT의 공세로 영화관 관객이 코로나 이전에 비해 56% 수준으로 감소했지만, 뜨개 상영회는 달랐습니다. 올해 초 메가박스(러브레터)·CGV(리틀포레스트)에서 총 4회 모두 매진을 기록했거든요. 영화를 보며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색다른 경험과 가벼운 소속감이 뜨개인(뜨개질을 즐기는 인구)의 마음을 사로잡은 겁니다. 뜨개를 하며 영화를 보는 '뜨개 상영회' 사진 바늘이야기 이 기발한 행사를 기획한 이는 뜨개 상점 ‘바늘이야기’의 김대리입니다(본명 노출을 꺼리는 그가 외부와 소통하는 이름입니다). 우연히 해외 ‘뜨개 영화관’ 영상을 보고 이벤트를 열었다고 해요. 8년 전, 그는 바늘이야기의 창업자인 어머니 송영예 대표로부터 SNS 운영을 맡아보라는 미션을 받고 입사를 했습니다. 이후 유튜브 콘텐츠·SNS 운영·도안 디자인·매장 운영 등 사업 전반에 부각을 나타내며 13억원이었던 바늘이야기 연 매출을 130억원으로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죠. 김대리 역시 채널 구독자와의 소통을 위해 지은 이름입니다. 또래인 2030 세대 주변에 있을 법한 ‘김대리’는 뜨개에 입문하는 친근한 가이드가 됐죠. 이제는 힐링 문화로 떠오른 뜨개 열풍을 이끌기까지, 어떤 스토리가 엮였을까요. 비크닉이 김대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할머니 취미 아냐?” 무시 싫어 대기업 두드렸다 ‘뜨개 상영회’는 어떻게 열게 됐나요. 영화배급사와의 협업으로 행사를 열게 됐습니다. 첫 상영은 지난해 12월, 연희동 예술 극장인 라이카시네마에서였어요. 예매 창이 열리자마자 5분 만에 매진이 됐죠. 그 사례를 발판 삼아 공개 러브콜을 보냈어요. ‘저와 함께하실 메가박스·CGV 모십니다’ 하고요. 바늘이야기 김대리는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일상의 뜨개화'를 전파한다. '김대리의 취향니트' '김대리의 데일리 뜨개' 등 관련 서적도 여럿 냈다. 사진 비크닉 판을 키우고 싶었던 건가요. 뜨개질이 다시 열풍이라고는 하지만, 주류가 될 만큼 취미인구가 많은 상태는 아니에요. 활성화된 취미인은 20만 명, 시도해보거나 쉬엄쉬엄하는 분까지 합치면 1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거든요. 제 또래 사이에서 러닝이 취미라고 하면, 멋있다는 반응이 오지만 뜨개가 취미라고 하면 ‘조신하다’는 등 무시하는 말을 듣기 십상이에요. 저의 올해 목표가 ‘뜨개인의 위상을 높이자’ 입니다. 대기업에서 뜨개인을 코어 고객으로 주목하도록 파워를 보여주고 싶어요. 수익 없이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이유죠. 300년된 영국 저택에서 뜨개 기법을 배우며 여행하는 '니팅 리트릿'에 참가했다. 출처 유투브 '바늘이야기 김대리' 혼자 하는 취미가 공동체로 밀집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어요.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저는 SNS를 통해 트렌드나 영감을 많이 얻어요. 릴스와 쇼츠를 훑는 게 시간 버리는 일이라든가 뇌가 썩는 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웃음). 또 좋은 사례를 발견하면 직접 체험해 보려고 해요. 유럽권에서는 뜨개 기법을 배우며 자연 속에서 힐링하는 ‘니팅 리트릿(Knitting Retreat)’ 프로그램이 발달해 있어요. 저도 영국에서 2박 3일간 체험해 봤는데, 취미를 통해 커뮤니티에 속할 수 있다는 기분을 그때 처음 느꼈어요. 좋은 경험은 바늘이야기에서 적용합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100명이 자신이 뜬 스웨터를 입고 모여 한국판 ‘어글리 스웨터 데이(특이한 디자인의 스웨터를 입고 모이는 날로 캐나다에서 시작됐다)’를 신나게 즐겼죠. ━ 니트 짜는 법부터 OOTD까지…2030 열광한 ‘뜨개 일상’ 바늘이야기는 송영예 대표가 1998년 일산의 한 복합쇼핑몰 지하 1층 작은 매장에서 시작한 뜨개 상점입니다. 송 대표는 남다른 사업 감각으로 바늘이야기를 국내 1위 뜨개 사업체로 성장시켰어요. 김대리의 활약 뒤에는 오랜 시간 탄탄하게 쌓아온 뜨개 시장 노하우와 물류 시스템이 갖춰져 있던 거죠. 김대리는 엄마의 큰 숙제였던 온라인 운영을 비롯해 MZ세대가 입고 싶고, 들고 싶을 만한 디자인을 개발하고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냈습니다. 일상에서 입고 싶고, 들고 싶은 아이템을 제안한다. 출처 바늘이야기 SNS 43만 명이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정보성 콘텐츠가 성장 동력이 됐어요. 사람들은 뜨개질에 대한 방법이나 유익한 팁을 원하니까요. 이후에는 정보를 제공하는 김대리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어요. 정보로 다진 신뢰 위에서 소통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뜨개 미니백 4시간 완성’ 같은 직관적인 가이드도 있지만, 브이로그나 옷 스타일링 영상도 인기가 많아요. 줄곧 뜨개를 주류로 편입시키기 위한 흐름을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나라는 개인도 대중의 한 사람이니까 최대한 뜨개를 하는 모습을 많이 노출했어요. ‘어떤 20대 사람이 뜨개질하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어 나도 해볼까?’하는 마음이 들도록요. 뜨개로 만든 옷이나 아이템을 일상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소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단순히 신제품이나 인기 아이템을 홍보하는 것보다 주효했죠. 내가 원하는 아이템의 모양과 색을 직접 디자인해서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뜨개의 큰 매력이다. 출처 바늘이야기 SNS 실제로 2030세대 뜨개인이 늘었다고요. 매출 비중이 궁금해요. 30대가 32%로 가장 많고 20대와 40대가 각각 25%로 비슷한 규모입니다. 다음으로 50대가 13.5%가량 차지하고요. 이제 뜨개는 전 연령층이 즐기는 취미가 됐다고 생각해요. 젊은 층이 뜨개 시장에 들어오면서 옛날과 다른 문화도 생겼어요. 예전에는 패키지로 구매해 샘플과 똑같이 뜨는 것을 선호했다면 요즘은 도안을 따로 사서 내가 원하는 조합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죠. 나만의 작품을 만들고 소통하는 뜨개 인플루언서가 생겼고, 최근엔 대학교에 뜨개 동아리도 생겼어요. 가장 뿌듯한 건 학생들이 창업 과제로 뜨개 사업을 아이템 삼았다며 연락 올 때에요. 뜨개하면 왠지 겨울이 생각나는데, 계절을 타진 않나요. 뜨개는 사계절 내내 계절을 타지 않아요. 시원한 소재의 실을 사용하는 아이템들이 많아서 여름에도 꾸준히 수요가 있죠. 추울 때나 더울 때나 가방 아이템이 가장 잘나갑니다. ━ 실 집어 들게 만드는 공간 마케팅…100평 규모 뜨개 놀이터 바늘이야기 연희점. 뜨개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한다. 이소진 기자 2015년 파주점에 이어 2021년 연희점에 매장을 냈어요. 숍·카페·아카데미·스튜디오까지 건물 전체가 복합문화공간인데요. 각양각색 실타래로 장식한 벽이 인상적이에요. 별마당도서관을 처음 가본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냈어요. 상점이지만 동시에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고 싶은 매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매장의 모든 시스템은 처음 온 입문자들을 배려해 디자인돼 있어요. 입구부터 ‘올-인원 패키지’를 배치해 심리적 저항선을 낮추고, 매장 곳곳 첫 방문자를 위한 팁과 구매 가이드를 설치해 뒀죠. 몇 시간이면 뚝딱 만들어 볼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과 도안을 통해 ‘나도 해 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게 중요해요. 카페에는 뜨개하는 분들이 많이 앉아 있네요. ‘바만추’ 팻말을 자리에 두면 자연스럽게 만남도 가능하다고요? 바만추(‘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는 축약어인 ‘자만추’에서 따왔다)는 뜨개 친구를 사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만든 건데요. 뜨개를 하다 보면 옆 사람이 뭘 뜨고 있는지 궁금하고 말 걸어보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이 팻말이 시그널이 되는 거죠. 하지만 실제로 활용하는 분이 많지 않아요. 우리나라 정서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답니다. 매장에서는 다양한 뜨개 부자재는 물론 완성본의 상세 정보를 자세하게 제공한다. 이소진 기자 바늘이야기의 꿈은 무엇인가요? 해외에 진출하고 싶어요. 외국에 나가보면 바늘이야기 매장처럼 뜨개 전문 대규모 복합문화공간을 찾아보기 어렵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만든 좋은 실과 감각적인 도안, 일상에 적용 가능한 콘텐츠가 충분히 매력적일 거라 생각해요. 두 번째는 바늘을 만드는 거예요. 실은 국내 생산 공장이 많지만 바늘은 아직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거든요. 브랜드 이름이 ‘바늘이야기’인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좋은 품질의 바늘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관련기사 경주월드 '드라켄밸리' 팬덤 있다···디즈니랜드 성공서 찾은 비결 [비크닉 영상] 전광판에 웬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비트코인 거래소 이색 공헌 [비크닉] 리사도, 졸리도 반했다…파리 좁은 골목 자리한 이 편집숍 [비크닉]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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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도, 졸리도 반했다…파리 좁은 골목 자리한 이 편집숍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메르시를 대표하는 캔버스 캉디드 백. 매 시즌 다양한 컬러로 사이즈로 디자인을 달리한다. 사진 메르시. ‘로컬 브랜드’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요즘, 파리의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메르시’는 그 모범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지역만의 고유한 정체성과 이야기를 담아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로컬 브랜드의 이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죠. 2009년 오래된 건축 유산과 갤러리로 이름난 마레 지구에 자리 잡은 이후, 메르시는 파리지앵 특유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며 지역과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등공신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취급하는 브랜드만 5000여 개, 한 해 150만 명이 찾는 파리의 명소이기도 합니다. 임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블랙핑크 리사, 안젤리나 졸리 등이 고객인 데다, 빨간색으로 ‘Merci’가 쓰인 캔버스 가방은 여행객들 사이에선 ‘파리 기념품’으로 불릴 정도랍니다. 파리라는 도시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 메르시는 또한번 그만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달 초, 16년 만에 두 번째 매장 ‘Merci #2’를 선보였습니다. 거의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통하는 세상에서, 점점 더 큰 대형 플래그십이 등장하는 유통가에서 여전히 방문객들을 작은 골목으로 안내하는 메르시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비크닉이 지난해 12월 파리를 찾아 아서 게르비 CEO에게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도심 좁은 골목에 2호점 오픈…유니섹스 패션 선보여 ‘Merci #2’는 그 자체가 ‘메르시다운’ 공간입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루브르 박물관 인근에 있지만, 차가 들어가기 힘든 골목이라 굳이 찾지 않는다면 지나치기 쉬운 위치입니다. 