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2막, 원전업계 전전긍긍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처럼 한 놈만 패듯이 산업용 전기요금만 올리는 건 탄소중립·합리성·형평성에 위배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지난달 29일 국회기후변화포럼 주최로 열린 ‘탄소중립과 산업경쟁력을 위한 전기요금의 방향과 과제’ 주제의 정책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산업용 전기요금의 지속적 상승으로 경영 부담이 증가하고 산업 경쟁력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가정용 전기보다 저렴하다는 것은 옛날 얘기다. 최근 3년간 7회에 걸쳐 집중적으로 오르는 ‘인상 폭탄’을 맞으면서다. 2022년 1분기 105.5원/㎾h에서 올해 7월엔 194.1원/㎾h로 84% 상승했다. 같은 기간 주택용 전기요금의 상승치(109.2원/㎾h→162.7원/㎾h, 49%)보다 갑절 가량이 높은 셈이다.
2000년부터 잡으면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2000년 당시엔 산업용 전기가 58원/㎾h으로 가정용 전기(107원/㎾h)의 절반 수준이었다. 저렴한 전기요금은 제조업 강국인 한국의 경쟁력 중 하나로 꼽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말 기준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h(메가와트시)당 122.1달러로 주요 제조국인 미국(80.5달러)이나 중국(60~80달러)보다 훨씬 높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실이 2일 한국전력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받지 못한 전기요금은 2824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1~12월) 전체 2816억원보다 많은 액수다. 특히 산업용 전기요금을 체납한 업체는 최근 5년간 1만2000여 업체에서 1만5000여 업체로 25%가 늘었다. 체납액도 702억원에서 1288억원으로 83.5% 급증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원인은 복합적이다. ‘탈원전’ 여파와 ‘표퓰리즘’이 엮이면서다.
급격한 탈원전 추진은 전기료 상승을 불러왔다. 올해 5월 기준 한국전력공사가 사들인 연료별 가격을 보면 태양광 1㎾h당 130.5원, 풍력 123.6원으로 80원인 원자력에 비해 1.5배가량 비싸다. 2022년 산업통상자원부의 ‘단위 발전량 대비 투자비용 분석’에서도 1㎾h 전기생산에 원전은 500원이 사용되는 반면 태양광은 3422원으로 원전의 6.8배, 풍력은 4059원으로 원전의 8.1배의 비용이 소요된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5월 산업통상자원부는 탈원전을 추진하기 위해선 2030년까지 매년 전기요금을 2.6% 인상해야 한다고 정부에 보고했다. 전기요금은 2017년 1㎾h당 109.53원이던 것을 2018년 112.38원을 시작으로 2022년 124.53원까지 인상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실제로 책정된 전기요금은 2018년 108.74원으로 출발해 2022년 110.41원에 그쳤다. 최근 급격하게 치솟은 산업용 전기요금은 이때 억눌렸던 풍선이 터진 효과다. 2024년 4분기에 9.7%를 인상했을 때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20대 법인이 부담할 전기료는 1년 새 1조2000억원이 상승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가뜩이나 산업용 전기료 인상으로 힘든 상황에서 이같은 기조는 제조업 위주 산업구조를 갖는 우리에겐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산업용 전기요금 지원도 적다는 게 유 교수의 분석이다. 독일은 2023년 11월 최대 280억 유로의 전기요금 보조금을 도입했다. 영국은 전력 다소비 기업 전기요금을 최대 25% 인하하는 방안을 2027년부터 시행한다. 중국도 올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최대 16% 인하했다.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그는 “해외와 달리 별다른 보조금이 없는 상황에서 이대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면 기업들은 생산을 줄이거나 오프쇼어링을 할 것”이라며 “산업용에만 집중된 전기요금 인상은 원가주의를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다. 주택용, 일반용, 농사용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그 여력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낮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추가 인상 요인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AI데이터센터 등이 추진되면 전기 사용량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 여기에 정부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전을 추가하는 대신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올해 2월 발표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 조정안은 신규 대형원전 3기를 짓기로 했던 원안 대신 원전은 2기로 줄이고 태양광 발전을 2.4GW 확대하기로 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조정안대로 시뮬레이션할 경우 전기 발전 정산단가는 0.49원/㎾h 증가해 전체 정산액도 89조1232억원에서 89조4497억원으로 3260억원이 증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