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졸업하고 중국과 일본에 오래 머물렀다. 천하위공(天下爲公), 일이관지(一以貫之). 이 8자를 눈으로 적어보는 습관이 있다. 현재 언론 기사의 검역(檢譯)일로 매일 일만 자 이상의 한자를 살피고, 틈틈이 새로운 방식의 영어공부를 궁리하며, 느리고 촌스럽게 지구별 보행자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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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황포가신(黃袍加身)과 조광윤(趙匡胤)2025.06.1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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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수주대토(守株待兎)와 한비(韓非)2024.05.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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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촌철살인(寸鐵殺人)과 나대경(羅大經)
이 두 부분이 합쳐져 ‘아주 짧은 쇠붙이로도 사람 목숨을 얼마든지 뺏을 수 있다’란 의미가 만들어졌다. "누군가 수레에 무기를 가득 싣고 와서 휘둘러봐야, 과연 그가 사람의 목숨을 뺏을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요. 그러나 나는 약 3cm 길이의 짧은 칼로도 얼마든지 사람의 목숨을 뺏을 수가 있답니다." 간화선(看話禪)을 창시한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의 이 어록도 ‘학림옥로’에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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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주마간산(走馬看山)과 맹교(孟郊)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 751~814)가 지은 칠언절구(七言絶句) ‘과거에 합격한 후(登科後)’의 한 구절에서 유래했다. 봄바람에 마음이 들떠 말 타고 질주하며(春風得意馬蹄疾), 하루 종일 수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실컷 둘러보기도 하고 그랬네(一日看盡長安花).’ 이 작품 마지막 내용을 4글자로 축약하면 ‘주마간화(走馬看花)’다. 그러나 맹교의 ‘과거에 합격한 후’에선 결코 부정적 의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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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일모도원(日暮途遠)과 오자서(伍子胥)
이 두 부분이 합쳐져, ‘날은 저무는데,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란 의미가 만들어졌다. 초나라 평왕(平王)에 의해 억울하게 처형당한 부친과 형의 복수를 위해 젊은 시절부터 외국을 떠돌다가 오나라에 정착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복수를 준비한 오자서는 합려를 설득하고 50대 중반에 마침내 초나라에 쳐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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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흉중구학(胸中丘壑)과 황공망(黃公望)
이 두 부분이 합쳐져 ‘언덕과 골짜기, 즉 대자연이 마음 속에 있다’란 의미가 만들어졌다. 문인화(文人畵) 장르에서, 화가가 붓으로 그리기 전에 이미 ‘표현하고자 하는 자연 풍광 또는 예술적 구상이 마음 속에 있는 상태’를 말할 때 주로 쓰인다. 송(宋)나라 시인 겸 비평가 황정견(黃庭堅)은 소동파의 작품 ‘고목(枯木)‘을 읽은 후, ‘제자첨고목(題子瞻枯木)’이라는 짧은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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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악발토포(握髮吐哺)와 주공단(周公旦)
무왕의 유언에 따라 주공단은 섭정(攝政)이 되어 성왕(成王)을 보좌한다. "잔혹했던 상나라 마지막 왕의 전철을 우리가 밟지 않으려면, 상나라 백성들을 잘 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동생의 이 사려 깊은 조언을 듣고는 무왕도 동의했다. 주공단은 노(魯)나라를, 강태공은 제(齊)나라를, 소공은 연(燕)나라를 각각 분봉(分封)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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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개문읍도(開門揖盜)와 손권(孫權)
이 네 글자가 만나, ‘문을 열어놓고 공손히 절하며 도둑을 맞아들이다. 역사가 진수(陳壽)가 저술한 ‘삼국지(三國志)’의 ‘오지(吳志)’에 ‘개문읍도’ 이 네 글자가 나온다. 그러면 언젠가 상대의 치명적 약점이 드러나는 때가 올 것이다.’ 북쪽 위(魏)나라와 서쪽 촉(蜀)나라의 계속되는 도발에 손권은 대략 이런 셈법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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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무산지운(巫山之雲)과 원진(元稹)
이 두 부분이 만나면, 그냥 평범한 ‘무산의 구름’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구름 이상의 함의(含意)를 갖게 됐다. 관료 경력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운 이 징저우 시기에 시인 원진은 창작에 오롯이 집중해, 약 300편의 시를 쏟아냈다. 이 ‘국화’에서도, 절정의 순간에 오히려 그 이후를 미리 염려하는 원진의 애틋한 시심(詩心)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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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이퇴위진(以退爲進)과 사마의(司馬懿)
