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AI 환상 깨질까…4조달러짜리 '시한폭탄' 공포 [글로벌 머니 X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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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大투자의 시대
25일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디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오라클의 AI 서버 임대 사업 총이익률이 최근 5개 분기 평균 16%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고가의 그래픽처리장치(GPU) 투자 비용이 수익성을 얼마나 압박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분석이 나왔다.앞서 수전 리 메타 최고재무책임자(CFO)는 7월 2분기 실적 발표에서 "2026년 비용 증가의 최대 요인은 인프라 비용이며, 감가상각 증가가 ‘급격히 가속(sharply accelerate)’될 것"이라고 밝혔다. AI 투자의 비용 청구서가 임박했다는 뜻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를 두고 "AI 클라우드 산업의 핵심에 자리한 4조 달러짜리 회계 퍼즐"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우려의 배경은 AI 패권 경쟁 격화다. AI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대규모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들의 인프라 구축 경쟁이 최근 거대하고 빠르게 전개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구글), 아마존(AWS), 메타 등 이른바 '빅테크 4사'는 AI 모델 훈련과 추론 능력 확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는 글로벌 자본 시장의 흐름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이들의 투자 규모는 시장의 예상을 계속 뛰어넘었다는 평가다. 올 2분기 이들 4개 사의 자본 지출 합계는 약 968억 달러에 달했다. 전년 동기 대비 65% 급증한 수치다(바클레이즈 분석 기준). 단일 분기 기준으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간 부문 투자 집행이다.
아마존은 올 2분기 유형자산 취득에만 321억 8300만 달러를 지출했다. 상반기 누적 572억 달러를 기록했다. 알파벳 역시 2분기 CAPEX로 224억 달러를 집행하며 상반기 396억 달러를 기록했다. MS는 회계연도 4분기(6월 분기)에 242억 달러(금융리스 포함)를 지출했다. 다음 분기(9월 분기)에는 300억 달러 이상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에이미 후드 마이크로소프트 CFO도 "2026 회계연도의 지출이 2025년보다 높을 것"이라고 밝혔다.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CEO는 "우리에게는 과소 투자의 위험이 과잉투자 위험보다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아마존의 CFO 브라이언 올사브스키는 "2025년 2분기의 지출 속도가 올해 하반기의 분기별 투자율을 합리적으로 대표한다"고 언급하며 지속적인 투자를 시사했다.
이런 막대한 투자는 관련 공급망 전반에 강력한 순풍으로 작용하며 거시 경제 지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클레이즈는 데이터센터 투자가 올 상반기 미국 GDP 성장에 약 1% 포인트를 기여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AI 투자가 미국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부상했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AI 투자 사이클이 둔화하면 개별 기업 실적을 넘어 국가 경제 전반에 상당한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도 보여준다.
이런 전례 없는 투자의 이면에는 심각한 물리적 제약도 존재한다. AI 인프라 확장은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기존 전력망에 심각한 부담을 가하고 있다. 아마존은 "가장 큰 단일 제약은 전력"이라고 밝혔다. S&P 글로벌 레이팅스 역시 "송전이 가장 큰 제약"이라고 분석했다. 데이터센터 건설 붐이 전력 공급의 물리적 한계에 직면했다. 향후 AI 인프라 투자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중요한 변수라는 분석이다.
1년짜리 기술 수명 vs 6년짜리 회계 장부
AI 기업들이 쏟아붓는 막대한 인프라 투자는 ‘내용연수(Useful Life)’라는 회계의 기본 원칙을 흔들고 있다. 감가상각은 쉽게 말해 자산을 몇 년 동안 나눠서 비용으로 계산하는 절차다. 하지만 이 단순한 공식이 AI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GPU 같은 AI 가속기는 기술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 불과 1~2년 만에 새 세대가 등장해 기존 장비의 성능 가치를 떨어뜨린다. 그럼에도 많은 기업은 여전히 4~5년짜리 장기 내용연수를 기준으로 감가상각을 계산한다. 장부상으로는 자산이 남아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미 구형이 된 장비가 쌓여 있는 셈이다.
결국 ‘기술의 수명’과 ‘회계의 수명’이 따로 노는 이 괴리가 기업의 실질 수익성과 산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낳고 있다. AI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회계의 틀, 이것이 지금 시장이 마주한 조용하지만 거대한 불일치라는 지적이다.
