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전기차 '배터리 굴기'에 K배터리 '방전'될라…글로벌 점유율 5% 하락

    C전기차 '배터리 굴기'에 K배터리 '방전'될라…글로벌 점유율 5% 하락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도 중국의 굴기(崛起)가 연일 매섭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이하 연간 누적 사용량 기준) 1위는 중국의 CATL로 37.9%를 기록했다. 2위 BYD(17.2%)까지 합하면 두 기업이 글로벌 시장의 55% 이상을 장악했다. 이외에 CALB와 고션·EVE·신왕다 같은 중국 기업도 톱10에 포진했다.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은 10.8%로 3위, SK온은 4.4%로 공동 4위, 삼성SDI는 3.3%로 7위였다. 일본은 파나소닉 한 곳만 6위(3.9%)로 톱10에 들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글로벌 전체 시장에서 중국 시장을 제외하더라도 중국 전기차 배터리 기업의 기세는 날이 갈수록 더하고 있다. 톱10 가운데 중국 기업이 4곳(CATL· BYD·파라시스·CALB)인데 1위 CATL이 시장점유율 27.0%를 기록하는 등 위세를 뽐내고 있다. 그러면서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을 떨어뜨리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24.6%로 2위, SK온이 10.8%로 3위, 삼성SDI가 8.2%로 5위를 각각 기록했지만 3사 점유율은 총 43.5%로 전년인 2023년(48.5%)보다 5.0% 하락했다. 중국 제외 글로벌 시장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이 전년보다 13.1% 증가한 상황임에도 중국 기업에 밀려 수요를 충분히 끌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전의 전쟁’ 한·중·일 삼국지 격화 2000만원대 중국 전기차, 한국 공습…현대차·기아, 할인 작전 ‘맞불’ 관세 전쟁·보조금 축소 격랑…테슬라까지 ‘맞바람’에 휘청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전년보다 자사 제품 사용량이 10.9% 성장한 CATL은 자국 내수 시장의 공급과잉 문제를 브라질·태국·이스라엘·호주 등지의 수출 확대로 해소 중이다. 전기차 제조에 이어 배터리에서도 영향력을 키우려 노력 중인 BYD 역시 전년보다 사용량이 117.6% 급증해 세계 6위를 기록할 만큼 수출에서 빛을 보고 있다. 같은 기간 파라시스(38.9%)와 CALB(294.1%)의 사용량 증가율도 높았다. 일본은 파나소닉이 9.7%로 4위, PPES가 2.0%로 9위를 기록했다. PPES는 2020년 출범한 도요타와파나소닉의 합작 법인이다.   이에 맞선 한국은 LG에너지솔루션의 사용량이 전년보다 1.0%, SK온은 13.7% 증가했지만 삼성SDI는 10.6% 하락했다. 삼성SDI는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 주요 고객사 수요가 감소한 타격을 받았다. 예컨대 독일 아우디의 전기차 Q8 e-트론 판매량 감소로 여기에 탑재되는 삼성SDI 배터리의 사용량도 전년보다 30.9% 감소했다. 다른 고객사인 미국 리비안에서 중국 업체가 주로 생산하는 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출시한 것도 악재였다.   김광주 SNE리서치 대표는 “BYD가 한국과 일본, 동남아, 유럽 시장으로까지 공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점유율을 높이는 등 중국 배터리 업계의 점유율 상승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대표는 “한국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지금까지와는 차별화한 수출 전략을 세워야 한다”며 “향후 전기차 보급 확대가 기대되는 핵심 시장인 인도와 동남아를 주요 목표로 삼아 LFP 배터리 등 원가 경쟁력을 갖춘 제품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2025.02.22 01:33

  • 관세 전쟁·보조금 축소 격랑…테슬라까지 '맞바람'에 휘청

    관세 전쟁·보조금 축소 격랑…테슬라까지 '맞바람'에 휘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직후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의 전기차 의무화 정책 폐기를 공식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기차 구매를 사실상 의무화하는 불공정한 보조금 폐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2030년까지 신차 판매의 50%를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로 채운다는 목표에 따라, 전기차 관련 기업과 소비자에 대한 세액 공제 등 혜택 제공을 골자로 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시행한 바 있다. IRA 폐기엔 미국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보조금 축소부터 나설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가뜩이나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 위기감이 커지던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 추가된 대형 악재는 이뿐이 아니다.   미국 테슬라 모델Y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는 대대적인 ‘관세 전쟁’도 예고했다. 이미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오는 4월엔 자동차에 대한 관세 발표를 한다고 예고했다. 미국으로 수출하는 국가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전기차 업계는 이에 따른 타격을 우려하는데, 여기엔 미국 기업인 테슬라도 포함돼 있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가 캐나다와 멕시코를 겨냥해 모든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자, 캐나다 정부는 테슬라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는 캐나다·멕시코에서 부품을 수입해 전기차를 만들어 두 나라에 팔고 있다.   테슬라는 글로벌 시장에서 BYD 등 중국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공세에 고전하면서 점유율 2위로 내려앉았다. 그나마 텃밭인 미국 전기차 시장에선 2022년 2분기 기준 점유율이 65%에 달했지만, 이마저 지난해 1~3분기 기준 49.8%로 하락할 만큼 쉽지 않은 상황에 부닥쳐 있다. BYD는 테슬라의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 핵심인 자율주행차 부문에서도 테슬라를 거세게 위협 중이다. 최근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긴 중국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업체 딥시크와 협력, 1000만원대 보급형 전기차에도 자율주행 시스템 ‘천신의 눈’을 탑재하면서 로보택시를 대중화하겠다고 선언했다. 테슬라는 아직 중국에서 완전자율주행(FSD) 소프트웨어 사업 승인을 받지 못했다.   관련기사 ‘전의 전쟁’ 한·중·일 삼국지 격화 2000만원대 중국 전기차, 한국 공습…현대차·기아, 할인 작전 ‘맞불’ C전기차 ‘배터리 굴기’에 K배터리 ‘방전’될라…글로벌 점유율 5% 하락 위기감 속에 반격을 준비 중인 테슬라는 상반기 중 판매 가격 3만 달러(약 4300만원) 이하의 중저가 전기차인 모델Q를 선보이면서 중국의 장기인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맞불을 놓을 계획이다. 또 근본적인 가격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존 설비를 활용하고 공정을 변경,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로 했다. FSD 소프트웨어에선 주차 상태에서 자율주행을 시작해 다시 주차까지 마무리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버전을 출시, 소비자 호응을 얻으면서 중국 당국의 사업 승인을 다시 기다리고 있다. 오는 6월엔 미국에서 첫 로보택시 서비스도 출시할 예정이다. FSD 소프트웨어를 탑재해 인간 운전자의 개입과 감독 없이도 완전한 자율주행까지 가능한 서비스로 기대를 모은다.   지금껏 대대적인 친환경 정책을 펼친 것에 비해 전기차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전통의 자동차 명가 유럽도 고조된 위기감 속에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2027년 2만 유로(약 2990만원)짜리 모듈형 전기차 출시를 목표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토마스 셰퍼 폴크스바겐 브랜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일(현지시간) “폴크스바겐 사상 가장 큰 규모의 미래 전략을 추진한다”며 한화로 2000만원대의 중저가 전기차 출시 등 세부적 미래 전략을 발표했다. 전기차 시장에서 격화된 중국발 가성비 전쟁으로부터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유럽 전기차 업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오너 리스크’에 따른 반사이익도 기대한다. 머스크는 독일의 극우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는데, 테슬라는 지난 1월 독일에서 전월보다 60% 가까이 감소한 1277대의 신차를 등록하는 데 그쳤다. 2021년 7월 이후 가장 낮은 월별 판매량이다. 독일은 미국·중국에 이어 테슬라의 세 번째로 큰 시장이라 의미 있는 수치다. 테슬라는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최근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머스크가 AfD, 그리고 유럽 전역에서 인기 없는 트럼프 행정부를 지지하는 게 판매 감소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테슬라는 중국 등 후발주자와 기술 격차가 좁혀져 시장의 의구심을 받고 있다”며 “기술 혁신이 더뎌지면 2~3년 내로 지금의 위상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2025.02.22 01:29

  • 로미오와 줄리엣 아닌 티볼트와 머큐쇼의 사랑에 기립박수

    로미오와 줄리엣 아닌 티볼트와 머큐쇼의 사랑에 기립박수

     ━  차별·금기를 넘다…줄잇는 퀴어 콘텐트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티볼트와 머큐쇼의 사랑으로 비튼 연극 ‘스타크로스드’. [사진 달컴퍼니]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룰 수 없는 사랑 이면에 줄리엣의 사촌 티볼트와 로미오의 친구 머큐쇼의 그보다 더한 사랑의 비극이 있었다. 화제의 연극 ‘스타크로스드’의 설정이다. 영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극작가 레이첼 가넷과 필립 윌슨 연출의 최신작을 발빠르게 들여온 무대인데,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초현대적으로 비튼 재치 만점 스핀오프다. 스토리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전개 자체는 발랄하다. 김경수·박정복·정동화·김찬호 등 ‘대학로 황태자들’이 연기하는 동성 커플의 알콩달콩에 객석에선 시종일관 빵빵 터지고, 적극적인 애정씬에도 거북스런 반응은 없다. 뻔한 고전을 절묘하게 각색해 단 3명의 배우가 이토록 현재적인 ‘롬앤줄’ 무대를 만들어내는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뿐. 커튼콜엔 무조건반사처럼 전석 기립박수가 터져 나온다.   연극이 마니아 장르라 그런 건 아니다. ‘퀴어’는 지금 가장 핫한 문화 코드다. 요즘 잘 나가는 대중문화 콘텐트에는 퀴어 코드가 꼭 등장한다. 10일 공개된 OTT드라마 ‘선의의 경쟁’은 ‘응답하라 1988’에서 귀여운 이미지로 각인된 이혜리의 동성키스씬으로 화제몰이를 했다. 지난해 ‘밤양갱’으로 대박을 친 가수 비비도 ‘DERRE(데레)’의 뮤직비디오에서 배우 전종서와 GL(Girls Love)을 연기했는데 대중가수의 낯선 퀴어 코드에 댓글 반응이 예상외다. “진짜 10대 때 짝사랑했던 날 보는 것 같다”는 격한 공감이 대세고, 불편하다는 반응은 찾기 힘들다.   티볼트·머큐쇼 사랑에 커튼콜 기립박수 불과 몇 년 전까지 방송가의 금기였던 ‘퀴어’를 양지로 끌어낸 건 OTT서비스다. 미디어 업계의 경쟁이 거세지면서 다양한 콘텐트에 대한 수요가 폭발한 것. 2022년 토종 OTT 왓챠의 BL(Boys Love) 드라마 ‘시맨틱 에러’의 성공 이후 퀴어가 새로운 장르로 급부상하며 ‘남의 연애’ ‘메리퀴어’ 등 실제 소수자들이 출연하는 예능까지 등장했다.   과거에도 없진 않았다. 90년대 ‘야오이’라 불리는 일본의 BL 장르 만화가 인기를 끌자 한국에도 박희정의 ‘호텔 아프리카’, 원수연의 ‘렛 다이’ 등 미소년들의 사랑을 그린 만화가 등장해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2000년대 들어 ‘번지점프를 하다’(2000), ‘왕의 남자’(2006), ‘쌍화점’(2008) 등 동성애를 감각적으로 다뤄 호평받는 영화들이 나왔지만, 결국 정체성 혼란이나 사회적 편견을 이기지 못하는 비극적인 결말로 점철됐다. ‘커피프린스 1호점’(2007), ‘미남이시네요’(2009), ‘성균관 스캔들’(2010) 등 남장 여자가 등장하는 유사 동성애 코드의 TV드라마들은 한결같이 젠더 이분법을 강화하는 성격이었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사진 각 제작사] 초기 퀴어가 멜로물의 소재 확장에 그쳤다면, 최근의 퀴어물은 훨씬 다양해졌다. 로맨스를 넘어 성소수자들의 일상이나 삶 자체에 주목하는 추세다. 지난해 동시에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어 퀴어를 대중문화 정중앙으로 끌어올린 ‘대도시의 사랑법’의 원작자 박상영 작가는 “순도 100% 있는 그대로의 2010년대 퀴어의 삶을 박제하듯 보여준다”는 기획의도를 밝히기도 했다. 원작 소설은 2022년 최고 권위의 부커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는데, 자유로운 사랑을 하는 게이 남성을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뿐 아니라 사랑과 우정, 동성애와 이성애에 관한 모든 고정관념을 뒤흔들었다 할 만하다.   ‘오징어게임2’의 트랜스젠더 현주 역의 박성훈(사진 왼쪽), ‘옥씨부인전’의 성소수자 성윤겸 역의 추영우. [사진 각 제작사] 요즘 퀴어들은 정체성 혼란 없이 아주 쿨하게 그려진다.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 추영우가 연기한 성윤겸은 양반집 자제의 부귀영화를 버린 채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지키고 역병 격리촌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죽음으로써 정의 구현에 이바지하는 멋진 역할이다. ‘오징어게임’ 시즌2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박성훈이 연기한 트랜스젠더 현주였는데, 중반까지 얌전한 단발머리로 휴머니즘을 담당하다 막판 총격전에서 특전사 출신으로 맹활약하는 반전 매력을 어필했다.   지난해 하반기 10편 가까이 개봉된 퀴어 소재 영화들은 더욱 다양한 범주의 성소수자들을 등장시켰다. 부쩍 눈에 띠는 건 ‘여여 로맨스’의 득세다. 지난해 역대급 베드신으로 화제가 된 영화 ‘히든페이스’는 조여정과 박지현의 에로티시즘을 송승헌이 거들 뿐이었다. 이유미가 주연한 독립영화 ‘우리들은 천국에 갈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한소희가 주연한 ‘폭설’도 학교를 배경으로 두 소녀의 우정을 넘어선 감정의 실체에 현미경을 댔다.   레즈비언 커플이라고 사랑만 하는 건 아니다. 영화 ‘럭키, 아파트’의 선우와 희서는 한국의 모든 젊은 커플이 겪을 법한 다양한 경제적 상황에 더해 혐오의 시선까지 감당해야 한다. ‘영끌’로 장만한 아파트 배수구에서 은근히 올라오는 악취는 실체도 없이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혐오의 알레고리다. 고독사한 이웃 노파 때문에 가시화되는 혐오로 커플은 갈등하지만, 결국 ‘성소수자로서 맞게 될 노년’이라는 두려움을 연대로 해소하길 선택한다.   그 두려움은 영화 ‘딸에 대하여’에서도 공유하고 있는데, 비슷한 문제를 어머니의 시선으로 조망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는 딸 그린이 장차 자신이 돌보는 노파처럼 외로워질까봐 레인과의 사랑을 노골적으로 혐오한다. 하지만 그린과 레인은 측근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차별 속에서도 남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엄마는 외로운 노파의 최후까지 살뜰히 챙기는 그들에게서 혐오를 거두고 ‘동행’이라는 희망을 발견한다.   70대 레즈비언 커플을 조명한 영화 ‘두 사람’. [사진 각 제작사] 12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두 사람’은 실제 70대 레즈비언 커플의 동행을 비춘다. 파독 간호사 출신인 수현과 인선은 1980년대 한인 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했던 수현과 달리 인선은 평범하게 꾸렸던 가정을 버려야 했다. 교회를 함께 다니면서도 별다른 혐오의 시선 없이 인권 운동에 동참하며 40여년을 함께해온 이들은 몇 해 전 공식적인 부부가 되어 평범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할머니 두 사람이 서로 약을 챙기고 로션을 발라주며 가끔 블루스도 추는 모습이 외롭지 않아 보인다.   “퀴어 이상하게 여기는 시선이 더 이상” 두 사람은 “독일이기에 가능했지 한국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2017년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독일과 한국은 ‘혐오’의 수준이 다르다는 얘기다. 두 사람을 2019년부터 2년간 촬영한 반박지은 감독은 “퀴어 퍼레이드 촬영 당시 독일에선 어려움이 없었지만 한국에선 혐오 진영에게 위협을 느꼈다”고 했고, 김다형 프로듀서도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혐오의 오랜 역사를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도 급변하고 있다. 지난해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방영 전 전국 119개 시민·학부모 단체가 방영 계획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지만, 드라마 공개 직후 X(구 트위터) 국내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며 호평받았다. 영화 버전은 실관람자만 매길 수 있는 CGV 에그지수 94%를 기록하고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 등 2관왕에 올랐다. 또 지난주 넷플릭스 공개 이후 국내 영화 1위를 고수하며 대세를 입증하고 있다.   심리학자 조지선 박사는 “과거에는 생소한 걸 배척하고 경계하는 걸 당연시했다면, 지금은 이질적이라도 열린 마음으로 포용성을 갖고 대해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사회적 규범이 됐다”면서 “대중의 취향을 좇는 문화 콘텐트 제작자들이 퀴어를 힙하고 트렌디한 요소로 적극 소화하는 것은 퀴어의 지위가 달라졌음을 말해준다. 새롭고 신기한 것에 대한 창작자의 욕구를 건드리면서도 욕먹지 않을 만한 안전망이 확보됐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퀴어의 법적 지위도 달라질까. 마침 지난해 동성 커플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국내 최초로 동성 커플의 권리가 법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 주목할 만하다. 문화평론가로 활동하는 정지우 변호사는 “이미 문단 쪽에선 퀴어가 주류라고 할 정도니 안방으로의 확산도 자연스럽다. 전 세계적으로 MZ세대에겐 당연한 인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문화현상적으로는 퀴어를 이상하게 여기는 시선이 더 이상해 보인다”면서 “사회에서 가장 늦게 바뀌는 게 법이고 법률개정의 과정도 만만치 않지만, 사회적 인식과 윤리가 바뀌고 있으니 장차 법적으로도 여러 종류의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2025.02.22 00:45