조조(曹操), 조비(曹丕), 조예(曹叡), 조방(曹芳), 이렇게 4대를 섬긴 군사 전략가 겸 행정가 사마의는 흥미로운 일화를 많이 남겼다. 그러나 조조의 이 첫 번째 초빙에 사마의는 응하지 않는다. 조조의 두 번째 초빙을 받고, 사마의는 29세에 조조 진영에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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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예의염치(禮義廉恥)와 관중(管仲)
중국 춘추시대의 명재상 관중의 사상을 중심으로 훗날 제(齊)나라 현인들의 여러 지혜가 덧붙여진 저서 ‘관자(管子)’의 ‘목민(牧民)’편에서 유래했다. 둘째, 인간은 가난하고 천하게 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부유하고 귀하게 만들어주려 힘써야 한다. 셋째, 인간은 위험에 처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적극 보호하고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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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삼고초려(三顧草廬)와 유비(劉備)
삼국 시대의 영웅 유비가 제갈량(諸葛亮. 181~234)을 초빙하기 위해 세 번 방문한 일화에서 유래했다. 이 첫 방문에서 유비는 제갈량과 함께 사는 동자(童子)와 짧은 대화를 나눈 것에 만족해야 했다. ‘삼고초려’ 고사를 낳은 이 세 번째 방문에서 마침내 제갈량은 마음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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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회독남화(悔讀南華)와 온정균(溫庭筠)
당나라 말기 시인 온정균(溫庭筠)의 자조적 표현에서 유래했다. 당나라 말기에 왕성하게 활동한 시인 온정균의 정확한 생몰년(生沒年)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실력을 갖추고서도 온정균이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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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대기만성(大器晩成)과 황보밀(皇甫謐)
‘침’은 인체의 침구학적 경혈(經穴)을, 쓰임에 따라 굵기와 길이가 다른 가느다란 금속 바늘로 직접 찌르며 치료하기 위한 도구다. 앞 두 글자 ‘대기’는 ‘큰 그릇’이다. 역사서 ‘제왕세기(帝王世紀)’, 그를 침구학 비조로 자리매김해준 의학서 ‘침구갑을경(鍼灸甲乙經)’, 철학서 ‘주역해(周易解)’ 등 탁월한 서적들을 집필하거나 편찬해 차례로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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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분소밀신(焚燒密信)과 광무제(光武帝)
하루는 광무제가 적진을 점령한 후, 밀신으로 가득한 편지 상자에 대해 보고받았다. 당일 성문을 지키던 관리는 ‘법을 우선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고 성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다음 날 광무제는 성문을 열어주지 않은 수문장에게 상을 내리고 관직도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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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호가호위(狐假虎威)와 유향(劉向)
그런데 그 여우는 호랑이에게 자신을 잡아먹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도교의 영향을 받아 연금술에 심취했는데, 관료가 된 이후 첫 번째 ‘호가호위’ 관련 위기의 원인이 되고 만다. 관료 생활에서 두 번째 ‘호가호위’ 관련 위기는 그가 환관과 외척의 전횡을 성토하는 상소를 준비하던 도중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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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만취일수(萬取一收)와 사공도(司空圖)
만약 능숙한 시인이라면, 다채로운 자연이나 일상의 이런저런 순간을 단 하나의 어휘나 문장으로 응축할 수 있을 것이다. 웅혼(雄渾), 충담(沖澹), 섬농(纖穠), 침착(沈着), 고고(高古), 전아(典雅), 세련(洗鍊), 경건(勁健), 기려(綺麗), 자연(自然), 함축 등 24개 소제목에 짤막한 설명을 운문 형식으로 기록하였기에, 훗날 제목 앞에 숫자 24가 추가되어 ‘이십사시품’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십사시품’ 가운데 두 번째에 배치된 ‘충담’은 도연명(陶淵明)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고요하고 깨끗한’ 분위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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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경세치용(經世致用)과 황종희(黃宗羲)
‘중국의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로 칭해지는 황종희(黃宗羲. 1610~1695)는 명나라 말기에 태어나 청나라 초기에 활동했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학문은 모름지기 세상의 경영과 관련해 공리공론(空理空論)에 머물러선 안 되고, 서민들에게 실질적 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라는 의미가 만들어졌다. ‘경세치용’은 청나라 초기의 고증학파 유학자였던 황종희, 왕부지(王夫之), 고염무(顧炎武) 등의 슬로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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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실사구시(實事求是)와 단옥재(段玉裁)
