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아래의 회심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 고두현저를 좀 바꿔 주십시오.지금은 말고 조금 있다가요.그때 내 나이 스물하고 둘이었어라.스물하고 둘이었어라.물소리 듣다 잠 깬 새벽밀라노에 온 지 오늘로 몇 날인가.무화과나무 아래 발가숭이 눈물 쏟으며 이번엔왜 지금 아니고 내일 내일인가요.탄식할 때 하늘엔 듯 꿈엔 듯 아이들 노랫소리‘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경전 펼치고 첫눈 들어온 곳 읽으니오 빛이 있어라. 빛이 있어라.‘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등짝을 후려치는 장대 뿌리 소금기둥먹장 걷고 해 비추니 섬광이 눈부셔라.비로소 말문 트이고 귀 열리던 그날내 나이 서른하고 둘이어라. 서른하고 둘이어라.----------------------------------- 고대 로마의 기독교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초대교회 교부(敎父)였던 아우구스티누스. 그의 생애는 진리를 향한 구원의 불꽃, 진리에 대한 열애의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숱한 역경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여러 사상을 전전하며 깊은 내면 방황을 겪었고, 방탕하기 이를 데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노예 출신 여자와 동거하면서 사생아까지 낳았지요. ‘지각없이 들뜬 정욕’ 때문이었습니다. 세속적인 출세욕에 휘둘리기도 했습니다. 정욕과 출세욕 때문에 휘청거리던 그는 자신을 바꿔 달라고 몇 번이나 기도하면서도 “지금은 말고 조금 있다가”라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마음을 돌이켜
지난달 25일 세상을 떠난 개그맨 故 전유성이 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훈장은 문화계 최고 권위 정부 포상이다.문화체육관광부는 23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2025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고 전유성을 옥관문화훈장 수훈자로 호명했다.훈장은 고인의 딸 전제비씨가 대신 받았고, 이날 시상식에서는 고인이 별세 사흘 전에 남긴 육성 소감이 재생됐다.고인은 "예전에 선배님들도 (상을) 많이 받으셨는데, 그럴 때마다 '코미디언들이 많이 받아야 후배들도 많이 받겠구나' 했다"면서 "저를 거쳐서 간다니까 굉장히 영광스럽다"고 말했다.이어 자신이 대중에게 사랑받은 이유에 대해 '새로움'을 꼽았다.그는 "남들이 안 한 짓거리로 (사랑을 받은 것 같다). 그런 것을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것 같다"면서 "(대중이 저를) 알고 보면 무식한 데 유식한 개그맨으로 착각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고인의 딸 전씨는 "귀한 상 주셔서 감사하다. 아버지의 마지막 업적이 아니라 새로운 기억으로 여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한편, 이날 가수 지드래곤(본명 권지용)도 옥관문화훈장을 받아 올해 최연소 수훈자에 이름을 올렸다.그는 "평소에 '좋은 꿈 꿔라'는 말을 하는데, 매일 좋은 꿈을 꾸다 보면 그 꿈이 현실이 되기도 한다. 좋은 꿈 꾸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날 시상식에는 이들을 비롯해 배우 김해숙, 이병헌, 정동환 등 31명(팀)이 문화훈장과 대통령·국무총리·문체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남들과 다르게 그리고 아주 특별하게 1860년부터 야심 찬 도시 개발 계획이 진행되면서 그라시아 거리는 그 중심축으로 부상했다. 스페인 최초로 산업혁명이 시작된 바르셀로나에서 상공업으로 돈을 번 신흥 부자들은 새로운 고갱이에 호화 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명문가라면 이 거리에 유명 건축가가 지은 집 한 채쯤 있어야 행세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에 여러 개의 공장을 가지고 있던 섬유 사업가 호세 바트요 이 카사노바스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기회를 엿보던 그는 1903년 카사 바트요 예전 건물을 매입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사들인 건물 옆에는 호세 푸이그 이 카다팔치가 완성한 카사 아마트예르가 자리하고 있었다. 카탈루냐의 뛰어난 건축가이고 학자이며 정치인이었던 푸이그는 1898년부터 1900년까지 이 저택을 리모델링했다. 바트요는 고민했다. 그저 그런 평범한 집을 짓고 싶지는 않았다. 어렵사리 구한 자신의 건물이 그라시아 거리에서 단연 눈에 띄는 독보적인 작품이 되게 하고 싶었다. 최소한 카사 아마트예르보다는 나은 집을 짓고자 했다. 수소문 끝에 그가 찾아낸 건축가는 가우디였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 세계를 가지고 있는 가우디라면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는 가우디에게 재건축을 부탁했다.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다시 짓는 것이었다. 백지상태에서 마음껏 창작의 날개를 펴보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가우디는 재건축보다 전면적인 개보수 작업을 택했다. 공사는 1904년에서 1906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가우디는 남들과 다른 아주 특별한 집을 원하는 건축주의 바람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기존의 건축 양식과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