  • 2000만원대 중국 전기차, 한국 공습…현대차·기아, 할인 작전 '맞불'

    2000만원대 중국 전기차, 한국 공습…현대차·기아, 할인 작전 '맞불'

     ━  한·중·일 ‘전기차 삼국지’ 격화   세계 전기차 시장을 두고 한국과 중국, 일본 간의 ‘삼국지’가 치열하다. 전략은 제각각이지만 목적은 하나다. 세계 전기차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다. 미국과의 무역 갈등을 전화위복으로 삼으려는 중국은 세계 1위 전기차 시장점유율 업체 BYD를 필두로 한국·일본을 본격 공략하고 있다. BYD는 최근 한국에 실제 구매 가격이 2000만원대인 전기차를 선보였다. 일본은 중국에 맞불을 놓기 위해 북미 공략에 적극적이다. 이들의 적극적인 공세로 한국은 내수 시장 수성과 해외 공략에서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   회사원 김현욱(42·가명)씨는 최근 중국 전기차 업체 BYD의 아토3 구매를 사전 예약했다. 김씨는 “해외에서 평가가 괜찮고 무엇보다 가격대가 마음에 들어 BYD 아토3의 구매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두 가지 트림(등급)으로 발매되는 아토3의 기본 트림은 국내 판매 가격이 3150만원으로 책정됐는데, 전기차 구매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적용하면 실제 구매 가격은 2000만원대로 예상된다. 김씨는 “비슷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서 국산 전기차 기본 트림보다 수백만원, 미국산 기본 트림보다는 2000만원가량 저렴하다”며 “요즘 같은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에 나처럼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은 소비자한테는 경쟁력 있는 가격대”라고 덧붙였다.    가성비 무기, 72개국서 100만대 넘게 팔려  중국 BYD 아토3 내수 시장 장악력을 앞세워 세계 1위 전기차 시장점유율을 기록 중인 BYD는 최근 일본 등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11월 승용차의 한국 진출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지난달 아토3를 론칭했는데, 15일 만에 사전 예약 대수가 1800대를 넘어설 만큼 주목받고 있다. 조인철 BYD코리아 승용부문 대표는 “한국에 승용 브랜드를 소개하는 첫해인 만큼 더 많은 소비자가 BYD 전기차를 부담 없이 경험할 수 있도록 최적화한 가격을 책정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전의 전쟁’ 한·중·일 삼국지 격화 C전기차 ‘배터리 굴기’에 K배터리 ‘방전’될라…글로벌 점유율 5% 하락 관세 전쟁·보조금 축소 격랑…테슬라까지 ‘맞바람’에 휘청 앞서 BYD는 2016년 한국에 진출했지만 지난해까지는 전기버스 등 상용부문 사업만 해왔다. BYD는 올해 아토3를 시작으로 중형 세단 씰, 중형 SUV 씨라이언7을 국내에 출시하면서 승용 전기차 시장을 본격 공략할 계획이다. 가장 큰 무기는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이다. 아토3는 2022년 출시 이후로 가성비로 호평받으면서 중국 외에도 일본과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 72개국에서 100만 대 이상 팔렸다. BYD는 자체 제조하는 ‘블레이드 배터리’라는 이름의 LFP 배터리 탑재로 원가를 절감하고 있다. LFP 배터리는 양극재로 리튬 인산철을 사용하는 배터리로 가격이 저렴하지만 수명이 길면서, 350도 이상 고온에서도 폭발하지 않을 만큼 안전성이 우수하다.   일본 도요타 라브4 한국 전기차 시장을 겨냥한 중국 업체는 BYD만이 아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커(Zeekr)도 한국 진출을 준비 중이다. 한 수입차 딜러사 대표는 “지커 측과 전기차의 국내 판매를 위해 논의 중”이라며 “디자인과 성능 면에서 호평받아 국내 수요 확보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 전기차의 한국 진출은 이처럼 가격 경쟁력을 갖춘 것뿐 아니라 최근 디자인과 성능 역시 과거보다 크게 개선하면서 자동차 마니아가 많은 선진시장에서도 선전 중인 것과 관련이 있다. BYD는 2023년 일본에 진출했는데, 지난해 일본에서 전년보다 54% 증가한 2223대를 팔아 도요타(2038대)의 전기차 판매량마저 제치면서 전체 4위를 차지했다(1위 닛산, 2위 테슬라, 3위 미쓰비시).   그래픽=남미가 기자 이는 국내 자동차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 침체와 전기차의 대중화에 따른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중국 전기차의 공세에 따른 수요 이탈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해서다. 시장 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80개국 순수전기차(EV)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 기준)은 1641만대로, 전년보다 16.6%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성장세 자체는 유지되고 있지만 추이가 눈에 띄게 완만해졌다. 2021년(671만대)엔 전년보다 109.1%, 2022년(1054만대)엔 56.9%, 2023년(1407만대)엔 33.5% 증가한 판매량을 기록한 바 있다. 한국도 지난해 상반기까지 누적 60만 대가 넘는 전기차가 등록됐지만(국토교통부 집계), 이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정부의 보조금 축소도 캐즘을 가중시킬 수 있는 변수다. 지난달 환경부가 발표한 전기차 구매보조금 개편안에 따르면 올해 5300만원 이하 전기차 구매 때 보조금은 최대 580만원으로, 지난해 최대치(650만원)보다 70만원이 줄었다. 재정의 한계와 전기차 대중화에 따른 필연적 조치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국내 전기차 시장의 67.2%를 점유한 현대차그룹(현대차 39.8%, 기아 27.4%, 누적 등록 대수 기준)은 이런 환경 변화와 중국 전기차 공세까지 고려한 맞선 고강도 대응에 나섰다. 우선 전기차 9종의 국내 판매 가격을 최대 500만원까지 전격 인하했다.   한국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 지난 5일 현대차는 ▶아이오닉5 및 아이오닉6 300만원 ▶코나 일렉트릭 400만원 ▶포터II 일렉트릭 및 ST1 500만원 ▶아이오닉5 N 및 캐스퍼 일렉트릭 100만원 ▶제네시스 GV60 300만원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 5% 등의 할인을, 기아는 ▶니로 EV 200만원 ▶EV6 150만원 ▶EV9 250만원 ▶봉고 EV 350만원 등 할인을 각각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정부와 각 지자체 보조금까지 더하면 소비자의 최종 구매 가격은 더 낮아진다. 예를 들어 5410만원짜리 아이오닉5 롱레인지 2WD(이륜구동) 19인치 모델을 서울에서 구매하면 500만원이 넘는 정부 보조금에다 서울시 보조금 59만원, 현대차 할인 300만원 등으로 총 1000만원 가까이를 아껴 4000만원대에 탈 수 있다.    “한국 기업, 품질·가격 경쟁력·AS 강화해야” 국내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 BYD의 아토3와 비교되는 코나 일렉트릭의 경우도 서울에서 구매할 때 기존 가격 4142만원에서 각종 보조금과 현대차 할인 400만원 등으로 3152만원까지 낮아진 가격에 탈 수 있다. 아토3가 보조금을 더해 2000만원대 후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차이가 미미한 금액이다. 더 근본적인 가격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치에도 나섰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BYD처럼 LFP 배터리 등을 자체 생산해 자사 전기차에 탑재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23년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배터리 개발에 10년간 73억 달러(약 10조50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생산 조절에도 나선다. 현대차는 아이오닉5를 생산하는 울산 1공장 12라인 가동을 오는 24~28일 중단하고 휴업할 예정이다. 주문량이 감소한 상황에서 생산량을 줄이면서 여력을 비축하려는 것이다. 중국 시장에서 역공도 시도한다. 현대차가 중국 베이징자동차(BAIC)와 합작해 설립한 베이징현대는 올해 중국에서 첫 전용 전기차 출시를 준비 중이다. 양펑 현대차그룹 부사장은 지난해 10월 외신을 통해 “약 200명의 현지 개발 인력이 올해 중국 시장을 위한 전용 전기차 출시를 목표로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지금껏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 현지 기업에 밀려 점유율 1%대로 부진했지만, 현지 맞춤형 전기차로 높은 벽을 넘는다는 계획이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자동차 산업에서 전통의 라이벌 관계인 일본의 최근 전기차 부문 광폭 행보도 한국으로선 요주의 대상이다. ‘자동차 왕국’을 자처했던 자국 내에서 중국 전기차 공세에 고전하는 굴욕을 겪은 일본은 북미 전기차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면서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 도요타는 미국 내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에 2030년까지 14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가운데, 건설 중인 노스캐롤라이나주 배터리 공장에서 오는 4월부터 제품을 출하할 계획이다. 혼다는 미국에서 오는 하반기 중 전기차 생산을 시작하는 한편, 캐나다에서 전기차 및 배터리 공장 설립에 11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일본은 2023년까지 5년 연속 대미(對美) 투자액이 가장 많은 나라였을 만큼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극대화, 수출에서 활로를 뚫으면서 한국·중국 공세에 맞서려 하고 있고 전기차가 그 선봉장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전기차 캐즘으로 가격 경쟁력이라는 무기가 중저가 시장에서 큰 위력을 보일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라는 점에서 BYD 등 중국 전기차가 향후 한국은 물론 세계 시장의 ‘태풍의 눈’으로 계속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한국 기업이 품질·가격 경쟁력 동반 향상과 함께 애프터서비스 강화 등으로 중국·일본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2025.02.22 00:01

  • 2030세대, 민주주의를 의심하다

    2030세대, 민주주의를 의심하다

    한때 민주주의는 ‘목놓아 부르던 이름’이었다. 이젠 아니다. 대통령부터 사법부까지 민주주의의 주요 제도들은 불신받고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더하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2~23일 성인 1514명을 대상으로 웹서베이(web survey)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한국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는가’(0~10점)라는 질문에 20대(18~29세)는 5.08점으로 전 연령대에서 60대(5.07점) 다음으로 낮은 점수를 줬다. 전체 평균(5.36점)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특히 20대 남성은 4.89점으로 가장 낮았다. 반면 이들의 부모 세대라 할 수 있는 50대 남성은 5.81점으로 가장 높았다. 2017년 조사에선 20대 남성(만족 48.6%)이 40·50대 남성(37.3%, 43.6%)보다 우호적이었다.   관련기사 20대 남성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제도보다 낫다” 84%→63%…불만·실망감 표출 “개헌 찬성” 민주당 지지층 61%, 국민의힘 지지층선 43% “중국 비호감” 5년새 40%→72%…“일본에 호감”은 10%→31%로 ‘민주주의가 다른 제도보다 더 낫다’는 데 대해서도 20대 남성의 62.6%만 동의했을 뿐이다. 30대 남성(64.3%), 60대 여성(71.5%)이 뒤를 이었다. 2017년 조사에선 30대 남성(73.4%)을 제외하곤 모두 80%대를 웃돌았다.   민주주의를 작동케 하는 주축인 국회·대통령·법원·행정부·중앙선관위의 경우 불신한다는 답변이 더 많았다. 헌법재판소만 신뢰 쪽이 많았으나 절반엔 못 미쳤다(45%).   유성진 이화여대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오작동을 겪고 있다는 신호이며 이대로 방치될 경우 체제적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성운·신수민 기자 pirate@joongang.co.kr

    2025.02.15 02:01

  •  "개헌 찬성" 민주당 지지층 61%, 국민의힘 지지층선 43%

    "개헌 찬성" 민주당 지지층 61%, 국민의힘 지지층선 43%

    더불어민주당 지지자가 국민의힘 지지자보다 개헌 논의에 더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2~23일 성인 1514명을 대상으로 웹 서베이 방식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다.   이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과반인 53.2%가 ‘개헌하는 것이 낫다’고 답했다. 민주당 지지자는 61.3%로 국민의힘의 지지자(42.9%)보다 18.4%포인트 높았다.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는 응답은 국민의힘 지지자(45.8%)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25%)보다 강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개헌 추진에 더 적극적이라고 볼 수 있는 수치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도 민주당 지지자 중 68.2%가 ‘서둘러야 할 과제’라고 본데 비해 국민의힘 지지자에선 59.4%만 그런 입장이었다.   관련기사 2030세대, 민주주의를 의심하다 20대 남성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제도보다 낫다” 84%→63%…불만·실망감 표출 “중국 비호감” 5년새 40%→72%…“일본에 호감”은 10%→31%로 이는 현 정국에서 국민의힘이 개헌에 적극적이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소극적으로 보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다만 비명계를 중심으로 개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12일 “국민적 컨센서스가 높은 ‘분권형 4년 중임제’로 개편된다면 다음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해 2028년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고,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대선과 동시에 계엄 과정에서 분출된 요구들을 담은 원포인트 개헌을 한 뒤 다음 2026년 지방선거와 함께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본격적인 개헌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 대표는 “내란 극복에 집중할 때”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대통령 권력의 적절성에 대해선 지지 정당별로 달랐다. 대통령이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 분산시켜야 한다’는 응답에 민주당 지지자의 60.7%가 동의했고 현 상태 유지가 32.3%였다. 이에 비해 국민의힘의 지지자에선 분산(22.8%)보단 ‘약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 강화해야 한다’(24.8%)는 답이 많았고 현 상태 유지는 46.6%였다.   권력구조에 대해선 차이가 적었다. 전체 응답자 중 과반인 51.2%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했고, ‘대통령-총리가 역할을 분담하는 대통령제’(34.1%), ‘의회가 국정을 책임지는 내각제’(14.7%) 순으로 이어졌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4년 중임제’(57.5%)를 가장 선호했다.   현 선거제에 대해선 국민의힘 지지자의 80.7%가 바꿀 필요가 있다고 본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절반(54.1%)만 그리 생각했다. 다만 바꿔야할 이유에 대해선 양당 지지자 모두 거대 양당의 대립구조 탈피를 가장 많이 꼽았다(45.6%, 34%).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2025.02.15 01:44

  • “중국 비호감” 5년새 40%→72%…“일본에 호감”은 10%→31%로

    “중국 비호감” 5년새 40%→72%…“일본에 호감”은 10%→31%로

    ‘혐일’보다 ‘혐중’.   동아시아연구원(EAI)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주변국 인식 조사를 요약하면 이렇다. 중국에 ‘부정적’이라는 답변은 71.5%로 북한(79%)에 버금하는 수준을 기록했다. 수치도 수치지만 추세도 가파르다. 2015년 조사에선 부정적이란 답변은 16.1%였는데, 2020년 조사에서 40.1%로 치솟았고 이번에도 31.4%포인트 급등했다.   이와 반대로 일본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는 답변이 늘었다. 일본에 대한 우호도는 2015년 17.3%였다가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수출 규제와 맞물린 문재인 정부 때 반일 운동이 한창이던 2020년 조사에선 9.9%까지 감소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선 31.4%로 상승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긍정적 답변이 77.3%(2015년)→63.7%(2020년)→63%(2025년)으로 조금씩 감소 추세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세대별 인식 풍경은 좀 달랐다. 미국·일본에 대해서 20·30대와 70대 이상이 통했다. 일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졌다는 답변 비율이 20대(43.4%)·30대(36.3%)·70대(35.4%)에서 높았으나, 40대(24.1%)·50대(22.5%)에선 낮았다. 미국을 두고도 20대(72.3%)와 70대(72.7%)가 더 우호적이었고 50대(52.9%)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반중 정서는 세대를 가리지 않았다. 그나마 60대에선 좋은 인상을 가졌다는 비율이 다섯 명 중 한 명(20.1%)꼴이었고 나머지 세대에선 10%대였다.   이런 인식은 각국과의 외교 현안에 대한 입장으로도 이어졌다. 대일 관계의 방향에 대해 60대(43%)와 70대(55.5%)는 ‘경제·기술·안보 등에서 미래지향적 협력 추진’을 가장 많이 꼽았다. 반면 40대(51%)·50대(46.4%)는 ‘역사문제 해결’을 가장 중요하다고 꼽았다. 20대에선 ‘역사문제 해결’(37.7%)과 ‘미래지향적 협력 추진’(37.5%)이 대등했다.   관련기사 2030세대, 민주주의를 의심하다 20대 남성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제도보다 낫다” 84%→63%…불만·실망감 표출 “개헌 찬성” 민주당 지지층 61%, 국민의힘 지지층선 43% 이념적으로는 보수(55.5%), 정당 지지에선 국민의힘(63.8%) 계층에서 ‘미래지향적 협력 추진’을 꼽은 반면, 진보(56.2%)와 더불어민주당(61.3%)에선 ‘역사문제 해결’을 더 중요하다고 봤다. 중도층에선 ‘역사문제 해결’(39.4%)이 ‘미래지향적 협력 추진’(38.1%)보다 조금 더 높게 나왔다.   미국과의 관계에선 전 세대가 ‘한미 동맹 강화’를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응답했다. 다만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지지층은 ‘대미 수평적 관계 구축’(31.3%, 34.5%)이 ‘한미동맹 강화’(26%, 24.3%)보다 시급한 과제라고 답했다. 이념적으로는 진보(32.6%)에서 ‘대미 수평적 관계’를, 보수(50.4%)·중도(35.9%)에서는 ‘한미동맹 강화’를 꼽았다.   중국에 대해선 20대는 ‘경제제재 대응’(27.6%)을, 30대는 ‘미세먼지·환경·감염병 등 협력’(28.6%)을 가장 중요하다고 꼽았고, 나머지 세대에선 ‘경제교류 확대 및 첨단기술 협력’을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2025.02.15 01:41