내부 역시 10년 넘게 비어있었다던 우체국의 ‘원형’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어느 파리지앵의 집같은 공간으로 탈바꿈되었고요. 아서 대표는 “운명같이 만난 공간”이라며 “보물을 발견한 것 같았다”고 이곳을 소개했어요. 메르시의 아서 게르비 CEO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진 메르시 -어떤 점에 꽂힌 건가요. “메르시는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삶의 일부 같은 공간이 되길 원해요. 그래서 채광이 중요한데 이곳 통창이 집같은 아늑함을 주겠다 싶었어요. 게다가 낮은 천장 위로 숨겨진 공간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이곳에서 뭔가 벌어지겠구나’ 직감했죠.” -두 번째 매장이 또 파리인 이유가 있나요. “메르시가 언젠가 다른 국가나 도시로 진출하기 전, 파리에서 한 번 더 열고 싶었어요. 아직 작은 브랜드니까 어떤 확신이 필요해서죠. 여기라면 파리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했어요. 주로 유니섹스 패션, 다른 브랜드와의 협업 제품 그리고 한정품을 판매하는 식으로 마레와는 차별화를 두려 해요. 규모가 마레의 절반이라 키워가는 과정도 의미가 있을 거예요.” 메르시 두번쨰 매장에서는 유니섹스 패션을 비중있게 선보인다. 사진 TEMPERANCE STORM -마레처럼 주변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도 궁금한데요. “메르시는 당시 흔치 않은 빈티지 의류, 식기, 방향 제품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취급한 매장이었어요. 거기에 북카페·레스토랑까지 여니 사람들이 몰리며 소위 상권이 생겨났죠. 지금도 기억나요. 건너편 약국 주인분이 몇 년간 안 나가던 가게가 팔렸다고 고마워하던 걸요. 이번 매장은 주변 상권이 이미 형성된 곳이지만 기대하는 바가 있어요. 바로 옆에 초등학교가 있는데요, 매장 입구가 둘 이라 아이들이나 학부모가 양쪽을 오가는 모습을 상상하죠. 삶 속에 존재한다는 메르시 철학을 보여줄 것 같습니다.” 메르시 두번째 매장. 파리지앵이 사는 로프트처럼 구상된 2층 공간. 나무 선반에 가정용품이 놓여 있고 주문 제작 가구와 중고 가구가 뒤섞여 있다. 사진 MARK EDEN SCHOOLEY -‘일상의 메르시’라는 게 위치만은 아닐 것 같은데요. “맞아요. 정확하게는 ‘메르시 라 비에(Merci la Vie, 삶에 감사하기)’ 일 거예요. 삶에서 친구도, 건강도, 돈도 당연히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걸 행운으로 감사히 여기고 되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우리 철학이죠. 메르시가 마다카스카르와 프랑스 자선단체에 교육 지원금으로 지금까지 100만 유로(약 15억 8000만원)를 기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 마케팅 사절…제니도, 졸리도 우리에겐 똑같은 고객일뿐 아서 대표가 메르시를 운영한 건 2013년부터였어요. 패션 브랜드 ‘제랄드 다렐(Gérard Darel)’을 만든 그의 부모가 2009년 지인에게 인수한 사업을 아들에게 맡긴 겁니다. 스물 일곱에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했지만 부모님의 경영 방침은 그에게 그대로 이어졌다고 해요. ‘얼마를 남겨야 한다는 관점으로 사업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그가 어릴 적 에피소드를 들려줬어요. 어느 날, 어머니가 200유로가 넘는 셔츠를 가져오더니 옷감에 얼마를 들였을지 물어보셨대요. 한참 생각하던 그에게 5유로로 안 된다는 걸 알려주면서 가격에 맞지 않는 품질은 신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셨답니다. 그가 ‘진정성’을 메르시의 근간으로 꼽는 이유이겠죠. - 진정성이라는 건 뭘까요. “홍보나 매출을 위해 고객의 등급을 나누지 않아요. 안젤리나 졸리나 블랙핑크 리사가 메르시에 왔을 때도 딱히 더 해준 건 없었어요. 그저 다른 고객과 섞이는 거죠. 리사는 매장에 K팝을 좋아하는 직원이 알아보고 나중에 말해줬고, 졸리도 필요하다는 제품 목록을 보내준 게 전부예요. 진정성을 위해 더 중요한 건 트렌드에 기대지 않는 타임리스를 추구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컨셉트 스토어라는 말을 쓰지 않는데요, 컨셉트라는 게 2년 뒤, 5년 뒤 어떻게 바뀔지 누가 알겠어요. 그런 점에서 메르시는 100년이 지나도 지금과 비슷할 거라고 자부해요.” 일상을 '행운'으로 여기고 감사해야 한다는 철학을 담은 메르시의 네잎클로버 로고. 사진 메르시. -타임리스는 보통 럭셔리 키워드 아닌가요. “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수많은 브랜드가 트렌드라는 파도에서 코르크 마개처럼 휩쓸려 떠다니지만 우리는 큰 배를 타고 폭풍도 만나고 빙하와도 부딪치며 앞으로 향하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의 완벽함이 아니라 소소하지만 스스로 행복을 찾는 삶의 방식을 보여주려고 해요. 이걸 우리는 포스트 럭셔리(post-luxury)라고 부른답니다.” ━ 대통령의 시계 만들고 슈퍼와 협업… “메르시는 아트 프로젝트” 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메르시를 두고 일종의 ‘아트 프로젝트’라고 칭했습니다. 그도 그런 것이 매 시즌 디자인을 달리해 나오는 캔버스 가방을 만든다거나, 2018년엔 마크롱 대통령이 착용하면서 유명해진 LMM-01 시계도 세상에 내놨죠. 지난 1월엔 LA 유기농 슈퍼마켓 ‘에레혼’과 협업한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없어서 우리가 만들었다”고 했지만 그는 ‘크리에이터로서 물건을 만들기 위한 알리바이’라는 고백을 덧붙였어요. 메르시가 LA 유기농 슈퍼마켓으로 유명한 '에레혼'과 협업한 컬렉션. 의류와 가방, 비니 등의 구성으로 지난 1월 출시됐다. 사진 메르시. -사업을 프로젝트라고 하는 이유가 있나요. “언젠가 아이의 영혼을 가져가는, 그래서 자라는 걸 막는 스토리의 소설을 읽었어요. 거기서 알게 된 게 있죠. 아이와 달리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언가를 지속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여전히 아이로 남고 싶고, 메르시를 비즈니스라기보다 지속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생각해요.” -프로젝트라고 해도 목표가 있어야 하잖아요. “맞아요. 예전 어머니가 테니스 코트에서는 점수판을 보지 말고 오로지 공만 보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방문객에게 특별한 일상의 모멘트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합니다. 하루하루가 생일, 결혼식, 프러포즈 같을 수는 없잖아요. 대신 아침에 머무르는 부엌에서 어떤 행복을, 어떤 아름다운 아이템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우리의 몫이죠.” -10년 뒤쯤 메르시가 어떤 모습이길 원하나요. “지금은 두 개의 매장을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길 바라요. 해외 진출도 고려하고 있지만, 우리의 방식이 적용될 수 있을 때를 기다리려고 해요. 새로운 단계로 가기까지 시간은 걸리겠지만,괜찮습니다. 최악은 갑자기 떠오르다 쉽게 지는 스타가 되는 거니까요.” 관련기사 40년 된 공장에 수상한 간판이…MZ·아재 홀린 '박봉담' 정체 [비크닉] 스쿼트 하면 알람 꺼준다…전세계 250만명 깨우고 돈버는 이 앱 [비크닉] '북켓팅' 서버 터졌다…30만 구독 출판사 유튜브의 성공 비결 [비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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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쿼트 하면 알람 꺼준다…전세계 250만명 깨우고 돈버는 이 앱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새해도 벌써 두 달이 지났습니다. 연초 세운 목표가 조금 희미해질 시간인데요. 특히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독서·공부·운동으로 자기 계발하겠다는 결심이었다면 더 그럴 거예요. 피곤함에 알람 소리를 못 듣거나 5분마다 알람을 미루다 결국 늦잠으로 이어지기에 십상이죠.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잠과의 사투는 인류 역사에서도 공통된 고민이었으니까요. 스마트폰 알람이 없던 산업혁명 시기엔 제시간에 일어나 일해야 했던 공장 노동자들을 깨우는 직업도 있었어요. 인간 알람 시계 ‘노커 어퍼(Knocker-Upper)’는 막대기로 창문을 두드리거나 콩을 던지면서 돈을 벌었죠. 알람시계. Pixabay 지금도 ‘확실히 깨우는’ 알람의 역할은 충분한 비즈니스입니다. 한 해 매출 337억원, 영업이익 190억원(2024년 기준)을 낸 스타트업 딜라이트룸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 회사가 만든 애플리케이션 ‘알라미(Alarmy)’는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걸 넘어 수학 문제 풀기·스쿼트 하기 등의 미션을 수행해야 알람이 해제되는 독특한 기능을 가졌어요. 쉽게 끌 수 없는 알람 덕분에 확실히 일어나게 되는 거죠. 현재 전 세계 237개국 250만명(DAU·일간 활성 사용자)이 알라미 덕분에 일어난다고 해요. 직원 30여 명의 작은 기업이 전 세계 1위 알람 앱 서비스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비크닉이 지난 14일 서울 서초동 딜라이트룸 사무실에서 신재명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경쟁자는 기본 알람 앱…잠재 고객은 30억명 ‘잠 깨우기’를 사업화 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어서 스마트폰을 화장실에 두고 잠들곤 했어요. 알람이 울리면 강제로 화장실까지 가야 하는 나만의 미션을 만든 거죠. 그러다 2012년, 대학교 4학년 때 이런 경험을 살려 앱을 만들었어요. 유료 앱이었는데 일주일 만에 3000만원을 벌었어요. 그러다 무료로 전환한 날, 바로 전 세계 60개국에서 1위를 기록했고요. 일어나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고 확신했죠. 알람이라는 단순한 서비스가 수백 억원의 매출을 어떻게 낼 수 있나요. 매출의 30%는 알람 구독 서비스에서 나와요. 나머지는 광고 수익이고요. 월 6900원을 내는 구독자 수가 약 10만명 정도 되죠. 사실 사업 초창기엔 계산기같이 단순한 앱에 돈을 낼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용자 피드백을 들으며 관점을 바꿨죠. 삶을 바꿔주고 시간을 벌어줘서 고맙다는 편지를 많이 받았어요. 심지어 고마움에 돈을 보낸 사람도 있었죠. 극소수 찐팬을 공략해보자고 생각해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이게 먹힌 거예요. 알라미 알람을 끄기 위한 미션들. 알라미 앱 캡쳐 독특한 기상 미션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일어난 뒤에 한 가지 활동만 해도 확실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초기엔 정해둔 물건을 사진으로 찍어야 알람이 해제되는 미션이 있었어요. 지금은 기억력 게임, 스쿼트 등 8가지 미션으로 늘어났죠. 크게 정신을 깨우는 것과 몸을 깨우는 것, 두 가지 미션으로 나뉘는데, 사용자 피드백을 통해 만들어진 거예요. 미션별로 난이도나 횟수도 조절할 수 있어요. 200여개 국가 사용자의 니즈를 맞추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현재 미국(21%)·한국(14%)·인도(10%) 순으로 알라미를 많이 이용해요. 매출의 70~80%가 해외에서 발생하는 만큼 해외 시장에 주목해요. 하지만 국가별 맞춤형 서비스를 하진 않습니다. 200여개 국가의 입맛을 맞추는 건 굉장히 비효율적이어서, 국적 불문 누구나 아침 기상을 어려워한다는 단 한 가지 보편적 문제를 푸는 데만 집중하고 있어요. 전 세계 알라미 사용자가 보낸 알라미 8주년 축하 영상. 딜라이트룸 유튜브 캡쳐 ━ 침대 회사 투자부터 커플 앱 인수까지...알라미의 문어발 경영? 최근엔 투자·인수에 적극적인데요. 알라미와 연결된 것들이에요. 3년 전에는 습관 유지 플랫폼 ‘마이루틴’의 운영사 ‘마인딩’을 인수했어요. 그러다 수면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슬립 테크 산업에 집중하고 있어요. 수면 상태에 따라 온도 조절하는 매트리스를 만드는 ‘삼분의일’에 투자하고, 지난해엔 미국 수면 진단 업체 ‘PranaQ’와 수면 관련 디지털 헬스케어 업체인 ‘사운더블 헬스’에 투자했죠. 수면 건강기능식품을 만드는 ‘녹트리서치’에도 투자했고요. 수면 문제 진단부터 해결책 제공까지 수면의 모든 여정을 다루고 있어요. 슬립 테크에 관심 둔 계기가 있나요. 