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베센트 美 재무장관 만난 구윤철 부총리 /사진=뉴스1
스콧 베센트 美 재무장관 만난 구윤철 부총리 /사진=뉴스1
한·미 통상 수장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관세 협상 타결을 위해 막바지 담판에 들어갔다. 한국이 약속한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 구성 방안을 둘러싸고 두 달여간 이어진 협상 교착이 풀릴지 주목된다.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양국이 타결 필요성에 공감대를 이루며 협상 마무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미국 상무부 청사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2시간 넘게 협상을 벌였다.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도 배석했다. 최대 쟁점은 펀드 구성 방식이다. 지분 투자와 대출 및 보증 비중을 어떻게 조합할지가 핵심이다. 미국은 최대한 많은 현금 투자를 원하고, 우리 측은 이를 최소화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 밖에 외환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 투자금을 조달하는 방안과 투자 집행의 상업적 합리성 등도 핵심 쟁점이다.

일단 양국 간에 협상을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는 공감대는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의 희토류 공급망 압박을 받고 있고, 한국은 환율 변동성이 높아져 양측 모두 협상을 빨리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날 회동에서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김 실장은 회의 직후 “2시간 동안 충분히 논의했다”고만 언급했다. 협상단은 17~18일에도 워싱턴DC에 머물며 러트닉 장관과 추가 회담을 이어갈 예정이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주말 사이 장관급 접촉이 더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협상단은 전날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과 만나 한·미 조선업 협력 구상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논의했다. 이어 더그 버검 국가에너지위원장 겸 내무장관, 앤드루 그리피스 에너지부 부장관 등 미국 행정부 인사와도 회담할 계획이다.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참여와 원전 협력 확대가 핵심 의제로 거론된다. 한국 정부는 펀드 지분 투자 규모를 줄이는 대신 에너지·원전 등 전략 분야 기여도를 높여 협상 균형을 맞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미투자 '현금 비중'이 최대 관건…결과따라 통화스와프 규모 결정
트럼프가 '판' 엎을 변수도…공화당 텃밭 '대두 수입' 검토

두 달 동안 교착 상태에 있던 한·미 통상 협상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이달 말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 협상 타결을 위해 양국 정부가 총력전을 벌이고 있어서다. 정부 안팎에선 낙관론과 비관론이 동시에 나온다. 한국이 외환시장 충격 없이 3500억달러의 투자금을 선불로 지급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미국도 이해한다는 점에서 양측이 조만간 접점을 찾을 것이란 관측과 양국 협상단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킬 만한 묘안을 찾아내기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 동시다발 협상 장관급 경제 관료들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집결해 한·미 관세협상 총력전에 들어갔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오른쪽)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면담을 마치고 미국 상무부 건물을 나오고 있다(왼쪽 사진).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가운데 사진).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건물을 나오고 있다(오른쪽 사진). /연합뉴스·기획재정부 제공 ">
< 동시다발 협상 > 장관급 경제 관료들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집결해 한·미 관세협상 총력전에 들어갔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오른쪽)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면담을 마치고 미국 상무부 건물을 나오고 있다(왼쪽 사진).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가운데 사진).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건물을 나오고 있다(오른쪽 사진). /연합뉴스·기획재정부 제공
(1) “현금 투자 비중 최대한 낮춰달라”

17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을 대표로 하는 협상단은 이날 미국 측에 직접 지분투자(현금) 비중을 줄이고 대출·보증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말 관세 협상 이후 미국이 현금 ‘선불’(up front)을 요구해 후속 협상이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한국이 전액 현금을 내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미국이 인지했고 ‘랜딩 존’을 찾자는 데 양국 모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서 열린 동행기자단 간담회에서 “3500억달러를 선불로 하라고 하면 한국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잘 이해하고 있고, 내부적으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이야기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관건은 구체적인 비중이다. 지분투자 비중을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과거 언급한 5%에서 일반적 사모펀드 수준인 20~30%로 조정한다면 한국이 당장 내야 할 현금은 3500억달러에서 700억~1050억달러로 줄어든다.
한·미 '3500억弗 담판' 주말이 분수령
(2) 외환시장 충격 완화 장치 마련해야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할 통화스와프의 규모와 방식은 지분투자 비중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따른 종속 변수가 될 전망이다. 구 부총리는 “통상 협상은 러트닉 장관과 김 장관이 하는 게 본체”라며 “협상에 따라 필요한 외환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통화스와프를 하거나 안 할 수도 있고 많이 하거나 적게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통화스와프를 활용한다면 미국 재무부가 보유한 외환안정화기금(ESF)을 활용하는 게 현재로선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한국은행이 보유한 원화와 ESF의 달러를 맞바꾸는 방식이다. 한국 정부 주도로 글로벌 신디케이트론을 일으키되 미국 정부에 보증을 요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우리 측은 ‘10년 분할 투자’ 등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를 2029년 1월 19일까지 집행하기로 약속한 만큼 한국도 최소한 일본 이상의 시간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3) 韓 ‘상업성 합리성’도 관철해야

미국은 일본처럼 대미 투자펀드의 투자 결정권을 트럼프 대통령이 갖고, 투자금 회수 이후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투자처 선정 및 이익 배분이 ‘상업적 합리성’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칫 미국 요구대로 대미 투자가 이뤄졌다가는 한국 투자금 대부분이 미국 기업 혹은 일본과 유럽연합(EU)의 다국적 기업으로 흘러들어 ‘남 좋은 일’만 시킬 수 있어서다.

(4) ‘트럼프 불확실성’ 영향은

이번 워싱턴DC 협상이 결론으로 이어질지는 주말이 지나야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대외 변수도 많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고, 미국 선박에 입항료를 부과하는 보복에 나선 건 한·미 협상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으로서도 조선업과 원전 건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공급망 전략에서 한국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또다시 판을 엎을 가능성은 변수다. 정부는 이런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대두 수입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대두 농가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공화당의 지지 기반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대두 수입을 협상의 성과로 내세울 수 있어서다. 구 부총리는 이날 미국산 대두 수입과 관련해 “확인해 주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러트닉 장관과 의견차를 좁히더라도 결국 최종 승인 권한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은/김대훈/김익환 기자/워싱턴=이상은 특파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