  • 20대 남성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제도보다 낫다" 84%→63%…불만·실망감 표출

    20대 남성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제도보다 낫다" 84%→63%…불만·실망감 표출

     ━   2030세대, 민주주의를 의심하다   ‘민주주의 세대의 출현’. 2018년 1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낸 보고서 제목의 일부다. 2016년 이후 촛불집회 등을 거치며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20·30이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중 ‘유이’하게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다’고 답변한 걸 근거로 들었다. 필자는 “민주화 이후 세대인 20대와 30대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선택이 경제발전에 대한 선택을 능가함으로써 민주주의 필수재 시대를 열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촛불집회의 집단 경험을 중요한 근거로 들었다. 그로부터 7년 후, 상황은 반전됐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20·30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의심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작동 방식에 대해서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20·30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든 것”이라고 말한다.   두 개의 한국. 서울 광화문 인근 탄핵촉구 집회 참석자들(사진)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탄핵반대 집회 참석자들(아래 사진)이 각각 ‘즉각 파면’과 ‘탄핵 무효’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2017년 조사에선 전 세대에 걸쳐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났다. 30대 남성(73.4%)과 50대 여성(79.2%)을 제외하곤 모두 80% 이상이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제도보다 낫다’고 응답했다. 여기까지는 2018년 기념사업회의 보고서와도 맥을 같이 하는 셈이다.   두 개의 한국. 서울 광화문 인근 탄핵촉구 집회 참석자들(위 사진)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탄핵반대 집회 참석자들(사진)이 각각 ‘즉각 파면’과 ‘탄핵 무효’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1월 22~23일 실시한 조사에선 세대별로 민주주의에 대한 시각이 뚜렷하게 갈라졌다. 8년 전 조사에서 20대 남성의 84.3%가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제도보다 낫다’고 했지만, 이번 조사에선 62.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20%포인트가 빠진 것이다. 30대도 마찬가지다. 하락폭이 20대만큼 극적이진 않았지만, 64.3%만이 긍정했다. 2030 남성은 70대 남성(68.4%)과 함께 60%대를 기록하며 40·50 남성(78%, 82.6%)과 적잖은 인식 차이를 보여줬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세월호 세대’라고도 일컬어지는 20·30은 ‘정치적 무지’ 세대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한국의 정치와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불만과 실망감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봤다.   실제로 20·30은 한국 민주주의의 주요 기관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드러냈다. 이르면 다음달 윤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결정하게 될 헌법재판소에 대해 20대는 38.7%, 30대는 41.4%만이 신뢰한다고 답했다. 절반 이상이 긍정한 40대(52.3%)와 50대(56.7%)와 인식 차이를 보였다. 20·30의 헌재 신뢰도 양상은 오히려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60·70세대(41.9%·34.8%)에 더 가까웠다. 또 헌재에 대해서 ‘불신한다’는 답변도 20대(30.3%)와 30대(29.9%)는 30%에 달해 상대적으로 낮은 50대(23.3%)와 달랐다.   ‘정치는 선악 대결’인식, 2030 평균 밑돌아 그래픽=이현민 기자 이는 13일 발표된 일반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전화면접조사인 전국지표조사(NBS)의 결과와 유사했다. 20대(신뢰 45%, 불신 46%)는 60대(47%, 49%)·70대 이상(42%, 51%)와 함께 헌재를 불신한다고 답한 비율이 높은 세대였다. 40대와 50대가 신뢰하는 쪽으로 40%포인트, 34%포인트 더 쏠려있는 것과 큰 차이다.   최근 보수층 일각과 탄핵 반대층이 제기하는 ‘부정선거’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중앙선관위에 대해서도 20·30들은 못 미더워했다. 20대는 41.5%, 30대는 37%의 응답자가 중앙선관위를 ‘불신한다’고 응답해 ‘신뢰한다’(23.2%, 30.1%)를 넘어섰다. 이는 선거공정성에 대한 의심으로도 이어졌다. 2017년 대선 당시엔 90%가 넘는 20·30 남성이 ‘공정했다’(90.8%, 91.1%)고 응답했으나 2024년 총선에 대해선 각각 65%와 64.3%만 그렇다고 답했다.   국회와 법원의 처지도 다르지 않았다. 국회를 ‘신뢰한다’고 답한 20·30 응답자는 각각 18.7%와 14.4%로 40·50(19.0%·25.9%)보다 낮았다. 법원도 20·30세대의 29.6%와 30.4%만이 ‘신뢰한다’고 답했다. 이렇다보니 ‘법원의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더라도 수용해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 그래야 한다는 답변은 48.1%였는데, 20·30은 그보다 낮은 42.1%, 44.1%였다.   2030세대가 더 민주적인 인식이나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 결과도 있다. 진영 정치를 낳는 인식으로 꼽히는 ‘정치는 결국 선과 악의 대결’과 관련, 20·30은 각각 34.4%, 33.2%가 그렇다고 답해, 평균(40.9%)을 하회했다. 대의제와 관련된 ‘사회는 일반 대중보다 소수의 지도자가 다스릴 때 잘 되는 법’이란 질문에도 20대의 동의율이 높다(36.9%). ‘국가를 위해 개인은 희생해야 한다’는 입장에 가장 부정적인 게 20·30이었다. 각각 69.6%, 61.5%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70대 이상에선 35.8%만 그렇게 말했다. ‘다수가 찬성하는 의견에 소수의 사람이 반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대해서도 20·30은 압도적으로 반대했다(78.2%, 77.8%). ‘정부가 입법부에 의해 지속적으로 견제된다면, 위대한 일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20·30은 38.3%, 38.5%만 동의했다(평균 46.5%).   2030의 스탠스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의 보수화가 전세계적 현상인 것은 맞지만, 한국의 경우엔 민주당 정부에 대한 불만과 이탈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20대 남 상대적 박탈감, 사회적 분노로” 실제 최명덕(27·대학생)씨가 그런 경우다. 고등학생 때 세월호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경험한 그는 “촛불시위에 두 번 나갔고, 2017년에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윤 대통령의 탄핵 반대 집회에는 나가지 않지만, 일각에서 제기하는 부정선거론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최씨는 “내가 보수정당을 지지할 줄은 몰랐는데, 조국 사태로 사회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실제 2017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에 대한 선호도는 20대 남성(2.59)과 20대 여성(2.23)이 전 세대에서 가장 낮았다. 반면 2025년 국민의힘에 대한 선호도 조사에서는 20대 남성(3.26)이 30대 남성(2.57), 40대 남성(1.99), 50대 남성(2.46)보다 높아졌다. 같은 기간 20·30 세대 남성의 민주당 선호도는 6점대였던 게 3점대로 내려갔다.   그렇다고 2030, 특히 남성의 흐름이 보수 정당 지지냐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하상응 서강대 교수는 “2030세대의 ‘보수화’라기 보다는 ‘2030세대의 반동’이라고 본다”며 “이들이 자라온 기간 동안 여당 및 제1정당이 민주당이다 보니 이들에 대한 반발이 보수화로 비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강윤 평론가도 “양측이 시국 인식이나 정당 선호도 등에서 비슷한 흐름을 보여주지만 배경은 다르다”며 “60대 이상은 자신들이 믿는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로부터 체제를 수호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20대는 자신들의 주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불만에 대해 항의하고 있는 것”이라고 봤다.   유성진 이화여대 교수는 “단순히 보면 현재 우리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보이는 집단은 민주주의 작동방식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 이들이며, 대체로 젊은 남성 유권자들”이라며 “다만, 이들도 계엄과 탄핵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파국적 상황은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족이 민주주의의 제도적인 틀 내에서 관리되도록 정치인들이 더 큰 합의와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20·30세대 안에서 남녀 간 차이는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미투’ 운동과 문재인 정부의 페미니즘 정책 추진 속에서 남성들은 군 입대 등으로 ‘역차별’을 당한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면서 사회적 ‘분노’로 발전했다”며 “여성들이 진보 정치 세력을 지지하니까, 이에 대한 반발로 보수 세력으로 눈을 돌리게 한 측면이 있다. 특히 윤 대통령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걸면서 하나의 분기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유성운·신수민 기자 pirate@joongang.co.kr

    2025.02.15 00:02

  • 우클릭에도…박스권에 갇힌 이재명 대세론

    우클릭에도…박스권에 갇힌 이재명 대세론

    31%-28%-28%-32%.   새해 들어 한 달여간(1월 2주~2월 1주) 이재명(사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전국지표조사)다. 수치상 ‘이재명 대세론’은 여전하다. 2위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12%)을 20%포인트 차로 떨어뜨려 놓은 데다, 당내 경쟁자들은 1~2% 수준이다.   주목받는 건 추이다. 이 대표는 그간 ‘실용주의’를 내걸고 친기업·감세의 ‘우클릭’ 페달을 밟았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비롯해 집값 오른 중산층 부담을 덜기 위한 상속세 완화(상속세 공제 기준 5억원→8억원), 자녀 두 명 이상 가구에 대한 소득세율 3%포인트 인하 등을 내밀었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중도 확장용 행보였다.   관련기사 “야권 내 위협적 경쟁자 없고 호남 선택은 이재명”…“30%대 초반 박스권 지지율, 확장성 의문” 복당 김경수 “더 큰 민주당 가는 계기” 이재명 “촛불혁명 후에도 세상 안 바뀌어” 당대표 연임, 총선 공천·압승, 구속 불발…‘이재명당’ 만든 결정적 네 장면 하지만 최근 한 달간 이 대표는 20% 후반과 30% 초반을 오르내리는 박스권에 묶여있다. 일부 가상대결 조사에선 여당 후보와 박빙대결을 하는 것으로 나오기도 했다(세계일보·한국갤럽).   정작 당 일각과 노동계에선 “진보 진영의 가치와 원칙을 허물고 있다”는 반발이 나왔다. 이 틈을 타고 ‘신(新) 3김’(김동연 경기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경수 전 경남지사)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 비주류를 포용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중도 확장도 효과를 낼 것”(이재묵 한국외대 교수)이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2025.02.08 01:29

  • 복당 김경수 "더 큰 민주당 가는 계기" 이재명 "촛불혁명 후에도 세상 안 바뀌어"

    복당 김경수 "더 큰 민주당 가는 계기" 이재명 "촛불혁명 후에도 세상 안 바뀌어"

    김동연, 김부겸, 김경수(왼쪽부터 순서대로)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복당을 전후로 더불어민주당 친명계와 비명계의 충돌이 노골화하고 있다.   김 전 지사는 7일 페이스북에 “저의 복당이 우리 당이 ‘더 큰 민주당’으로 가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민주당의 한 사람으로 남겠다. 탄핵을 통한 내란 세력 심판과 대선 승리를 통한 정권 교체를 위해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모든 노력을 다해 헌신하겠다”고 썼다. 김 전 지사는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2021년 징역 2년이 확정돼 자동 탈당 처리됐다가 이날 복당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최근 김동연 경기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함께 ‘신(新) 3김’으로 분류되는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관 출신으로 친노·친문 진영의 ‘적자’로 거론된다.   그간 말을 아꼈던 김 전 지사는 최근 정치 현안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9일 “2022년 대선 이후 치러진 지방선거와 총선 과정에서 치욕스러워하며 당에서 멀어지거나 떠나신 분들이 많다”며 이 대표의 사과를 요구해 눈길을 끌었다. 친명계의 비난이 일자 “칼의 언어로 대응하고 조롱의 언어로 대처하는 것은 하나 되어 이기는 길이 아니다”라고 받았다. 김 전 지사는 7일 노무현재단 부산지역위원회 정기총회 특강에도 참석해 “민주당 복당을 시작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고 싶었던 국민통합을 꼭 이뤄내겠다는 마음으로 정치에 임하겠다”며 현실 정치에 대한 의지를 거듭 드러냈다.   관련기사 우클릭에도…박스권에 갇힌 이재명 대세론 “야권 내 위협적 경쟁자 없고 호남 선택은 이재명”…“30%대 초반 박스권 지지율, 확장성 의문” 당대표 연임, 총선 공천·압승, 구속 불발…‘이재명당’ 만든 결정적 네 장면 이재명 대표는 김 전 지사의 입당에 대해 페이스북에 “환영한다”며 “더 큰 민주당을 위해 저도 노력하겠다”고 남겼다. 하지만, 이날 민주당 정책소통 플랫폼 출범 행사에 참석해서는 “지난 촛불혁명 때 국민들이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렸지만, (국민들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색깔만 바뀌었지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더라”며 문재인 정부를 에둘러 비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개딸’ 등의 당원 중심 노선을 옹호하면서 동시에 김 전 지사의 비판에 응수한 것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이런 가운데 외곽전도 수위가 올라가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대표를 공개 지지했던 유시민 작가는 5일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비명계가) 훈장질하듯이 ‘야 이재명, 네가 못나서 지난 대선에서 진 거야’ 이런 소리 하고 ‘너 혼자 하면 잘될 거 같아?’ 이런 소리 하면 그게 뭐가 되겠나”라며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동연 지사에 대해선 “이 대표한테 붙어서 도지사가 된 사람”, 김 전 총리를 향해선 “자신의 역량을 넘어서는 자리를 이미 했다. 책을 많이 보라”고 했고, 김 전 지사에겐 “지도자 행세하지 말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지난 3일 페이스북에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가 부족했음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비로소 이기는 길이 보인다”고 쓴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겐 “(정치인 말고) 다른 직업을 알아보라”고 쏘아붙였다.   이에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 고민정 의원이 반발했다. 그는 7일 유 작가를 겨냥, “망하는 길로 가는 민주당의 모습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다”며 “이 대표를 때로는 풍자할 수도 있고, 때로는 비판할 수도 있는 게 민주주의 사회의 순리인데, 지난 몇 년 동안 비판하면 ‘수박’이라고 멸시와 조롱하는 현상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2025.02.08 01:18