문제의 원인, 그 원인의 원인을 파고들면서 사업을 확장 중입니다. 사용자들을 만나보니 알람은 성공적 아침을 맞이하기 위한 수단이더라고요. 더 나아가 성공적 하루를 보내기 위한 거죠. 신체·정신·사회적 건강의 조화를 말하는 ‘웰니스’에 관심 둔 이유입니다. 웰니스의 기본이 수면이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잘 자야 잘 일어나고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으니까요. 신재명 딜라이트룸 대표. 딜라이트룸 국민 커플 앱 ‘비트윈’을 인수한 건 다른 노선인데요. 알라미 매출의 70%가 광고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광고 수익화를 고민했어요. 높은 트래픽으로 어떻게 돈을 벌지 생각했죠. 알라미만의 효율적인 광고 수익화 모델을 만들었고, 2023년 앱 광고 수익화 솔루션 ‘다로(DARO)’를 출시했어요. 이걸 적용해 보기에 비트윈은 최적화된 플랫폼이라 생각했어요. 알라미 사용자는 많아도 하루에 두 번 앱에 방문하는데, 커플 소통 앱은 자주 드나드니 광고 효율성이 더 크기 때문에 솔루션을 통해 다양한 테스트를 해볼 수 있으니까요. ━ ENFP 대표의 루틴 노하우…“무조건 작게 시작하라” 13년 차 알람 CEO만의 성공적 하루를 보내는 비결이 궁금해요. 아침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루틴이 있어요. 오전 6~7시 사이에 일어나서 30분간 감사일기를 씁니다. 전날을 회고하며 좋았던 점 3가지를 적고, 전날 딱 하나만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꿀 것인지 적어요. 그리고 지금 당장 감사한 일 세 가지와 뿌듯한 하루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딱 한 가지 계획을 써요. 그리고 짧은 명상을 하면서 마무리하죠. 벌써 4년째 하고 있어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일이에요. 꾸준히 쓰다 보니 제가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었어요. 신재명 대표의 감사일기 템플릿. 딜라이트룸 계획적인 사람만 가능하지 않을까요. 저도 MBTI로는 즉흥적 성향을 가진 ENFP입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무조건 작게, 짧게 시작하면 좋아요. 30분만 하거나 오늘 딱 한 개 목표를 갖는 거죠. 저도 처음엔 아침·점심·저녁 계획을 다 세웠는데 결국 못 지키게 됐고, 되려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아침 시간 30분만 확보하자고 다짐한 이유죠. 하루에 하나씩만 해도 1년에 300번 넘는 다짐을 지킬 수 있어요. 앞으로 딜라이트룸은 어떻게 성장할까요. 13년 됐지만, 딜라이트룸은 여전히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풀지 못한 문제들이 남아있기 때문이에요. 알라미를 이미 완성된 서비스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모든 서비스는 계속해서 업을 재정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록·정리하는 노트 플랫폼이 클라우드의 등장으로 ‘에버노트’와 같은 클라우드형 노트 플랫폼으로 발전한 것처럼 기술의 발전으로 알람의 본질도 재정의할 시기가 분명 오겠죠. 어떤 변화가 오든 대처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된 자세를 가지려고 해요. 관련기사 당신의 '비싼 밥상' 망친다…물로 봤다가 후회한다는 '이 것' [비크닉] '0.017초' 첫눈에 반해야 산다…컬리·당근 로고의 비밀 [비크닉] 롱런 관심없다…'한 철 장사'에 승부 거는 이곳 [비크닉]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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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켓팅' 서버 터졌다…30만 구독 출판사 유튜브의 성공 비결 [비크닉]
■ b.피셜 「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유튜브 채널 구독자 28만 1000명,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어 18만 5000명. 유료 멤버십 클럽 가입 회원 2만여명. 숫자만 보면 여느 대형 브랜드 못잖은 이 계정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출판사 민음사입니다. 각종 디지털 채널과는 대척점에 있을 것 같은 활자의 발신지죠. 그런데 요즘 이 출판사의 디지털 행보가 심상치 않아요. 화제의 출판사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를 이끄는 조아란 민음사 마케팅 부장을 지난 3일 만나 인터뷰했다. 사진 장우린 거점은 유튜브 채널인 ‘민음사 TV’에요. 출판사 채널이지만 “책 광고는 하지 않겠다”며 지난 2019년 만들어졌어요. 으레 기대할법한 저자 인터뷰나 책 추천보다는 ‘출판사 직원들의 가방 속 물건’ ‘신입사원 시절 실수담’ ‘오늘 뭐 먹지, 직장인 점심 3일’ 등 민음사 직원들의 일상 콘텐트가 주 무기죠. 물론 ‘노벨문학상 후일담’이나 ‘요즘 시집 베스트’ ‘고성 서점 여행’ 같은 출판 업계 혹은 책 관련 콘텐트도 풍성하고요. 공·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재미있는 영상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조금씩 구독자가 늘어나 현재 30만명에 육박한답니다. 이런 인기 덕에 지난해 모집한 유료 멤버십인 ‘민음 북클럽’에 무려 2만명이 몰렸어요. 가입비도 5만원으로 적지 않지만 ‘북켓팅(북클럽+티켓팅)’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희망자가 몰리면서 서버가 마비되는 해프닝도 겪었죠. 조용할 것만 같은 출판가에 기분 좋은 ‘소동’을 일으킨 주인공은 민음사 마케팅부를 이끄는 조아란 부장입니다. 지난 2011년 민음사에 입사한 잔뼈 굵은 15년 차 마케터입니다. 흔히 출판사 마케터라면 도서 마케팅이 주된 일이 아닐까 싶지만 그의 표현에 따르면 “신·구간 도서 마케팅을 기본으로 최근에는 SNS 운영, 유튜브 운영·기획 및 출연, 멤버십 서비스 기획, 굿즈 기획, 도서전 기획 등 책 만드는 것 외에 별의별 것을 다하는 부서”가 됐죠. 지난해 4월 모집한 유료 멤버십 서비스인 '민음북클럽'은 신청자가 몰려 서버가 마비되기도 했다. 사진 민음사 홈페이지 여러 채널에 친근하게 얼굴을 내밀면서 ‘아부(아란 부장)’라는 애칭까지 획득한 조아란 마케터를 비크닉이 지난 3일 만나 인터뷰했어요. 개별 책 홍보·마케팅만이 아니라 민음사라는 출판사를 하나의 브랜드로 꾸려가며 유효한 팬덤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죠. 출판사 마케터의 영역이 넓어졌어요. 놀랍게도 제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민음사의 SNS 계정이 없었어요. 있어도 온라인 카페 정도였는데 지금은 트위터·인스타그램·페이스북에 최근에는 유튜브까지 섭렵했죠. 예전에는 신간이 나오면 어떻게 알릴지를 주로 고민했다면, 최근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민음사라는 브랜드를 친근하게 만드는 팬들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어요. 더 넓게는 책을 가까이하는 독자들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요. ━ 출판 마케터가 보는 ‘독서 힙’ 트렌드 여러모로 출판사가 주목받는 데는 최근의 ‘독서 힙’ 트렌드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텍스트 힙’ ‘독서 힙’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웃음) 글이나 책이 ‘힙’이라는 단어와 붙는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으니까요. 심지어 패션 업계 쪽에서도 ‘공항 책’ 이런 단어들이 나오고 하니 조금씩 재밌게 느껴졌는데,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으로 정점을 찍은 거죠. 활자·텍스트에 대한 호감이 어느 때보다도 높은 분위기인 것은 맞는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지만 성인 독서율은 또 떨어지고 있잖아요. 지난해 초에 통계를 낸 이후 최초로 성인 독서율이 50% 떨어졌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성인 두 명 중 한 명이 일 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다는 거죠. 그런데 막상 도서전 같은 행사를 열면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니 약간 혼란스러운 한 해를 보냈어요.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20대 독서율은 확실히 늘었다는 게 통계로 나오고 있다는 점이고요. 지난해 6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참가자들이 책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독서가 ‘힙’해진 게 결국 독서가 귀해졌다는 뜻일까요. 요즘 ‘저속 노화’가 트렌드잖아요. 과거와 달리 마라탕·탕후루 같은 자극적 음식이 도처에 있다 보니 여기에 반하는 흐름이 나타난 것 같아요. 같은 맥락으로 워낙 영상이나 숏츠 같은 디지털 미디어가 흥하다 보니 반대급부로 텍스트가 주목받는 게 아닐까 싶어요. 책 소개 아닌 직원들 ‘TMI(사소한 정보)’ 풀었다 유튜브 채널인 ‘민음사TV’가 화제예요.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요. 유튜브가 영향력이 커진 만큼 마케터로서 뭔가를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잘 안되더라도 한번은 해보고 망해야겠다 싶었죠. (웃음) 막상 해보니 의외의 콘텐트에서 반응이 오더라고요. 영상 출연을 처음 해보는 ‘초짜’ 직원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게 조회 수가 잘 나왔어요. 민음사TV는 책 관련 내용 외에도 민음사 직원들의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콘텐트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민음사TV 유튜브 캡처 출판사 유튜브라고 하면 책 소개 혹은 작가 인터뷰를 볼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기획 방향은 어떻게 정했나요. 막상 유튜브 기획을 해보니 저희가 억지로 노력해서 준비해야 하는 콘텐트는 만드는 사람도 힘들고 보는 분들도 가짜라고 느끼더라고요. 예를 들어 제가 출연한다면 평소에 뭘 좋아하는지, 최근에 어떤 관심을 가졌는지를 중심으로 주제를 뽑지, 지금 어떤 책을 홍보해야 하니까 이 책을 소개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하지 않고 있어요. 그게 (유튜브 기획의) 노하우라면 노하우인 것 같아요. '세계문학전집 월드컵' 등 책 관련 콘텐트에도 색다른 기획을 더해 눈길을 끈다. 사진 민음사TV 유튜브 캡처 덕분에 팬이 많이 생겼어요. 마케터 일을 하면서 SNS 채널을 여러 개 운영했지만, 유튜브를 운영하면서부터 ‘아 이런 분들이 (민음사의) 팬이구나’를 처음 느꼈어요. 자주 소통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시청자들도 나랑 같이 일하는 업계 사람처럼 여기기도 하고요. 저 혼자만의 동료 의식을 느끼고 있어요. (웃음) ━ 방수 책, 일력 대히트….“책 ‘발견되도록’ 하고 싶어” 지금은 하나의 장르(?)가 된 ‘일력(하루 달력)’도 민음사에서 처음 나왔죠. 맞아요. 일력이라는 상품 자체는 과거에도 있었는데, 책과 관련된 굿즈(기획 상품)로 만든 거죠. 민음사 간판인 ‘세계문학전집’이 처음 일력 제작 당시 마침 360여권 정도였어요. 각 책의 첫 페이지를 넣어서 하루 한 페이지씩 고전을 읽는, ‘시작이 반이다’라는 콘셉트로 하루 달력을 만든 거죠. 지금은 각 작품의 인상적인 한 문장을 뽑아서 만들고 있어요. '하루 한 문장씩 고전 읽기'라는 콘셉트로 출간한 민음사의 인생 일력. 시의적절한 문구는 온라인 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한다. 사진 민음사 홈페이지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문화 상품 기획을 하는 셈이네요. 민음사에 있는 정말 많은 책을 어떻게 하면 다시 ‘발견되도록’ 할지 항상 고민해요. 어떻게 하면 책이 죽지 않고 계속해서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거죠. 같은 책도 새롭게 보도록 만드는 기획이 필요해요. ‘워터프루프 북(방수 책)’도 휴가지에 가져갈 수 있는 고전을 떠올리며 만들었어요. 휴가까지 가서 고전 읽기가 마음먹기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워터프루프 북을 만드니까 평소 책에 관심 없었던 분들도 ‘아, 나도 수영장 가는데 한번 가져가 보고 싶다’가 되는 거죠. 관련기사 '0.017초' 첫눈에 반해야 산다…컬리·당근 로고의 비밀 [비크닉] CES서도 난리났다…재벌 회장들도 주목한 탈모 샴푸의 비밀 [비크닉]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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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7초' 첫눈에 반해야 산다…컬리·당근 로고의 비밀 [비크닉]
