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코미디의 선구자·정신적 지주…故 전유성 추모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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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태어난 그는 서라벌고와 서라벌예술대 연극연출과를 졸업한 뒤 배우를 꿈꿨으나 탤런트 시험에서 연이어 낙방했다. 이후 코미디계에 발을 들였고, 1969년 TBC '쑈쑈쑈'의 작가로 방송가에 본격 진출했다.
KBS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자키' 등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고, 따뜻하면서도 촌철살인의 개그로 시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이 됐다. 그는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로, '대한민국 1호 개그맨'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후배들을 발굴하고 이끈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극단 '코미디 시장'을 운영하며 수많은 신인을 배출했고, 김신영·조세호 등 제자를 길러냈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조직위원회(부코페 조직위)는 26일 "대한민국 개그계의 큰 별, 전유성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다"라며 "선생님의 발자취는 한국 코미디 역사 속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선생님은 '개그맨'이라는 명칭을 직접 창시하시고, 한국 최초의 공개 코미디 무대와 개그 콘서트 실험 무대를 선보이며 한국 코미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70년대부터 대중에게 사랑받아온 선생님은 재치와 풍자, 따뜻한 유머로 시대를 관통하며 웃음의 가치를 일깨워 주셨다"고 말했다.
조직위는 또 "방송과 무대를 오가며 수많은 명장면을 남기셨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후배 개그맨들에게 든든한 스승이자 멘토로서 영감을 주셨다. 특히 아시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코미디 페스티벌인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 만들어지는 데 주춧돌이 되어주셨고, 한국 코미디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앞장서 전파하셨다"라고 했다.
아울러 "선생님은 언제나 '최초'라는 수식어와 함께, 늘 새로운 길을 개척해 온 한국 코미디의 선구자셨다"라며 "웃음을 통해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네주셨던 선생님의 발자취는 한국 코미디 역사 속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이어 "이제 무대 뒤편에서 조용히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 선생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고 애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후배 개그맨 엄영수는 "전유성이 교육을 해 개그맨이 된 후배들이 40명이 넘는다. 항상 우리의 정신적 지주가 돼 줬다"며 "저 또한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몇 번 하차할 뻔한 일이 있었는데, 전유성이 그때마다 PD들에게 '엄영수 같은 사람이 필요하니 함부로 내치면 안 된다'고 방패막이가 돼 줬다"고 말했다.
엄영수는 그러면서 "전국의 많은 축제와 지방 행사 가운데 전유성이 만들어 놓은 게 많다.
각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점심값 정도 되는 돈만 받고서 컨설팅을 해줬다"며 "코미디 아카데미를 세워서 지방에 있는 사람들도 코미디언이 될 길을 열어줘서 지방 코미디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코미디 발전에 크게 기여한, 코미디에 몸을 불사른 분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고인에 대해 "한국 코미디의 인적 자원을 업그레이드하고, 유망한 후배들을 이끌면서 코미디의 위상을 높인 분"이라며 "코미디 하면 유랑극단만 생각하던 때에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코미디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고 회상했다.
고인과 절친했던 가수 조영남은 별세 소식에 믿기지 않는 듯 "확실한 뉴스냐?"고 되물으며 허탈해했다. 조영남은 "코미디언 중에서 그렇게 선량한 친구가 없다. 짬뽕을 파는 중국집을 운영하며 자기도 사정이 여의찮은데도 TV에 나가지 못하는 후배 코미디언들을 모여 연습시켰다"고 기억했다.
그는 "전유성이 위독했던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에도 야위어서 찾아오길래 그때 가는 건가 하고 크게 걱정했는데, 살아났다"며 "몇 달 전에도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 조의금을 미리 보내뒀다"고 말했다.
가수 남궁옥분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8월 28일 오빠(전유성) 딸 제비가 운영하는 남원 인월의 카페에 오빠 뵈러 가서 마지막 뵙고 왔는데 이리 빨리 가실 줄은 몰랐다"며 "어제도 전대 병원 응급 상황에서도 근력 운동 하시라는 카카오톡에 밤 9시 4분에 '응'이라는 답을 주신 뒤 하루 만인 오늘 밤 9시 5분에 가셨다. 연명치료도 거부하시고 따님 제비와 얘기도 많이 나누시고 전유성답게 떠나셨다"고 적었다.
남궁옥분은 "세상 돌아가는 걸 휴대전화로 모두 살피며 SNS도 모두 보시고 책을 끝까지 손에서 멀리하지 않으신 귀한 사람"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개그맨 김대범도 SNS를 통해 "저의 스승이신 개그계의 대부 전유성 선생님께서 하늘의 별이 되셨다. 불과 오늘 낮에 건강 회복을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은 안 됐다"며 "나이를 떠나 항상 젊은 감각의 신선한 개그를 하셔서 늘 감탄하며 배울 수 있었다"고 애통해했다.
그는 "스승님처럼 나이를 먹어 가고 싶었다. 그럴 수 있게 노력하겠다"며 "스승님의 성함처럼 하늘에서 유성으로 계속 빛나며 여행하시기를 바란다"고 남겼다.
조혜련 또한 전유성과의 사진을 게재하며 "오빠의 손을 잡고 기도할 수 있어 감사했고, 마지막까지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들으셨다"며 "유성 오빠, 힘든 국민들이 웃을 수 있게 개그를 만들어줘서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라고 애틋하게 전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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