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오향장육과 돼지고기 신분 상승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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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향장육(五香醬肉)은 국내 중국음식점 메뉴를 통해 우리한테도 널리 알려져 있다. 낯설지 않은 이름이기에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사실 이 음식, 평범하지만 독특한 요리다.

오향장육(五香醬肉). 바이두.

오향장육(五香醬肉). 바이두.

오향장육이라는 요리 이름부터가 그렇다. 장육(醬肉)은 중국식 된장이 됐건 간장이 됐건 장에 절인 돼지고기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 중국식 장조림이니 남다를 것 하나 없는 서민적인 음식이다.

하지만 여기에 오향(五香)이 덧입혀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향은 문자 그대로 다섯 가지 향이라는 뜻으로 원래 회향(foeniculum), 계피, 산초, 정향, 진피 또는 팔각 등의 향신료를 넣은 간장으로 졸였기에 생긴 이름이다. 지금과는 달리 옛날에는 모두 값비싼 향신료였다. 바꿔 말해 장육은 서민 음식이지만 다섯 향신료의 맛이 더해진 오향장육은 그만큼 고급요리였다. 이런 오향장육,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 유래를 알아보기에 앞서 이 요리, 생각과는 달리 중국에 널리 퍼진 음식은 아니라고 한다. 오향장육은 강소성 소주(蘇州)에서 발달한 요리로 주로 강소성 일대에서 먹는다.

강소성 소주(蘇州). 바이두.

강소성 소주(蘇州). 바이두.

중국에는 지역별로 다양한 특산 장육이 있다. 이를 테면 북경은 오향장육 대신 청장육(淸醬肉) 혹은 경장육(京醬肉)이 유명하다. 이름 그대로 특별한 맛을 가미하지 않고 순수하게 절임 고기의 맛을 즐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장육으로 부드러우면서 맛이 깔끔하고 산뜻한 것이 특징이다.

사천성에는 사천장육이 있다. 돼지고기를 첨면장에 절이는데 여기에 백주(白酒), 소금, 얼얼한 화쟈오(花椒), 매운 고추(辣椒) 등을 더해 숙성시킨다. 얼핏 들어도 맵고 얼얼한 사천 특유의 맛이 느껴진다. 이밖에도 광동성에는 광동장육이, 동북3성에는 동북장육이 있다.

지역별로 다양한 장육이 있는 만큼 유명 장육에는 독특한 유래설, 기원설이 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확실한 근거보다는 그저 재미있자고 만들어낸 소리들 이겠지만 그 속에는 중국에서 장육이 어떻게 발전하고 고급요리가 됐는지 참고해 볼 만한 부분도 있다.

먼저 오향장육 스토리다. 오향장육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강소성 소주에서 발달했다. 소주는 옛날 중국 강남문화의 중심지로 경제와 함께 요리가 발달한 지역이다. 중국 궁중요리의 뿌리라는 회양(淮陽)요리의 중심지다. 돼지고기 장육에 오향을 더해 고급화한 것도 이런 배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오향장육이 유명해진 것은 청나라 초 강희제 때라고 한다. 청나라의 기반을 다진 강희황제가 북경을 떠나 멀리 강남으로 순시 여행에 나섰다. 어느 날 평민 복장으로 갈아입고 민심을 살피기 위해 거리에 나섰는데 은은하게 풍겨오는 고기 냄새에 이끌려 음식점에 들어섰다. 향기로운 돼지고기 절임을 맛보고는 단번에 반했다. 맛있는 장육을 계속 먹고 싶었던 강희황제는 자금성으로 돌아가 이 음식점 요리사를 궁중으로 초대해 비법을 전해 받았다. 이후 오향장육이 황실요리가 됐다는 것이다.

청나라 강희제. 바이두.

청나라 강희제. 바이두.

북경 청장육의 전설도 있다. 옛날 산동성 출신의 한 서생이 과거를 보러 북경에 올라왔지만 낙방했다. 하지만 노자가 떨어져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 북경에서 고기장사를 했다. 그러다 고기를 삶는 도중 깜빡 졸았는데 고기가 너무 삶아져 죽처럼 됐다. 흐물흐물해진 고기를 버리기 아까워 다른 장육에 덧바른 후 말려서 팔았다. 그 독특한 맛으로 호평을 받아 북경의 소문난 맛집이 됐다. 청(淸)장육의 유래다.

어느날 강희제가 변복을 하고 백성들 사는 모습을 살피다 맛있는 고기냄새에 이끌려 청장육을 맛보았다. 그 맛에 반한 강희제, 주인에게 음식점 이름(尚品堂)을 하사했고 이때부터 청장육은 황실요리가 됐다. 그리고 고깃집 주인은 고향인 산동성으로 돌아가 황제가 하사한 이름으로 음식점을 차려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의 전설따라 삼천리같은 이야기지만 오향장육이 됐건 청장육이 됐건 두 스토리에 왜 하필 청나라 강희황제가 등장하는 것일까?

중국 고대 정육점. 바이두.

중국 고대 정육점. 바이두.

그 배경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돼지고기 절임인 장육은 10세기 이후 북송 무렵부터 발달했다고 한다. 이 시기 중국에서 돼지고기는 북방 민족은 물론 한족 상류층에서는 외면했던 고기로 주로 남방의 한족, 그중에서도 서민들이 먹는 고기였다. 장육이 북송 이후 시작됐다는 말은 곧 북방 유목민족에 밀려 양자강 이남으로 내려온 한족들이 강남 하층민의 고기였던 돼지고기를 장육으로 저장해 먹을 정도로 널리 퍼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오향장육, 청장육의 유래설에 청나라 황제가 등장하는 것도 배경이 있다. 청 황제는 만주족 출신이다. 예전 여진족으로 불렸던 만주족은 역사적으로 중원을 지배했던 흉노 선비 거란 몽골 등의 다른 북방 민족과는 달리 유일하게 한족처럼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던 민족이다.

그렇기에 한족이 세운 명나라 때 돼지고기가 널리 퍼진데 이어 만주족의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돼지고기 그리고 그 절임인 장육이 상류층의 요리로 고급화될 수 있었다. 오향장육, 청장육 스토리에 청나라 강희황제가 뜬금없이 자주 등장하는 데는 이런 음식문화사적 배경이 있다.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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