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음악을 통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게 저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8년부터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Petr Kadlec
세계적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음악을 통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게 저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8년부터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Petr Kadlec
러시아 태생의 미국인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73)는 최근 체코 프라하 오베츠니 둠(시민회관)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음악을 통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6년 베를린 필하모닉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을 녹음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지휘 거장이다. 2018년부터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이 악단은 지난해 그라모폰 뮤직 어워즈에서 ‘올해의 오케스트라’에 선정됐고 올해 BBC 뮤직 매거진 어워즈에서도 오케스트라 부문을 수상했다.

그가 체코 필하모닉과 함께 한국을 찾는다. 10월 28일(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는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연주하고, 29일(롯데콘서트홀)에는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한재민 협연)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등을 들려준다.

▷한국 공연 프로그램으로 스메타나, 차이콥스키, 드보르자크 작품을 선택했다.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는 체코 필하모닉이 본능적으로 가장 깊이 이해하고, 음악에 담긴 진정한 정신을 온전히 꺼내 보일 수 있는 작곡가 작품들이다. 차이콥스키 교향곡은 러시아 출신인 저와 체코 필하모닉이 함께한 첫 대규모 프로젝트의 핵심 레퍼토리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10년대에 클래식 음반사 데카를 통해 차례로 발매한 ‘차이콥스키 프로젝트’ 음반 작업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우린 7년간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협주곡 등을 심도 있게 탐구했고 그의 음악에 완전히 몰입하는 경험을 했다. 이는 우리가 드보르자크, 스메타나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차이콥스키 사운드까지 보유했음을 뜻한다. 청중은 복잡한 정보나 생각을 떠올리지 않고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체코 필하모닉은 당신의 리더십 아래 세계 정상급 악단으로 올라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창기부터 제 목표는 체코 필하모닉을 세상에 몇 없는 엘리트 악단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엘리트란 다른 악단보다 낫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사운드, 연주 스타일, 해석, 표현 등을 갖추고 대체 불가능한 연주를 구현해내는 오케스트라를 말한다. 오늘날 많은 악단이 있지만 소리만으로 구별되는 오케스트라는 거의 없다. 지금 우리의 사운드는 확실히 독특하다. 그걸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집중해왔다.”

▷단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면.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라’란 말이다. 동료가 하고 싶은 말과 표현이 무엇인지까지 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먼저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남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야 하며, 빠르게 전체에 통합돼야 한다. 개별 캐릭터가 없는 오케스트라는 훌륭한 악단이 될 수 없지만 개별 캐릭터가 서로 어우러지지 않는 오케스트라 또한 뛰어난 악단이 될 수 없다.”

▷전설적 지휘자 고(故) 카라얀은 후계자로 당신의 이름을 언급했다.

“카라얀은 어릴 적 우상 중 한 명이었다. 실제로 만난 그는 타고난 교육자이기도 했다. 평소엔 말을 아꼈지만 음악적인 질문을 하면 악보에 담긴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지휘에 대해 알려줬다. 특히 베를린 필과 카라얀 사이의 일체화는 지금까지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카라얀은 자리에 없지만 요즘에도 베를린 필을 지휘할 때면 그의 유산과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소수의 지휘자만 누릴 수 있는 영광과도 같다.”

▷당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음악가다. 예술가가 정치·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나.

“모든 건 개인 선택이다. 다만 제가 믿는 건 예술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분리된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과 무관할 수 없다. 그렇기에 또다시 참혹한 문제가 발생하고, 그에 대한 뚜렷한 의견이 생기며, 적절한 시기라고 느낀다면 주저 없이 무언가를 표현할 것이다.”

▷음악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믿는가.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순 없다. 그러나 예술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간은 음악을 통해 순간적으로 고통을 잊어버리고 고귀한 힘을 얻어왔다. 이는 예술의 강력한 힘이다. 유일한 소원은 우리의 연주가 끝나고 집을 향하는 사람들 일상에 음악의 선한 영향력이 조금이나마 더 오래 남아 있고, 기억 속에 한동안 머무르는 것이다. 제게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프라하=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