  • 당대표 연임, 총선 공천·압승, 구속 불발…‘이재명당’ 만든 결정적 네 장면

    당대표 연임, 총선 공천·압승, 구속 불발…‘이재명당’ 만든 결정적 네 장면

    지난해 8월 18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로 선출된 후 당기를 흔들고 있는 이재명 대표. 전민규 기자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은 ‘한 몸’이다.”   지난달 25일 시사저널TV 유튜브 방송에서 진중권 광운대 교수가 한 말이다. 비단 진 교수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재명당’이라는 등식에 이견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해 8월 민주당 전당대회는 상징적 장면이 있었다. 이 대표가 당 대표 후보로 출마한 가운데, 최고위원 후보들은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일하게 해달라’고 호소한 것.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조차 “최고위원 후보라면 자신의 정치적 비전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날렸을 정도였다. 딱 한 명, 정봉주 전 의원만 다른 말을 했고 결국 낙마했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 장악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8·18 전당대회다. 대선 실패 후 당대표 연임에 나섰다는 비판 여론에도 이 대표는 85.4%라는 민주당 전당대회 사상 최고치 득표율로 ‘이재명 2기’를 열었다. 대표직 연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민주당 전신) 총재직 연임 이후 24년 만이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당 대표 연임”이라며 “이후 총선 공천 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당을 완벽하게 장악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우클릭에도…박스권에 갇힌 이재명 대세론 “야권 내 위협적 경쟁자 없고 호남 선택은 이재명”…“30%대 초반 박스권 지지율, 확장성 의문” 복당 김경수 “더 큰 민주당 가는 계기” 이재명 “촛불혁명 후에도 세상 안 바뀌어” 앞서 지난해 4월 22대 총선 공천은 ‘이재명당’을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공천에서 김영주·송갑석·박광온·박용진·윤영찬 등 친문·비명계 현역 의원들이 대거 공천에서 낙마했고 그 자리의 상당수는 김준혁 의원 등 친명계 신인들로 메꿔졌다.   이럴 수 있던 요인으로 이 대표의 ‘경선 머신’ 장악이 꼽힌다. 경선 룰 세팅부터 지지자 동원까지 능수능란하다. 지난 전대에서 권리당원 투표 비율을 40%에서 56%로 올리고, 대의원 비율은 30%에서 14%로 반감시킨 게 한 예다. ‘개딸’들의 조직적 투표도 있었다. 8·18 전대에서 초반 1등이던 정봉주 전 의원이 낙선한 게 대표적이다. 한 민주당 인사는 “친문이 활용했던 방식을 친명은 훨씬 고도화했다”고 말했다.   총선 대승도 쐐기였다. 19대 대선에서 패배한 홍준표 대구시장은 얼마 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로 선출됐지만 이듬해 6월 지방선거의 궤멸적 패배로 물러났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재명 사당화’라는 비난과 적전 분열이라는 우려가 뒤섞여 승리하더라도 후유증이 적지 않을 뻔했다”며 “그 충격을 ‘총선 압승’으로 넘겼다. 오히려 민심과 당심의 인정을 내세워 당을 자기중심으로 리셋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앞서 2023년 9월 구속 불발도 있다. 당시 검찰의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했지만,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기각한 일이다. 이후 민주당 내에선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비명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졌다. 지난 총선 낙천자 명단에 이들 상당수가 들어갔다. 박 평론가는 “이후 당내에선 이 대표에 대해 비방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2025.02.08 01:14

  • "야권 내 위협적 경쟁자 없고 호남 선택은 이재명"…"30%대 초반 박스권 지지율, 확장성 의문"

    "야권 내 위협적 경쟁자 없고 호남 선택은 이재명"…"30%대 초반 박스권 지지율, 확장성 의문"

     ━  전문가 5인이 본 ‘이재명 대세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과연 1위로 결승 테이프를 끊을 수 있을까. 누군가에겐 의아한 질문일 수도 있다. 사실 각종 지표를 통해 만나게 되는 이 대표의 모습은 압도적이다. 한국갤럽이 매달 실시하는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조사에서 이 대표는 지난해 4월부터 줄곧 선두를 지켜왔다. 선두 자리를 내준 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에게 지난해 3월뿐이다. 야권 내부로 눈을 돌려봐도 마찬가지다.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두 자릿수 지지를 기록한 건 이 대표뿐이다. ‘경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대표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다소 복합적이다. 고질적인 사법리스크를 접더라도 불안감을 거두기엔 찜찜한 ‘구석’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다.     순풍만 부는 듯했던 이 대표의 항해가 조금씩 맞바람을 받기 시작한 건 1월부터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 이후에도 박스권에 갇힌 지지율, 여기에 국민의힘과 탄핵 반대 측의 상승세가 맞물리면서 이 대표의 대선 승리에 대한 물음표가 붙기 시작한 것. 설 연휴를 지나자 일부 여론조사긴 하지만 일대일 가상 대결에서 여권 후보에게 패배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그러면서 이른바 ‘3김’(김동연 경기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경수 전 경남지사)으로 불리는 경쟁자들도 본격적인 견제구를 던지기 시작했다.   대선 레이스에서 1위 주자를 향한 집중 견제와 맞바람은 늘 있었던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1위 주자가 으레 겪는 기침 정도로 그칠까. 아니면 A형 독감이 될까. 전문가들은 여전히 “이 대표가 가장 우세한 고지에 있다”면서도 그를 둘러싼 환경이 되려 지난 대선보다 녹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진단도 같이 내놨다. 왜 그런지 들어봤다.   # ‘대세론’은 상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가 30% 초반대 박스권에 갇힌 가운데, 전문가들은 비주류 포용과 중도실용 인사 영입 등을 조언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일단 이 대표의 대세론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윤희웅 오피니언즈 대표는 ‘견고한 지지층’과 ‘당내 경쟁자 제거’를 꼽았다. 윤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이낙연 전 총리와의 경선에서 승리한 이래 당내에서 이 대표를 위협할 경쟁자가 없었다”며 “3년 동안 민주당의 오너는 이재명이었고, 그 기간에 자신의 인지도와 지지층을 견고하게 다져왔다. 좀처럼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련기사 우클릭에도…박스권에 갇힌 이재명 대세론 복당 김경수 “더 큰 민주당 가는 계기” 이재명 “촛불혁명 후에도 세상 안 바뀌어” 당대표 연임, 총선 공천·압승, 구속 불발…‘이재명당’ 만든 결정적 네 장면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도 비슷했다. 윤 실장은 “지난 기간 민주당의 단일 주자로 장악력을 강화해왔고, 총선에서 성과도 냈다”며 민주당 밖 같은 진영의 지리멸렬함도 꼽았다. 그는 “역대 대선에서는 정의당 같은 진보계열 제3정당 후보가 표를 분산하곤 했지만 지금은 정의당도, 조국혁신당에서도 그럴만한 변수로 작용할 것 같지 않다”고 진단했다. 조귀동 정치컨설팅 민 전략실장은 호남의 선택을 들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대 총선에서 ‘호남홀대론’에 휘말리면서 19대 대선에서도 호남 표를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에게 일부 내줬는데 이번엔 다르다”는 것이다. 이낙연 전 총리의 민주당 탈당 이후 당내는 물론 야권에서도 호남을 기반으로 한 경쟁세력은 나오지 않고 있다. 조 실장은 “민주당에서 호남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호남의 선택이 이 대표라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그럼에도 불안한 이유 그래픽=이현민 기자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노풍, 반골 검사 윤석열의 부상 등 한국 정치, 특히 대선은 늘 드라마를 선호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말하는 ‘별의 순간’이다. 이미 대선 ‘재수’에 제1정당의 일인자인 이 대표로서 어려운 대목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드라마를 연출할 공간이 부족하고, 그러다 보니 확장력에서도 의문부호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야권 내 독주 체제가 이 대표에게 기회와 위기를 같이 주는 ‘양날의 검’인 셈이다.   윤희웅 대표는 “앞서 민주당이 승리한 2017년 대선에서 민주당은 ‘문재인-안희정-이재명’의 캐릭터가 뚜렷한 후보들이 경쟁하면서 사실상 후보단일화 효과를 얻고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어려워 보인다”며 “지금 민주당은 170석이지만, 지난 총선을 거치며 사실상 ‘이재명당’이 됐다. 대중을 매료시킬 역동성도 부족하고, 확장성에서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는 “반독재·반권위주의, 검찰개혁 등은 이미 앞선 민주당 대선주자들이 모두 활용했기 때문에 큰 흐름을 만들기 어렵다”며 “이 대표는 포용·통합을 기반으로 한 서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전문가들이 눈여겨본 지점은 또 있다.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지지율 박스권에 묶인 가운데, 야권 성향 지지층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1월 2주~2월 1주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정권교체 지지는 53%·48%·49%·50%, 민주당 지지율은 36%· 33%·36%·37%,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는 41%·36%·38%·37%였다. 반면 같은 조사의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민주당 원톱인 이 대표는 31%·28%·28%· 32%에 그쳤다. 마땅한 야권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이 대표가 우호적인 지지층을 모두 끌어들이지 못한 셈이다.   한국갤럽의 조사도 마찬가지다. 1월 4주 정기조사에서 정권교체론은 50%, 민주당 지지율은 40%였지만, 차기 대선 후보로서 이 대표를 선호한다는 응답은 31%에 그쳤다. 그 외 민주당 후보로는 김동연 경기지사(1%)만 이름을 올렸다.   이는 탄핵-조기 대선 국면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던 2017년 대선 상황과도 대비된다. 대선을 4개월 앞두고 발표된 2017년 2월 1주 한국갤럽의 정기조사 중 차기대선 후보 지지율은 문 전 대통령 32%,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은 7%,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는 10%로 민주당 지지율(41%)을 넘어섰다.   조 실장은 “동원력의 한계”를 짚었다. 그는 “이 대표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대표되는 야권의 정통 흐름에서 다소 비켜나 있다. 민주화 운동의 서사도, 586 같은 운동권 계보를 끌어쓸 수 없다”며 “그러다보니 전통적인 지지층을 동원할 ‘서사’가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이 대표는 철저하게 이익분배 정치를 추구한다. ‘기본소득’ ‘양곡법’ 등을 추진하면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외치는 일관성 없어 보이는 행보도 동원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문 전 대통령은 이해찬·586 그룹과 연대했지만, 이 대표는 마땅한 연대세력을 구하지 않고 있다”며 “정권교체론이나 민주당 지지층을 흡수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결국 지지층이 모두 따라오지 않는다는 건 본선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 우클릭은 산토끼 잡는 특효약 될까 그래픽=이현민 기자 이 대표 측은 자신을 둘러싼 부정적 꼬리표를 떼기 위해 ‘우클릭’을 통한 중도 확장에 공을 들였다. 지난해 7월 전당대회 승리한 이후 ‘먹사니즘’을 내세워 금투세 폐지나 상속세 완화를 추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9월 정책 디베이트에 참여한 뒤, 이 대표가 당내 반발에도 ‘폐지’로 결론을 내자 당내에선 “의도된 연출”이란 말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우클릭 자체에 대해선 “대선은 중도층 경쟁인 만큼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그 효과에 대해선 엇갈렸다. 윤희웅 대표는 “이 대표에 대한 중도-보수층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 기대만큼 효과를 얻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회자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로 존경하는 줄 알더라”는 발언이 보여주듯, ‘말 바꾸기’에 대한 신뢰성 지적도 나온다. 최근 반도체법의 52시간 특례 도입에 우호적이던 입장을 뒤집은 것도 마찬가지다. 서너 달 만에 ‘반대→찬성→반대’로 입장이 바뀐 것을 두고 최 소장은 “당내 반발도 있었지만, 금투세만큼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최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국방력 강화는 한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한·미동맹’을 강조했지만, 12·3 비상계엄 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첫 탄핵소추안에서는 한·미·일 동맹에 치우친 외교안보 노선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협했다는 사유를 들었다. 여권에선 7일 “겉과 속이 다른 ‘씨 없는 수박’이 이재명 우클릭의 실체”(권성동 원내대표)라고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 대표 지지율의 박스권 정체도 이런 인식과 무관치 않다고 지적한다. 윤 대표는 “이 대표가 직접 우클릭을 주도하기보다는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처럼 ‘김종인’ 같은 인물을 끌어들여 ‘원팀’을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 여전한 사법리스크 사법리스크도 여전히 숙제다. 이 대표 측은 4일 서울고등법원에 공직선거법 250조 1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서류를 제출했다. 당선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공표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으로 이 대표는 이 조항에 걸려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재판이 중단된다. 민주당을 제외한 여야 정치권에선 일제히 ‘사법 꼼수’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이 대표 측이 이를 강행한 것은 공직선거법 2심을 얼마나 껄끄럽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1심과 유사한 결과가 나오면 이 대표는 다음 대선은 물론이고 향후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다만 정치권 안팎에선 2심 결과가 어떻든 이 대표는 조기 대선에 나설 것으로 본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선반영’과 ‘만만찮은 후폭풍’으로 나뉘었다.   윤희웅 대표는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이자 위기 요인”이라며 “대선후보 확정 후 컨벤션 효과로 이어가는데 제약이 된다. 선거법 위반 2심에서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1심과 유사한 결과가 나온다면 ‘3김’의 이 대표 견제 행보가 더 주목받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윤태곤 실장은 “사법리스크는 이미 반영돼 있다. 물론 선거법 위반 2심이 결코 영향이 없다고 보긴 어렵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이 대표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자연인으로서 재판을 받겠다’고 명확히 대응하고 야권이 뭉친다면 되려 상승 동력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2025.02.08 00:01

  • 무법 광란 되풀이냐 법치 회복이냐, 기로에 선 한국 보수

    무법 광란 되풀이냐 법치 회복이냐, 기로에 선 한국 보수

     ━  서부지법 폭동과 미국 정치의 교훈   2021년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 일부가 미 의회 의사당에 난입,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의 2021년 1월 6일 의회 폭동, 약칭 1·6 폭동은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을 불과 2주 남긴 1기 도널드 트럼프 정권 막판에 일어났다. 그 전부터 줄기차게 부정선거를 주장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 의회가 선거인단 투표를 집계해 공식적으로 인증하는 날, 선거 불복 및 트럼프 지지를 외치는 시위대 앞에서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는 싸울 것입니다. 죽도록 싸울 것입니다(We’ll fight like hell).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으면 다시는 나라를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의회 의사당으로 갈 것입니다.”   정작 이 말을 한 대통령 자신은 의사당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수천 명에 달하는 시위자들이 유리창을 깨고 의사당으로 난입했다. 상당수는 총기로 무장한 상태였고, 경찰을 폭행하고 기물을 파손했으며, 공포에 떨며 대피한 의원들을 찾아다니기까지 했다. 특히 최종적으로 선거 결과를 인증하는 역할을 맡은 당시 부통령 마이크 펜스는 트럼프와 같은 공화당원임에도 큰 위기에 처하고 말았는데, 트럼프는 연설에서 일곱 번이나 펜스를 언급하며 그가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옳은 결정(right thing)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펜스는 그럴 법적인 권한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러자 시위대는 올가미를 갖고 와 “펜스를 목매달아라!”라고 외쳤다.   올가미 들고 “펜스 목매달아라” 외쳐 최종적으로 사태가 진압되기까지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1500명이 기소되었으며, 극우 단체 ‘프라우드 보이즈’의 전 리더인 엔리케 타리오 등 주요 주동자들은 내란 음모 혐의로 수십 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내란 선동 혐의로 탄핵소추되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지난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1·6 폭동 주모자들 14명을 감형하고 나머지 관련자 1500명 가량을 조건 없이 완전 사면(full, complete and unconditional pardon)을 했다. 31일에는 1·6 폭동을 담당하던 검사들 수십 명이 워싱턴 검찰청에서 해고되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운동 기간 의사당 폭동을 자신의 정치적인 자산으로 삼았다. 1월 6일을 ‘사랑의 날’이라고 부르고, 참여자들을 애국자이자 억울하게 수감된 정치적 인질들이라고 부른 바 있으며, 폭동에 가담했던 수감자들로 구성된 J6 교도소 합창단(J6 Prison Choir)과 노래를 녹음해 선거 집회에서 틀었다. 또한 1·6 폭동이 구국을 위한 정당한 항거였다는 식으로 규정하며, 일부 애국자들이 흥분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축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중에 기자가 묻자 트럼프는 태연하게 펜스에 대해서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기자가 펜스 교수형 구호를 직접 들려주자 트럼프는 이렇게 답했다. “상식이기 때문이죠, 존. 지켜야 할 상식이죠. 투표가 부정 투표라는 걸 알면서 어떻게 (펜스는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의회에 전달할 수 있나요?”   트럼프 취임 전날인 1월 19일에 한국에서 벌어진 서울 서부지법 폭동은 미국의 의사당 폭동과 흡사하다. 둘 다 별다른 증거 없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현직 대통령이 있다. 한국의 시위대도 미국의 “도둑질을 멈춰라(Stop the Steal)” 구호를 차용하였으니 사용된 구호도 같다. 둘 다 불법 난입, 경찰 폭행, 그리고 과격한 기물 파손이 동반되었으나, 지지자들은 이를 애국심의 발로이자 정당한 저항권 행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의회 의사당에서 흥분한 폭도들이 “펜스 어딨어! 펠로시(당시 하원의장) 어딨어!”하던 모습은 서부지법에서 폭도들이 쇠몽둥이를 들고 영장판사를 색출하려던 모습과 동일하다. 현장에 있던 취재진 폭행 또한 양쪽 모두 발생했다. 추후 대통령들이 내란죄로 탄핵소추된 것도, 외부의 반대 세력이 폭동을 유도했다는 음모론까지도 똑같다.   미국에서는 폭동 이후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최종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소추는 그의 퇴임 직전 상원에서 3분의 2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되었다. 올해 초 은퇴한 정치인이자 2012년 공화당 대선주자였던 밋 롬니는 2023년 디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공화당 의원들이 자신이나 가족에게 물리적인 위해가 가해질까 두려워 트럼프 탄핵에 반대표를 던졌다고 실토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폭동의 충격은 희미해졌고,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관련자 기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의 비율이 특히 공화당 지지층 사이에서 줄어들었다. 마침내 재임에 성공한 트럼프의 의사당 폭도 사면은 예상된 바임에도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는 어떠한 폭력도 현재 권력의 입맛에만 맞으면 괜찮다는 메시지를 남겼으며,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법부의 판결과 권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 직전 바이든의 가족 사면도 마찬가지로 잘못된 선례였음은 물론이다!)   미국의 사례에 비추어 한국 사회가 선 기로에 대해 생각한다. 미 상원의원들처럼 법관들이 자신이나 가족이 화를 입을까 근심하고, 취재진들이 협박 및 폭행당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서부지법 폭동은 눈앞에 보이는 부서진 기물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법치주의, 그리고 언론의 자유에 큰 상해를 입힌 것이다. 게다가 두 나라 모두에서 폭동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향후 정치권이 폭동을 어떻게 다루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유사한 사건들이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것이다. 다음 보수 대선후보가 부정선거론을 전면에 내걸고, 폭도들을 정치적 인질이자 애국의 상징으로 옹호하며 정권을 잡게 되면 이들을 사면하는 것이다. 정반대의 시나리오는 각계가 한목소리로 서부지법 폭동을 규탄하고, 다시는 법치주의에 대한 폭력적인 도전을 용인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며, 현행범들은 물론이고 타리오처럼 현장에 없었더라도 폭동을 조직적으로 선동한 인물들 또한 엄벌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 두 번째 폭동 별러 지난달 19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일부 시위대가 법원에 난입, 기물을 훼손하고 있다. [뉴스1] 물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서부지법의 결정에 반대할 수 있다. 특히 공수처의 설립이 민주당 등 야당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졌던 걸 생각하면, 또 윤 대통령 영장 발부 및 구속이 비교적 빠르게 이루어진 것(일부에선 절차적 정당성을 지적한다)을 생각하면 작금의 흐름에 대해 반발할 수는 있다. 하지만 넘지 말아야 할 마지노선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2월 1일 윤 대통령 측은 국민변호인단을 모집한다며 모임을 열어 현재 상황이 반민주, 반법치 세력과의 “거룩한 싸움”이라며 도와달라고 당부하였다. 일부 지지자들은 “국민들이 헌재를 휩쓸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를 보면 헌법재판관들이 위협받고 혹여 헌법재판소에서 두 번째 폭동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우려하게 된다.  모 정치인은 체포된 청년들이 안타깝다며 무료 변론을 제안하고, 추가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어떤 지지자들은 국민의힘에서 변호사를 붙여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호소하고 있다. 이 기로에서 국민의힘은, 한국의 보수는 윤 정권 이후로 어떤 가치와 정책적 입장을 계승할 것인가. 서부지법 사태를 확실하게 규탄하고 거리를 둘 것인가, 아니면 지지자들을 잃을까 두려워 애매한 태도를 유지하며 침묵할 것인가.   롬니는 의사당 폭동 당일 저녁, 상원이 선거 결과를 인증하기 위하여 재소집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우리는 공화국의 힘, 민주주의의 힘, 그리고 자유라는 대의보다 우리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더 중하게 여기고 있는가?(Do we weigh our own political fortunes more heavily than we weigh the strength of our Republic, the strength of our democracy, and the cause of freedom?)” 이 혼란 속에서 각 정당 그리고 정치인 개개인은 어떤 가치를 가장 중하게 지킬 것인가.   김서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 조교수.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사회과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정치, 정치학 방법론, 계산사회과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미국 아메리칸대에서 3년, 서강대에서 1년을 거쳐 서울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2025.02.08 00:01

