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해 9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고중량 재래식 탄두를 장착한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22일 오전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수발을 동북부 내륙으로 발사했다. 미·중을 비롯, 주요국 정상이 총집결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 EC) 정상회의를 1주일여 남겨 놓고 존재감을 과시하는 한편 한국과 일본을 노린 타격 능력을 부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전 8시10분쯤 북한 황해북도 중화 일대에서 동북 방향으로 발사된 단거리 탄도미사일 수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미사일은 약 350㎞ 비행해 동북부 내륙에 탄착했다는 게 군 당국의 분석이다. 황해북도 중화군은 평양시의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앞서 북한이 2023년 3월 ‘북한판 이스칸데르’ KN-23 계열 미사일을 쐈던 곳이다.
군 당국은 고도·궤적 등 비행 특성을 고려할 때 이번 미사일이 지난해 9월 18일 평안남도 개천 일대에서 발사한 ‘화성-11다-4.5’와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당시 북한은 “설계상 4.5t급 초대형 상용(재래식) 탄두가 장착된 신형 전술탄도미사일”이라고 밝혔다. 이에 한국의 고위력 탄도미사일 ‘현무’에 맞대응해 4.5t의 고중량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지하시설을 타격하는 ‘한국형 벙커버스터’ 현무-5는 8t 탄두까지 탑재할 수 있어 전술핵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자랑한다. 연말 실전배치가 시작된다.
화성-11다-4.5는 ‘화성-11다’ 계열에 ‘4.5t’이란 탄두 무게를 붙인 명칭으로 보인다는 게 당시 군 당국의 평가였다. 북한이 이날 실제 탄두 중량을 더 늘린 미사일을 쏜 것이라면 명칭에도 이를 반영해 공개할 수 있다.
APEC 앞두고 대화신호 보낸 트럼프에…북, 미사일로 답했다
또 북한은 지난해 “중등 사거리 320㎞의 목표 명중 정확도와 초대형 탄두 폭발 위력을 확증했다”고도 했다. 이번에는 비행 거리가 늘어난 만큼 성능 개량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화성-11다’ 계열 미사일은 KN-23을 기반으로 만든 고중량 탄도미사일로, 대남 타격용으로 볼 수 있다. 권용수 국방대 명예교수는 “화성-11다-4.5의 임무는 한국 내 주요 지하 지휘소와 국가 전략자산에 대한 무력화지만, 최대 사거리는 700㎞가량”이라며 “이는 남측 전역뿐 아니라 일부 주일미군 기지까지 타격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성능 개량을 통해 한·일을 동시에 겨냥한 타격력을 과시했다는 해석이다.
신재민 기자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올해 들어 다섯 번째,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론 처음이다. 특히 시점상 APEC 정상회의를 앞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병철 경남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를 찾기 직전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이 북측에 있다는 점을 알려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라고 짚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위반인 ‘탄도미사일 도발 카드’를 꺼내 들면서도, 장거리가 아닌 단거리를 쏜 건 수위를 조절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비핵화를 테이블에 올리지 않는 조건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수 있다고 시사했다. 또 APEC에는 트럼프뿐 아니라 북한의 핵심 우방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방한하는데, 이를 의식해 정교하게 계산된 도발을 택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론 국제적 시선이 몰리는 빅 이벤트를 앞두고 중국과 러시아의 지지를 업은 채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려는 시도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일본에서 강경 보수 ‘다카이치 내각’이 전날 출범한 걸 의식했을 수도 있다.
군 당국은 미사일의 궤적상 북한이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에서 공개한 극초음속 활공체(HGV) 탑재 ‘화성-11마’의 시험비행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데 무게를 뒀다. 다만 북한은 과거에도 기만술로 미사일 성능을 과장했던 전례가 있다.
한편 대통령실은 이날 국가안보실 주도로 긴급 안보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군의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평가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정부는 북한의 추가적인 미사일 발사 가능성 등 관련 동향을 면밀히 예의주시하면서 필요한 조치들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