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은 24일(현지 시간) 표적단백질분해제(프로탁)과 표적 항암신약 후보물질의 전임상 결과를 ‘AACR-NCI-EORTC 2025’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 한미약품이 프로탁 후보물질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미의 첫 표적단백질분해제 공개되다
이용택 한미약품 연구원이 한미약품의 첫 표적단백질저해제 후보물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우상 기자
한미약품의 첫 프로탁 후보물질의 표적은 EP300이라는 핵 속 단백질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DNA가 리보핵산(RNA)으로 전사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정상세포에서는 서로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EP300과 CBP가 모두 정상적으로 존재해 어느 한쪽이 망가지더라도 RNA 전사가 원래대로 이뤄진다. 한미의 프로탁은 CBP가 훼손된 암세포를 표적으로 한다. EP300 단백질을 분해하면 EP300과 CBP가 모두 사라져 암세포가 RNA를 전사하지 못하고, 그 결과 생존과 복제에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하지 못해 죽게 되는 원리다.
이전에도 저분자화합물로 EP300을 억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EP300과 CBP의 구조가 유사해 둘 중 하나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둘 다 제거하게 되면 정상세포도 단백질을 합성하지 못해 죽게 된다.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이용택 한미약품 표적항암팀 연구원은 “세포실험을 통해 프로탁이 EP300만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CBP는 그대로 둔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동물실험에서도 프로탁을 투여한 쥐의 체중이 감소하지 않아 큰 부작용 없이 암세포만 제거한 것을 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미약품의 EP300 프로탁은 아직 국내외 통틀어 임상에 진입한 약물이 없어 유력한 ‘퍼스트 인 클래스’ 후보다. 대신 전임상 단계에 먼저 진입한 경쟁약물이 있는 만큼 내년 중 조속히 임상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전립선암(VCaP) 이종이식 마우스 모델에서 EP300 표적 단백질 분해제 후보(HME01, HME04) 투여군은 대조군(vehicle) 및 CCS1477(EP300/CBP 이중 억제제), 엔잘루타마이드(표준치료제) 대비 우수한 종양 성장 억제 효과를 보였다(왼쪽). 특히 HME01/HME04는 EP300 선택적 분해를 통해 CBP 기능을 보존함으로써 항암효과를 유지하면서도 체중 감소가 거의 없어 안전성 우수성을 시사했다.(오른쪽) 이우상 기자
계열내 최고 노리는 pan TEAD 저해제
김지숙 한미약품 표적항암팀 파트장이 범(pan) TEAD 저해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우상 기자
이날 한미약품은 노바티스 등이 개발 중이지만 신장 독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범 TEAD 저해제 후보물질도 함께 공개했다.
정상세포에서의 히포(hippo) 경로는 본래 세포 증식을 막는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그런데 암세포에서는 이 경로가 정상작동하지 않으면서 전사 공동활성화 인자(YAP/TAZ)가 핵 안으로 이동하게 되고 TEAD 단백질과 결합하게 된다. 그 결과, 암세포 증식뿐 아니라 전이·섬유화·면역억제를 촉진하는 유전자 프로그램이 활성화된다. 다시 말해, 종양은 자신이 커질 뿐 아니라 주변 종양미세환경(TME)을 ‘암에게 유리한 쪽’으로 재편해 면역반응을 피하고 섬유조직 장벽까지 강화하게 된다. 노바티스를 비롯해 다양한 신약기업이 TEAD 억제제 개발에 뛰어든 이유다.
한미약품이 선보인 TEAD 억제제는 총 4종류(TEAD1, TEAD2, TEAD3, TEAD4)로 모든 TEAD 단백질을 모두 차단할 수 있는 범(pan) 억제제다.
현재 개발 최선두는 임상 1상 단계의 비바체 테라퓨틱스의 VT3989다. 노바티스의 IAG933도 함께 임상 1상에 진입해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김지숙 한미약품 표적항암팀 파트장은 “비바체와 노바티스의 임상개발 속도가 더 앞선 것은 사실이나 신장독성 문제가 있어 용량과 투약 간격으로 부작용을 조절하고 있다”며 “한미의 후보물질은 더 우수한 안전성 프로파일을 갖고 있다는 점이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안전성이 확보되면 더 고용량 처치가 가능해 더 높은 효능도 기대해볼 수 있다.
한미약품은 내년 암학회에서 후속 전임상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며 임상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AACR-NCI-EORTC는 미국 암연구학회(AACR), 미국 국립암연구소(NCI), 유럽 암연구 및 치료기구(EORTC)가 공동으로 주관해 미국과 유럽에서 매년 순회하여 개최되는 국제학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