  • 지역경제 살리고 세제혜택까지, ‘고향사랑기부제’ 큰 호응

    지역경제 살리고 세제혜택까지, ‘고향사랑기부제’ 큰 호응

     ━  바뀌는 기부 문화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기부자들의 큰 호응을 이끈 듯싶습니다.”   김태범 행정안전부 고향사랑기부제도팀장은 고향사랑기부제가 단기간에 새로운 기부 문화로 자리 잡은 데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고향 등 현재 주소지 외 지자체에 자유롭게 기부할 수 있는 제도로 2023년 처음 도입됐다. 열악한 지방재정 확충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해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려는 취지였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호응은 예상외로 컸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부액은 시행 첫해보다 37% 증가한 890억원에 달했다. 기부 건수도 79만 건으로 전년에 비해 50% 가까이 늘었다. 기부자들도 애향심에 더해 10만원까지 100% 세액공제가 되는 데다 기부 지역 특산품과 지역상품권 등을 답례로 받을 수 있다 보니 기꺼이 동참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지자체도 살림살이에 큰 도움이 되고, 기부자도 세제 혜택과 고향 특산물을 받고, 지역주민도 소득이 증대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게 된 셈이다.   관련기사 행복한 전염, 풀뿌리 기부 갈수록 번진다 “대세는 얼굴 내미는 천사…기부도 전염되고 습관 된다” 이에 행안부도 당초 연 500만원이었던 기부 한도를 올해부터 2000만원으로 상향하는 등 고향사랑기부제를 더욱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이에 대해 김 팀장은 기부자들이 ‘기부 효능감’을 크게 느끼는 것도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내가 기부한 돈이 실제로 어디에 쓰이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기부자들의 만족도가 높다”며 “고향에 꼭 필요한 사업을 직접 지원할 수 있다는 점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끈 요소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실제로 전남 곡성군은 지난해 고향사랑기부금을 통해 군내 유일한 소아과를 처음 개원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동안 곡성군은 수차례 소아과 전문의를 모집했지만 열악한 군 예산으로는 전문의 연봉을 맞추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곡성군의 부모들은 아이가 아프면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차로 한 시간 거리인 광주광역시로 달려가야만 했다. 곡성 출신인 김모(52)씨는 “고향에 소아과가 없어서 부모들이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렸을 적 뛰놀던 동네 골목길이 떠올랐다”며 “서울로 올라온 지 20년이 지났는데 기부를 통해 조금이나마 고향이 보탬이 됐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했다”고 말했다.   충남 청양군에도 고향을 생각하는 이들의 기부 행렬이 이어졌다. 특히 지난해 6월 탁구 특화학교인 정산초·정산중·정산고교가 훈련 용품과 대회 출전비 마련을 위한 지정 기부제를 시행하자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성원이 잇따랐다. 당초 5000만원이 목표였는데 71일 만에 5338만원을 모금해 목표를 조기에 초과 달성한 데 이어 지난해까지 목표액의 네 배가 넘는 2억2700만원을 모으는 성과를 거뒀다.   한재선 청양군 관광기획팀장은 “고향 아이들의 꿈을 응원한다는 마음이 적극적인 기부로 이어지는 모습”이라며 “기부자들의 뜻을 담아 선수 육성과 지원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올해 상반기 중 시중은행 앱을 통해서도 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등 보다 쉽고 투명한 기부 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2025.02.01 01:23

  • "대세는 얼굴 내미는 천사…기부도 전염되고 습관 된다"

    "대세는 얼굴 내미는 천사…기부도 전염되고 습관 된다"

     ━  바뀌는 기부 문화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가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남을 도울 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가 미덕일 때가 있었어요. 기부자에게 지나치게 높은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기부를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고요. 그런데 요즘은 ‘얼굴 내미는 천사’가 대세가 됐어요.”   황신애(52)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최근 기부 방식과 트렌드가 예전과 사뭇 달라지고 있는 데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특히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에 의미를 더하기 위한 적극적인 기부가 크게 늘어난 점도 주목할 만하다. 팬클럽이나 동호회 차원에서 함께하는 기부가 대표적”이라면서다.   관련기사 행복한 전염, 풀뿌리 기부 갈수록 번진다 지역경제 살리고 세제혜택까지, ‘고향사랑기부제’ 큰 호응 국내 1호 ‘펀드레이저(기부 모금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황 이사는 1999년부터 한국외국어대·서울대·건국대·월드비전 등에서 모금 활동 전문가로 활약해 왔다. 그와 그가 속한 팀이 모금한 기부금만 5000억원이 넘는다. 이후 2014년 비정부기구(NGO)와 각종 시민·사회단체의 모금 활동을 지원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인 한국모금가협회에 창립 멤버로 합류한 뒤 한국의 기부 문화 활성화에 앞장서 왔다.   황 이사는 “26년 전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기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며 “지금은 1000명이 넘는 펀드레이저가 활동하는 것만 봐도 그동안 기부 문화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생 모은 유산 쾌척…고액기부도 급증 주목할 만한 최근의 기부 트렌드는. “개인 기부자의 경우 과거엔 소액 정기 기부가 주를 이뤘다. 그런데 최근엔 상당한 금액을, 그것도 수차례 반복해서 내는 고액기부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유산 기부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영국의 경우 유산 기부가 전체 개인 기부의 30%를 차지하는 반면 국내는 이제 시작 단계다. 유산 기부는 일반적인 기부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일반 기부는 대개 급여의 일부를 내는 거지만 유산 기부는 인생 전체를 살아오면서 모은 재산의 일부 혹은 전액을 내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25년간 10억원 넘게 기부한 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지난해 12월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에 두고 간 성금 상자. [사진 전주시] 황 이사는 “유산 기부 약정을 체결해도 사망할 때까지는 집행되지 않는 만큼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 기부 문화가 성숙될수록 유산 기부를 비롯한 고액 기부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관련 법률은 물론 기부자의 인생 철학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시스템 구축과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불경기에 오히려 기부액이 증가하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돈으로 하는 기부만 기부가 아니다. 마음의 나눔도 기부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면 경기가 나쁠수록 기부를 주저하겠지만, 마음의 관점에선 사는 게 힘들수록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경향이 강했던 게 현실이다. 역사적으로도 국채보상운동부터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까지 나라가 위기에 처할수록 함께 힘을 모으지 않았나. 우리 사회가 점점 삭막해진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타적인 분들이 많다. 특히 잉여 자산뿐 아니라 내가 가진 조그만 것이라도 기꺼이 나누려는 마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부 문화가 한층 성숙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그는 일각에서 기부를 주저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로 기부 단체의 신뢰성을 꼽는 데 대해서도 “기부 단체 활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긴 현상으로 본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기부 사업은 단기·중기·장기 사업으로 나뉜다. 예컨대 자연재해 피해를 입은 이재민에게 라면이나 텐트 등 생필품을 공급하는 건 당장 실행해야 하는 단기 사업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들에 대한 심리 치료나 주택 재건 등도 중장기 사업으로 지속해 나가야 한다. 이에 따라 기부 단체들도 후원금을 한 번에 다 쓰지 않고 필요한 단계에 맞춰 나눠 쓰게 되는데, 우리 사회는 당장 기부금을 다 쓰지 않으면 불신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황 이사는 그러면서 “모든 기부금이 투명하게 집행되고 있으니 ‘믿어달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며 “물론 기부 단체들도 중장기적 계획과 비전을 제시하는 등 설득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부자·단체 오해없도록 법 표준화해야 기부하고 싶지만 경제적 여건이 안 돼 어쩔 수 없다는 이들도 적잖다. “돈이 많아야 기부한다는 편견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기부를 실천할 수 있고, 나의 작은 희생이 누군가의 삶엔 큰 힘이 될 수 있다. 소액이라도 꾸준히 후원하는 게 당장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겐 그 무엇보다 소중한 버팀목이 될 거다. 내 주변의 이웃들을 미력하나마 도울 수 있다는 것, 그런 경험이 하나씩 쌓여 나갈 때 우리 사회도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황 이사는 “선한 일은 전염성이 강해서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잊지 않고 갚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기부하는 주변 사람에 자극받아 따라 하는 학습 효과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기부 경험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이는 곧 그 사회의 문화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진국에선 아이가 어릴 때부터 소액이라도 기부하는 습관을 들이게 하고 학교에서 기부에 대한 교육을 중요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앞으로 개선·보완돼야 할 점이 있다면. “지난해 기부금품법이 개정되면서 감독·규제 위주였던 기존 정책에서 탈피해 투명성을 높이며 기부 활성화와 건전한 기부 문화 정착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게 됐다. 다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모금하는 경우에만 등록하게 돼있는 제도는 여전히 개선 과제로 남아 있다. 기부 문화가 발달한 미국과 영국 등에선 일부 소규모 단체를 제외하곤 모든 모금 단체가 등록해야 하고 지켜야 하는 기본 원칙도 지역에 관계없이 동일하고 명확하다. 반면 우리는 행정법과 세법이 다르고 지역마다 조례도 제각각이다. 결국 중요한 건 투명성과 소통이지 않겠나. 기부자와 단체 사이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관련법과 조례를 표준화하는 작업이 필요한 때다.”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2025.02.01 01:18

  • 행복한 전염, 풀뿌리 기부 갈수록 번진다

    행복한 전염, 풀뿌리 기부 갈수록 번진다

     ━  바뀌는 기부 문화   “베푸니까 행복해요. 비록 소액이지만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어 기쁩니다.”   수원에 사는 신혼부부 김지연(33)씨는 지난해 결혼을 준비하며 인생 첫 기부를 실천했다. 굿네이버스가 진행하는 보건의료 지원 사업에 매달 2만원씩 후원하기로 약정하고 받은 ‘기부 반지’로 결혼반지를 대신했다. 김씨는 “결혼식도 간소하게 치르기로 남편과 합의했는데 비싼 예물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손에 낀 결혼반지를 볼 때마다 조금이나마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뿌듯함이 드는 건 덤”이라고 말했다.   지난 연말연시에도 전국 곳곳에서 각계각층의 기부 행렬이 줄을 이었다. 31일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두 달간 진행한 ‘희망 2025 나눔 캠페인’에 총 4857억원이 모금됐다.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기부액이 줄지 않을까 우려도 적잖았지만 오히려 역대 최대 모금액을 기록한 전년도보다 하루 빠른 지난해 12월 13일 당초 목표액인 4497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최종 모금액도 전년도와 거의 비슷한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병준 모금회장은 “고물가·고금리 등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개인과 법인 모두 기꺼이 동참해줘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지역경제 살리고 세제혜택까지, ‘고향사랑기부제’ 큰 호응 “대세는 얼굴 내미는 천사…기부도 전염되고 습관 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기부에 인색한 나라’로 꼽혔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발표한 지난해 세계기부지수(WGI)도 142개국 중 88위에 그쳤다. 코로나 위기를 겪던 2021년엔 110위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1~2년 새 눈에 띄게 기부가 늘고 있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전언이다. 무엇보다 단돈 몇만원이라도 내 이웃을 돕는 데 쓰겠다는 ‘풀뿌리 기부 문화’가 널리 확산된 데다 기부 채널과 방식도 한층 다양해지면서 기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  어려운 시기일수록 ‘십시일반’…개인 기부 연 11조 넘어섰다   지난해 12월 31일 무안공항의 한 커피 전문점에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을 위한 선결제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이처럼 경기 불황과 기부에 인색하다는 사회 통념에도 개인 기부가 꾸준히 늘고 있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경기가 침체될수록 오히려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강동우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해외에서도 경기가 나쁠 때 오히려 개인 기부액이 증가하는 경우를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며 “어려운 시기일수록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이타적 행위에 십시일반 동참하고 나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국내 기부금(개인·법인) 총액은 16조280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9304억원 늘었다. 증가세는 개인 기부가 주도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도 꾸준히 상승한 개인 기부액은 2021년 10조원을 처음 돌파한 데 이어 2023년엔 전년보다 8450억원 증가한 11조5444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2023년 법인 기부액은 4조4836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854억원 증가에 그쳤다.   장윤주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연구사업팀장은 “1999년 1조원 미만이던 개인 기부금이 지속적으로 늘면서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70%를 넘어섰다”며 “기부금 증가율도 개인이 법인보다 두 배 이상 높다”고 설명했다. 개인 기부자 수도 2015년 520만 명에서 2022년엔 737만 명으로 크게 늘었다.   ‘아너 소사이어티’ 자영업·젊은 직장인 늘어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 [사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 같은 흐름엔 기부할 수 있는 채널이 한층 다양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이동선(32)씨는 지난해 9월 ‘생명 사랑 밤길 걷기’ 자살예방캠페인에 참여해 10만원을 기부했다. 생명의전화가 주관하는 이 캠페인은 청소년 10만 명당 7.2명, 일평균 35.4명이 자살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함께 개선해 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참가자가 한강공원을 걸은 거리만큼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방식이다. 이씨는 “기부라고 하면 일방적으로 돈을 입금하는 방식만 떠올라 거부감이 없지 않았는데 직접 이벤트에 동참하니 기부하는 의미도 되새길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또 굿네이버스는 각자 달린 만큼 희귀질환 환자에게 기부금이 전달되는 ‘러닝포엔젤’ 캠페인을 벌이는 등 MZ세대가 관심을 가질 만한 다양한 기부 캠페인도 속속 선을 보이고 있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개인이 일상에서도 쉽게 기부할 수 있는 통로가 늘면서 ‘기부가 특별히 크게 결심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정보통신(IT) 기술의 발달도 기부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요인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고액 기부 행렬에 고소득자는 물론 평범한 중산층 시민들의 동참이 잇따르는 것도 새로운 추세 중 하나다. 전북 전주에 사는 이희상(45)씨 부부는 지난해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007년 발족한 모임으로 5년 내 1억원 이상 기부했거나 약정한 개인 기부자들이 가입 대상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배를 곯기 일쑤였던 이씨는 어엿한 직장인이 된 뒤에도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는 “먹을 게 넘쳐나는 시대에 아직도 먹고 싶은 음식을 맘껏 맛보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니 제 유년시절이 생각났다”며 “풍족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아내도 흔쾌히 동의해 함께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가 2020년 이후 기부한 1억2000만원은 도내 지역아동센터 간식비와 긴급 생계비로 요긴하게 쓰였다.   모금회에 따르면 현재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은 3603명으로 지난해에만 263명이 새로 가입했다. 이들이 약정한 기부금도 4098억원에 달한다. 모금회 관계자는 “초기엔 기업인이나 전문직 등 고액 소득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들어 젊은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의 가입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며 “부부와 가족도 함께 가입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는 마음이 우리 사회 전반에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선결제, 새 기부 트렌드…2030 중심 확산 그래픽=이현민 기자 고령자를 중심으로 유산 기부가 늘고 있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대구에 사는 김기호(90)씨는 8년 전 현재 거주하는 30평대 아파트를 사후에 기부하겠다는 공정증서를 썼다. 김씨가 유산 기부를 결심한 데는 2012년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의 뜻이 담겨 있었다. 김씨는 “남편은 항상 이웃에 베풀고 봉사하는 삶을 살길 원했다”며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데, 평생 모은 유산을 사회에 환원하면 남편도 크게 기뻐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모금회도 2005년부터 부동산·보험금·조의금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유산 기부를 받고 있다. 모금회 관계자는 “상속인이 상속세 신고 기한 내 기부하는 유산은 상속세와 증여세 과세가액에서 제외된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선결제 문화가 새로운 기부 트렌드로 떠올랐다. 지난 연말 거리 집회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도 선결제 행렬이 줄을 이었다. 선결제는 카페나 식당 방문객이 커피나 빵·음식 등을 무료로 구입할 수 있도록 미리 비용을 치르는 기부 행위로, 특히 2030세대를 중심으로 SNS에 선결제 영수증 인증샷을 올리는 릴레이 캠페인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기부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 개선에도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다.   기부 문화가 확산되자 정부도 제도 정비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해 1월엔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도 2006년 이후 18년 만에 개정했다. 과도한 규제 완화를 통해 기부 활성화와 건전한 기부 문화 정착을 도모하려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학계와 시민단체에선 기부금 관리 체계 등도 시대 흐름에 맞게 보완·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기부 단체를 관리하고 지원할 기구를 마련하면 투명성과 신뢰도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기부 단체의 캠페인 경쟁이 과열될 경우 자칫 ‘기부 피로감’을 야기할 수 있다”며 “기부 문화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차원에서 미국 최대 규모의 기부재단인 ‘유나이티드 웨이’처럼 기부금 모금과 배분을 통합해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허정연·원동욱 기자 jypower@joongang.co.kr

