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쓰나미 피난타워’
일본 ‘쓰나미 피난타워’
고령자를 중심으로 영남 지역 산불 피해자가 늘어나자 부실한 재난 피난·대피 인프라가 도마에 올랐다. 재해 관련 예산이 부족할 뿐 아니라 예방 조치에 집중돼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의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경상북도 등에 따르면 이날 산불로 인한 사망자 28명 중 26명이 60세 이상으로 집계됐다. 영덕군 사망자 8명은 모두 80대 이상이다. 빠른 속도로 번지는 산불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자택 근처에서 변을 당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산불 피해가 집중된 경북 의성군 영양군 청송군 영덕군 안동시 등은 한국에서 고령화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지역에서 재난·재해가 발생하면 대피소와 피난 통로 확보 및 유지, 대피 명령과 피난 경로 안내 등 피난과 대피 인프라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 지역 연간 예산을 분석한 결과 재해 관련 예산 자체가 부족할 뿐 아니라 대부분 산불 예방에만 쓰이고 있었다.

제대로 된 피난·대피시설 없는 한국…노인 피해 키웠다
의성군은 올해 예산(7200억원)의 1.7%인 121억원을 공공질서 및 안전 부문에 편성했다. 2020년 248억원(4.4%)이던 관련 예산이 5년 새 반토막 났다. 그나마 산불방지대책 예산이 21억원(중앙정부 지원분 포함)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안동시의 공공질서 및 안전 부문 예산은 81억원으로 전체의 0.5%였다. 이 가운데 66억원은 산림자원 보호와 산림재해 일자리, 산불 예방 및 홍보에 쓰였다. 영덕군은 관련 예산이 없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30억~115억원 규모로 편성한 재해·재난 목적 예비비는 대부분 재해 발생 이후 피해 복구와 피해 주민의 생활 지원을 위한 예비자금이어서 대피 인프라 예산으로 보기는 어렵다. 전국 지자체들이 총 7473억원 규모로 운영하는 재해구호기금 역시 대피소 유지뿐 아니라 응급 복구비와 구호 인력 장비 투입, 장례비 지원 등을 모두 포함하는 예산이다. 예산 담당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지방의 재해 관련 예산 편성과 집행은 행정안전부와 지자체 소관”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고령자 대피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구축했다. 당시 상당수 노인이 5~10분 만에 도달한 쓰나미를 피하지 못해 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동일본대지진의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1만8420명의 66%가 60세 이상 고령자로 집계됐다.

일본은 이후 태평양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쓰나미 피난타워’라는 고령자용 대피 시설을 550곳 이상 설치했다. 쓰나미 피난타워는 마을에서 떨어진 고지대가 아니라 마을 한복판에 수십m 높이로 지어졌다. 그 덕에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도 5~10분 만에 닿을 수 있다.

자연재해 피해가 많은 고치현은 2023년 예산(4879억엔)의 8.1%(397억엔)를 재해 관련 예산으로 편성했고, 이 가운데 48%(148억엔)를 대피 인프라 정비에 썼다. 피해 복구와 방지 예산(146억엔·47%)보다 많았다. 채진 목원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한국은 대피소와 피난 인프라에 대한 관점이 약하다”며 “재난 정보 전파와 대피 훈련 등 관련 활동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효/김익환/이광식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