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법정관리나 화의가 진행중인 대기업 78개 가운데 회생가능성이 없다고
판정한 37개 기업을 퇴출시키도록 금융감독당국과 채권금융단이 법원에
요청한 것은 늦었지만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회생가능성이 없는 기업들이 퇴출되지 않고 연명함으로써 우리경제에 끼치는
해독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거래은행에 자금부담을 주고 도덕성 해이를 유발하며 자원배분을 왜곡시킴
으로써 결과적으로 빠른 경제회복을 가로막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부실기업 처리가 매끄럽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부실기업들은 부도가 나면 무조건 법정관리나 화의를 신청하고 채권금융기관
들도 우선 당장 부실채권이 늘어나는 것을 막고 책임추궁을 피할 목적으로
이에 동의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명확한 기준도 없이 "공익성" 운운하며 기업퇴출제도를 제멋대로
운용하다보니 은행 순여신이 1백억원 이상인 부실기업중 법정관리나 화의에
들어가지 못하고 청산된 경우는 전체의 5% 미만인 것으로 감사원 특감결과
드러났다.

이번 퇴출요청도 정부가 이같은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뒤늦게 발벗고 나선
결과임은 물론이다.

앞으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부실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이
자동적으로 퇴출되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내년도 최대과제중의 하나"
라는 재정경제부 관계자의 설명대로 회사정리법 화의법 파산법 등 도산관련
법규를 통합.정비하고 기업구조조정회사를 활성화시키며 미래상환능력을
감안한 새로운 금융기관 자산건전성 분류기준을 적용하는 등의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퇴출시켜야 할 부실기업들은 법정관리나 화의중인 기업뿐만 아니라 현재
워크아웃이 진행되고 있는 기업중에도 적지 않다.

거래기업의 부채규모가 매출보다 몇배나 되도록 방치한 은행들이 이제는
워크아웃을 통해 살려내겠다며 대책없이 끌어안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모를 일이다.

금융감독당국은 워크아웃 종료시점에 관계없이 회생가능성이 없는 기업은
가차없이 청산시켜야 하며 관련금융기관 임직원들을 엄하게 문책해야 할
것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적이 아니라도 구조조정 작업은 이제 겨우 포석단계에
불과하다.

64조원이나 되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결과 쓰러지지 않고 겨우 버티고 있을뿐
대우그룹과 투신사의 부실처리는 아직도 멀었고 그나마 더이상 쏟아부을 돈도
없는 실정이다.

그럴수록 투명한 기업경영과 금융기관의 엄격한 심사, 그리고 부실기업
퇴출제도 정비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