AI 하드웨어의 진화 속도는 그야말로 초광속이다. 기존 산업의 어떤 자본재도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반도체 발전의 상징이던 ‘무어의 법칙’조차 이제는 느리게 보일 정도다.
이는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을 들여 사들인 최신 GPU가 불과 1년 만에 구형이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어제의 최첨단이 오늘의 재고가 되는 셈이다. AI 혁신이 가져온 이 ‘가속화된 감가상각의 시대’는 기업 회계와 투자 판단의 기준을 근본부터 다시 쓰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성능 향상 폭 또한 크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뛰면서, 이전 세대 자산의 경제적 가치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킨다는 지적이다. 구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자체 개발한 AI 가속기인 TPU(텐서 처리 장치)는 v4i에서 v6e(코드명 ‘트릴리움’)로 진화하며 연산 효율 지표인 CCI(Computational Carbon Intensity·컴퓨트 탄소집약도)가 세 배 개선됐다. 같은 작업을 이전 세대 칩보다 단 3분의 1의 에너지로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불과 2~3년만 지나도 구형 칩을 계속 돌리는 건 경제적으로 손해가 되기 쉽다. 전력비용, 냉각 비용, 생산성 측면 모두에서 ‘남는 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초고속 기술 혁신이 아이러니하게도 기업 자신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새로운 칩이 나올 때마다 이전 세대 자산의 감가상각 가치를 급속히 깎아 먹는 ‘자기 잠식형 혁신’이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물리적 수명은 더욱 짧다. 회계 장부가 상정하는 ‘내용연수’보다도 훨씬 짧다. AI 작업은 GPU를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풀 가동시키며 장비에 극심한 부하를 준다. 예를 들어 AI 연산을 GPU 가용률 60~70% 수준으로 돌릴 경우, 1~2년, 길어야 3년이면 고장이나 성능 저하로 사실상 사용 불가능해진다.
'탄광 속 카나리아'의 경고?
이런 기술적 현실에도 대부분의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서버 및 관련 하드웨어를 5년에서 6년의 내용연수로 감가상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서버의 유용성이 완만하게 감소하던 시기에 형성된 관행이 AI 시대에도 관성적으로 적용됐기 때문이다.더 흥미로운 대목은 이렇게 빠르게 노후화하는 자산을 보유한 빅테크 기업들이 오히려 감가상각 기간을 늘렸다는 점이다. 기술 수명은 짧아지는데, 장부 속 내용연수는 길어진 셈이다. MS는 2022년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의 내용연수를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했다.
그 결과 2023 회계연도에만 약 37억 달러의 감가상각비를 줄이며 그만큼 순이익이 늘어났다. 알파벳도 같은 해 서버 내용연수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려 39억 달러를 비용에서 제외했다.
이런 회계상의 ‘내용연수 연장’은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부풀리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GPU와 서버의 기술적 수명이 오히려 줄고 있다. 지금 시장이 보고 있는 빅테크의 높은 수익성 중 일부는 진짜 ‘운영 효율’이 아니라, 회계적 착시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뜻이다. AI 산업의 화려한 성장 뒤에, ‘숫자의 마법’이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에선 관련 숫자를 바로잡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 2월 올해 1월 1일부로 일부 서버 자산의 내용연수를 기존 6년에서 5년으로 줄이기 했다고 밝혔다. 아마존은 “AI와 머신러닝(ML) 분야의 기술 발전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이 문제의 근원은 사실 회계기준 그 자체에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일반기업회계기준(US GAAP)과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모두, 자산의 내용연수를 정할 때 경영진에게 넓은 재량권을 부여한다. 두 기준서의 핵심 조항인 ASC 360(미국)과 K-IFRS 제1016호(한국)는 자산의 감가상각 기간을 “그 자산으로부터 기대되는 효용의 기간”을 기준으로 삼는다.
문제는 바로 이 ‘기대되는 효용’이라는 표현이다. 기술적 수명, 경제적 수익성, 시장 경쟁력 중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계산 결과가 달라질 수 있고,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결국 내용연수 결정은 과학이라기보다 해석의 문제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경영진은 이 모호한 틈을 활용해 비용을 늘리거나 줄이며 단기 실적을 조정할 여지를 갖게 된다. AI처럼 기술 혁신 속도가 급격한 산업에서는 이 재량이 곧 회계적 불투명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AI 감가상각 논란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회계의 시간 개념이 기술의 시간 개념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충돌인 셈이다.
2026년엔 '어닝 절벽'?
