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중앙은행이 국내외의 통화확대 압력에 마침내 굴복했다.

일본은행은 13일 통화정책회의를 마친후 "통화정책을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고 발표했다.

앞으로 단기국채를 환매 등 시장조작을 통해 시중에 돈을 더 풀기로 방침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리는 현 수준인 연 0.5%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일본은행은 그동안 엔고보다는 물가불안 문제를 더 중시, 통화확대를 거부해
왔다.

이 때문에 하야미 마사루 일본은행총재는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미야자와
기이치 대장상과 마찰을 빚었다.

일본은행이 통화확대로 정책을 바꾸기는 지난 2월이후 8개월만에 처음이다.

일본은행의 통화확대방침이 이날 오후 늦게 전해진후 런던시장에서 엔화가치
는 곧바로 1백7엔대로 밀렸다.

앞서 도쿄시장에서 달러당 1백6.58엔에 폐장된 엔화는 런던시장에서는
1백7.70엔에서 거래가 이뤄졌다.

도쿄시장에서는 폐장때까지 회의결과가 나오지 않아 환율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회의는 무려 8시간이나 지속됐다.

이에 따라 하야미 총재등 8명의 이사들(정원이 9명이나 한명은 최근 사임)
이 통화정책 변경여부를 놓고 상당한 진통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회의 마지막 순간에 표결로 통화확대를 결정했다.

일본은행이 시중에 돈을 더 풀기로 함으로써 지난 2개월간 기승을 부리던
엔고세력은 크게 퇴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달 25일 워싱턴의 선진7개국(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 회담후
한풀 꺾였던 엔고는 통화확대정책으로 고개를 더욱 숙이게 됐다.

통화확대 소식이 나온후 이날 런던시장에서 엔화가치가 1엔 가량 떨어진
것은 향후 엔화의 방향을 시사해 준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엔화가 1백5~1백10엔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어 일본은행의 통화확대용 시장조작이 본격화되면 1백10엔대로 엔화가치
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본은행이 고집을 꺾고 통화를 늘리기로 한 데는 오부치 총리의 압박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일본은행의 통화정책회의가 열리고 있는 중에 오부치 총리는 대변인을
통해 일본은행은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조직이 아니라고 밝혔다.

또 "통화정책은 대장성과 긴밀한 협조하에 이뤄져야 한다"며 하야미 총재에
대해 통화확대 압력을 넣었다.

정부측은 통화를 늘려 엔고를 막아야 일본경제가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미국정부도 일본이 수출이 아닌 내수진작을 통해 경기를 회복시켜야 한다며
통화확대를 요구했다.

지금까지 일본은행이 정부와 미국의 강력한 통화확대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데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

득(엔고억제)보다는 실(물가불안 및 그에 따른 금리상승)이 더 크다는
판단과 일본은행의 독립성과 관련된 하야미 총재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일본은행의 통화확대정책은 그러나 칼날의 양면이다.

엔고를 억제하고 내수를 자극해 경기회복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물가불안과 그에 따른 금리상승의 부정적인 면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이날의 통화확대정책을 계기로 일본의 경기회복세가 좀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통화확대의 필연적 결과인 물가상승이
나타나게 된다.

이 경우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하고 그렇게 되면 다시 경기회복세
는 주춤해질 가능성이 있다.

< 이정훈 기자 lee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