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고래’ 미국과 중국, 그 사이에 낄 ‘수퍼 새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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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 독식 구조인 인공지능(AI) 시장. 글로벌 패권을 좌우할 AI 분야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빅테크를 앞세운 미국과 단일대오를 짠 중국, 양강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뒤처졌다고 아직 ‘게임 오버’는 아니다. 뒤를 잇는 동메달 국가에도 사업 기회는 열려있다. 오일 머니를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전통의 과학 강국 러시아, 소버린 AI를 내세운 한국까지 고래 싸움 사이 낄 수 있는 ‘수퍼 새우’가 되기 위해 뛰고 있는데. 러시아와 한국은 이미 인터넷·모바일 시대 독자 생존의 길을 구축해 본 경력자다. 중동은 스포츠 스타 영입하듯 오일머니로 AI 분야에서 ‘퀀텀 점프’를 노리고 있다. 미·중 다음 자리를 노리는 ‘동메달 게임’에 돌입하기 전,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다. 한국의 경쟁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했다. 국가대표 AI까지 선발하고 있는 한국의 생존법은 무엇이 될까.
◆수퍼 새우의 생존법=미국과 중국 양강 구도에 균열을 내려는, 내야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의외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AI 에이전트(비서)든 피지컬 AI든 대규모언어모델(LLM)이 있어야 작동할 수 있다. AI 시대의 엔진 역할을 하는 원천 기술인 셈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AI 기술 종속을 피하려면 원천 기술(LLM)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LLM의 경쟁력은 데이터의 품질에서 나온다. 언어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했는지가 관건이다. 미·중 AI 개발사가 자국어로 LLM을 개발한 뒤 번역 훈련을 시켜도, 첫 단계부터 모국어로 학습한 LLM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게 국내 AI 개발사들의 공통된 평가다. 정부가 보유한 문자 데이터와 각국의 국내 언론사가 보유한 양질의 문자 데이터는 경쟁력을 담보하는 일종의 ‘해자’가 된다. LLM의 성능을 결정하는 또 다른 요소는 모국어 화자 수다. 특정 언어를 쓰는 인구가 많아야 문자 데이터를 풍족하게 수집할 수 있다. LLM을 개발한 뒤에는 이 언어권에 속한 이용자가 시장이 되어주기도 한다. 언어 리서치업체 에스놀로그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아랍어를 모국어로 쓰는 화자 수는 3억 1900만명, 러시아어는 1억 5400만명에 이른다. 이들의 행보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차준홍 기자
◆오일머니로 약진하는 중동=중동 최대 경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와 그 뒤를 잇는 아랍에미리트(UAE)는 일찌감치 AI 전환을 추진해왔다.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탈(脫) 석유 전환’을 위해서다. UAE는 2017년부터 ‘국가 AI 전략 2031’을 시작했고, 사우디는 2016년 발표한 ‘비전 2030’에 AI 전환을 목표로 명시했다. 양국 모두 국가기관이 직접 AI 모델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UAE 국부펀드 무바달라 산하 AI 개발사인 G42는 아랍어 LLM ‘팔콘’을, 사우디의 경우 국부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의 투자금을 데이터인공지능청(SDAIA)에 이전해 아랍어 LLM ‘알람’을 개발하고 있다. 양국의 무기는 국부펀드가 보유한 막대한 자산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PIF의 운용자산(AUM)은 1조 달러(약 1434조5000억원)를 넘겼고, 무바달라는 3300억 달러(약 473조4000억원)를 운용하고 있다.
중동은 이 오일머니를 앞세워 전 세계 AI 인재도 끌어당기는 중이다. 사우디는 2009년 압둘라왕립과학기술대학과(KASUT)를 설립하고 AI 석학을 교수로 위촉하고 있다. AI의 토대를 설계한 위르겐 슈미트후버 KAUST 교수는 팩플과 서면 인터뷰에서 “(KAUST는) 교수 1인당 후원금이 가장 많은 대학이다”라고 강조할 정도다. UAE의 경우, 세계 최초 AI 전문 대학원인 ‘모하메드빈자이드 인공지능대학원(MBZUAI)’을 2019년 설립했다. 이 대학원은 지난해 미국의 대학평가기관 CS 랭킹에서 세계 14위를 차지했다. 설립 5년 만에 포항공과대학(35위)을 제친 것. 다만 아직 사우디와 UAE의 IT기업 운영 노하우는 부족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해외 기업이 자국에 진출할 때 인력, 노하우, 지사 등 어떤 형태든 자산으로 남기도록 유도하고 있다.
◆전통의 과학 강호 러시아=러시아도 정부가 AI개발을 주도하는 중이다. 지난 2017년 ‘디지털 경제 프로그램’에서 AI를 국가 전략 기술로 격상한 뒤, 2019년 ‘2030년까지의 러시아 인공지능 개발 전략’을 승인하며 AI 강국이라는 목표에 고삐를 당겼다. 다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정치·경제적 고립 상황에서 기술경쟁 흐름에 뒤처진 것. 그래도 러시아는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 등 IT 거물들의 모국으로, 인재 측면에서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의 ‘구글’ 역할을 하는 얀덱스 등 폐쇄적인 IT 생태계도 러시아가 자국어 LLM 개발에 유리하게 만들어 준다.
러시아 국영 금융기관도 소버린AI에 힘을 보태고 있다. 러시아 국영 은행 스베르방크가 2023년 챗GPT 대항마를 표방한 ‘기가챗(GigaChat)’을 내놓으며 AI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스베르방크는 2023년부터 3년간 IT 분야에 4500억 루블(약 7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국부펀드인 러시아 직접투자기금(RDIF)은 약 100억달러(약 13조8000억원)의 자금을 운용하며 일부를 AI에 투자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같은 하드웨어 수급난이란 난제가 남아있다. 김유정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러시아는) 반도체를 우회 수입으로 홍콩·중국 등을 통해 들여오고 있지만, 직접 협력이 안 되다 보니 개발 속도가 더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준홍 기자
◆한국, 세계적으로 희소한 풀스택 국가=한국은 AI용 반도체, IT 대기업과 스타트업 생태계 등을 고루 갖춘 게 강점이다. LLM을 위한 하드웨어(반도체)와 소프트웨어(응용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하는 기업을 모두 보유했다는 의미다. 스탠퍼드대 ‘인공지능 지수 2025’에 따르면 인구 1인당 AI 관련 특허 출원 건수도 17.3건으로 세계 1위다. AI 개발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갖춘 ‘풀스택’ 국가는 세계적으로도 희소하다. 한국어 데이터가 폐쇄적으로 저장돼 있는 것도 강점이다. 데이터가 외부로 반출되기 쉽지 않은 구조다. 토종 포털 네이버를 비롯해 공문서에 주로 쓰이는 ‘hwp’(한글과컴퓨터) 등에 문자 데이터가 제작돼 저장되는 모든 길목을 국내 기업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 데이터는 글로벌 시장에선 저자원 데이터(희소성이 높은 데이터)로 분류된다. 다만 한국어 LLM의 잠재 고객은 약 5000만 명에 그쳐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다른 국가와 LLM을 공동 개발하는 사업 모델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우디와 파트너십을 맺은 네이버가 대표적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중동, 동남아 등 제3지대에 속한 국가에서 한국은 국제 정세에 대한 부담없이 LLM 개발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곳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시장과 정부의 한계에 도전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기업’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더중플이 더 깊게 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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