첫인상을 결정하는 시간 0.017초 미국 다트머스대학 심리·뇌 과학자 폴 왈렌 교수에 따르면 인간의 뇌가 상대방에 호감과 신뢰 여부를 판단하는 데는 0.017초가 걸린다고 해요. 뇌의 편도체가 빠른 시간 안에 상대방을 파악하도록 진화한 것이라는데요. 이는 소비자의 첫눈에 들어야 살아남는 브랜드에게도 중요한 요소일 겁니다. 비슷비슷한 제품이 함께 있는 대형 마트는 물론이고 손가락 터치 몇 번이면 되는 온라인 쇼핑에서는 더더욱 말이죠. 그렇다면 요즘 가장 많이 선택받는 브랜드의 얼굴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2019년 컬리 BI 리브랜딩. 로고는 가독성을 높이고 기존 보라색은 명시성을 개선했다. 배송 박스는 상온·냉장·냉동으로 구분해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했다. 사진 홍기웅·CFC 제공 컬리·당근·예스24·뚜레르·칠성사이다·티빙·SM엔터테인먼트까지…. 이름을 듣는 순간 컬러와 서체가 생각나는 이 브랜드들의 ‘얼굴’을 담당한 ‘CFC(씨에프씨)’도 0.017초의 마력을 누구보다 잘 꿰뚫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업력 13년 차에 접어든 CFC는 브랜드가 가진 철학과 정체성을 내재화하고 그것을 고객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맥락 있는 디자인’으로 승부를 봤다고 해요. 대체 사람들을 사로잡는 ‘한끗 다른’ 디자인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서울 성산동 CFC 사옥에서 전채리 대표를 만났습니다. 2013년 CFC를 세운 전채리 대표. CFC는 Content(콘텐트) Form(형태) Context(맥락)의 약자로 미국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폴 랜드의 ‘디자인은 형태와 내용 간의 흐름이다’의 말에서 착안했다. ━ “브랜딩이란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일” ㅡ브랜딩 디자인이라고 하면, 로고를 만드는 정도로 생각하게 대부분이죠. CFC가 보여주는 디자인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쉽게 얘기하면 그 ‘브랜드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일이에요. 브랜드 디자인도 시각 세계에 있어 부재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구축해 나가는 일이거든요. 로고든 비주얼 시스템이든 이면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가 살펴보는 것이 프로젝트의 시발점이 됩니다. 리브랜딩 작업을 하다 보면 ‘기존 로고는 왜 이런 모양인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브랜드 구성원들의 의견을 입체감 있게 수렴하고 공감을 얻는 일이 그래서 중요해요. ‘그냥 위에서 이렇게 정했대’하는 상태가 되면 안 되는 거죠. 내부 사람에게 브랜드 본질이 내재화된 상태여야 외부 커뮤니케이션이 한 목소리로 나갈 수 있거든요. 세탁서비스 런드리고는 세탁이라는 업의 본질과 실용성을 담은 모습으로 재단장했다. 사진 홍기웅·CFC 제공 내러티브가 갖춰지면 ‘베이식 시스템’을 설계합니다. 슈프림을 입는 사람인지 르메르를 입는 사람인지에 따라 스타일과 언어, 행동 등이 다른 것처럼 브랜드의 개성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고 보일지 만드는 일이죠. 이후엔 앱 아이콘이나 웹사이트 화면, 제품 패키지, 명함 등에 로고와 그래픽을 매체에 맞게 적용하는 일이 우리의 역할이죠.” ㅡCFC가 이 분야에서 전문이 된 비결이 있나요. “클라이언트가 ‘아 여기는 좀 재미있게 해결책을 제시하는구나’하고 봐주신 게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를 들어 컬리나 당근처럼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시각 자산을 잘 계승하면서 신선함을 더하는 방식의 리브랜딩도 있고, 런드리고나 리멤버처럼 변화의 폭이 큰 경우도 있거든요. 브랜드의 방향성에 따라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던 것이 주효했어요. 또 가끔 듣는 칭찬이 ‘그래도 CFC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네요’예요.(웃음)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더라도 한 팀이니까 끝까지 책임지고 간다는 마음이 있죠.” ━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업의 본질에 정답 있다 문화콘텐츠 플랫폼으로 확장한 예스24는 기존 스마일과 파란 컬러 요소를 유지하면서 '라이프 모티베이터'라는 새로운 비전과 의지를 담아냈다. 기존 유저들에게서 '잘 바꾼 리브랜딩'이라는 호응을 이끌었다. 사진 홍기웅·CFC 제공 문화콘텐츠 플랫폼으로 확장한 예스24는 기존 스마일과 파란 컬러 요소를 유지하면서 '라이프 모티베이터'라는 새로운 비전과 의지를 담아냈다. 기존 유저들에게서 '잘 바꾼 리브랜딩'이라는 호응을 이끌었다. 사진 홍기웅·CFC 제공 ㅡ처음 브랜드를 수립하는 프로젝트와 기존에 잘 알려진 브랜드를 리브랜딩하는 경우 접근법이 다를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브랜드의 시각적 레거시(유산)의 유무인 것 같아요. 기존 브랜드의 시각적 자산을 출발점으로 변화의 폭을 살피며 새로운 방향성을 정립하는 것이 리브랜딩의 핵심이라면 신규 브랜딩은 언어로 존재하는 브랜드의 철학을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해석해 실체화하는 것이 핵심이죠. 무한하게 상상할 수 있기에 무척 재미있는 대신 제약이 없기 때문에 어렵기도 해요.” 지역 기반의 커뮤니티로 포지셔닝한 당근의 새로운 BI. CFC 제공 ㅡ당근처럼 대중적으로 알려진 브랜드의 새로운 얼굴을 만드는 일은 어땠나요. “10대부터 80대까지 전 국민이 쓰는 앱이다 보니 변화의 폭이 크진 않았어요. 사람들이 앱 아이콘을 보고 0.1초 만에 당근임을 인지할 수 없으면 안 되니까요. 마침 브랜드는 당근 마켓에서 ‘마켓’을 떼고 동네 생활 커뮤니티로 포지셔닝을 확장하던 시점이었거든요. 동네에 대한 애정이 피어나는 콘셉트로 당근의 몸통인 ‘핀’ 형태는 지키되 이파리 부분을 비정형적인 하트의 모습으로 만들었어요. ‘익숙하면서도 새로움’을 주는 것이 리브랜딩의 관건인데 얼마큼 변화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는지 적정선을 찾아 나가는 걸 지속해서 테스트하고 있어요. 컬리도 리브랜딩했을 때 고객들은 거의 몰랐다고 해요. 좋은 쪽으로 변화하면 첫째 날은 ‘어, 뭔가 다른데?’ 하고 둘째 날부터는 예전 것이 생각나지 않는 거죠.” 직장인 필수앱으로 성장한 리멤버는 '기회가 열린다'는 슬로건처럼 성공의 문이 열리는 순간을 표현했다. CFC 제공 ㅡ보이지 않는 가치를 디자인하는 방법은. “플랫폼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고객 접점은 앱이에요. 앱의 핵심 특징을 정리하다 보면 브랜드의 강점과 존재 이유, 나아가 업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게 돼요. 이런 것들을 분석하다 보면 흩어져 있던 강점들이 묶이는 지점이 생깁니다. 리멤버의 경우 명함 관리 서비스로 시작해 지금은 커리어 커뮤니티나 채용까지 가능한 직장인 필수 앱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저는 명함을 주고받는 아날로그적인 행동이 플랫폼 비즈니스가 된다는 지점이 재미있었어요. 리멤버의 슬로건이 ‘기회는 열린다’거든요. 멈춰 있지 않고 계속 현재 진행형으로 성장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 명함의 고유한 직사각형 형태를 평행사변형처럼 ‘R’ 안에 구성해 열려 있는 순간을 표현했어요. 이런 식으로 업의 본질과 브랜드가 원래 갖고 있던 조형적인 단서들을 연결해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거죠.” 1992년 출시한 백세주는 '백년을 잇는 향기'를 컨셉으로 과거와 현대를 잇는 세련된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사진 홍기웅·CFC 제공 ㅡ백세주 리브랜딩은 지난해 ‘코리아디자인어워드’ 커뮤니케이션 브랜드 부문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됐어요. “인지도 있는 브랜드지만 대폭 변화를 줬던 사례인데요. 원래 투명한 병에 담겼지만 제품의 퀄리티를 위해 빛의 영향을 차단하는 갈색 병을 도입하자는 것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어요. 국순당 회장·대표님과 회의를 해보니 백세주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고 큰 변화로 매출이 하락할 위험에도 불구하고 주질을 위해 갈색 병으로 바꾼다는 결정에서 장인의 면모가 보였죠. 강원도 양조장을 가보니 윤형근·이배 작가의 단색화가 떠오르는 산세가 인상적이었어요. 백세주가 32년간 올곧게 이어온 정신을 담아보자는 뜻에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결과물이 완성되었습니다.” ━ ‘시대의 미의식’을 만든다 롯데백화점 프리미엄 식료품관인 레피세리는 황금기를 모티프로 풍요로웠던 벨 에포크 시대의 아르누보 양식을 적용했다. 사진 홍기웅·CFC 제공 ㅡ‘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기업의 만족도를 충족시키면서도 기시감 들지 않는 디자인을 만드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디자인 사이트나 SNS에서 영감을 얻기보다 백세주처럼 원천 콘텐트에서 단서를 찾으려고 해요. 그럼에도 시시때때로 바뀌는 트렌드를 우리도 모르지 않기 때문에 유행하는 언어들을 양념처럼 적용하려고 합니다. 본질로 설계 하되 지금 시대에서 이야기되는 것들과의 균형을 잡아나가는 거죠.” ㅡ제품이나 서비스뿐만 아니라 국가나 지자체도 브랜딩을 하는 요즘입니다. CFC의 손길이 닿은 분야도 꽤 넓어요. “회사 초창기에는 뷰티 브랜드 작업을 많이 했고 이후 케이팝 시장과 연결된 엔터테인먼트 프로젝트가 많았어요. 코로나 시기에 플랫폼 비즈니스가 확장했고 이후엔 다시 리테일 브랜딩이 주요해졌어요. 우리는 단순히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브랜드가 한 시대에 있는 만큼, 나중에 돌이켜 본다면 디자이너 역시 한 시대의 미의식을 만들어 나가는 데 일조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1950년 출시된 칠성사이다의 로고 변천사는 당대 디자인을 읽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24년 만에 'Sense of Joy'를 주제로 리브랜딩한 모습. 사진 홍기웅·CFC 제공 ㅡ대표님이 생각하는 좋은 브랜드는 무엇인가요. “자기만의 철학과 신념이 있는 사람, 시간이 지나도 꾸준하고 한결같은 사람을 보통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잖아요. 여기서 ‘자기다움’이란 결국 내면과 외면이 연결되어 일치화된 걸 의미하지 않나 싶어요. 브랜드도 마찬가지로 자기만의 철학과 존재 이유를 지닌 상태에서 꾸준히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이 좋은 브랜드가 아닐까요.”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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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서도 난리났다…재벌 회장들도 주목한 탈모 샴푸의 비밀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아리스토텔레스도, 카이사르도 피할 수 없었던 것. 동물 똥∙오줌을 머리에 발라봐도, 말 이빨과 곰 기름을 섞어 약도 만들어봐도 허탈하기만 했던 것. 그리고 인류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들조차 피해갈 수 없었던 것. 바로 탈모입니다. 고대 이집트 의학서 『에베루스 파피루스』에 따르면 속수무책인 탈모를 ‘치료’하기 시작한 건 기원전 1550년입니다. 이후 산업혁명부터 인공지능 시대까지, 그동안 인류는 엄청난 발전을 이뤘지만, 여전히 탈모는 풀기 어려운 숙제로 남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 첫날, 사람들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은 주인공은 다름 아닌 ‘폴리페놀 팩토리’입니다. 