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을 엔비디아의 제2의 고향으로 만들겠다.”

2023년 12월 베트남을 방문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팜민찐 베트남 총리에게 건넨 말이다. 이후 엔비디아는 지난해 베트남 의료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빈브레인을 인수하고 AI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했다. 엔비디아는 앞으로 4년간 베트남에 45억달러(약 6조4000억원)를 투자하고 4000명의 베트남 엔지니어를 채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엔비디아까지 탐낼 정도로 베트남이 세계 반도체업계의 새로운 허브로 떠오르고 있다. 인재부터 땅, 세금, 전기까지 최적의 반도체 사업 환경을 조성하려는 베트남 정부의 뚝심이 수많은 글로벌 기업을 끌어들이고 있다.

◇기업 유치 위해 원전 건설

엔비디아 품으려 원전 짓는 베트남 "팹리스 200개 유치"
10일 원자력업계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는 지난 4월 ‘국가 전력개발계획’을 개정해 원전을 국가 전력 생산구조(전력 믹스)에 다시 포함시켰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을 건설하지 않겠다는 ‘무(無)원전’ 정책을 폐기한 것이다. 중진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적으로 육성 중인 반도체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원전이 필수 전력원이라고 판단한 결과다.

베트남은 현재 전무한 원전을 2030~2035년까지 대형 원전 4기 규모인 6.4GW급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어 2050년까지 14.4GW의 발전 용량을 원전으로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베트남 정부는 원전 운영국들과 접촉 중이다. 지난 1월 러시아 로사톰에 이어 3월 중국전력엔지니어링컨설팅그룹(CPECC), 5월 미국 웨스팅하우스 및 프랑스 전력공사(EDF) 등을 만나 원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8월엔 한국전력과 원전 사업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베트남은 이미 2030년까지 호찌민 인근 닌투언성에 대형 원전 2기를 짓는 작업에 들어갔다. 호찌민엔 인텔의 초대형 패키징 공장을 비롯해 르네사스, 시놉시스, 마이크로칩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밀집해 있다. 하나마이크론, 앰코 등 반도체 후공정 공장이 몰린 하노이 주변과 중부 대표 도시 다낭에 전력을 공급하는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베트남도 중국처럼 위협될 것”

반도체 생산 인프라 구축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해 2050년까지 3단계에 걸쳐 반도체산업을 키우는 ‘반도체 산업 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베트남엔 약 50개의 반도체 설계 기업(팹리스)과 15개 후공정 공장, 6000명의 설계 엔지니어가 있다. 아직 반도체를 제조하는 공장(팹)은 없다. 1단계로 2030년까지 팹리스를 100개로 확대하고 소규모 팹 1개와 후공정 공장 10개를 추가 유치하기로 했다. 2040년까지 팹리스는 200개, 팹은 2개로 늘리고, 후공정 공장도 15개 세울 계획이다. 2050년 목표는 팹리스 300개, 팹 3개, 후공정 공장 20개다. 이 계획이 현실화하면 한국 대만 중국 미국 등 반도체 강국 다음가는 수준의 반도체 생태계가 구축된다.

베트남은 파격적인 지원책으로 글로벌 기업들을 흡수하고 있다. 반도체 투자 기업들은 현행 20%인 법인세율을 4년간 전액 면제받는다. 이후 9년간 5%, 2년간 10%로 감면받는다. 생산에 사용되는 소재·장비 관세가 면제되고 첨단 기업 인증 시 산업단지 임대료도 할인받는다.

평균 연령 32세의 젊은 인력과 중국을 대체하는 지정학적 조건도 베트남의 전략 무기다.

우현택 어보브반도체 베트남법인장은 “정치적으로 공산당의 리더십이 강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베트남의 큰 장점”이라며 “지금은 해외 기업에서 배우고 ‘파트너’를 자처하고 있지만 베트남도 중국처럼 시간이 지나면 반도체 자립에 나서며 한국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노이=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