당시 고증학자들 사이에 ‘뭔가를 정의할 때, 반드시 관련 증거를 토대로 해야 한다’라든가 ‘증거를 감추거나 고의로 비트는 방식은 비도덕적이다’와 같은 묵계와 공감대가 강했다. 한나라 역사가 반고(班固. 32~92)의 ‘한서(漢書)’에서 유래했으나, 대진(戴震), 단옥재(段玉裁. 1735~1815) 등으로 대표되던 고증학 전성기에 ‘실사구시’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최근에는 ‘어떤 일을 처리할 때 실제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과장하거나 축소해서는 안 된다’란 의미로 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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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황포가신(黃袍加身)과 조광윤(趙匡胤)
중국 통일을 목표로 동분서주하다가 갑자기 병에 걸려 37세에 사망한다. 죄와 벌을 그의 친인척에게 연좌해서도 안 된다.’ 조광윤이 돌에 새겨 후계자들에게 전한 석각유훈(石刻遺訓) 가운데 첫 당부다. 요절한 보스 시영을 향한 그의 복잡한 마음을 우리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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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안빈낙도(安貧樂道)와 원헌(原憲)
중산층에서 이미 많이 멀어진 빈자(貧者)는 매일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하면 그만이다. 하루는 노(魯)나라에서 가난하게 사는 원헌의 집을 위(衛)나라에서 높은 벼슬을 하며 부유하게 살던 자공이 방문했다. 하지만 만약 진정한 안빈낙도의 삶을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런 경지로 해석하면, 그야말로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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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권토중래(捲土重來)와 두목(杜牧)
이 두 부분이 합쳐져 ‘처절하게 실패했지만, 다시 세력을 회복하여 돌아오다’란 의미로 주로 쓰인다. 강동 땅에 뛰어난 젊은이 많았으니(江東子弟多才俊), 항우가 권토중래했다면 최후 승자를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으리라(捲土重來未可知).’ 당(唐. 618~907)나라 시인 두목(杜牧. 803~852)의 ‘제오강정(題烏江亭)’, 이 마지막 구절에서 유래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묘비명(墓碑銘)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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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사면초가(四面楚歌)와 항우(項羽)
인장(仁將), 의장(義將), 예장(禮將), 지장(智將), 신장(信將), 보장(步將), 기장(騎將), 맹장(猛將), 대장(大將), 이 가운데 항우(項羽. 기원전 232~기원전 202)는 과연 어디에 속할까? 이번 사자성어는 사면초가(四面楚歌. 넉 사, 얼굴 면, 초나라 초, 노래 가)다. 25세에 ‘거록(巨鹿)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고 진나라를 공격하던 모든 세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올랐다. 장량(張良), 진평(陳平) 등 유방 진영의 참모들은 항우가 자신과 친척 이외에는 불신한다는 약점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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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수폐전견(隨吠前犬)과 이탁오(李卓吾)
이 둘이 합쳐져 ‘개들이 먼저 짖는 개를 따라 짖는다’라는 의미가 만들어진다. 머리를 삭발한 후 그는 더욱 사색과 저술에 몰두하여, 약 10년에 걸쳐 ‘속분서(續焚書)’, ‘장서(藏書)’, ‘속장서(續藏書)’ 등 시대를 앞선 탁월한 저서를 완성한다. 최근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불특정 다수의 생각을 마치 자신의 고유한 생각인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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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태평성세(太平盛世)와 장택단(張擇端)
‘청명상하도’라는 제목에서 ‘청명’을 ‘청명성세(淸明盛世)’, 즉 정치의 청명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명나라의 왕맹단(王孟端)은 ‘서화전습록(書畵傳習錄)’에 장택단이 ‘계화(界畵)에 능했고, 배, 마차, 다리, 성곽, 거리 등을 자주 그렸으며, 일가를 이뤘다’고 평했다. 사실, 장택단이 ‘청명상하도’를 그리며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는 ‘태평성세’와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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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행림춘만(杏林春滿)과 동봉(董奉)
이 두 부분이 합쳐져 ‘살구나무 숲에 봄이 가득하다’란 뜻이 만들어졌다. 당시 위(魏)·촉(蜀)·오(吳) 삼국 사이에 큰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기였기에, 흉년이면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유랑하거나 걸인 신세가 된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런 난세였기에 동봉도 성장하면서 유교 서적보다는 의학 서적과 도교 서적에 더 관심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