    2025.02.01 00:01

  • “생일 챙겨주고 집안일 척척…로봇 세상 빠르게 다가온다”

    “생일 챙겨주고 집안일 척척…로봇 세상 빠르게 다가온다”

     ━  휴머노이드 시대 성큼   2035년, 인간은 로봇으로 인해 매우 편리한 삶을 살아간다. 완벽한 형태·지능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가사는 물론 주요 산업 현장에서 인간을 대신한다. 2004년 개봉한 영화 ‘아이, 로봇’의 한 장면이다. 그런데, 10년 이내에 영화 속 모습은 현실이 될 전망이다. 로봇이 사람 대신 택배를 가져오고, 커피를 내리고,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향은(사진) LG전자 HS사업본부 CX담당(상무)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로봇이 인공지능(AI)을 만나 휴머노이드 시대를 앞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로봇의 고객 경험을 연구하는 그에게 로봇이 우리 생활에 미칠 영향 등을 물었다.   휴머노이드가 보편화하면 우리 생활은 어떻게 바뀔까. “가정용 로봇은, 택배를 나르거나 식사를 준비하는 물리적 단계를 넘어 사용자의 패턴을 분석하는 인지적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런 로봇이 상용화한다면 사람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집안일을 대신하고, 가족 구성원의 정서적 안정과 즐거움을 지원할 것이다. (사용자가) 심심할 때 대화를 나누거나 보드게임을 같이 할 수도 있고, 특별한 날을 기억하고 챙겨주는 식이다. 물리·인지·정서적 기능을 모두 갖추게 되면 우리의 삶도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로봇에 대한 거부감도 있을 텐데. “로봇은 과거 공장에서나 쓰는 장비로만 인식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상점과 같은 상업 공간을 넘어 일반 가정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의 진보를 넘어, 로봇이 우리 일상 속에서 든든한 조력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주목할 만한 점은 로봇 청소기나 AI 스피커와 같은 스마트 기기가 보편화하면서 로봇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봇을 낯설거나 두려운 대상이 아닌 생활 편의를 높여주는 실용적 도구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대중화도 이러한 인식 변화에 크게 이바지한 것 같다.”   관련기사 AI와 결합한 ‘휴머노이드’ 자동차 공장 생산직 된다 마라톤까지 뛰는 중국 ‘톈궁’, 일본은 제조용 로봇 치중 영화 속 모습이 실현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올해 미국 IT·가전 박람회(CES 2025)에서 우리는 ‘물리적 인공지능(Physical AI)’ 시대의 개막을 목격했다. AI가 제공하는 고도의 자율성과 지능형 동작은 로봇의 활용 범위를 확장했다. 로봇은 이제 단순한 반복 작업을 넘어 인간과 자연스럽게 협업하고, 복잡한 집안일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다만,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 생활에 스며들기 시작했다고 본다. 스마트폰이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듯 로봇 역시 우리의 일상과 함께 점진적으로 융화돼 갈 것이다.”   로봇 개발에 기술적 문제가 있다면. “이동하거나 물건을 드는 등의 기계적 기술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의 감동을 끌어낼 수 있는 인터랙션(양방향) 기술은 아직 발전 과정에 있다. 이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로봇이 진정한 생활 파트너로 자리 잡는 데 있어 중요한 과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사용자가 로봇을 신뢰하고, 일상적인 동반자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사용자 경험의 질적 향상과 함께 로봇과 인간 간 상호작용을 더욱 자연스럽고 효율적으로 만들어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2025.01.25 01:01

  • 마라톤까지 뛰는 중국 ‘톈궁’, 일본은 제조용 로봇 치중

    마라톤까지 뛰는 중국 ‘톈궁’, 일본은 제조용 로봇 치중

     ━  휴머노이드 시대 성큼   중국의 로봇 업체인 유비테크가 개발한 인간형 로봇 워커엑스(Walker X). [신화통신=연합뉴스] 중국의 시나뉴스는 13일 인간과 똑같이 걷는 로봇의 보행 테스트 영상을 보도했다. 시나뉴스에 따르면 중국 선전시의 중칭로봇테크가 만든 ‘SE01’ 로봇은 현존하는 로봇 중에 인간과 가장 유사한 걸음걸이를 가졌다. SE01은 높이 170㎝, 무게 55㎏으로 엉거주춤한 자세로 어색하게 걷던 기존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와는 전혀 다르다. 얼핏 보면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이질감이 없다. 회사 측은 시나뉴스에 “인공지능(AI) 강화학습과 모방학습을 결합한 신경망 모델 덕에 자연스러운 보행이 가능하다”며 “SE01을 짐 운반 등의 산업용으로 출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중국은 반도체·전기차 산업에 이어 로봇 산업도 중앙정부가 직접 육성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일본 등 주변 국가를 앞서가고 있다. 한국무역투자공사(KOTRA)에 따르면 중국은 2021년 ‘스마트제조 14차 5개년 계획’을 통해 스마트 모바일 로봇, 반도체 로봇, 협업 로봇, 자기적응 로봇 등 신형 장비 발전 촉진 방안을 수립했다. 2023년 11월에는 휴머노이드 육성책인 ‘휴머노이드 혁신발전 정책(지도의견)’을 발표했다. 2027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 기술 달성이 목표로, 이른바 중국의 ‘로봇 굴기(倔起·우뚝 선다는 의미)’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이 덕에 2010년대 들어 유비테크를 비롯한 스타트업이 등장,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현재 선전·베이징·상하이 3대 지역에 거점을 둔 스타트업 30곳 이상이 중국 휴머노이드 생태계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기술도 주변국을 압도한다. 중국 인민망연구원이 2023년 11월 발표한 휴머노이드 기술 특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 특허 출원 건수는 누적 6618건으로, 2위 일본(6058건)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한국 특허청이 2021년 기준 한국·미국·유럽연합(EU)·중국·일본의 AI 로봇 특허를 분석한 결과도 비슷하다. 중국이 3313건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은 중국의 절반도 안 되는 1367건에 그쳤다.   관련기사 AI와 결합한 ‘휴머노이드’ 자동차 공장 생산직 된다 “생일 챙겨주고 집안일 척척…로봇 세상 빠르게 다가온다” 자신감도 넘친다. 중국은 4월 베이징에서 세계 최초로 두 발로 걷거나 뛸 수 있는 휴머노이드 수십 대가 참가하는 마라톤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20여 개 중국 기업이 개발한 휴머노이드가 21㎞를 달린다. 앞선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하프 마라톤에 베이징 휴머노이드로봇혁신센터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톈궁’이 참가해 완주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중앙정부의 지원 덕에 중국의 휴머노이드 기술 수준은 한국을 이미 뛰어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중국은 한국보다 앞서 있고 미국을 바짝 쫓아가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1973년 세계 최초의 휴머노이드 ‘와봇1’을 개발한 일본 역시 휴머노이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은 어설프지만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와봇1에 이어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치던 ‘와봇2’(1984년), 걷기와 뛰기를 한 ‘아시모’(2000년)를 개발한 바 있다. 일본은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에 뒤처진다는 평가가 많다. 아베 신조 정부 때인 2015년 정부가 ‘로봇 신전략’을 통해 로봇 산업을 육성해 왔지만, 고령화 등으로 인한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조용 로봇에 집중한 결과다.   이 덕에 일본은 전 세계 제조용 로봇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휴머노이드 분야에선 철도회사인 JR서일본이 지난해 7월 철도 설비 유지·보수에 휴머노이드를 투입하기 시작한 정도에 그친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휴머노이드 개발을 위해 반도체와 AI 분야에 91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소프트뱅크도 매년 11조7000억원을 AI에 투자하고, 자체 AI 반도체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2020년대 들어 제조용 로봇이 크게 늘고 있는 EU도 차세대 핵심 전략산업으로 로봇을 선정하고, 연구기금 지원제도인 ‘호라이즌 2020’을 중심으로 민관협력(SPARC)을 통한 로봇 기술 개발에 나섰다. EU는 2028년까지 955억 유로(약 140조원)를 투입해 인공지능·로봇을 포함한 EU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로봇에 AI를 접목하기 위한 로보사피엔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로보사피엔스는 제조용 로봇이 재프로그래밍 없이 AI를 통해 새로운 작업을 학습할 수 있는 로봇을 지향한다. EU는 로보사피엔스가 제조업·의료·물류와 같은 분야에서 효율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2025.01.25 00:59

  • “세계 경제는 장밋빛인데 우리만 왜 어려운지 가슴 답답”

    “세계 경제는 장밋빛인데 우리만 왜 어려운지 가슴 답답”

     ━  김동연 지사가 본 다보스 포럼   스위스에서 돌연 어느 건물에 감금당한 적이 있다. 지난해 다보스 포럼 때 일이다. 인도에서 가장 큰 주(州)의 주지사와 양자 회담을 하고 나오는데 경찰이 문을 막았다.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었다. 30분 회담하고 1시간 동안 발이 묶였다.   다보스에 온 딱 한 사람의 경호를 위해서였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 그가 지나는 길에 테러 공격이 있을까 봐 인근 건물 주변을 모두 봉쇄한 것이다. 나라가 어려워 받은 특별대우라고나 할까. 다보스 포럼엔 종종 이런 ‘뜨거운 감자’가 있다. 지난해엔 젤렌스키였다.   손글씨로 ‘Trust in Korea’ 쓴 명함 건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제55차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다보스 포럼 초청을 받았다. 한국 정치인으로는 유일했다. 다보스 출발 며칠 전 주최 측으로부터 특별한 요청을 받았다. 세계 언론인을 상대로 하는 ‘미디어 리더 브리핑’에서 “한국을 대표해서 최근 상황을 설명해 주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져달라”는 것이었다. 야당 정치인이 한국에 대한 미디어 브리핑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만큼은 아니지만, 세계 13위 경제 선진국에서 계엄과 탄핵이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였다.   흔쾌히 수락했다. 다보스 출장의 가장 큰 목적은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를 세계 지도자들에게 심어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난해엔 ‘젤렌스키’, 올해는 ‘윤석열발 쿠데타’가 뜨거운 감자가 된 것 같아서였다.   사실 다보스와 워싱턴을 놓고 고민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을 받았고 주위에선 참관을 권했다. 더군다나 워싱턴은 4년 가까이 세계은행에 근무하며 다른 어떤 곳보다 친근한 곳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다보스행’을 결정했다. ‘사진’보다 ‘내실’을 기하고 싶었다. 취임식에 가도 멀리서 구경만 하고 유력 인사를 만나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다보스에서 ‘트럼프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게리 콘(Gary D. Cohn) IBM 부회장은 트럼프 1기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출신이다. 우리로 치면 대통령 정책실장 격이다. 당시 경제부총리였기 때문에 알고 지낸 사이였다. 7년 만에 다보스에서 반갑게 재회하면서 한미관계에 관한 속 깊은 대화를 나눴다. 정보교환, 그리고 경기도와 트럼프 정부 간의 가교역할을 약속했다.   사라 샌더스(Sarah Huckabee Sanders) 아칸소 주지사는 트럼프 1기 백악관 대변인을 지냈다. ‘트럼프의 입’ 역할을 하던 핵심 최측근 인사 중 하나다. 아칸소 최연소 여성 주지사로, 미국 정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샌더스 주지사와는 배터리, 스타트업, 자동차 산업 분야의 협력뿐 아니라 앞으로의 한미관계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미디어 리더 브리핑’에는 이름만 대도 아는 워싱턴에서 온 중견 언론인도 있었다. 트럼프 취임, 그리고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섰을 때 한미관계에 대해 물었다. 중요한 주제여서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식 당일 평택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의 주한 미군 장병들과 영상 통화를 한 것을 상기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김정은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 한국은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질문했다. 기자에게 힘주어 답했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 외교의 린치핀(핵심축)이다. 다음 대선에서 누가 집권을 해도, 내가 속한 민주당이 집권해도 한미관계는 변함없이 굳건할 것이다.”   다보스에 오면서 단단히 각오했다. 야당 출신 도지사지만 ‘세계 경제올림픽’인 다보스 포럼에 ‘대한민국 경제 국가대표’라고 생각했다. 참석한 세션에서, 수많은 정치·경제지도자들을 만나면서 한국 경제의 잠재력과 회복 탄력성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영문 명함에는 손으로 ‘Trust in Korea! (한국을 믿어야!)’라고 힘주어 써 건넸다. 잘 아는 사이지만, 이 명함을 받은 세계경제포럼(WEF)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회장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면서 “김 지사의 리더십과 한국 경제를 믿는다”고 답했다.   해법도 제시했다. 첫째는 정치다. 헌법재판소의 신속한 탄핵 인용이다. 전 국민에게 생중계된 증거가 차고 넘친다. 조기 대선에서는 반드시 정권교체가 이뤄져야 한다. 불법 계엄을 저지른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다시 정권을 잡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내전 수준 증오의 한국 정치 리셋해야 22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게리 콘 IBM 부회장과 만나고 있다. [사진 김동연 지사] 둘째는 경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경제정책의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역주행과 실정을 바로 잡아야 한다. 확장재정, 제대로 된 조세정책, 미래먹거리를 위한 과감한 산업정책, 사회 안전망 확충, 기후위기에 대한 적극 대처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전환기 리더십 공백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함께 제시했다. 이미 트럼프 쪽에서는 ‘대행 정부’를 상대하지 않겠다며 한국에 상대할 얼굴이 없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하고 급변하는 국제경제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할 ‘경제전권특명대사’가 필요하다. 여·야·정 합의로 임명해야 한다. 여당과 정부가 야당에 추천을 의뢰하면 더 좋을 것이다.   ‘미디어 리더 브리핑’에서는 10여 개의 질문이 쏟아졌다. 한국 상황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어 놀랐다. 최근 국내 여론조사에서 여당과 야당의 지지율이 역전됐다는 조사 결과를 알고 ‘민주당의 대선 전망’까지 묻기도 했다. 두 명의 기자는 내게 대선 출마 의사를 물었다. 내 답은 간명했다. “수레를 말 앞에 둘 순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선(先) 내란 단죄와 정치적 불확실성의 제거다. 경제를 살리는 첫걸음이다.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에서 개인의 정치적 욕심을 앞세운다면 제대로 된 정치인이 아니다. 나라와 국민을 앞에 둬야 한다. 이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다보스에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 하나는 정부, 다른 하나는 기업의 세계다. 수천 명의 정부 고위인사, 영향력 있는 기업인, 국제기구 수장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미래를 논하는 ‘파워 네트워크의 장’이다. 그중에서도 50명만 초청받는 특별한 포럼이 있다. ‘비공식 세계경제지도자모임’(IGWEL)이다. 주요국 재무장관, 중앙은행장, 국제기구 대표 등이 참석하는데, 지난해에 이어 다시 초대됐다.   게오르기에바(Kristalina Georgieva)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사회를 맡아 올해 경제를 전망하는 투표를 거수로 한다. 지난해보다 세계 경제가 좋아질지, 비슷할지, 나빠질지를 묻는다. 이번 모임에서는 참석자 대부분이 좋아질 것이라는데 손을 들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왜 우리 경제만 이렇게 추락하고 민생은 어려운가.   올해도 다보스에서 각국의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새로운 성장모델 발굴, 기후변화 대응, 사람에 대한 투자, AI를 포함한 기술진보 등의 의제를 토론하며 갈 길을 찾았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어떤 주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가. 정쟁, 기득권 유지와 확장, 내 편 네 편 가르기, 가히 내전 수준의 증오 정치 같은 것은 아닌지.   우리의 갈 길은 어디인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포럼 참석 중 야외에서 짧은 동영상을 하나 찍었다. 정책연구소 ‘일곱번째나라LAB’이 요청한 창립 심포지엄 축사였다. 축사의 일부를 소개한다.   “대통령 파면만으로 안 됩니다. 정권교체만으로도 부족합니다. 대한민국을 리셋하고 ‘제7 공화국’을 출범시켜야 합니다. 새로운 ‘사회대계약’이 필요합니다. 1987년 만든 첫 번째 사회대계약은 이제 수명을 다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제2의 사회대계약이 필요합니다. 제가 몸담은 민주당부터 겸허하게 기득권을 내려놓읍시다. 다양한 가치를 표방하는 정치세력, 시민사회,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함께 힘을 합쳐 새로운 사회대계약을 만듭시다.”   만 3일 간의 다보스, 포럼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국제신용평가사 S&P의 글로벌 평가단 사장과의 만남이었다. 대한민국의 국가신인도가 걱정돼 마지막까지 짬을 내 만났다. 귀국 비행기를 타러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차 안에서 원고를 쓰며, 최근의 사태와 혼란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계기가 되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눈 내리는 다보스를 떠나며 다진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2025.01.25 00:08