이 회사는 현장에서 지난해 4월 출시한 탈모 예방 샴푸 ‘그래비티’를 선보였는데, 반나절 만에 준비한 샘플 1만개가 동이 났습니다. 세계 최대 벤처 투자사 ‘플러그앤플레이’ 등 국내∙외 벤처캐피털 50여 곳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미국 대형 유통 체인 ‘월마트’ ‘타겟’ 벤더사의 입점 제안도 받았다고 하네요. CES 2025 행사의 폴리페놀 팩토리 부스. 폴리페놀 팩토리 이런 화제의 탈모 솔루션을 내세운 건 뜻밖에도 이해신 카이스트 화학과 석좌교수입니다. 연구는 안 하고 외부 활동만 하는 교수가 아닐까 의심했지만, 국제학술정보기관인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뽑은 전 세계 상위 1% 연구자(2018 Highly Cited Researcher)래요. 2007년 낸 그의 대표 논문은 17년이 지난 지금도 하루 평균 4회씩 인용되고요. 게다가 이번이 그의 첫 창업도 아니라고 합니다. 2010년 피 안 나는 지혈제를 만든 ‘이노테라피’를 시작으로 유전자 치료제 개발사 ‘글루진테라퓨틱스(2014)’를 공동 창업했고, 2021년엔 머리만 감아도 염색이 되는 ‘모다모다’ 샴푸 기술을 만든 거로도 유명해졌어요. 대체 무엇이 전 세계 상위 1% 과학자를 연쇄 창업의 길로 나서게 했을까요. 비크닉이 지난달 20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그 주인공인 이해신 교수를 만나 질문을 쏟아냈어요. 이해신 교수. 폴리페놀 팩토리 ━ 모든 해결책은 ‘홍합’에 있다…탈모 샴푸, 이렇게 탄생했다 Q. CES에서 큰 관심을 받았는데. 그 덕인지 요즘 제품을 입고할 때마다 당일 동나곤 해요. 홈쇼핑 방송 40분 만에 10억원 매출을 올렸고, 지난달엔 올리브영 입점 39분 만에 준비 제품이 다 팔렸어요. 브랜드숍 요청으로 제품 사인 행사도 하고 옵니다. 요즘은 대기업 회장들도 저희 샴푸를 안다고 해요. 카이스트 브랜드숍에 입점한 그래비티 상품. 서혜빈 기자 Q. 회사 이름이 독특하다. 2002년부터 홍합을 공부했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홍합 껍데기에 있는 접착 물질 ‘폴리페놀’을 연구했죠. 그래서 창업해서 만든 제품은 모두 폴리페놀 원리를 활용해 만든 발명품이죠. 이것으로 지혈제를 만들고, 피 안 나게 하는 주사기도 발명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폴리페놀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활용하고 싶어서 사명을 폴리페놀 팩토리로 정했죠. Q. 폴리페놀 연구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대학 때부터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약물을 투입하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보통 몸 안에 들어간 약은 여기저기 퍼지기 마련이잖아요. 그러다 1981년에 출간된 한 논문이 결정적 계기가 됐어요. 홍합 표면에 있는 접착 물질에 관한 연구였는데, 이거다 싶었죠. 홍합 원리를 활용해 물속에서도 원하는 지점에 무언가 붙일 수 있다면 의학 분야에 크게 기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가령 암세포가 발생한 지점에 정확하게 약을 붙이는 식으로요. 홍합 껍데기 표면에는 강력한 접착 물질 '폴리페놀'이 있다. 서혜빈 기자 Q. 그러다 왜 탈모 샴푸를 만든 건가. 언젠가 어머니가 염색할 때마다 눈이 시리고 두피가 따갑다는 고민을 털어놨어요. 그런데 폴리페놀에는 갈변 성분도 있거든요. 이걸로 일단 염색 샴푸 모다모다를 만들었죠. 자연스럽게 모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 시장에선 탈모가 가장 큰 이슈라는 걸 알게 됐어요. 탈모 예방의 핵심은 모발을 최대한 덜 빠지게 하는 거잖아요. 모발이 얇아지고 모공에 공간이 생기면서 탈모가 생기는 건데, 이 공간을 폴리페놀로 채우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Q. 모다모다 제품 출시 이후 사건이 많았는데. 모다모다 출시 반년 만에 200만 개 이상 팔렸는데 바로 위기가 찾아왔어요. 식약처가 샴푸 성분에 위해성 문제가 있다며 판매 금지 조처를 내렸죠. 식약처가 미국 FDA에 요청한 검사에서 샴푸 성분에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받았지만 어쨌든 갈변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2년간 기술 사용료를 받지 못해서 소송도 벌였죠. ━ 무엇이 상위 1% 과학자를 창업의 길로 이끌었나 Q. 교수와 창업가 정체성을 다 가지고 있는데, 일과가 어떻게 되나. 하루하루가 전쟁터예요. 논문연구∙수업∙학생지도와 함께 샴푸 개발∙경영까지 하면 시간이 부족하죠. 방학인 요즘은 주 7일 하루 15시간씩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 틈틈이 연구도 하죠. 이게 다 재밌어서 하는 거죠. 재미가 삶의 원동력이에요. 그래비티를 만든 과학자들. 폴리페놀 팩토리 Q. 재미가 다인가. 의무감도 있어요. MIT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낼 때 지도교수였던 로버트 랭어(Robert Langer)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랭어는 뛰어난 학자이자 발명가이자 사업가예요.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지금까지 설립한 회사만 40곳이 넘고, 이중 상당수가 상장도 했어요. 그가 만든 대표 회사가 코로나 시기 중요한 역할을 한 백신 회사 ‘모더나’예요. 그는 아무리 좋은 연구를 해도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교훈을 줬어요. Q. 스승한테 얻은 가르침을 학생들에게도 전달하고 있나. 화학과 수업시간에 기업활동(IR)을 시켜요. 예를 들어 질병을 한 가지 던져주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가상으로 창업하는 프로젝트예요. 당장 투자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가정하는데, 학생들은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닌, 문제와 해결책, 시장성을 찾게 되죠. 저는 똑똑한 학생들이 모두 의대에 가는 나라는 망조에 들었다고 생각해요. 공학 인재들이 창업해서 성공하는 사례를 만들고 싶고, 우리나라에도 테슬라나 구글 같은 세계적 테크 기업이 못 나올 이유는 없다고 자신합니다. ━ J 커브 그리는 신생 스타트업의 비결 폴리페놀 팩토리는 2023년 대전 동구 둔산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책상 두 개만 놓을 수 있었던 곳이 지금은 11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사무실로 커졌어요. 제품 출시 8개월 만에 매출 100억원을 올린 이 신생 스타트업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그래비티 제품. 폴리페놀 팩토리 Q. 창업의 기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남들이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걸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보통 본인이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거라고 착각하고 창업에 뛰어드는데, 이번 CES 현장에서도 그런 부스들을 봤고요. Q. 소비자 니즈를 어떻게 발견했나. 기획 단계부터 많은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들었어요. 팀원들과 공병에 담긴 제품을 들고 미용실도 찾아다녔죠. 실제 후기를 듣기 위해서였는데, 문전박대도 많이 당했어요. 지금도 고객 민원 전화를 직접 받아요. 온라인 판매 채널에 올라온 쓴소리까지 다 읽고요. 소비자가 하는 말은 어떤 말이든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불만족했다면 그 원인을 집요하게 찾아야 해요. 저는 종종 30분 넘게 통화하면서 소비자 생활습관도 상담해요. 사람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문제 원인과 해결책이 보여요. Q. 소비자 목소리를 반영하기도 했나. 사실 그래비티가 처음부터 탈모 예방 샴푸였던 건 아니었어요. 머리가 풍성하게 보이는 볼륨 샴푸로 개발했죠. 그런데 수백명을 찾아다니며 시장 조사를 하다가 의외의 피드백을 받았어요. 머리가 안 빠진다는 거죠. 제품 출시를 늦추고 추가 임상 시험에 들어갔고, 일반 탈모 샴푸보다 머리카락 감소 현상이 적다는 걸 알게 됐죠. 잠재 고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폴리페놀이 단백질에만 달라붙는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실험. 폴리페놀 팩토리 Q.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준다면. 콘셉트로 사업하지 말아라, 그건 장난이라고 말해줘요. 과거처럼 아이디어만 가지고 비즈니스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어요. 만약 잘 되더라도 빠르게 대체되기 때문이죠. 본인만의 기술을 갈고 닦는 시간이 필요해요. Q. 문과는 어떻게 기술을 찾나. 기술(technology)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에요. 오랜 수련을 통해 무언가를 잘 다루게 되는 능력을 말하죠. 문과도 나름대로 기술을 찾을 수 있고, 어떤 분야든 본인이 속한 곳에서 꾸준히 훈련하다 보면 노하우를 얻어요. 만약 식당 창업을 생각한다면 식당 직원으로 들어가 수백 개의 양파를 썰어보는 경험을 해야 해요. 지난달 20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이해신 교수를 만났다. 서혜빈 기자 Q. 앞으로의 계획은. 폴리페놀 팩토리의 모토는 일상의 혁신이에요. 일상용품으로 생활의 질을 높이자는 거죠. 일단 지금은 그래비티를 비롯한 모발 상품 개발로 ‘헤어 사이언스’에 몰두할 계획이에요. 이미 모발 강도를 높이는 상품, 파마나 매직을 할 수 있는 제품, 모근 없는 모발 이식 등을 개발하고 있어요. 장기적으론 랭어 교수처럼 노년에도 왕성하게 연구 활동과 사업을 병행하고 싶습니다. 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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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하지 않아도, 500만명 홀렸다…'MZ성지' 그라운드 시소 비밀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전시 ‘우연히 웨스 앤더슨’(2021)은 25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며 해외 투어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그라운드시소 누적 관람객 수 500만 명, 연간 관람객 수 100만 명. ‘MZ세대 전시 성지’라 불리는 ‘그라운드시소’의 기록입니다. ‘요시고 사진전’ ‘유미의 세포들 특별전’ ‘우연히 웨스앤더슨’ 등 최근 몇 년간 대박을 친 전시 앞에는 늘 그라운드시소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서촌·성수·명동·센트럴(서울역)에 문 연 그라운드시소는 전시 기획제작사인 미디어앤아트가 만든 문화 공간이자 하나의 브랜드예요. 관람객 10만 명을 성공 기준으로 보는 전시 시장에서 20만~40만 명 흥행을 이어가다 보니, 이제는 이름만 보고 일단 표부터 사는 관람객층이 생겼을 정도죠. 최근에는 1000억원 밸류의 시리즈A 112억원 투자도 유치했습니다. 세계적 거장의 명화를 가져와 그대로 재현하는 블록버스터급 전시와 달리 ‘전시 저작권’을 가진 것이 무기가 되어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선전에서 ‘우연히 웨스 앤더슨’을, 올 10월 도쿄에서는 ‘요시고 사진전’을 선보입니다. 특히 싱가포르관광청의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10월엔 싱가포르 내에 ‘그라운드시소 아시아’가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현지 최초의 스토리텔링 기반 미디어아트 상영관이 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인터뷰에 응한 미디어앤아트 지성욱 대표. 사진 박현아 흥미롭게도 이같은 전시 업계의 새 장을 연 주인공, 미디어앤아트 지성욱 대표(53)는 창업 전까지 전시나 아트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어요.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십여 년간 다날 미디어사업본부장, KT 미디어콘텐츠 본부를 거치면서 콘텐트 기획과 영화 및 드라마 제작 감각을 익혔어요. 