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종전구상에 협조 않는 푸틴…CSIS "러 경제 3년은 버틸 수 있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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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9호 09면

지난 10일 우크라이나 지토미르 지역의 소방관이 러시아 드론·미사일 공격을 받은 주택가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이 곳은 키이우에서 서쪽으로 약 100㎞ 떨어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일 우크라이나 지토미르 지역의 소방관이 러시아 드론·미사일 공격을 받은 주택가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이 곳은 키이우에서 서쪽으로 약 100㎞ 떨어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의 승패는 러시아 경제가 먼저 무너지느냐, 우크라이나가 먼저 무너지느냐에 달려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최근 분석이다. 러시아 경제와 우크라이나군의 방어력이라는 두 개의 모래시계 중 먼저 모래가 떨어지는 쪽이 패배한다는 의미다. 이런 관점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입장은 다소 느긋하다. 러시아 경제가 우크라이나군보다 더 오래 버틸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미국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러시아가 전쟁을 3년 정도는 더 지속할 수 있는 여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2~3년을 버티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러시아의 공세로 영토를 빼앗기는 것보다 먼저 군사력 특히 병력 부족으로 인해 전쟁 수행이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주력은 농촌과 지방의 중년 남성들로 채워져 있고, 도시의 중산층과 청년들은 입대를 회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해 징집 대상 연령을 27세에서 25세로 낮췄지만, 전문가들은 18세로 내리지 않으면 병력 부족이 심각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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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종전 협상 요구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협상 카드로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을 양보하는 방안을 내밀고 있지만, 푸틴 대통령은 별다른 호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 지난달 15일 미국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게다가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에 서방의 안전보장군을 배치하겠다는 미국의 구상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그들(안전보장군)을 정당한 타격 목표물로 간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해 나토의 군대를 주둔시키겠다는 우크라이나의 당초 계획과 같은 것”이라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구상이 심각한 장애물을 만난 것이다.

지난달 18일 “미·러 정상회담 2주 안에 다시 열릴 수 있다”고 말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희망도 실현되지 못했다. 이와 관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푸틴이 트럼프를 가지고 놀았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셈법을 고집한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러시아의 현 상황이 녹록한 것만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으로 지속되고 있는 만큼 푸틴 대통령에겐 국제적 고립과 서방의 경제 제재에 따른 러시아 경제 상황 악화 등 극복해야 할 과제가 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을 찾은 것도 국제적 고립 탈피 등을 위한 행보로, 중국·북한 등과 함께 반미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선 지난달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에 응한 것도 고립에서 벗어나겠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당시 로이터통신은 “이번 미·러 정상회담은 푸틴 대통령이 승리했다고 볼 수 있다”며 “러시아가 휴전 등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고립에서 벗어나 다시 미국과 맞상대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에도 푸틴 대통령은 국제적 왕따 신세에서 벗어나고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지난해 10월에는 러시아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참석해 중국·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 등과 회담을 했다. 반서방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북한과 베트남을 방문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의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아프리카 파트너십 포럼을 러시아에서 열기도 했다.

이런 노력으로 푸틴 대통령의 고립 탈피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가중되는 경제적 부담과 악화되는 러시아 경제 상황은 여전히 커다란 난제다.

특히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을 옥죄기 위한 서방의 압박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을 가를 전망이다.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 등이 러시아의 전비 조달의 창구이기 때문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7일 “살인자(푸틴)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그의 무기를 빼앗는 것이다. 에너지가 그의 무기”라고 강조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도 NBC 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유럽의 파트너들이 우리를 따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베센트 장관은 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추가 제재에 들어가 러시아 원유를 사는 나라들에 대해 2차 관세를 부과하면 러시아 경제가 완전히 붕괴할 것이고, 푸틴이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서방의 대러 추가 제재는 러시아에 대한 직접 관세 외에도 원유 등 러시아산 제품을 구매하는 나라들에게 관세를 부과하는 ‘2차 관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러시아 경제 상황은 만만찮다. 일단 가장 우려되는 것은 경기 침체다. 러시아 재무부는 서방의 제재를 감안해 올해 경제성장률을 2.5%(4월)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경고도 계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 물가가 연이율 9.2%에 육박하고, 금리도 높아 내수 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고금리로 인한 기업의 투자 및 생산도 위축되고 있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장담했던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이 현재로썬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푸틴 대통령은 중국·인도·북한 등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반미 연대를 통해 경제 위기를 최소화하고, 전쟁 수행을 위한 외부 지원을 최대한 얻어내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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