  • AI와 결합한 ‘휴머노이드’ 자동차 공장 생산직 된다

    AI와 결합한 ‘휴머노이드’ 자동차 공장 생산직 된다

     ━  휴머노이드 시대 성큼   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에서 생산성을 향상시켰던 로봇이 AI와 본격 결합하면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시대’가 열린다.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인지적 지능을 갖추고, 인체와 유사한 외형을 갖춘 휴머노이드가 산업현장과 일상에서 사람과 공존하는 시대가 본격 도래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글로벌 제조업 기업은 물론 빅테크 기업까지도 휴머노이드 산업에 뛰어드는 모양새다. 휴머노이드 시장 최전선을 달리는 테슬라를 비롯해 어질리티로보틱스, 보스턴다이내믹스 등 전 세계 로봇 기업은 올해 연거푸 신제품 출시를 예고하면서 시장 선점에 도전한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은 2025년 15억 달러(약 2조1645억원)에서 2035년 378억 달러(약 54조5454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GPU(그래픽처리장치) 칩 ‘쿠다(CUDA)’로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는 지난 CES에서 “로봇과 자율주행차를 설계하는 AI 플랫폼 ‘코스모스(Cosmos)’를 전 세계에 개방하겠다”고 말하며 휴머노이드 개발 전쟁에 참전을 선언하기도 했다.   세계 휴머노이드 시장 2035년 54조원 전망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공상과학 소설에나 등장하던 휴머노이드를 조만간 현실 세계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2022년 챗GPT 등 생성형 AI가 본격 대중화되면서다. 1966년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휴머노이드는 사람의 형태와 움직임을 모방하며 수십년간 외형(하드웨어)을 발전시켜 왔는데, 인간의 행동 패턴을 학습하는 데 한계가 있다 보니 제한적인 공간 내에서 한정된 작업만 수행 가능하다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하지만 2020년대 이후 AI 알고리즘이 빠르게 고도화되고, 최근에는 사람의 행동을 학습하는 거대행동모델(LAM, Large Action Model)까지 도입되면서 외형을 움직이는 두뇌(소프트웨어)가 급격히 향상됐다. 그동안 휴머노이드를 동작시키기 위해서는 일일이 명령어를 학습시켜야 했지만, LAM을 학습한 휴머노이드는 사람의 명령이나 컨트롤러 없이도 자체적인 판단과 수행이 가능하다. 지난 CES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언급한 피지컬(Physical, 물리적) AI의 대표적인 예가 휴머노이드에 장착된 두뇌 칩이다.   관련기사 마라톤까지 뛰는 중국 ‘톈궁’, 일본은 제조용 로봇 치중 “생일 챙겨주고 집안일 척척…로봇 세상 빠르게 다가온다” 하드웨어 개선이 축적돼 일정 수준에 도달한 시점에 때마침 소프트웨어까지 갖춰지니 그야말로 ‘개발 붐’이 일어 양산화 논의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진 셈이다. 김익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AI·로봇연구소장은 “수년간 거대언어모델(LAM), 거대멀티모달모델(LMM)이 텍스트, 이미지, 영상 데이터를 학습해왔고, 조만간 남은 데이터가 고갈될 예정”이라며 “거대언어모델(LLM)이 챗GPT 등 디지털 세상에서의 생활 혁신을 도왔다면 이제는 LAM이 인간의 행동 패턴을 학습해 오프라인 공간에서 우리의 일상을 바꾸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3월 로봇 스타트업 ‘피겨AI’가 공개한 휴머노이드 ‘Figure 01’은 명령어 입력이나 학습 없이 사람과 실시간으로 대화하며 반응해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이러한 기술 발전이 대량 생산을 통해 실제 수익화로도 이어지게 된 건 2022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2년 내 대당 2만 달러 수준의 휴머노이드를 공급하겠다고 밝히면서다. 2021년 휴머노이드 개발을 선언한 테슬라는 실물 휴머노이드인 ‘옵티머스’를 공개하기까지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수십년간의 연구개발을 거쳐야만 개발할 수 있었던 휴머노이드가 AI 등의 도움으로 수년 만에 개발을 마친 것이다. 이를 목격한 중국 업체들이 앞다퉈 본격 휴머노이드 개발에 착수하면서 경쟁에 불이 붙은 셈이다. 올해 휴머노이드 양산 체계를 갖추겠다고 예고한 중국에서는 이미 휴머노이드가 공장 현장에서 인력을 대체하고 있다. 로봇의 핸드 트래킹 기술을 개발하는 퀘스터의 이정우 대표는 “2024년을 기점으로 기업이 앞다퉈 로봇 산업에 투자하는 것을 보며 시장의 흐름이 남다르다는 걸 체감했다”며 “몇 개월 새 기업 맞춤형 로봇 팔 제작 러브 콜을 받는 등 업계 전반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이렇다 보니 시장의 주도권은 이미 미국의 테슬라와 중국으로 양분된 상황에서 그 뒤를 어떤 나라가, 어떻게 이어받을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휴머노이드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음에도 개발에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2000년 혼다가 세계 최초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아시모’를 개발한 당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3년여 만에 휴머노이드 ‘휴보’를 공개하면서 기술격차를 빠르게 좁혀나갔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내에는 휴보 개발자인 오준호 교수가 창업한 레인보우로보틱스 외에는 글로벌 기업과 견줄만한 기업이 없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CES에서도 총 14종의 글로벌 휴머노이드가 젠슨 황과 함께 무대에 전시됐으나 한국산 휴머노이드는 한 개도 없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현재 국내외에서 로봇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두산로보틱스나 HD현대로보틱스 또한 산업용 로봇이나 협동 로봇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휴머노이드 관련 기술 개발을 기대하긴 어렵다. 로봇 정책을 담당하는 산업부 관계자는 “한국에서 휴머노이드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 자체가 극소수”라며 “산업용 로봇 밀도가 전 세계 1위인 강점을 활용해 어떤 지원정책을 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의 로봇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로봇 사업체 중 과반(63.7%)이 매출 1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 지원 등 관련 연구개발 실적을 보유한 업체도 15.5%로 대다수의 기업이 연구개발이나 특허 등 최첨단 로봇과 관련된 실적이 전무한 수준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로봇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고 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 없다”며 “이대로라면 로봇 청소기 시장을 중국에 잡아먹혔듯 휴머노이드 또한 미국과 중국에 끌려가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내 기업, 로봇산업 주도권 마지막 기회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삼성, LG 등 국내 기업은 로봇산업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국내외 스타트업과 협업하며 로봇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자회사로 편입,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 심사를 요청한 상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래 로봇 개발을 위한 기반을 다져 첨단 휴머노이드 생태계에서도 핵심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2017년부터 로봇사업에 LG전자는 산업용 로봇 기업 로보스타, 로보티즈, 엔젤로보틱스 등 국내 로봇 기업에 다방면으로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로봇 자동화 기업 유일로보틱스에 투자한 SK온과 협동로봇 기업 뉴로메카에 투자한 포스코홀딩스 또한 추가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 이정우 대표는 “로봇은 딥테크(Deep Tech) 영역이라 매출을 일으키기까지 장시간이 필요해 정부 지원이나 투자를 유치하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국내 대기업이 직접 로봇 사업에 뛰어든 만큼 충분히 시장을 치고 나갈 잠재력이 있다”고 답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해 12월 휴머노이드를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신규 지정, 올해 약 5조7000억원의 연구개발 예산을 배정했다.   전문가는 휴머노이드 시대가 필연적인 만큼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국가의 대대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박철완 한국로봇산업협회 부회장은 “지난 20년간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이 성장할 동안 로봇 산업은 지원 중단과 재개가 반복돼 제자리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며 “이제는 전통 로봇 시장의 성과에서 벗어나 첨단 로봇 중심의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휴머노이드는 우리의 기술 주권과도 연결되는 만큼 더는 (개발이) 되느냐, 안되느냐의 영역이 아닌 무조건 되게 해야 하는 영역”이라며 “올해 스타트업과 손잡은 대기업이 얼마나 빨리 미국,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좁힐 수 있을지가 로봇산업의 성패를 결정짓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2025.01.25 00:02

  • 트럼프, 시진핑과 통화 “무역·틱톡 등 논의”

    트럼프, 시진핑과 통화 “무역·틱톡 등 논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7일(현지시간) 통화를 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20일 치러지는 트럼프의 취임식을 사흘 앞두고 전격 이뤄졌다. 지난해 11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이후 두 사람이 통화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통화를 마친 후 트루스소셜에 “이번 통화는 중국과 미국 모두에게 매우 좋은 일이었다”고 했다. 이어 “많은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즉시 시작하길 기대한다”며 “무역·펜타닐·틱톡과 기타 여러 주제의 균형을 맞추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시 주석과 나는 세계를 더 평화롭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취임 후 중국에 대한 고율 관세를 예고하는 등 대중국 압박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 취임 첫날 행정명령 후보 트럼프 당선인의 본격적인 업무는 취임식 직후 행정명령 서명으로 시작된다. 대상은 그가 가장 우선시하는 사안 중 일부로 향후 4년간의 정책 기조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행정명령은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으로 입법과 유사한 효력을 갖는다. 하지만 해당 대통령 임기 내에서만 유효하고 차기 대통령이 이를 취소할 수 있다.   워싱턴 정가에선 이날 발동될 행정명령이 트럼프 1기 때 정책 틀의 복원이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중 불법 이민자에 대한 대규모 추방은 최우선 순위로 꼽힌다. 지난 대선 캠페인 중 트럼프는 “1950년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군 병력을 동원해 이주 노동자들을 추방했다”면서 “최대 2000만명으로 추산되는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추방 작전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 NBC방송 등은 “이르면 취임 당일부터 워싱턴 DC 지역에서 불법 체류자 단속을 시작하는 방안을 이민세관단속국(ICE)이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관련기사 관세폭탄·군사력 극한 압박…트럼프 ‘미치광이 전략’의 귀환 한정·멜로니 등 ‘대관식’ 참석…대미는 8년 만의 무도회 트럼프가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행정명령은 ‘멕시코와 캐나다의 모든 제품에 대한 추가관세 25% 부과’다. 그는 앞서 미국으로 유입되는 마약과 불법 이민자들을 제대로 단속할 때까지 추가관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외에도 트럼프의 취임 당일 행정명령 리스트에는 ‘트랜스젠더 군인 퇴출’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말 “트랜스젠더를 군에서 제대시키고 초·중·고등학교에서 퇴출시키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고 했다. 현재 현역 복무 중인 트랜스젠더 군인들은 1만5000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집권 1기 때는 트랜스젠더의 입대를 막았다.         최익재·임선영 기자 ijchoi@joongang.co.kr

    2025.01.18 01:36

  • 한정·멜로니 등 '대관식' 참석…대미는 8년 만의 무도회

    한정·멜로니 등 '대관식' 참석…대미는 8년 만의 무도회

    14일 대통령 취임식장 부근에 안전을 위한 검은색 철책이 설치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가 임박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리는 취임식을 거쳐 제47대 미국 대통령에 정식 취임한다.   이번 취임식은 2017년 1월의 첫 번째 취임식보다 성대하게 치러질 전망이다. 이를 위한 기부금도 쇄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 “취임식 준비를 위해 지금까지 모금된 금액은 2억 달러(약 2900억원) 이상이며, 8년 전 모금액(1억700만 달러)의 두 배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관세폭탄·군사력 극한 압박…트럼프 ‘미치광이 전략’의 귀환 트럼프, 시진핑과 통화 “무역·틱톡 등 논의” 취임식을 앞두고 세계 각국 주요 인사들의 참석 소식도 속속 전해지고 있다. 원래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는 외국 정상을 초청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국내 행사로 치러지기에 워싱턴 DC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들만 초청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관례를 깨고 자신의 취임식에 몇몇 정상들을 초청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등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초청했지만, 대신 한정 부주석이 참석키로 했다.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 등 유럽의 극우파 정치인들도 대거 초청을 받았다.   미국 내 인사로는 관례에 따라 전직 대통령·부통령 내외, 상·하원 의원들, 대법관들이 참석한다. 다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아내 미셸 오바마는 이번 취임식에 불참한다. 그의 불참은 트럼프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 때문이라는 것이 워싱턴 안팎의 관측이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미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15일 “트럼프 부부가 4년 전 바이든 취임식에 불참하면서 전직 대통령 부부 참석이라는 전통이 깨졌다”고 짚었다. 트럼프는 당시 부정선거 탓에 대선에서 졌다며 2021년 바이든의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고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로 떠나버렸다. 재계 인사로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등 빅테크 기업들의 수장들이 취임식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과 지난달 트럼프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초청을 받아 트럼프를 만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등이 참석한다. 현대자동차가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취임식에 100만 달러를 처음 기부했지만, 정의선 회장은 참석하지 않는다.   취임식 당일 트럼프와 멜라니아 여사는 가장 먼저 ‘대통령의 교회’로 불리는 세인트존스 성공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2017년 취임 당시에도 트럼프 부부는 관례에 따라 백악관 블레어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세인트존스 교회 예배로 첫 일정을 시작했다. 이후 트럼프는 JD 밴스 부통령 당선인과 함께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티타임을 가진 뒤 의사당으로 이동한다. 취임식은 워싱턴을 상징하는 워싱턴기념탑과 마주한 의사당 서쪽 계단에서 열린다.   백악관과 워싱턴기념탑이 있는 내셔널 몰 일대에는 취임식 안전을 위해 곳곳에 이미 철책이 설치됐다. 로이터통신은 15일 “30마일(약 48㎞) 길이에 이르는 7피트(약 2m) 높이의 검은색 펜스는 워싱턴에서 세워진 것 중 가장 긴 울타리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경호 인력만 2만5000명이 동원되는 등 보안 조치도 역대급이다. 워싱턴 상공 일대에 정찰용 드론(무인기)도 띄울 계획이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취임식엔 약 25만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각 상·하원 의원실을 통해 배포된 취임식 초청장만 약 22만장이다. 단, 취임식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VIP 좌석은 1400여 석 규모다. 대부분은 의사당에서 워싱턴기념탑까지 이르는 잔디광장에 설치된 좌석에 앉아 취임식을 지켜봐야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100만 달러(약 14억6000만원) 이상을 기부하면 받을 수 있는 취임식 VIP 티켓은 정원이 찼기 때문에 판매가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이들에겐 VIP 좌석에서 취임식을 관람하고 대통령(19일) 및 부통령(18일) 만찬에 참석할 기회가 주어진다.   취임식을 마친 트럼프는 의사당 내 ‘대통령의 방(President’s room)’에서 서명 행사를 거친 뒤 의회 합동위원회 오찬을 갖는다. 이후 군을 사열하고 군 호위대와 함께 워싱턴을 가로지르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를 따라 2.7㎞ 길이의 카퍼레이드를 펼친 뒤 백악관에 입성한다.   8년 만에 부활한 무도회 일정은 취임식의 대미를 장식한다. 4년 전엔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오찬과 무도회 등이 생략됐었다. NYT에 따르면 마크 저커버그 CEO도 별도의 무도회를 주최할 것으로 보인다. 신문은 “저커버그는 취임식 당일 ‘블랙타이 리셉션(만찬 무도회)’을 여는 네 명의 주최자 중 한 명”이라며 “저커버그가 정치적 사건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이날 총 3곳의 무도회에 들러 연설할 예정이다.   취임식 전날에도 다양한 무도회가 열린다. 트럼프 부부는 8년 전과 마찬가지로 워싱턴의 철도역인 유니온 스테이션에서 19일 촛불 만찬도 주최한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2025.01.18 01:34

