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 어린이집 바늘구멍…국공립 '유령 등원'도
서울 서초동에 사는 신모씨(34)는 생후 6개월 아이를 직접 보육하고 있지만 가지도 않는 어린이집에 매달 56만원(정부 지원금)을 내고 있다. 출산 직후 신청해둔 순번이 돌아왔지만 갓난아이를 보내기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순번을 놓치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 것이란 얘기에 일단 등록부터 했다. 그는 “주변을 보면 강남의 웬만한 어린이집에선 이런 ‘유령 등원’이 적지 않다”고 했다.

저출생 기조로 서울 어린이집의 총정원 대비 결원율이 평균 30%에 달하지만 일부 지역에선 부모들이 대기표를 받아들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등 미스매치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보육 수요가 국공립이나 단지내 시설, 영아반 등 일부 유형으로 쏠리며 지역이나 연령별 불균형이 커진 탓이다.

◇“자리 놓치면 영원히 안 돌아온다”

[단독] 서울 어린이집 바늘구멍…국공립 '유령 등원'도
20일 소영철 시의원(국민의힘)이 서울시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서울 어린이집 정원 19만5707명 중 현원은 13만1906명으로 충족률이 67.4%로 집계됐다. 대기자는 16만4641명이었다. 올 8월 기준 서울 어린이집 빈자리는 6만3801개로 여유가 있는데도 정작 학부모들은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어린이집 수요가 대부분 국공립과 아파트 단지내, 대형 신축, 영아특화 시설 등으로 몰리고 있어서다.

일부 민간 어린이집에서 불거진 안전사고와 운영 비위로 불안감이 커진 점도 한몫했다. 송파구에 거주하는 한모씨(31)는 “국공립 어린이집은 교사 비율과 운영 기준이 믿을 만하고 추가 비용 부담이 작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유령 등원은 엄밀하게 말해 불법이다. 어린이집은 통상 정상 등원 시(0~2세)에는 부모가 보육료를 내지 않는다. 정부가 어린이집에 부모보육료 명목으로 전액 지원한다. 올해 지원단가는 전국 동일하게 0세 56만7000원, 1세 50만원, 2세 41만4000원이다. 서울시의 올해 영유아 보육 예산은 보육료 지원 5724억원, 보육교직원 인건비 3863억원, 보조교사 지원 949억원이다.

◇공급 줄고 만족도 하락…미스매치 ‘고착’

대기 수요는 젊은 맞벌이 부부가 많은 한강변 신축 대단지내 시설로 집중되고 있다. 자치구별 대기자는 송파 1만6611명, 강동 1만5639명, 강남 1만1082명, 영등포 9751명, 서초 9581명 등 순이다. 0~2세 영아 인구가 많은 자치구 순위도 송파 9232명, 강동 8080명, 강서 7154명, 강남 7067명 등으로 비슷하다.

저출생, 폐원, 교사 부족 등으로 어린이집은 빠르게 줄고 있다. 그만큼 ‘좋은 자리’의 희소성은 더 커졌다. 2021년 서울 어린이집 정원은 23만5682명이었지만 지난 8월 19만5707명으로 4만 명 가까이 감소했다. 같은 기간 어린이집 현원도 18만2922명에서 13만1906명으로 약 5만 명 줄었다.

어린이집 수요·공급 미스매치는 현장 곳곳에서 포착된다. 영아반은 교사 대 아동 비율 기준이 엄격해 정원 확대가 어렵다. 유아반에 빈자리가 남아도 영아반 대기는 수개월 걸리는 이유다. 종일·연장·야간 등 원하는 시간대 자리가 부족한 데다 주차나 접근성 등까지 고려하면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시설은 소수로 좁혀진다.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는 “보육 수요에 맞춰 공급을 확대할 수 있도록 재건축, 재개발 등 과정에서 관련 공공기부를 늘리는 등 서울시가 다양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용훈/고재연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