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생산적금융 동참 압박에
위험 큰 취약계층 지원도 확대
연체율 3년새 0.22→0.57%로
외화 자산 가치도 하락 우려
조단위 과징금 부과 가능성도
은행들이 하반기 들어 거듭된 악재로 울상을 짓고 있다. 생산적 금융에 동참하라는 정부의 요구가 강해지는 가운데 추가 가계대출 규제가 나와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큰 기업과 취약계층 대출에 눈을 돌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최근 환율까지 급등해 외화자산의 원화 환산 가치마저 떨어질 상황에 내몰렸다. 정부의 조 단위 과징금 부과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건전성 관리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점점 커지는 생산적 금융 부담
정부는 15일 수도권·규제지역에서 15억원이 넘는 집을 살 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축소하는 내용 등을 담은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은행권에서는 더욱 강해진 규제로 가계대출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은 764조949억원으로 8개월 연속 증가했다. 시중은행 임원은 “내년 상반기까지 대출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본다”며 “그동안 가계대출은 성장 전략의 한 축이었지만 이제는 고객 기반을 넓히는 역할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투자와 취약계층 지원에는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할 판이다. 생산적 금융에 적극 나서라는 정부의 압박이 강해지고 있어서다. 은행들은 첨단 전략산업 지원을 위한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와 장기 연체채권 채무 조정을 담당하는 새도약기금 등에 대거 자금을 댈 것을 요구받고 있다.
연체율 상승을 겪는 은행들로선 리스크 관리 부담이 점점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7월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57%로 2022년 7월(0.22%) 이후 3년간 상승했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정책펀드 투자금의 위험가중치를 400%에서 100%로 낮추는 등 규제 완화가 이뤄져도 자본 건전성이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며 “기업 대출의 위험가중치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환율 급등에 과징금 리스크도
거듭 뛰는 환율은 또 다른 악재로 떠올랐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421원30전(오후 3시30분 기준)으로 하반기 들어서만 5.3% 올랐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이 다시 격화할 우려로 가파르게 뛰는 양상이다. 환율이 오르면 외환거래 손실이 발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외화자산의 원화 환산 가치도 떨어져 그만큼 은행 위험가중자산(RWA)이 불어난다.
이는 은행의 모회사인 금융지주의 핵심 자본 건전성 지표인 보통주자본비율(CET1) 하락으로 이어진다. CET1은 보통주자본을 RWA로 나눈 값으로 금융지주의 주주환원 여력을 나타낸다. 금융권에선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CET1이 0.01~0.03%포인트 떨어진다고 본다.
은행들은 ‘과징금 폭탄’ 리스크도 안고 있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 판매, 담보인정비율 및 국고채 전문 딜러 담합 의혹을 두고 정부가 제재 여부를 심사 중이다. 과징금을 내면 그 금액의 여섯 배를 운영 리스크로 인식해 10년 동안 RWA로 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