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국감에서 답변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국감에서 답변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0일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본관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필리프 아기옹 교수에 관한 질문을 받고 "저를 좌절하게 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전공은 다르지만 아기옹 교수는 하버드 동기"라며 "그래서 잘 알고 있는데 마이크로이노베이션 이런 쪽의 산업조직론(IO)을 전공했던 교수"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아기옹 교수는 같이 공부했다고는 하지만 제가 1학년 때 이미 교수급 학생이어서 좌절감을 많이 준 학생이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 총재와 아기옹 교수는 미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밟은 기간이 겹친다. 이 총재는 1984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곧바로 하버드대 경제학과로 진학했다. 5년 간 공부한 끝에 1989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도교수는 미 재무장관과 하버드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던 로런스 서머스 교수였다.
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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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옹 교수는 1983년 파리소르본느대에서 수리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하버드대 경제학과에서 또다시 박사과정을 밟았다. 이 총재가 아기옹 교수를 '교수급 학생'이었다고 표현한 것은 그가 이미 프랑스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상태여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나이도 아기옹 교수가 이 총재보다 네살 많다.

작년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사이먼 존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에 대해서는 "아제모을루 교수는 IMF에 근무하던 시절 자주 왔었고, 존슨 교수는 저보다 이전에 IMF의 수석이코노미스트였다"고 설명했다.

2004년부터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는 존슨 교수는 2007~2008년 IMF에서 일했다. 이 총재는 약 6년 뒤인 2014년 IMF의 아시아태평양국 국장으로 임명돼 재임 기간이 겹치지 않는다.

이날 노벨경제학상과 관련한 질문은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했다. 김 의원은 "올해 노벨경제학 수상자들이 (조지프) 슘페터를 이어받은 학자들인데 암울한 슘페터의 예언이 대한민국을 가리키는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정확히 슘페터의 어떤 주장을 언급한 것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통상 '슘페터의 암울한 예언'이라고 하면 '자본주의의 붕괴'를 의미한다. 슘페터는 기업가의 혁신과 창조적 파괴를 통해 자본주의가 성장한다는 것을 밝혀냈지만 말년에 쓴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는 결국 이런 성장 동인의 작동이 어려워지면서 사회주의의 세상이 도래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대기업의 관료화가 혁신을 어렵게하고, 자본주의 경제에서 많아진 고학력자가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지면서 불만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등장하는 정치 포퓰리즘도 문제로 지적했다. 다만 슘페터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 의원은 '슘페터의 암울한 예언'을 언급하면서 잠재성장률이 구조적으로 하락한 그래프를 보여줬다. 또 "수출 대기업 중심의 시스템에서 혁신이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다"며 "균형성장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에 대해 "잠재성장률 (하락)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게 인구 문제"라며 "지금 혁신 같은 것이 없으면 감소하는 것을 막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