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취업시장 빛과 그림자
“이젠 코드 짜는 기술보다 ‘어떤 일을 인공지능(AI)에 시켜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됐어요.”
판교의 한 IT 스타트업 최고기술책임자(CTO) 김모씨는 “AI가 코드 작성부터 테스트까지 짧은 시간에 식은 죽 먹기로 처리하니 초급 개발자들이 하루아침에 설 자리를 잃고 있다”며 “GPT나 코파일럿 등 AI 도구와 경쟁하려면 웬만한 실력으론 어림도 없게 됐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최근 IT 채용 분야에서 ‘코딩 불패’ 신화가 빠르게 깨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진단했다.
AI의 급속한 기술 발전은 국내 IT 업계 일자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규 채용 감소는 물론 구조조정 바람도 거세지는 모습이다. 판교 IT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개발자 조준식(32)씨도 최근의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그는 “신입 채용은 확연히 줄었고 기존 개발자도 실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이내 구조조정 대상에 오르는 실정”이라며 “판교에도 해직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실제로 인사 채용 플랫폼 원티드랩이 현직 개발자 18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43
그래픽 디자이너 업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판교 스타트업에서 어플의 UI(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는 정진희(33)씨는 “예전엔 5명이 며칠씩 걸려야 했던 디자인 시안을 미드저니 같은 AI 툴은 단 몇 분 만에 쏟아내고 있다”며 “정작 우리가 손댈 부분은 AI가 만든 이미지의 미세한 터치나 감독자 역할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그렇잖아도 신입 채용이 줄고 있는데 기존 일자리마저 AI에 밀리니 설자리가 갈수록 좁아지는 느낌”이라고 우려했다.
AI의 파고는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넘어 콘텐트 제작자 등 전방위 분야로도 확산되고 있다. 11번가와 토스 등은 이미 반복 작업과 기본 시안 작성을 AI에 맡기고 있다. 토스 관계자는 “AI 툴이 비전문가도 고품질 이미지를 만들 만큼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초급·신입 인력 수요는 사실상 사라지는 추세”라며 “앞으론 최종 디렉팅 경험이 있는 소수의 핵심 인력만 남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2022년 72
이런 흐름은 국내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도 잇따라 대규모 해고를 단행하고 나섰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올해 누적 해고 규모는 1만7000명에 달한다. 지난 7월엔 글로벌 전역에서 약 9000명을 추가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1월과 5월에 이은 세 번째 감원으로 2023년 이후 최대 규모다.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는 “MS 내부 코드의 20~30
AI 확산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최근 발표한 ‘광산의 카나리아
논문은 “AI가 노동시장 하단의 사다리를 무너뜨리며 고용 진입 문턱을 전례 없이 높이고 있다”며 “이런 흐름이 지속될 경우 AI에 밀리는 초보 인력이 채용에서 배제되는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의 혁신 유입 경로 자체도 언제든 차단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IT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AI가 초급 개발자의 단순 작업은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지만 산업별로 요구되는 복합적 문제 정의나 맥락 해석, 종합 판단 등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어야 한다는 제언도 곁들여진다. 이재성 중앙대 AI학과 교수는 “AI 효율만 좇는 구조가 지속될 경우 미래 혁신의 밑바탕이 될 젊은 인력이 충원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인력풀 자체가 급속히 고갈되면서 5년 안에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 현상을 이대로 방치하면 단순히 특정 직군의 위기를 넘어 국가 차원의 혁신 동력과 사회의 지속 가능성 확보 또한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며 “신규·초급 인력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지원을 통해 사회적 사다리를 보존하는 데 정부와 산업계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최재식 KAIST XAI(설명가능 인공지능연구센터) 센터장은 “기업뿐 아니라 개발자들도 기존의 기술 발전을 따라만 갈 게 아니라 미래의 혁신이 어디에서, 어떻게 일어날지 함께 고민하며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