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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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국내 배터리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ESS 시장에서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 주문이 전기자동차(EV) 판매 부진으로 ‘보릿고개’에 처한 업계의 숨통을 터줄 것이란 게 시장조사업체들의 진단이다.

◇ ESS 수주 증가 본격화 기대

“북미 ESS 시장에서 수주가 본격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16일 2차전지용 양극재를 생산하는 엘앤에프의 3분기 영업이익을 ‘90억원 흑자’로 전망했다. 2023년 4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7분기 동안 지속한 적자 행진을 끝낼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는 900억원으로, 2022년 이후 4년 만에 연간 흑자 복귀를 예상했다.

실적 개선을 낙관하는 주요 배경 중 하나는 전방 산업인 ESS 고객사의 주문 증가다. 국내 최대 2차전지 셀 제조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7월 43억900만달러(약 6조원) 규모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SDI도 3월 넥스트에라에너지와 4347억원 규모 ESS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국내 셀 제조업체의 수주 실적은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등 소재 생산업체 실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레스노카운티 LG에너지솔루션 RWE ESS단지.  한경DB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레스노카운티 LG에너지솔루션 RWE ESS단지. 한경DB
미국 번스타인리서치에 따르면 미국의 ESS 시장 규모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23.7GWh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57% 성장했다. 글로벌 전체 시장은 올해 348GWh로 작년보다 68% 커질 전망이다. 인공지능(AI) 관련 전력 수요 급증과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안정적인 전력망 운용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탈(脫)중국 움직임도 국내 배터리산업의 반사이익 기대를 높이는 요인이다. 미국은 중국산 제품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내년부터 중국산 ESS용 LFP 배터리 관세율을 58%로 18%포인트 인상할 계획이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중국산 ESS용 LFP 배터리 셀에 대한 관세 부과로 중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 저하가 불가피해졌다”며 “ESS 시장 성장에 필요한 현지 배터리 공급은 대부분 한국 기업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기업가치 본격 반등은 제한적”

국내 배터리산업이 보릿고개를 넘어설 것이란 기대로 관련 종목 주가는 최근 반등 흐름을 나타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엘앤에프가 최근 3개월 동안 52.2% 뛰었고 에코프로비엠은 30.69% 상승했다. 셀 제조업체인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도 각각 20.7%, 20.1%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15.7%)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본격적인 기업가치 회복을 기대하기엔 이르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골드만삭스는 최근 한국 배터리산업 분석 보고서에서 “미국이 전기차 구매 보조금 종료에 이어 배기가스 배출 규제까지 완화하면 전기차 수요에 추가 역풍이 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ESS 시장이 고성장 중이지만 전기차 공급 과잉 상황을 뒤집기에는 규모가 작다”고 지적했다.

시장조사업체 EV탱크에 따르면 작년 글로벌 2차전지 출하량은 모두 1545GWh다. 이 중 EV용 배터리가 68.0%, ESS용 제품은 23.9%를 차지했다.

유럽 전기차 시장 내 중국의 변함없는 독주도 주가를 낙관하기 어려운 배경으로 꼽힌다.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르노 등 유럽 완성차업체들은 보급형 전기차 배터리를 저렴한 LFP 기반 제품으로 속속 전환하고 있다. 중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LFP 기반 배터리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국내 산업이 집중해 온 고밀도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 시장을 잠식해 왔다. 정진수 흥국증권 연구원은 “최근 유럽에서 보급형 전기차 선호 현상이 나타나며 중국 배터리업체의 지배력이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