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달러 이하 소고기·해산물(아마존), 500엔 동전으로 살 수 있는 의류·생활용품(무인양품), 1~2인 가구를 위한 5000원 이하 소용량 제품(이마트·다이소)….
글로벌 유통업체들이 ‘5000원 이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유통업체들은 통상 원가, 마진 등을 반영해 판매가를 책정한다. 하지만 이 제품들은 먼저 가격을 5000원 이하로 정해둔 뒤 거꾸로 원가를 맞춘다. ‘가격 역설계’ 방식이다. 고물가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성비 소비가 확산하자 다이소 등 일부 균일가 생활용품점의 가격 역설계 방식을 대형마트, e커머스 등도 도입하기 시작했다.
◇아마존·무인양품도 5000원 경쟁
1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e커머스업체 아마존은 이달 초 신규 브랜드 ‘아마존 그로서리’를 출범했다. 유제품, 신선 제품, 육류, 해산물, 간식, 베이커리 등 1000여 개 품목을 판매하는데, 대부분이 5달러 미만이다. 미국 시장에서 판매하는 다진 소고기 1파운드, 생선 필릿 12온스 등은 5달러가 채 안 된다. 제이슨 뷰첼 아마존 글로벌 식료품 부문 부사장은 “고물가 시대에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에게 경쟁력 있는 상품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일본 생활 잡화점 무인양품은 중국에 500엔숍 ‘무지(무인양품) 500’ 출점을 준비 중이다. 무지 500은 제품 70% 이상이 500엔 이하인 전략형 매장이다. 무인양품은 불필요한 포장 등을 없애 가격을 낮춰왔는데, 최근 중국 내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미니소 등 현지 초저가 경쟁이 거세지자 가격대를 더 낮췄다.
유통업체들은 5000원 이하라는 가격대를 맞추기 위해 용량을 줄이거나, 포장을 최소화한다. 국내에서 이런 전략으로 가장 잘 알려진 유통업체는 다이소다. 다이소는 일본 다이소산교의 100엔 제품을 벤치마킹해 출범한 뒤 이후 2004년 3000원, 2006년 5000원 제품을 추가했다. 그 이후로 20년 가까이 똑같은 가격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물건 모양과 용량을 바꿔서라도 가격을 5000원 이하로 맞춘다. 최근 화장품, 의류 등 상품군을 대폭 늘려 올해 매출 4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국내 이마트도 지난 8월 전 품목 5000원 이하의 자체브랜드(PL) ‘5K PRICE’(오케이 프라이스)를 출시했다.
◇“싸지만 싸구려가 아니다”
왜 5000원일까. 유통업체 입장에서 5000원은 이익이 거의 남지 않지만, 그렇다고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도 일정 수준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중국 알리, 테무 등에서 1000~2000원대 화장품과 의류 등을 판매하지만 한번 쓰면 망가져 버려야 하는 낮은 품질의 상품이 대부분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5000원은 가격이 낮으면서도 꾸준히 쓸 수 있는 품질을 담보할 수 있는 한계선”이라며 “싸지만 싸구려는 아닌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 심리학적으로도 5000원은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 ‘심리적 최소 가격대’다. 지폐 한 장으로 계산할 수 있는 단위 중에서 부담 없이 지출할 수 있는 최소 한계선이란 설명이다. 미국에서도 5달러짜리 지폐 한 장, 일본에서는 500엔 동전 하나로 계산이 가능하다. 황진주 인하대 소비자학과 겸임교수는 “1000원보다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췄지만 1만원보다는 훨씬 싸기 때문에 심리적 문턱이 낮은 가격”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