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확장 재정’
지난달 28일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정부세종청사에서 ‘2026년도 예산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 들어 ‘채무 시계’는 한층 빨라졌다. 매년 ‘슈퍼 예산’을 편성한 여파로 집권 5년간(2025~2029년) 늘어날 나랏빚이 5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역대 정부 평균 증가액(약 198조원)의 2.6배,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채무가 급증했던 문재인 정부(407조2000억원)보다도 100조원 이상 많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급격한 위기 상황이 아님에도 재정 확대의 가속 페달을 밟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달 국회에 제출된 ‘2026년 예산안’과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내년 총지출은 728조원으로 올해보다 55조원 늘어난다.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아 나라 곳간은 빠르게 비어간다. 실질적인 재정 건전성을 가늠할 수 있는 관리재정수지는 내년 109조원 적자가 예상되며, 이후에도 계획대로라면 해마다 110조~120조원대 적자가 이어진다. 그 결과 국가채무는 2029년까지 515조원 불어날 전망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경기 회복이 시급하다고 해도 매년 100조원 넘는 채무 증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정부는 전례가 없다”고 우려했다.
역대 정부와 견줘도 빚의 증가 속도는 이례적으로 빠르다. 보수 정권으로 분류되는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부와의 대비는 더욱 선명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 이명박 정부(2008~2013년)에서는 국가채무가 180조8000억원, 기초연금을 도입한 박근혜 정부(2013~2017년)에서도 170조4000억원 증가에 그쳤다.
직전 윤석열 정부(2022~2025년)와도 대조적이다. 당시 국가채무는 205조9000억원 늘었지만, 건전 재정을 내세운 기조와 부동산 시장 진정 효과로 GDP 대비 비율은 오히려 1.3%포인트 낮아졌다. 김대중 정부 이후 집권 기간 국가채무 비율이 줄어든 사례는 이때가 유일하다.
역대 보수 정부가 비교적 재정의 고삐를 조였다면, 진보 정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현 정부와 비슷한 확장 재정 정책을 폈던 문재인 정부는 첫해 660조2000억원이던 국가채무를 임기 말 1067조4000억원까지 끌어올렸다. GDP 대비 채무 비율은 11.8%포인트나 뛰었다.
이러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성장률 반등으로 직결된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평균 성장률은 2.3%로, 김대중(5.6%)·노무현(4.7%)·이명박(3.3%)·박근혜(3%) 등 이전 정부에 모두 못 미쳤다. 코로나 충격으로 지출 확대가 불가피했던 2020~2021년과 달리, 2022년 진정 국면에서도 추경을 거듭하며 지출 확대를 상시화했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과 저출산·고령화로 저성장이 굳어진 점을 고려해도, 단기 현금성 지원과 복지 지출에 치중해 성장력 제고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는 확장 재정 기조를 잇되, 인공지능(AI)·연구개발(R&D) 등 성장 투자에 재원을 집중해 ‘성장-세수-재정’의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재정 건전화만이 능사도 아니었다. 건전 재정을 내세웠던 윤석열 정부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낮췄지만, 나라 살림은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경기 둔화로 세수가 줄어든 탓이다. 법인세 수입 감소 등으로 지난해 세수 부족액만 30조8000억원에 달했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지키겠다며 ‘3% 재정준칙’(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3% 이내로 관리)을 추진했지만, 실제 적자 규모는 이를 매년 넘어섰다. GDP 대비 적자 비율은 2022년 5.4%, 2023년 3.9%, 2024년 4.1%였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긴축을 펴도 4%대 적자가 불가피하고, 확장을 택해도 비슷한 수준이라면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이냐는 질문이 남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