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술 개발이 애국"…日 의존 깬 '신소재 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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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국산화 주역 이부섭 동진쎄미켐 회장 별세
2019년 일본 수출규제 맞서
칩 공정 포토레지스트 기술 개발
연탄창고서 1조 기업 일궈
57년간 대표 맡으며 현장 챙겨
2019년 일본 수출규제 맞서
칩 공정 포토레지스트 기술 개발
연탄창고서 1조 기업 일궈
57년간 대표 맡으며 현장 챙겨
이 회장은 동진쎄미켐을 설립 30여 년 만에 발포제 세계 1위 기업으로 키웠다. 2019년엔 일본 수출 규제에 맞서 반도체 공정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감광액) 기술을 국산화하는 데 기여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1962년 인화지 제조업체인 대한사진화학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신기술 연구에 흥미를 느껴 1967년 자택 연탄창고에서 동진쎄미켐 전신인 동진화학공업을 세웠다. 동진화학공업은 신발창, 자동차 부품 등에 쓰이는 고무발포제와 폴리염화비닐(PVC)용 발포제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이 회사는 1981년 거래처 부도로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위기를 겪었다. 이때 이 회장이 세계 거래처를 돌며 설득한 끝에 파산을 막고 1989년 회사를 정상화했다. 6년 뒤인 1995년엔 발포제 분야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 회장은 2019년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수출 규제에 맞서 반도체 소재 국산화를 추진했다. 2022년 국내 최초로 고해상도 패턴을 그릴 때 사용되는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를 개발했다. 이전까지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회사들은 EUV 포토레지스트를 일본에서 전량 수입했다.
2023년 6월에는 기존 EUV 포토레지스트보다 해상력을 높인 ‘하이 뉴메리컬어퍼처(NA)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 개발에 들어갔다. 동진쎄미켐은 이 소재를 올 상반기 상용화하는 게 목표인데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서 선주문을 받았다.
이 회장은 고령에도 회사 경영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그는 1967년 10월부터 57년4개월간 대표이사를 맡으며 매번 독자 기술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국내 500대 기업 중 대표이사로 가장 오래 재임한 현직 최고경영자이기도 했다.
회장이지만 언론에 신기술이 소개되면 언제나 직원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그는 생전 한 인터뷰에서 “신공법 개발로 무수한 위기를 극복했다. 독자 기술 개발은 소재 기업으로서 당연한 책무”라며 “결심이 서면 악수를 두기 전에 재빨리 뛰어드는 것 또한 기업가의 자질”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과학기술 발전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2013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제18대 회장을 맡았고 모교인 서울대에도 꾸준히 연구비를 지원해 ‘서울대 발전공로상’을 받았다. 2016년엔 서울대발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고(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 이준용 DL그룹 명예회장,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 등이 고교 동기다.
유족으로는 부인 장명옥 씨와 장남 이준규 부회장, 차남 이준혁 부회장이 있다. 장남은 동진쎄미켐의 발포제 사업부를, 차남은 회사 경영 전반을 맡고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은 3월 1일이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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