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무부가 중국에 반도체 설계 제품을 불법 판매한 미국 반도체 설계 기업 케이던스디자인시스템스에 벌금 1억4000만달러(약 2000억원)를 부과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무역 협상 국면에서도 핵심 기술에 대한 대중 수출 통제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케이던스는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분야 강자로 엔비디아, 퀄컴 등을 고객사로 뒀다.

미국 법무부는 28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케이던스가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중국 국방과학기술대(NUDT)를 대리하는 위장 업체에 불법적으로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지식재산권(IP)을 팔아 미국 당국의 수출 통제를 위반한 혐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NUDT는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산하 대학이다. 한때 세계 최고 슈퍼컴퓨터로 불린 ‘톈허-2’를 비롯해 대학 슈퍼컴퓨터용 칩을 개발했다. 미국 상무부는 2015년 2월 이 슈퍼컴퓨터가 핵 실험과 군사 시뮬레이션에 사용됐다는 이유로 NUDT를 수출 통제 대상에 추가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케이던스는 중국 내 자회사를 통해 NUDT와 연계된 위장 기업들에 최소 59차례에 걸쳐 반도체 설계 도구를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상무부의 수출 통제 명단에 NUDT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숨기기 위해 고객 명칭을 은폐하는 등 케이던스가 조직적으로 정보를 감추려 했다고 지적했다. 케이던스는 혐의를 인정했으며 1억4000만달러 벌금에 합의했다고 법무부는 전했다.

조사는 4년 넘게 이뤄졌다. 케이던스는 2021년 2월 상무부로부터 중국 내 특정 고객 관련 기록을, 2023년 11월에는 법무부로부터 회사의 중국 내 사업 활동에 관한 자료 전부를 요구받았다.

이번 벌금 부과는 반도체 등 핵심 기술에서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로이터통신은 “미국과 중국이 무역 협상을 벌이는 가운데 이뤄진 이번 합의는 미국이 협상의 하나로 일부 규제를 완화하면서도 대중 수출 통제를 계속 강력하게 집행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정부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통제가 케이던스를 포함한 반도체 기업의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케이던스는 지난해 매출의 12%를 중국에서 올렸다. 케이던스 경쟁사 시놉시스도 중국 매출 비중이 16%다.

불확실한 무역 환경에서도 케이던스는 양호한 실적을 내고 있다. 케이던스가 이날 발표한 2분기 실적에 따르면 매출은 12억8000만달러로 시장조사 업체 LSEG가 집계한 월가 예상 평균치(12억5000만달러)를 웃돌았다. 올해 매출 전망치도 52억1000만~52억7000만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시장 예상치(52억달러)보다 높은 수준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달 초 중국에 대한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수출 규제를 완화한 영향이 반영됐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