그러다 2014년 미디어앤아트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전시 사업에 뛰어들었죠. 직접적인 경력은 없었지만 ‘될 거다’라는 믿음은 누구 못지않게 확실했다고 해요. 바로 전시 업계에서도 ‘콘텐트의 힘’을 믿었던 겁니다. 대규모 전시와 차별화한 콘텐트는 무엇일까요. 비크닉이 지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 “이거 예술 맞아?” 출발점부터 달랐다 9개월 간 42만 명이 방문하며 화제가 된 ‘요시고 사진전: 따뜻한 휴일의 기록’(2021) 사진 그라운드시소 - 미디어 콘텐트 경력을 뒤로 하고 오프라인 전시를 시작했어요. 어떤 사업성을 보았나요. “회사에 다니면서 5년 사이 드라마 제작비가 1억에서 5억으로 올라가는 걸 봤어요. 글로벌까지 나가면 거대 자본이 움직이는 시장이 될 텐데 개인이 뭔가를 하기엔 어렵다고 생각했죠. 또 매체가 발달할수록 오프라인이 주는 감동은 여전히 있을 거라고 여겼어요. 개인의 의지만 있다면 자본의 부침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1년 안에 완결을 지을 수 있는 전시의 빠른 사이클에도 매력을 느꼈죠.” - 처음부터 전시를 콘텐트 싸움이라고 본 거네요. “미디어앤아트는 출발이 달라요. 디지털이나 디자인으로 시작한 회사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에서 시작한 회사라서 그래요. 저는 드라마·영화·음반 제작을 하던 사람이라 전시 자체도 제작이라고 봤어요. 콘텐트 산업의 본질에 집중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고 거기에 시장이 반응한 것 같아요. 콘텐트 시장에서 IP(지식재산권)는 정말 중요해요. 잘 만든 IP를 기반으로 사업을 다각화해야 회사가 성장할 수 있어요. 처음부터 전시를 제작해서 IP를 확보하는 것에 중심을 둔 이유입니다.” 동시대 보편적인 공감대를 찾아 전시를 만드는 그라운드시소. - 전시 자체가 IP가 된다는 이야기인가요. “네, 2차 저작물 창작에 대한 권리예요. 예를 들어 전시의 주제와 콘텐트 기획, 공간별 세팅하는 방식, 영상이나 글, 도록이나 굿즈 같은 것들이 창작물이 되는 거죠. 원작자와 미리 계약을 통해 저작권에 대한 수익 배분을 합니다. 국내의 인기 전시가 해외 투어를 할 수 있는 것도 우리의 IP가 있기 때문이에요.” ━ MZ 세대 성지, 그라운드시소를 만들다 원형 필로티 구조가 인상적인 그라운드시소 서촌 전경. 사진 그라운드시소 - 스토리텔링 방식 전시도 IP와 밀접한가요. “2014년 기술과 예술을 결합한 미디어아트 전시 ‘반고흐 인사이드’를 선보였어요. 그런데 흥행 후 비슷한 전시들이 속속 생겼어요. 명화의 2차 저작물에는 허들이 없으니까요. 소모적인 명화전 경쟁에서 빠져나와야겠다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회사 체질 강화에 도움이 됐죠. 첫 시도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빨간머리 앤』처럼 친숙한 이야기를 동시대 감각으로 녹여냈어요. 전시 ‘앨리스 인투 더 래빗홀’은 『2018 트렌드 코리아』에서 소확행과 가심비를 드러내는 사례로도 소개되었죠. 다음은 저작권과 이미지가 확실하게 있는 대상을 전시로 만들었어요. 그 예가 인기 웹툰 ‘유미의 세포들’이었어요. 한 편당 700~8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는 작품이라 전시로 만들면 시장 자체가 커지겠다고 생각했고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그라운드시소 서촌을 찾은 관람객들. 여가 시간을 보내거나 새로운 영감을 얻으려 방문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 ‘그라운드시소’라는 전시장을 열고 전면에 내세운 이유가 있나요. “대중들은 전시를 봐도 어떤 제작사가 만드는지는 모르거든요. 회사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낼 브랜드가 필요했습니다. 또 미디어앤아트가 1년에 만드는 전시만 10개 거든요. 고정적으로 전시를 선보일 공간이 필요해졌죠. 그라운드 시소의 공간 정체성은 확실해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MZ 세대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움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 젊은 세대를 만족시키려면 늘 트렌드에 민감할 것 같은데요. “‘힙한’ 소재를 찾진 않아요. 대중예술을 하려면 큰 주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뜨는 작가나 트렌드를 쫒기 보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할 만한 걸 먼저 정해요. ‘코로나 시대에 대중이 가장 원하는 건 뭘까? 아, 해외여행에 대한 갈망이 있구나. 그걸 잘 드러낼 수 있는 작가를 찾자’ 이렇게 시작이 돼요. 작가의 유명세보다는 메시지에 비중이 있기 때문에, 작가 섭외가 안 되더라도 기획을 틀지 않는 거죠.” ━ 전시의 반은 ‘기획력’ 뉴욕의 풍경을 주제로 하는 ‘이경준 사진전: 원 스텝 어웨이’는 누적 관람객수 23만 명이 넘었다. 사진 그라운드시소 - 흥행에 그만큼 확신을 갖는 거네요. “지금 그라운드시소 센트럴에서 열리는 이경준 사진전 반응이 좋은데요. 여행 3부작이라고, ‘요시고 사진전’이 여행에 대한 열망을, ‘우연히 웨스 앤더슨’이 대리만족을 선사했다면 ‘이경준 사진전’은 구체적인 장소를 제안합니다. 기획이 탄탄했기에 아이템에 자신있었거든요. 이미 관람객은 23만 명이 넘었고 작가에게는 팬덤이 생겼죠. 티켓 가격이 1만 5000원이라면 그 가격만큼의 만족감을 주려고 노력해요. 만약 뉴욕에 대한 전시라고 한다면 사진으로만 보여줄 수 있겠지만 음악·영상·오브제 등 가급적 다양한 형태의 장르로 보여주려고 합니다. 어떤 고객이 오더라도 소구점 하나 정도는 맞힐 수 있도록 하는 거죠. - 그럼 회사에서 누가, 어떻게 기획을 하나요. “저희 회사의 강점을 한 개만 말해보라고 하면 ‘아이템을 보는 눈’이라고 얘기해요. 전략기획팀·제작팀·디자인팀 같이 모여서 신규 아이템을 논의합니다. 주요 키워드가 정리되면 이후 작가를 찾고 연출안을 세워요. 10개월의 전시 준비 과정 중 6개월이 소요되는 중요한 일이죠. 전시도 종합예술이거든요. 구성원이 기획부터 함께 참여하기 때문에 실제 전시 완성도가 높아요.” _ 그라운드시소 대표 전시 ‘요시고 사진전’과 ‘우연히 웨스 앤더슨’(아래 왼). 디테일 높은 공간 연출을 통해 전시의 세계관에 깊이 빠지게 만든다. 사진 그라운드시소 - 최근에는 전시 외에 서울국제도서전에도 참가했어요. “그라운드시소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었죠. 현장에선 도록 만드는 과정을 보여줬어요. 부스에 연일 사람이 몰려들 만큼 반응이 좋았습니다. 다들 저희가 어떻게 일하는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더군요. 실제 디자이너 채용 공고를 올리면 경쟁률이 500대 1이에요. 대기업도 아니라 의아할 수 있지만 그만큼 이런 완성도 높은 전시를 만들어보고 싶은 이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 다음 행보가 더 궁금해집니다. “국내를 넘어 해외도 도전합니다. 올해 하반기 문여는 싱가포르 ‘그라운드시소 아시아’에서 한국에서 흥행한 전시를 엄선해 보여줄 예정입니다. 예전에는 국가마다 선호하는 전시 아이템이 달랐지만 SNS 발달로 인해 그 간격이 점점 좁아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 그라운드시소를 찾는 70~80% 관람객이 MZ세대인데요, 연령별 타깃이 아닌 마니아층을 겨냥한 새로운 브랜드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남다른 콘텐트를 만드는 일이 우리가 제일 잘하는 분야죠.”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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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백 치고, 멍 때리기…K뷰티가 '감성' 건드렸더니 생긴 일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팝업의 성지’ 서울 성수동이 최근 K뷰티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뷰티 브랜드가 국내는 물론 해외로 외연을 넓히면서 외국인 관광객과 20·30 소비자가 즐겨 찾는 성수에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죠.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닥터지’도 그 대표주자입니다. K뷰티 붐을 이끌며 매년 40% 이상 성장했는데 론칭 21년 만에 처음 팝업을 열었습니다. 지난 5월 25일부터 6월 7일까지 스테이지35에서 열린 팝업 ‘진정 강한 너를 위해: Dr.G Cherish You’ 입니다. 결과는 대성공. 사전 예약은 하루 만에 조기 마감됐고 2주간 약 1만 6000명 이상 방문했습니다. ‘건강한 피부를 넘어 내면을 돌보는 삶의 태도를 응원’하는 브랜드 메시지가 주효하게 전달됐다는 평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격전지에서 흥행을 만들어 낸 이들이 팝업을 처음 만들어본 마케터들이었다는 겁니다. 성수에 인기 있던 팝업 공식을 따르지 않고 닥터지만의 정체성을 가진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데요. 이번 비크닉에서는 이들의 팝업 성공 전략을 들어봤습니다. ━ 스킨케어 브랜드 1위, 닥터지의 성수 팝업 출사표 팝업 프로젝트의 시작은 단 하나의 질문이었어요. 고객들이 닥터지를 바라봤을 때 어떤 이미지인가라는 거죠. 브랜드 철학, 헤리티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브랜드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5월 25일부터 6월 7일까지 서울 성동구 스테이지35에서 열린 닥터지 팝업 ‘진정 강한 너를 위해: Dr.G Cherish You’ 드럭스토어 기초 부문 판매 1위(올리브영 23년 1~6월 기초화장품 누적매출액 기준), 잘 나가는 닥터지가 치열한 성수 팝업에 출사표를 던진 이유는 뭘까요. “제품에 대한 충성도는 이미 높은 상황이었기에 닥터지만이 가진 브랜드 가치와 철학을 이야기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프로젝트를 주도한 글로벌마케팅팀은 브랜드의 국내외 마케팅 총괄 및 상품 육성 전략 수립, 시행까지 브랜드와 고객을 연결하는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이번 브랜드 팝업 프로젝트는 9년차 손수지 매니저가 리더를, 4년차 박솔혜 매니저가 공간 기획 중심의 업무를 맡고 총 5명의 팀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팝업 준비에 걸린 시간은 대략 6개월.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건 부동산 임장입니다. 자양동 일대부터 서울숲까지 하루에 3만 보 이상 걸어 다니며 적합한 공간을 물색했어요. 역에 내려서 찾아오기 쉬운지, 유동 인구와 공간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되는지 꼼꼼히 따졌습니다. 닥터지의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 감정을 주제로 여러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 중요했는데 마침내 최적의 공간을 찾아냈어요. ━ 샌드백 치고, 멍 때리기… 성공 팝업에는 ‘세계관’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와의 협업으로 감정이라는 키워드와 세계관을 팝업 전반에 적용했다. 팝업을 기념해 한정판 제품도 출시했다. 각각의 감정을 기억으로 담아낸 ‘구슬’과 ‘시스템 그래픽’으로 구성한 팝업 그래픽 디자인 팝업에서 장소보다 중요한 건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거죠. 닥터지는 ‘인사이드 아웃 2’와 협업했어요. 손 매니저는 감정을 통해 단단한 자아로 성장하는 주인공 이야기와 닥터지가 같은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고 느껴 협업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해요. “닥터지의 창업자인 안건영 박사가 어린 시절 얼굴에 화상을 입고, 외모 콤플렉스를 겪었지만 이를 극복했고 피부과 전문의가 되어 같은 고민이 있는 사람들을 돕고자 애썼어요. 피부 고민이 길어지면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는만큼 닥터지는 외면뿐 아니라 내면의 고민에도 관심이 많아요. 방문객들에게 감정을 마주하는 시간을 선물해 주고 싶었어요. 