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실험으로 북핵위기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의 표현을 빌자면 '전혀 다른 세상'이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북한 핵실험은 어떤 의미일까.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안보환경과 남북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와 허문영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10일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대담을 갖고 북한 핵실험의 의미와 파장을 분석했다.

△허문영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이번 북한 핵실험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위기상황이다.

상황이 한 단계 더 악화되면,곧 바로 전쟁을 의미한다.

그만큼 상황이 안좋다.

결과적으로 한국이 북한의 '핵인질'로 사로잡히는 비대칭적 군사관계로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신중한 상황관리가 요구된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가장 우려할 만한 사태가 벌어진 것은 분명하다.

북한은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뭔가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미국이 중간선거 전에 대화노력을 유지하다가 선거 이후에는 다시 강력한 제재수순으로 갈 것으로 보고 스스로 초강수를 내밀어 국면을 전환해 보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역설적인 전망도 해볼 수 있다.

북한은 이번에 '벼랑끝 전술'의 마지막 카드까지 던졌다.

북핵 문제는 1990년대 초부터 계속돼온 문제다.

북한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던졌기 때문에 미국은 핵확산이냐,협상이냐 양자 간 택일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야 '점 잖은 무시'(benign neglect) 정책을 쓸 수 있었지만,이제는 북한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됐다.

결국 그만큼 핵문제 해결이 빨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허문영 실장=북한의 핵실험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북한의 핵개발도상국에서 핵보유국가로서의 지위변화다. 둘째는 동북아시아의 지형변화다. 한국-미국-일본을 한축으로 하고 북한-중국-러시아를 다른 축으로 했던 냉전시대의 '2중3각' 대립구도가 완전히 사라지고 북한-다른 이해당사국의 5 대 1 구도로 변했다. 마지막으로 동아시아 전체에 핵 도미노현상이 확산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의미가 있다.

△고유환 교수=한가지 덧붙이자면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한 이후 다음 단계로 그동안 주장해왔던 핵군축에 나설 것을 제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단 6자회담 복귀를 선언한 후 6자회담의 틀 안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핵군축을 논의하자는 주장을 펴는 시나리오다.

△허문영 실장=북한의 의도를 고 교수와는 조금 다른 각도로 해석한다.

핵실험이 협상용이라기보다 체제유지용에 가까운 것으로 봐야 한다.

북한이 김정일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통성 유효성(경제발전) 통제성(북한 주민에 대한 통제) 연대성(주변국과의 관계강화) 등 4가지가 조화롭게 발전해야 한다.

지금까지 북한은 1998년 김정일 체제 출범 이후 자신들의 약점인 유효성과 연대성을 강화하는 북한식 개혁개방을 추진해왔지만,미국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벽에 부딪히자 정통성과 통제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고유환 교수=결국 우리 국민 입장에서는 앞으로 미국이 어떤 식으로 나올 것이냐가 관심의 초점이 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미국으로서도 군사적 제재카드를 쓸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이라크라는 수렁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서다.

철저히 유엔을 통해 금융제재 해상봉쇄 등의 제재조치를 취하면서 대화를 모색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지적으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지만,부시 대통령이 "절제되고 침착한 방식으로 해결하겠다"고 천명한 것을 보면 당장 이 수준까지 위기상황이 심화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허문영 실장=북핵 문제의 본질은 미국의 세계패권 전략과 북한의 생존전략의 충돌이다.

냉전체제가 붕괴된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내에서의 미국 영향력이 지나치게 축소될 정도로 남북관계가 급진전되니 미국 입장에서는 북핵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때문에 미국은 북핵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끌고 가기 위해서라도 유엔 안보리로 가져갈 것이다.

다만 경제제재는 하겠지만,군사적 제재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본다.

△고유환 교수=결국 이번 핵실험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느냐가 관건이다.

핵실험이 실패수준에 가까웠다면,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도 있다.

반면 유효한 수준의 핵실험 능력이 입증됐다고 한다면 미국 등 관련국이 이를 위협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고 빠른 북한의 핵제거를 위해 과격한 수단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충돌 가능성이 있다.

다만 북한이 핵실험에 나섰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주변국으로의 핵이전까지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때는 정말 미국이 군사적 제재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북한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허문영 실장=앞으로의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는 4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볼 수 있다.

핵을 보유한 북한과 공존하는 것,북한의 핵폐기,한반도 전쟁,북한의 체제 변화와 정권 교체가 그것이다.

하나하나 따져보면,일단 핵을 보유한 북한과는 공존할 수 없다.

전쟁은 절대 안된다.

북한 체제 변화와 정권 교체도 현단계에서는 이르다는 판단이다.

결국 북한이 보유한 핵을 폐기시켜야하는데,그 방법에도 압박과 타협이라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지금까지 타협하는 방식만을 사용했다면,앞으로는 압박과 타협을 병행해야 한다.

북한은 결국 부시 정부가 끝날 때까지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는 '버티기(muddling through)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이 얘기는 앞으로 상당 기간 한반도 위기상황이 지속된다는 것인데,이렇게 되면 국가 발전전략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국가가 모두 도약하는데,한국만 냉전시대로 회귀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고유환 교수=포용정책 자체가 잘못돼서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는 북·미 간 적대정책이 청산이 안된데서 나온 문제다.

물론 당장은 어렵겠지만 남북관계의 특수성 속에서 적극적으로 남·북 간 화해협력 정책을 추진하는 일은 중·장기적으로 계속해 나가야 한다.

지금은 대북 강경론자들이 득세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위기가 조성됐을 때의 경제적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실험 이후 위기관리가 잘못되면 한국의 국가신인도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이 신용도를 한 단계 낮출 때마다 0.35%의 추가 이자부담이 생긴다.

당장 핵실험 당일에 총 21조원 규모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핵실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우리의 국익은 물론 국민 개개인의 이익이 달려 있기 때문에 신중하고 치밀하게 관리해나갈 필요가 있다.

지금은 대북 포용정책의 잘잘못을 논할 때가 아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