  • 관세폭탄·군사력 극한 압박…트럼프 '미치광이 전략'의 귀환

    관세폭탄·군사력 극한 압박…트럼프 '미치광이 전략'의 귀환

     ━  취임 D-2, 미리 보는 트럼프 2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눈앞으로 다가온 지금, 세계는 지난 몇 주간 트럼프가 던진 파나마 운하, 그린란드, 캐나다의 복합방정식을 푸는 데 혈안이 된 듯 하다. 혹자는 부동산 개발업자의 땅따먹기 본능에 따른 도발적 제안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일견 서로 무관해 보이는 것들을 잇는 키워드는 지정학과 중국이다. 또한 트럼프식 고도의 협상 전략이기도 하다. 정치안보와 경제통상을 큰 그림에서 연계해서 접근하는 것도 집권 1기 때와 현격히 달라졌다. 이 복합방정식을 푸는 열쇠는 각각의 제안이 나온 배경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트럼프발 관세 위협, 상대국 정치판 흔들기도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파나마 운하를 보자. 미국 동부에서 상선이나 해군 군함이 한국, 일본 등 아시아로 가려면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지 않으면 남미 대륙을 우회해서 갈 수 밖에 없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중국이 미국 동부나 중남미 국가들의 동부 해안 쪽으로 수출하려면 파나마 운하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지난해 말 페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정상회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한 계기에 페루 태평양 서안에 있는 찬카이(Chancay) 항구를 준공한 것이 워싱턴의 경계심을 일으킨 바 있다. 중국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하나로 3조6000억 달러(약 5245조원)를 들여 남미 대륙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항구를 페루에 완공해 배타적 운영권을 가져갔다. 남미의 모든 국가들이 중국이 건설하고 운영하는 항구를 이용해 중국과 각종 핵심광물, 농산물 등의 교역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1기의 미·중 무역전쟁 때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대규모로 수입하던 대두를 브라질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대체하며 미국에 맞선 바 있다. 파나마 운하도 중국 회사가 일부 구간을 운영하고 있다. 즉 미국 입장에서 파나마 운하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며 미주 대륙에서 급증하고 있는 중국 영향력의 상징 같은 곳이다.   관련기사 한정·멜로니 등 ‘대관식’ 참석…대미는 8년 만의 무도회 트럼프, 시진핑과 통화 “무역·틱톡 등 논의” 그린란드도 마찬가지로 지정학과 대(對)중국 패권경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미국은 냉전시대 소련을 마주보고 있는 이곳에 군대를 주둔시켰고 소련의 몰락 이후에도 1만7000명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에 따라 잠잠하던 세계 최대의 얼어붙은 섬에 큰 변화가 생겼다. 얼음이 녹으면서 머지않은 장래에 북극항로가 열릴 전망이고, 채굴이 어려웠던 여러 전략적 핵심광물의 채굴 경제성이 훨씬 높아졌다. 이 모두 미·중 패권경쟁과 직접 관련이 있다. 북극항로가 열리면 중국이 유럽과 연결되는데 기존의 인도양, 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항로에 비해 10여 일이 단축된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극항로 개발에 달려들고 있는 이유다. 핵심광물도 현재 중국이 각종 초크포인트(주요 길목)를 장악하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미국이 숨통을 트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다. 역사적으로도 미국은 19세기 이래 수차례 그린란드 구매를 시도한 바 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에도 비밀리에 구매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1월 말에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의 SNS 메시지가 떴을 때 워싱턴 일부에서는 뜻밖에 캐나다가 포함된 것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있었다. 혹자는 트럼프 1기 때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의 관계가 껄끄러웠으며 국내에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점을 감안한 트럼프가 관세 위협을 통해 캐나다가 보수당으로 정권교체를 하는 데 힘을 실은 정치적 계산으로 보았다.   스티븐 미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지명자. 그 며칠 후 트뤼도 총리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의 만찬장에서 트럼프 옆에서 미소를 띠고 나타났으며, 얼마 후 트럼프 1기 당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협상을 이끌었던 통상장관 출신 재무장관이 트럼프 대응 방안을 놓고 트뤼도와 공개적으로 이견을 노출하며 사임했다. 이는 집권당의 내부 정치적 분열과 위기를 초래했고 결국 10여 년 집권했던 트뤼도 총리는 최근 사임을 발표했다. 사임 의사를 밝힌 이후에도 트럼프는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모욕적인 공세를 그치지 않고 있다. 당초 의도했든 아니든 트럼프발 관세 위협이 상대국의 정치판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트럼프 1기 미·중 무역전쟁 때도 중국 내부에서 대미 대응을 놓고 분열이 일어났었다. 타국들처럼 공공연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내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아직 도광양회로 중국의 힘을 조용히 길러야 할 때에 너무 빨리 미국과의 대결을 선택했다는 비판, 미국의 힘이 아직도 이렇게 강한 줄은 미처 몰랐다는 자성론이 일어났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트럼프발 외부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체제가 튼튼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쯤해서 아무리 지정학과 중국에 대한 전략적 고려가 깔려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미국 대통령이 국제법에도 어긋나고 우방국을 상대로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 등의 도발적 언행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협상에서 쓰는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은 마키아벨리가 처음 주창했고, 닉슨 전 대통령이 베트콩으로 하여금 그가 핵무기까지 사용할 수 있는 미치광이로 믿게 해 협상에 응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1기 참모들은 트럼프가 상대국으로 하여금 그는 뭐든 저지를 수 있는 사람으로 믿도록 했다고 전한다. 사실 이 점이 트럼프식 예측 불가능성과 불확실성의 원천이며 협상의 기술인 것이다.   “그라면 진짜 그렇게 할 수도”서 협상력 나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지명자. 트럼프가 파나마 운하, 그린란드, 캐나다에 관세나 군사력을 실제로 사용할지는 중요치 않다. 그는 미치광이라서 진짜로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가능성’에서 협상의 레버리지가 나오는 것이다. 설사 그리 극단적인 상황으로 가지는 않더라도 이런 극단적 압박(maximum pressure)을 통해 최종 딜로서 파나마 운하를 통행하는 미국 선박에 대해서는 훨씬 낮은 특별 운임을 적용키로 하거나, 그린란드의 핵심광물 채굴에 미국 기업들에게 우선적 혹은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고 북극항로 개발에 유리한 지위를 얻어낸다면 이런 미친 듯한 협박 이전의 상태에 비해서는 ‘큰 승리’를 얻는 것이다. 트럼프의 협상력 덕분에 말이다.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를 대하는 트럼프의 관점에서 보면, 동북아 지정학의 단층면이자 미·중 경쟁의 전략적 측면에서 한반도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린랜드의 미군보다 한반도의 주한 미군이 훨씬 중요할 수 있다. 트럼프가 미국 조선업 재건을 위해 한국에 협력을 요청했듯이 미국의 제조업 부흥과 대중 경제안보의 밴다이어그램이 겹치는 분야, 즉 반도체·배터리·조선·군수·바이오 산업 등의 한·미 협력은 미국의 안보와 지정학적 차원에서 중요함을 떠나 불가결하다.   하지만 진행 과정에서는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와 같은 충격적인 극한 압박이 올 수도 있다. 우리가 트럼프 1기 때 겪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위기도 지금 보면 ‘트럼프 스타일’이다. 하지만 ‘미치광이 전략’의 위험성은 그것이 한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 유효한 브랜드로 작용하기 위해 상대국이 극한 압박에 끝까지 버틸 경우 실제로 그 압박을 이행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설마’가 ‘역시나’로 바뀔 수 있는 위험성이 항상 내재해 있다.   이제 트럼프 2기의 롤러코스터가 시작되면, 무엇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트럼프 1기 경험과 타국의 사례를 보면 불확실성 속에도 어느 정도 정형적 패턴이 보인다. 국내 정치체제의 안정은 종국적으로 협상의 성패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현 상황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캐나다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트럼프 의도대로 협상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언제든 후방을 교란하며 국내 정치와 협상팀을 뒤흔들 수 있다. 협상 진행 과정에서 수시로 등락을 거듭할 텐데 그런 사소한 디테일의 변화에 대해서도 이해관계자와 여야가 갈리는 블레임 게임(blame game)이 되면 우리는 협상의 링에 올라가기도 전에 타월을 던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한구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위원(전 통상교섭본부장). 산자부 통상교섭본부장 등을 지낸 경제 전문가다. 1992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산자부 자유무역협정정책관, 통상교섭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MBA를 받았다.여한구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위원(전 통상교섭본부장). 산자부 통상교섭본부장 등을 지낸 경제 전문가다. 1992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산자부 자유무역협정정책관, 통상교섭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MBA를 받았다.        

    2025.01.18 01:33

  • 스테이블코인, ‘실물연계 자산’ RWA…알트코인도 쏠쏠

    스테이블코인, ‘실물연계 자산’ RWA…알트코인도 쏠쏠

     ━  암호화폐 ‘제2전성기’ 오나   미국 전역에 설치된 리버티X의 비트코인 구매용 ATM. [AFP=연합뉴스] 암호화폐 업계가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도지코인 등 과거 밈(meme) 코인이 주를 이루며 일시적 급등락을 반복하던 알트코인(Altcoin·비트코인을 제외한 암호화폐) 시장까지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비트코인 가격과 연동돼 움직이는 경향이 컸지만, 최근에는 독립적인 자산으로 자리 잡으면서 대체 투자수단으로의 지위를 굳히는 모양새다. 블룸버그는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차기 대통령 취임으로 올해 암호화폐에 우호적인 규제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규제를 받던 알트코인에 트럼프 당선 여파로 큰 폭의 자금이 유입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올해 알트코인 업계가 주목하는 분야는 현존하는 자산과 연계해 보관, 결제가 가능한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달러 등 기존 법정화폐와 암호화폐의 가격을 연동한 암호화폐로, 일반 알트코인과 달리 변동성이 크지 않고(스테이블), 현금 등 결제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어 ‘검증된 디지털 달러’로 불린다. 통상 1코인당 1달러의 가치를 추종하는 구조다.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 1위인 테더(USDT), 서클(Circle)이 발행하는 USDC(USD Coin) 등이 대표적이다.   관련기사 비트코인, 올해 20만달러 간다더니…트럼프 효과 끝? 9만달러선도 위태 블록체인 분석 플랫폼 아르테미스에 따르면 2021년 4월 626억5331만 달러(약 90조원) 규모였던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1일 기준 2038억6030만 달러(약 295조원)까지 불어났다. 맷 후건 비트와이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은 2025년 가속화될 것이며, 올해 유통량은 지난해보다 2배 이상 증가해 4000억 달러를 초과할 것”이라며 “명확한 규제안이 나오면 대형 전통 금융사 또한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테이블코인 시총 295조원, 4년 새 3배 스테이블코인은 최근 각국 중앙은행이 개발 중인 디지털화폐(CBDC)와 유사해 세계 어디서든 달러 기반의 결제수단으로 사용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통상 은행에서 달러를 송금하기 위해서는 회당 1% 수준의 수수료와 1주일간의 수취 기간이 필요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약 2~3분 만에 달러 송금이 가능하다. 이종섭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기존 금융과 암호화폐 생태계를 잇는 교량 역할을 제공하는 화폐”라며 “송금 지불, 일상 거래 등 현지 통화의 변동성을 분산하기 위해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현지 통화가치 변동이 큰 브라질 등 남미에서는 이미 스테이블코인이 주된 결제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지급결제대행사도 직접 스테이블코인을 출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차세대 결제시스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업계 1위인 페이팔은 2023년 자체 스테이블코인 PYUSD를 출시했고, 업계 2위인 스트라이프는 지난해 10월 스테이블코인 플랫폼 브릿지를 인수해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글로벌 결제기술기업 비자(Visa)는 올해 각국 은행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돕는 플랫폼(Visa Tokenized Asset Platform)을 출시할 계획이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로 망가졌던 스테이블코인이 다시금 전성기를 맞이한 건 미 행정부의 정책적 변화 등 암호화폐에 친화적인 자본시장 환경이 뒷받침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공약을 통해 달러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고, 국제 지급결제시스템까지 달러화 기반으로 재편할 수 있도록 미국 달러화 중심의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시장에서도 암호화폐 규제 정책에 앞장섰던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이 20일 사임하면서 친암호화폐 정책이 주를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신정부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CBDC 발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달러의 독점적 지위를 보호하겠다는 방향성을 제시해왔다”며 “21세기 금융혁신 및 기술법(FIT21) 법안 등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의 제도적 불확실성을 단계적으로 제거, 시장 발전을 지원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블랙록 등 글로벌 큰손들, RWA 펀드 출시 부동산, 주식, 채권, 머니마켓펀드(MMF) 등의 유무형 자산을 블록체인으로 암호화해 토큰으로 만든 실물연계자산(Real World Asset, 이하 RWA) 또한 올해 암호화폐 업계가 주목하는 자산 중 하나다. 스테이블코인 역시 달러를 토큰과 연동시켰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RWA에 포함된다. RWA 분석 플랫폼 RWA.xyz에 따르면 지난달 말 RWA 시장의 시가총액은 150억 달러(약 22조원)를 달성했다. 이중 가장 규모가 큰 미 국채 RWA는 연간 300% 성장해 지난달 19일 시가총액 40억 달러(약 6조원)를 넘어섰다. 미국 최대 코인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는 올해 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2025년은 RWA 성장의 중추적인 해”라며 “기관투자자의 접근 방식이 개선되고, 기술이 주요 문제를 해결함에 따라 RWA가 다음 암호화폐 시장 사이클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RWA가 새로운 자산으로 주목받게 된 이유는 유동성이 낮은 자산들을 토큰화해 전 세계 어디서든 실시간 거래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기관 간 계약이나 국가 간 자금 이동, 거래비용 등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유동성과 거래량 모두가 함께 증가한다는 장점이 있다. 고가인 자산은 토큰으로 분할 투자가 가능해 RWA가 대중화되면 일반 투자자의 투자 접근성도 향상될 전망이다. 암호화폐 전문가인 김동환 원더프레임 대표는 “토큰증권(STO)과 달리 기관투자자의 투자가 불가능한 자산까지도 손쉽게 매매할 수 있도록 설계된 상품”이라며 “채권, 주식은 물론 유동성이 낮은 부동산, 저작권 등까지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어 제도권 내 금융회사도 관심이 많은 분야”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주요 글로벌 자산운용사는 이미 RWA 펀드를 출시하는 등 시장 공략에 앞장서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지난해 3월 미 국채 RWA 펀드인 비들(BUIDL)을 출시, 10일 기준 시가총액 6억4749만 달러(약 9500억원)를 끌어모았다. 골드만삭스, 프랭클린템플턴, 피델리티 등도 RWA 시장에 연달아 발을 들였다. 최윤영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은행이 주도하는 RWA 활동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전통금융상품뿐만 아니라 부동산, 기업금융 섹터가 수혜를 입어 올해 약 4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2025.01.11 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