나도 몰랐던 내면을 탐험하고 ‘진정 강한 나’로 성장하는 여정에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다채로운 미션들로 감정을 마주하는 2층 ‘감정센터’ 팝업 공간은 ‘감정’이라는 큰 주제 아래 총 3개의 섹션으로 나눴어요. 1층 ‘닥터지 이모션센터’에서는 닥터지 브랜드스토리를 살펴보고, 베스트셀러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보는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2층 ‘공감센터’는 세 개의 게임 체험을 통해 나의 감정을 탐구합니다. 불안, 슬픔 등 해소하고 싶은 감정 샌드백을 마구 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가 하면, 주어진 시간 안에 LED 패널을 빠르게 터치하는 태핑 조이에 도전하고, 버리고 싶은 감정의 공을 골대에 골인시키는 던지기 게임을 즐기죠. 3층 ‘힐링센터’는 역동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마음을 치유하는 고요한 공간입니다. 미디어아트 월이 설치된 빈백에 누워 내면에 집중해 보고, DIY 존에서 나만의 감정 키링을 만들어보는 식이죠. 타인은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지 공감할 수 있는 거울의 방을 끝으로 투어는 마무리됩니다. ━ 2000명 응답했다, 맥락 있는 경험 설계하기 팝업 기간 동안 하루 평균 1천 명 이상 고객이 현장을 방문했다. 이번 팝업이 흥행에 성공한 데는 ‘사전 홍보’와 ‘입소문’의 힘이 컸습니다. 닥터지는 정식 오픈 전 인플루언서 행사를 통해 화제성을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기존의 성수 팝업과는 달랐다는 후기가 많아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했죠. 또 기존 고객에게 사전 예약 창구를 열어 기대감을 높였어요. 하루 만에 2주 분량의 사전 입장이 마감되어 내부에서도 놀랐다고 해요. 기존 소비자들이 브랜드와의 만남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게 된 대목이었죠. “닥터지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팝업을 열어보니 브랜드 스토리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 점에서 오프라인 접점을 만든 건 잘한 선택이었죠.” 감정 버튼을 누르면 그에 맞는 공간 무드를 느낄 수 있는 3층 ‘이모션 포커스 존’과 포토스폿이 된 거울의 방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온라인 포털 사이트에 ‘닥터지’ 언급량이 9배나 올랐다고 해요. 사람들이 방문하고, 경험하고 싶어 하는 팝업을 만들면 결국 온라인까지 선순환되는 구조가 된다는 거죠. 현장에 후기를 남길 수 있는 코너를 마련해 두었는데 2000명이 자발적으로 피드백을 남겼답니다. “2주간 팝업을 진행하면서 생생한 후기와 고객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어요. 브랜드에 기대하거나 궁금해했던 포인트들을 현장에서 들으니 앞으로 저희가 어떻게 소비자와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지 방향이 잡히더라고요.” 팝업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9점. 대부분의 고객은 고객 체험을 최우선으로 설계한 행사에 높은 점수를 줬고, 샌드백을 설치한 감정타파게임존을 50.4%가 가장 즐거웠던 공간으로 꼽았죠. 닥터지 글로벌마케팅팀 손수지 매니저(왼)과 박솔혜 매니저(오) 사진 홍성철 박 매니저는 팝업 성공의 또다른 요인으로 ‘맥락 있는 공간 경험 설계’로 꼽았습니다. “매출도 잡아야 하고 브랜드도 인지시켜야 하고 너무 많은 요소를 넣다 보면 결국 두서없는 팝업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감정 탐구를 통해 내면이 강해지는 경험을 전달하는 것에 집중한 이유죠.” 공간부터 콘텐츠 기획, 운영 그리고 마케팅까지 현장을 통해 얻은 경험은 팝업 기획자들에게도 ‘진정 강한 나’로 거듭나는 기회가 됐습니다. 닥터지는 이제 글로벌을 무대로 더 활약할 예정이라고 해요. 한국에서 이미 잘 알려진 브랜드지만 미국·일본·말레이시아·태국·홍콩 등 해외 시장을 겨냥하고 있죠. 이미 상반기 글로벌 드럭스토어 스킨케어 부문에서 좋은 성적을 달성했어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이들에게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크닉 하단배너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홍성철·장우린 PD, 고은비·최린 인턴PD, 박현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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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한국서 통하면, 세계를 홀린다…삼성동 그 파도처럼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reSOUND: 울림, 그 너머' 전시에서 선보인 디스트릭트 대표작 '오션(2022/2024)'. 사진 디스트릭트 지난달 21일부터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고 있는 미디어아트 전시 ‘reSOUND: 울림, 그 너머’가 오픈 일주일 만에 1만 2000명 이상 다녀가며 화제입니다. 주중에는 1500명이 방문하고 주말 사전 예매는 일찌감치 매진되었죠. 8월 25일까지 무료로 운영되는 전시는 총 8개의 섹션으로, 대규모 설치작품부터 4D SOUND, 키네틱 사운드, 인터랙티브 아트, ASMR 등 공감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구성돼 있어요. 지난 2021년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선보인 공공미술 작품 '워터폴 엔와이씨'. 원타임스 스퀘어의 외부벽면 LED 스크린 4개를 이용한 작품으로 총 높이는 102.5m다. 디스트릭트 홈페이지 이 전시는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활용해 공간 경험을 디자인하는 ‘디스트릭트’의 20주년 기념전이기도 합니다. 디스트릭트는 지난 2020년 실감 나는 파도를 표현한 미디어 아트 ‘웨이브’를 비롯해 다음해 뉴욕 타임스퀘어 한가운데서 102.5m의 폭포를 연출한 ‘워터폴’을 만든 회사죠. 세계 3대 디자인어워드인 iF어워드에서 6년 연속 수상은 물론 캠페인 부문 세계 1위를 차지하며 업계 최고에게 수여하는 골드어워드만 2년 연속 수상했어요. 게다가 2020년 제주에서 개관한 미디어아트 전시관인 ‘아르떼뮤지엄’이 큰 성공을 거둔 이후 국내외에서 발 빠르게 확장을 하고 있죠. 19일에는 부산관 오픈도 앞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이들이 아트프로젝트를 계속 시도하는 이유는 뭘까요. 오늘 비크닉에서는 국내를 넘어 세계에 한국 미디어아트를 알리는 디스트릭트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① 무료 전시 맞아요? 남녀노소 ‘파도 멍’하는 이곳 'reSOUND: 울림, 그 너머' 전시가 열리는 문화역서울284 전경. 전시 시작 전 관람객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 디스트릭트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아트 프로젝트는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에서 존재감을 키워온 디스트릭트의 확장판입니다. 비바람 치는 바다 위 파도가 몰아치는 대표작 ‘오션’을 비롯해 국내외 예술가들과 협업한 작품 8점을 공개해요. 독일 베를린의 공간음향 예술가인 ‘모놈’의 4D사운드, ‘커넥트 BTS’에 참여했던 덴마크 출신 야콥 쿠즈크 스틴센의 디지털 원시림, 털로 덮인 벽을 쓰다듬으면 촉각에 반응하는 음악이 들리는 필립스튜디오의 설치작품 등 보는 것뿐 아니라 만지고, 듣고 느끼는 전시죠. 오감으로 느끼는 전시다 보니 예술 전시임에도 대중에겐 즐거운 경험으로 느껴집니다. 어린이 단체, 학생, 군인, 직장인, 가족 등 전시장을 방문한 남녀노소 관람객들이 이를 방증하죠. 디스트릭트의 신작 '플로우'. 사진 디스트릭트 전시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은 ‘세상의 모든 경계’를 주제로 문화역서울 284 공간에 맞게 새롭게 제작했어요. 특히 디스트릭트가 영국 런던 아우터넷에서 초연한 작품 ‘플로우’를 국내 최초 소개해 이목을 끕니다. 미술사의 흐름을 담은 초현실적 퍼포먼스로 호주 출신 작곡가 트라스탄 바튼과 협업해 웅장한 예술미를 뽐내죠. 이성호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시각 예술 중심에서 공감각적인 경험으로 콘텐츠 저변을 확장할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서울 삼성동 디스트릭트 사무실에서 그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 ② 돈 안되는 예술? 디스트릭트의 이유있는 고집 디스트릭트 이성호 대표.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회계사로 일하다 2007년 디스트릭트에 입사했다. 2016년부터 대표를 맡으며 디스트릭트의 부흥을 이끌었다. 사진 디스트릭트 인터뷰를 하는 오늘(6월 28일)이 딱 20주년 되는 날이라고요. "‘아 이제 우리도 어른이 된 건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너무 고생을 하면서 크긴 했지만요(웃음). 디스트릭트는 2004년 웹 에이전시로 출발했어요. 그러다 2009년 오프라인 공간 기반의 몰입형 디지털 콘텐츠 사업으로 피보팅했습니다. 2011년부터는 자체 콘텐츠 IP를 확보하고 여기에 기반한 수익모델을 만드는 시도를 했어요. 많은 자본을 투자한 실내형 4D 아트파크가 잘 안되면서 어려웠던 시기를 겪었죠. 그러다 2020년 ‘웨이브’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면서 기회가 찾아왔어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시도했던 아르떼뮤지엄이 감사하게도 잘 되면서 급성장하게 되었죠." 디스트릭트는 클라이언트 없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꾸준히 제작해 왔어요. 지금 보니 일종의 투자였던 셈이네요. "궁극적으로는 프로젝트를 수주하는데 의존하지 않고 디자인 회사로서 우리 창작물들을 가지고 성장하겠다는 의지가 있었어요.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영향력 있는 디자인 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였죠. 삼성동 케이팝 스퀘어에 선보였던 ‘웨이브’와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웨일 넘버투’도 아무 기대수익 없는 프로젝트였습니다." 'reSOUND: 울림, 그 너머' 전시 중 미니유, 인영혜 작가의 '플로팅 마인드(2024)'를 감상중인 관객. 사진 디스트릭트 아트프로젝트를 전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평가받기를 바라지도 않아요. 오히려 순수예술과는 다른 지점에서 새로운 시각 경험을 하는 모멘텀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아르떼뮤지엄 같은 공간이고요. 처음엔 트렌드에 민감한 2030 여성 고객을 타겟했으나 막상 개관하고 보니 어르신들도 많이 오시고 아이들도 좋아하는 걸 알게 됐어요. 디스트릭트의 저변을 확장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고 마침 대림미술관에서 성공했던 몇몇 전시를 보면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죠. 디뮤지엄・대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였던 김지현 본부장을 비롯해 미술계 출신으로 구성된 ‘라이브엑스’라는 조직을 꾸렸고 그 첫 결과물이 이번 전시인 셈입니다. 그동안은 상업 영역에서 내부 디자이너들이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면, 이제는 외부 작가나 유명 IP와 협업을 넓혀가려고 해요." ━ ③ 650만 명이 봤다, 실패가 낳은 성공 아르떼뮤지엄 제주 전경. 사진 디스트릭트 아르떼뮤지엄 관람료만으로 매출을 견인하고 있다고요. "지금까지 국내 누적 관람객 수는 650만 명으로 집계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10명 중 1명은 관람했다는 이야기죠. 해외까지 합치면 700만 명이고요. 올해 디스트릭트 매출은 800억 원으로 예상하는 데 그중 아르떼뮤지엄 관련 매출이 70% 이상입니다." 성공 비결이 궁금합니다. "실패에서 얻은 교훈이죠. 실내형 4D 아트파크를 표방한 라이브파크(2011)는 시대를 앞서간 프로젝트였어요. 하지만 기술을 뽐내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아르떼뮤지엄은 주제부터 보편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골랐어요. 