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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없이 군대 못 간다"…'눈물 나는 한국 현실' 이유 있었다 [글로벌 머니 X파일]
최근 세계적으로 먼 곳이 잘 안 보이는 근시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 증가와 야외 활동 감소 등이 요인이다. 이런 ‘근시 팬데믹’으로 발생한 사회적 비용으로 이른바 ‘비전 이코노미’가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30억명이 근시

8일 시력 과학자 브라이언 A. 홀든 박사 등의 논문 '2000년부터 2050년까지 근시 및 고도 근시의 전 세계 유병률과 시간적 추세'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근시 인구 추정치는 약 30억4000만명에 달한다. 전 세계의 약 37% 수준이다. 올해 고도 근시 인구 추정 규모는 세계적으로 약 4억6500만명이다.

올해 2월 영국 안과학회지 공개된 '1990년부터 2050년까지 어린이 및 청소년 근시의 전 세계 유병률, 추세 및 전망: 포괄적인 체계적 검토 및 메타 분석' 논문에 따르면 글로벌 소아·청소년 근시 유병률은 1990년 24.3%에서 2023년 35.8%로 급증했다. 오는 2050년엔 39.8%로 증가할 전망이다.
"안경 없이 군대 못 간다"…'눈물 나는 한국 현실' 이유 있었다 [글로벌 머니 X파일]
근시 인구 증가 원인은 복합적이다. 전문가들은 생활 환경과 행동양식의 급격한 변화가 요인으로 분석한다. '디지털 스크린 이용 급증과 근거리 작업의 증가, 야외활동 부족'이라는 복합 요인이 어린이와 청년의 눈을 멀게 한다고 경고한다.

2020년대에 발표된 여러 연구는 스마트폰·태블릿·PC 등 디지털 스크린 노출 시간과 근시 발생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입증했다. 올해 2025년 'JAMA Network Open'에 게재된 45개 연구 분석에 따르면 하루 스크린 사용 시간이 1시간 증가할 때마다 근시 발생 위험이 약 21%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내 위주의 생활과 학업 경쟁에 따른 근거리 작업 증가, 이에 따른 야외 자연광 노출 감소도 근시 증가의 환경 요인으로 지목된다. 밝은 야외 환경에서 분비되는 망막 도파민이 안구의 비정상 성장(근시 진행)을 억제한다는 가설이 학계에선 유력하다. '하루 2시간 이상 야외 활동'이 소아 근시 예방의 핵심 권장 사항으로 떠오른 이유다. 홍콩 등의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기간 실내 생활 급증으로 소아 근시 발생 및 진행이 가속화되는 '자연 실험'이 관찰되기도 했다.

중국 시안 지역 초등학생을 추적한 연구에서 2020년 코로나19 확산 봉쇄 기간 6개월간 근시율이 예년보다 1.4~3배 급증한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중국 어린이와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근시이며, 고등학교 졸업생 중 근시 비율은 80%를 넘어섰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아동·청소년의 시력 건강은 국가 미래와 직결되는 중대 사안"이라며 "지금 추세를 방치한다면 우리 아이들의 눈앞이 흐려질 뿐 아니라, 중국의 앞날도 흐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교육부의 '2024년 학생 건강검사 표본통계 결과'에 따르면 작년 기준 초등학생 1학년 30.8%, 초등학생 4학년 52.6%, 중학교 1학년 64.8%, 고등학교 1학년 74.8%가 시력 이상으로 나타났다. 브라이언홀덴연구소(BHVI)에서 근시 프로그램 책임자인 파드마자 상카리두르그 박사는 "동아시아의 고밀도 도시 생활과 근거리 작업 중심 일상이 높은 근시율과 시력 교정 부족 문제를 낳았습니다. 시력 손상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합니다. 취업과 교육, 사회적 교류까지 제한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안경 없이 군대 못 간다"…'눈물 나는 한국 현실' 이유 있었다 [글로벌 머니 X파일]

세계 GDP를 갉아먹는 근시

이런 '근시 팬데믹'은 글로벌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2021년 'Lancet 글로벌 눈 건강 위원회’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중급 이상의 시력 손상과 실명으로 연간 글로벌 생산성 손실액을 4107억 달러(구매력 평가 기준, PPP)로 추산됐다. 4107억 달러라는 수치의 모든 원인에는 시력 손실도 포함된다.

근시 등 굴절 이상 교정 미비로 시력 저하가 전 세계에 초래하는 생산성 손실은 막대하다. 브라이언홀덴 연구소(BHVI) 추산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교정되지 않은 근시에 따른 잠재 노동생산성 손실이 약 2440억 달러로 추정됐다. 이는 해당 연도 전 세계 GDP의 약 0.3% 수준이었다. 특히 동아시아·남아시아 등 근시 대유행 지역의 지역 GDP 대비 손실 비중이 1% 이상에 달했다.