AI 산업의 회계 장부와 기술 현실 사이의 간극은 머지않아 숫자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어닝 절벽(Earnings Cliff)'이라고 부른다. 작년과 올해에 쏟아진 AI 인프라 투자(GPU 클러스터, 데이터센터 확장, 전력 인프라 업그레이드 등)가 내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감가상각비로 반영된다. 지금은 ‘투자’로 처리돼 장부상 이익에 영향을 주지 않던 막대한 비용이, 몇 년 뒤에는 순이익을 직접 깎아내기 시작한다는 뜻이다.투자은행 바클레이즈는 "미국 월스트리트가 미래의 감가상각 비용을 "극적으로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바클레이즈의 분석에 따르면, 알파벳(구글)의 내년 감가상각 비용은 28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당시(작년 4분기) 월스트리트 컨센서스인 226억 달러보다 54억 달러, 비율로는 24% 높은 수치다.
해당 차액 54억 달러는 알파벳의 2026년 예상 영업이익에서 그대로 차감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클레이즈의 분석이다. 바클레이즈는 메타, 아마존, MS 역시 비슷한 규모의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고 시사했다.
유명 공매도 투자자 짐 채노스 역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봤다. 그는 지난 7월 메타의 장비 자산 평균 감가상각기간이 11~12년이라는 점을 들어 "메타의 감가상각 스케줄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만약 GPU의 실제 경제적 수명이 2~3년에 불과하다면 메타의 대부분 이익은 과대 계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소식은 시장에 두 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우선 AI 서비스는 ‘바로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GPU 구입, 데이터센터 증설, 전력비용 등 초기 투입이 너무 커 단기간에 고수익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오히려 기존 사업부의 이익을 잠식하며 전체 마진을 떨어뜨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AI가 성장의 엔진인 동시에, 재무적으로는 일시적 ‘수익성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매출 성장에서 수익성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단순히 ‘AI 매출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주가를 방어하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지적이다. 오라클은 장기 계약 기준으로 총마진 35%가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AI 인프라 구축이 이익률을 크게 압박하는 구조가 확인됐다. 시장은 이제 ‘AI가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느냐’보다 ‘그 성장이 얼마나 남는 장사냐’를 묻기 시작했다. AI 클라우드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격 인하 압박이 현실로 나타나고는 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지난 6월 엔비디아의 A100과 H100 GPU를 기반으로 한 클라우드 인스턴스 요금을 최대 45% 낮췄다. 구세대와 현세대 칩 모두 가격 경쟁력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흐름이 결국 주요 클라우드 업체들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AI 투자 붐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지금과 같은 속도로 투자가 이어질 경우, 수익을 내기 어려운 ‘과열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레토리안캐피털의 해리스 쿠퍼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8월 보고서에서 “현재의 계산으로는 어떤 투자 수익도 기대하기 어렵다”며 “세상은 이렇게 많은 AI에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2025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데이터센터 투자액이 4000억 달러에 달하지만, 이로 인한 연간 감가상각비만 4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실제 매출은 150억~200억 달러 수준에 불과해 “감가상각 비용이 매출의 두 배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AI 인프라 투자가 결국 ‘부채의 산’을 쌓고 있다는 뜻이다.
반론도 있다. 최신 AI 모델 훈련 시장에서 경제성이 떨어진 구형 GPU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는 건 아니다. 이들 칩은 여전히 추론이나 AI 모델 미세조정, 학술 연구처럼 비교적 낮은 연산 성능만으로도 충분한 작업에 활용될 수 있다. 이런 수요를 바탕으로 중고 GPU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HBM 슈퍼사이클' 지속될까
한국은 글로벌 AI 군비 경쟁의 중심에서 핵심 부품 공급자이자 AI 기술의 적극적인 참여자다. AI 가속기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평가다. AI 붐은 이들 업체에 전례 없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한국 경제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하지만 'AI 어닝 쇼크'가 현실화해 글로벌 빅테크들의 투자가 급격히 위축될 경우, 한국 반도체 산업은 수요 절벽에 직면할 수 있다. HBM 수요는 전적으로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규모에 연동돼 있기 때문이다. 경쟁 심화에 따른 가격 하락 압력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은 AI 기술의 적극적인 소비 국가이기도 하다. 정부는 AI를 국가 전략 기술로 지정하고 2027년까지 65조원 규모의 민관 합동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35조 3000억원으로 19.3% 증액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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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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