이후 많은 미디어아트 전시관이 생겼지만 다 잘 되지는 않았어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치열하게 콘텐츠를 만들어온 사람들이 디스트릭트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 ④ 까다로운 한국인, 전 세계 홀린 K미디어아트 아르떼뮤지엄 아르떼뮤지엄은 2022년 홍콩을 시작으로 중국(청두), 미국(라스베가스), 아랍에미리트(두바이)까지 글로벌로 빠르게 확장했습니다. 2027년까지 전 세계 20곳에 개관하는 걸 목표하는데, 이렇게까지 속도를 내는 이유가 있나요? "첫째는 경험을 소비한다는 트렌드가 언제까지 유효할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둘째는 아르떼뮤지엄이 잘 된다고 하니까 유사한 곳들이 많이 생겨났고 그중에는 대놓고 베끼기식인 곳도 있으나 저작물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전략은 ‘빠르게 성장 하자’인데요. 마켓리더로 시장을 선점하면 안정적인 운영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 때문이에요. 내년에는 중국 션전, 미국 LA 산타모니카와 뉴욕 맨해튼에 새로운 아르떼뮤지엄이 문을 엽니다." 현지에서 반응은 어때요? "사실 외국에서 반응이 훨씬 더 좋아요.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제일 까다로운 것 같아요. 드라마나 영화도 한국에서 좋은 피드백을 받으면 전 세계에서 인기가 있다고 하는데 그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콘텐트에 돈을 지불하는 것에 높은 수준을 기대하는데다 평가도 엄격한데 디스트릭트는 어쨌든 거기에서 살아남은 선수인 거예요. 라스베가스, 두바이점 구글 리뷰를 보면 지금까지 약 4000개가 올라와 있는데 5점 만점에 4.9점을 유지하고 있어요. 라스베가스의 경우 오픈한 지 7개월에 접어드는데 하루 평균 1000명 방문하고 있어요." 조선시대 산수화, 풍속화, 궁중회화를 재해석한 영상작 '조선회화'는 강릉, 여수에 이어 라스베가스에서도 상영한다. 사진 디스트릭트 라스베가스점에서 조선시대 산수화를 홀린 표정으로 감상하는 관람객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모든 아르떼뮤지엄에는 ‘가든’이라는 공간이 있는데 각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콘텐트를 선보입니다. 여수점에는 ‘여수 밤바다’ 음악에 맞춰 여수 10경과 바다 속을 표현한 작품을, 강릉점에는 국악인 송소희 씨가 부른 ‘아리랑’을 배경으로 영동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 있어요. 마찬가지로 라스베가스에는 그랜드 캐니언과 카지노를 표현한 영상이 있고요." 7월 19일 정식 개관을 앞둔 아르떼뮤지엄 부산의 '스태리 비치'. 사진 디스트릭트 디스트릭트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19일 부산점이 문을 엽니다. 약 1700평 규모로 70%가량 새로운 작품으로 구성했고 처음 선보이는 테마관도 있어요. 프랑스 오르세미술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만든 특별전을 최초로 선보입니다. 또 미디어 아트 라이선스 기반의 ‘led.art’이나 ‘아르떼 키즈파크 제주’와 같은 새로운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미디어 아트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디스트릭트가 떠올랐으면 해요. 구성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이 브랜드를 잘 발전시켜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비크닉 푸터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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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가게에 웬 농구대?…100만명 줄서게한 '이 남자 수완'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브랜드 150주년을 맞아 프로젝트를 기획하려고 했을 때였어요. 가장 먼저 한 일이 ‘하지 않을 것(Not to do list)’을 정하는 일이었죠. 그래서 ‘샴페인’ ‘갈라 디너(만찬)’ ‘브랜드 책’ 세 가지 하지 말 것을 정했어요.” 지난 2020년 서울 성수동에 ‘침대 없는 팝업 스토어’를 열어 대히트를 친 김성준(47) 시몬스 브랜드전략부문 부사장의 얘기다. 당시 약 150만원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낸 11.5㎡(3.5평) 작은 철물점은, 단번에 시몬스를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가장 뜨거운 브랜드로 만들었다. 이후 몇 년간 시몬스는 국내 마케팅 트렌드를 견인해 오고 있다. 상품이 아니라 브랜드의 메시지를 담았던 시몬스의 팝업 스토어는 이후 업계의 ‘표준’이 됐을 정도다. 브랜드 150주년을 맞아 오프라인에 낸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 사진은 서울 성수동에 이어 지난 2020년 10월 부산 전포동에 낸 하드웨어 스토어다. 사진 시몬스 지난 2018년 경기도 이천에 문 연 ‘시몬스 테라스’도 마케팅의 본보기가 된 또다른 프로젝트다. 오프라인, 그것도 교외에 만든 공간이 5년 만에 누적 방문객 수 100만 명을 돌파한 것. 김 부사장은 이곳에서 ‘소셜 아트 전시’를 열 때도 ‘사모님 아트’는 하지 말자는 원칙을 정했고, 장 줄리앙 등 히트 전시를 이어갔다. 문화 불모지였던 지역에 온기를 불어넣으면서 처음으로 ‘로컬(local·지역)’을 트렌드의 수면 위로 올렸음은 물론이다. 경기도 이천에 자리한 시몬스 테라스 전경.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으로 지역 문화 예술의 거점이 됐다. 사진 시몬스 애플·나이키·파타고니아·샤넬….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이 기라성 같은 브랜드들은 늘 브랜드를 만드는 이들의 찬사를 받으며 참조(레퍼런스)의 대상이 돼 왔다. 아쉬운 점은 이들이 모두 해외 브랜드라는 것. 그래서 시몬스의 사례는 귀하다. 우리 실정에 맞고, 실제 지금 우리에게 효과가 있는 브랜딩 방식을 증명해왔다는 점에서다. 이런 이유로 김 부사장이 이달 초 출간한 책 『소셜 비헤이비어』는 주목할 만하다. 책에서 김 부사장은 시몬스 팀이 그동안 만들어온 성공 사례 이면의 ‘작동 방식’을 공개했다. “소비자의 심리가 아니라 행동을 관찰하면 답이 보인다”고 말하는 김 부사장을 지난 5일 서울 논현동 소재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달 초 책 '소셜 비헤이비어'를 출간한 김성준 시몬스 브랜드전략부문 부사장. 사진 시몬스 ‘소셜 비헤이비어’라는 제목이 어렵다 직역하면 ‘사회적 행동(social behavior)’이라는 의미다.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바뀌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시기 일상이 집 안에 묶이면서 지역의 가치가 올라갔고, 온라인 접속이 늘면서 인플루언서라는 새로운 계급이 탄생했다. 사람들의 변화하는 행동 양식을 어떻게 관찰하고, 이것을 마케팅에 녹여낼 것인지를 정리한 책이다. 요즘 사람들의 ‘소셜 비헤이비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현재 스마트 폰은 이미 몸 밖의 ‘부착된 뇌’가 됐다. 이를 통해 온·오프라인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생활하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가 우리 행동을 결정짓고 있다고 본다. 특히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 이제는 어떤 콘텐트를 만들지 아니라 어떤 플랫폼을 활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게 더 중요하다. 시몬스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잘 활용했다. 젊은 세대들은 SNS에 수시로 자신들의 일상을 올린다. 온라인에서 그들이 활발히 소비할 수 있는 콘텐트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모난 화면 안에서 소비될 수 있는 명확한 콘셉트의 이미지를 오프라인에 설계한 이유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경험 설계라는 건가. 온라인에 탐닉할수록, 오프라인의 실물 가치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른바 ‘휴먼 터치(human touch·인간의 온도와 감성)’다. 또한 오프라인은 고객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찾아오게 하고, 무엇보다 단돈 1000원이라도 쓰게 하면 브랜드와 소비자 간의 끈끈한 ‘관계’가 생긴다. 책 '소셜 비헤이비어' 표지. 사진 웨일북 사고 싶고, 올리고 싶은 콘텐트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데. ‘유스 컬처(Youth culture·청년 문화)’를 활용하려고 한다. 마케터 입장에서 청년 문화는 거의 ‘마르지 않는 샘’이다. 샤넬의 칼 라거펠트는 “내 소명은 샤넬 재킷의 명성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살아있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브랜드를 계속 살아있게 하려면 젊은 문화 안에서 끊임없이 ‘서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시몬스가 해 왔던 오프라인 공간 콘텐트들에 꼭 ‘농구 문화’가 들어간다. 하드웨어스토어, 그로서리 스토어에 모두 농구대와 농구공이 있다. 브랜드 이름이 안 보여도 농구대 하면 시몬스가 떠오르게 이미지적인 잔상을 남긴 셈이다. 이런 청년 문화는 한때 청년이었던 중장년층에게도 추억과 재미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꼭 가져가야 할 요소다. 김 부사장은 타고난 감각가다. 침대 업계로 오기 전 패션 업계서 경력을 쌓았다. 미국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디자인 경영학을 공부한 뒤 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에서 패션 MD로 활약했다. CJ오쇼핑 브랜드 컨설턴트를 거쳐 지난 2015년 시몬스에 합류했다. 어떻게 항상 젊은 감성을 유지할 수가 있나. 당연히 할 수 없다. (웃음) 동시대에서 문화로서 체험해온 젊은 실무자들만큼 직관적으로 청년 문화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콘텐트를 만드는 일은 1980~90년대생 현업에 맡긴다. 저는 이들이 일을 잘할 수 있게 예산을 따오는 역할이다. (웃음) 지난 하드웨어 스토어는 1984년생 팀장들이 주축이 됐다. 이후 그로서리 스토어, 제페토 메타버스 프로젝트 같은 것들은 1990년대생 직원들로 올라왔다. 어떻게 보면 우리도 변화하는 시류에 맞춰서 끊임없이 진화해 온 것 같다. 그로서리 스토어를 식음료 IP(지식 재산권)로 키워갈 계획이다. 사진 시몬스 지금 겸직으로 있는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가 그 진화의 결과인가. 보통 침대를 잘 팔면 가구나 리빙 제품을 더 내서 거대한 가구 기업으로 발전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침대를 잘 팔게 된 ‘브랜딩 기술’을 팔아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왕이면 돈도 벌고, 좋은 일도 해보고 싶다. ‘ESG’ 브랜딩이라는 테마를 잡은 이유가 있나. 이제 젊은 세대를 설득하려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가 없어서는 안 된다. 이들이 뛰어나게 윤리적이어서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광장(플랫폼)’을 손에 쥐고 태어났다. 자기 의견을 너무도 쉽게 개진하고, 퍼트릴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얼마 전 경기도 이천에 다시 문을 연 그로서리 스토어의 F&B(식음료) IP(지식재산권)를 발전시켜볼 계획이 있다. 카페로 시작했는데 정작 핫도그가 인기가 많아서 핫도그 집으로 기획해볼 작정이다. 또 ESG 브랜딩 회사로서의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유튜브 IP 확보 등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도전인데, 3년 안에 자리를 잡는 것이 목표다. 관련기사 "가장 왕성한 구매력"…김난도가 주목한 '영 피프티'의 속살 [비크닉] "맥주 마시지 마라"…맥주회사 하이네켄, 이런 캠페인 왜 할까 [비크닉 영상] 피팅룸에서 춤 추고 인증샷 찰칵…확 달라진 요즘 쇼핑 [비크닉]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