중국의 경우 2015년 기준 근시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GDP의 약 1.3%에 해당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2012년 이후 중국 근시 인구가 4억 5000만 명을 넘어섰고, 연간 사회경제적 비용이 6800억 위안을 초과한다”고 추산했다.

근시 팬데믹은 거대한 산업 생태계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안경, 콘택트렌즈부터 눈 건강 의약품, 레이저 수술기기, 디지털 눈 치료제와 AR 글라스 등. 이른바 '비전 이코노미'가 전방위적으로 성장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는 전 세계 안경테·도수 렌즈·선글라스 등의 소매시장 규모를 지난해 2004억 달러로 추산했다. 해당 시장은 매년 5~8%대 성장세를 보이며 2030년경 30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프리시던스 리서치는 안과용 의약품 시장(녹내장약·안구건조증약·항염증제 등)이 작년에 약 431.9억 달러 규모로 추정했다. 고령화에 따른 황반변성·당뇨망막증 치료제 수요 증가로 오는 2030년 600억 달러 이상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안과 의료 기기 및 수술 시장은 범위에 따라 시장 크기 차이가 크다. 진단 장비·수술 장비를 합친 글로벌 시장이 지난해 330~35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전통적 시력 보정·안과 산업 전체를 합하면 대략 연 3000억~4000억 달러대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고 추정이 가능하다.
"안경 없이 군대 못 간다"…'눈물 나는 한국 현실' 이유 있었다 [글로벌 머니 X파일]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전 세계 수백만 명이 간단한 방법으로 시력을 되찾을 수 있지만 시력 손상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눈 보건 서비스를 국민 보건 필수 패키지에 포함하는 것은 모든 국민이 경제·사회에 완전히 참여하게 하는 데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단 하룻밤 백내장 수술로 시력을 복원할 수 있는 사람이 6000만 명이 넘고, 안경 한 쌍으로 일상 불편을 해결할 사람이 8억 명이 넘는데도 그대로 방치된 현실은 용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분야에서도 글로벌 빅플레이어가 경쟁 중이다. 전통 안광학 업계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글로벌 안경·렌즈 업계를 지배하는 에실로룩소티카(EssilorLuxottica)의 지난해 매출은 265억 유로에 달했다.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다. 이 회사는 세계 안경 시장의 약 40%(업계 추정)를 점유한 절대강자다. 안경테(레이밴 등)부터 도수 렌즈(에실로), 소매체인(렌즈크래프터 등)까지 수직계열화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에실로룩소티카는 젊은층의 근시 교정 수요를 겨냥해 'SightGlass Vision'이라는 조인트벤처도 설립했다. 쿠퍼비전과 합작으로 근시 관리 전용 안경렌즈 기술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쿠퍼비전은 콘택트렌즈 분야 글로벌 상위 4개 업체 중 하나다. 콘택트렌즈 업계 보면 존슨앤존슨 비전, 알콘, 쿠퍼 비전, 바슈롬의 4강 구도가 공고하다.

빅테크 기업과 광학 기업의 전략적 제휴도 눈에 띈다. 에실로룩소티카와 메타의 협업이 대표적이다. 둘은 라이방 브랜드 스마트글라스를 공동 개발했다. 메타는 오큘러스로 VR 시장을 선도했다. 하지만 일상적 패션 기반의 AR 글라스 구현에는 광학 노하우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광학업계 1위를 파트너로 택한 것이다.

구글은 2010년대 초 글래스 프로젝트 실패 후 삼성, 퀄컴과 파트너십으로 AR 글라스를 재도전하고 있다. 소니와 자이스(Zeiss)는 산업용 스마트안경을 공동 출시했다. 애플도 자이스 등과 협업했다.
"안경 없이 군대 못 간다"…'눈물 나는 한국 현실' 이유 있었다 [글로벌 머니 X파일]

한국의 현주소…전 국민 안경 시대?

한국 청년층 근시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안경 없이 군대 못 간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19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연령 구간별 내원일수는 10대가 284,532(일)로 전 연령에서 가장 많았다. 연령별 환자 수 역시 10대가 전체 환자 수의 36%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지금도 비슷하거나 더 심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전 국민 안경 시대를 맞이한 한국에서도 근시 팬데믹이 산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국내 안광학 시장은 올해 기준 안경 렌즈 시장 규모는 약 6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안광학 기기 시장은 1.25억 달러 규모에서 2030년까지 1.76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이다. 여기에 안과용 의약품과 백내장·굴절 수술 시장을 더하면 한국 비전 이코노미 규모는 연 3~4조 원 규모로 추정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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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