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햇살론15 등 정책서민금융 금리를 연 15.9%에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자 금융권에선 신용 시스템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책서민금융 이용자보다 신용점수가 더 높은 금융소비자가 저축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을 때 연 15% 안팎의 금리를 내고 있어서다. 정책서민금융 금리가 더 낮아지면 ‘고신용 저금리, 저신용 고금리’를 기본으로 하는 신용 시스템이 훼손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정책서민금융을 이용하기 위해 신용점수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도덕적 해이가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李 대통령 이어 여당도 압박

최저신용자 이자 더 줄여준다는 정부…"도덕적 해이만 부추긴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햇살론15, 최저신용자특례보증 등 정책서민금융 금리를 현행 15.9%에서 인하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금융당국 안팎에선 금리를 연 9.9~12.9%로 낮추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만큼 정책서민금융 금리 인하를 최우선 과제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9일 국무회의에서 정책서민금융을 놓고 “1%대 성장률 시대에 서민들이 연 15% 금리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에도 불법사금융예방대출(옛 소액생계비대출)을 두고 “(연 15.9% 금리는) 정상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16일 “저신용, 저소득일수록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지금의 금융 구조는 역설적”이라고 했다.

금융당국이 살펴보는 건 불법사금융예방대출, 햇살론15, 최저신용자특례보증 등이다. 세 상품 모두 금리는 연 15.9%로 동일하다. 불법사금융예방대출은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면서 연소득 3500만원 이하인 차주에게 신청 당일 최대 100만원을 빌려주는 상품이다. 햇살론15와 최저신용자특례보증도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최저신용자를 위해 만들어졌다.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이 서민금융진흥원으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불법사금융예방대출 이용자의 평균 신용점수는 지난 8월 기준 473점(1000점 만점)에 그쳤다. 최저신용자특례보증과 햇살론15 이용자의 평균 신용점수도 각각 608점, 647점에 불과했다.

◇정책금융發 ‘구축 효과’ 우려

금융권에선 정책서민금융 이용자의 신용점수와 부도 위험 등을 감안할 때 연 15.9% 금리가 높은 수준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불법사금융예방대출의 지난 8월 기준 연체율은 35.7%에 달했다. 최저신용자특례보증과 햇살론15의 대위변제율도 각각 8월 말 26.7%, 25.8%를 기록했다. 서민금융진흥원이 100만원을 대출했을 때 약 26만원을 정부가 대신 갚아줬다는 얘기다.

최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정책서민금융 금리를 추가 인하하면 중저신용자 대출 금리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저축은행중앙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가계신용대출을 취급하는 33개 저축은행이 신용점수 601~700점 차주에게 내준 대출의 평균 금리는 연 15.9%다. 현재 불법사금융예방대출, 햇살론15 등과 동일한 수준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정책서민금융 금리를 낮추면 민간 금융회사에서 대출받던 사람들이 (이자가 저렴한) 정책 상품으로 넘어온다”며 “정책서민금융 공급액은 한정돼 있는데 기존 이용자가 밀려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의도적으로 신용점수를 낮추기 위한 도덕적 해이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대규모 신용사면, 채무 탕감 등이 반복되며 신용 시스템이 크게 훼손됐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한 금융회사 대표는 “신용 시스템이 무너지면 금융사들은 보증, 담보만 믿고 대출해준다”며 “장기적으로 금융산업이 후퇴하는 것”이라고 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