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 GM 테네시 합작공장
LG에너지솔루션, GM 테네시 합작공장
“전기차 점유율이 절반으로 줄어도 이상하지 않다.”

미국 자동차 기업 포드의 짐 팔리 CEO가 지난달 30일 자사 행사에서 한 발언입니다. 현재 미국 전체 자동차 중 전기차 비중은 약 10%인데, 이 수치가 5% 미만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관측입니다. 포드는 올해 상반기 전기차 부문에서 약 3조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는데, 적자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걱정이 커지는 것은 포드만이 아닙니다. 전기차 전체 시장 성장률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올해 상반기 미국 전기차 판매는 전년 대비 약 1.6% 늘어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개별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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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트럼프 정부의 ‘반(反) 전기차’ 정책 영향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달 30일부로 전기차당 7,500달러(약 1,000만원) 세액공제를 중단하고, 내연기관차 배출 규제는 완화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기차 상징하는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 역시 전기차 시장을 우려하는 공개 발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얼리어답터 중심으로 팔리던 전기차의 성장률이 꺾였고, 단기 수요를 끌어올리던 ‘보조금 엔진’이 꺼지면서 시장은 냉정한 원가 경쟁 국면으로 접어드는 분위기입니다. 전기차 가격을 낮추기 위해 GM을 시작으로 삼원계 배터리 대신 리튬인산철(LFP) 비중을 늘리는 등의 조정에 들어갔지만, 수요가 얼마나 회복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전기차 침체는 완성차보다 배터리 회사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자동차 기업은 하이브리드라는 대체재가 있지만, 배터리 업체는 당장 대체 시장이 크지 않습니다. 다른 용처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뜻입니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을 최우선 시장으로 보고 연간 수조원을 투자해왔지만, 내년부터 본격 가동을 시작하는 국내 기업 공장의 가동률이 예상보다 낮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지었거나 지을 예정인 배터리 공장 생산능력만 600GWh(기가와트시) 이상입니다. 현재의 수요 흐름을 감안하면 미국 내 실제 수요는 생산능력 대비 절반 이하에 머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기초 체력이 약한 배터리 소재 기업의 타격은 더 큽니다. 최근 전해액 기업 엔켐은 테네시 브라운즈빌 공장(약 1억5천만 달러) 계획을 전면 철회했습니다. 포드–SK온 ‘블루오벌 시티’ 인접 납품을 노렸지만, 포드 부진 등으로 계획을 백지화했습니다. 전기차가 안 팔리니 배터리 발주가 줄고, 배터리 생산이 감소하니 소재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는 구조입니다.

현재 배터리 기업들의 ‘희망’으로 거론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전기차 시장을 대체하기에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습니다.

업계에선 ‘배터리 캐즘(Chasm, 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침체)’이라는 표현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일시적이라고 보기엔 침체가 길어지면서 “이 자체가 장기 현상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침체가 강한 미국 시장에 집중하는 한국 기업들에겐 우려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배터리 업체들은 “내년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지만 근거는 뚜렷하지 않습니다. 일각에선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하기보다 양자가 현재와 비슷한 비중으로 공존하는 하는 국면이 장기화할 가능성까지 거론됩니다.

전기차 수요를 급격히 늘릴 신기술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완전자율주행이 거론됩니다. 막대한 전력을 사용하는 인공지능(AI) 기반 완전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면 전기 구동 전환의 필요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완전 자율주행이 구현되면 차량 내 대형 스크린을 통한 게임, 영화 등새로운 사용 경험도 확산될 수 있는데, 이 역시 전력 수요가 커 전기차 배터리가 필요한 요인이 됩니다. 업계는 2028년 이후 이 같은 기술들이 본격 상용화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