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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창재
    유창재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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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마켓인사이트(IB) 팀장입니다. M&A, IPO, 채권발행, 대체투자, 자산운용 등 자본시장 전반에서 이뤄나는 일들을 커버합니다.

  • [이슈프리즘] 노벨委는 왜 창조적 파괴를 말하나

    최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결이 조금 달라졌다. 작년엔 경제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제임슨 로빈슨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공저한 다론 아제모을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와 함께 공동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더니, 올해는 경제사학자인 조엘 모키어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상금 지분의 절반을 가져갔다. 모두 유명한 석학이지만, 순수 경제학자는 아니라는 점에서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된다.작년과 올해 노벨위원회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첫째, 지속적인 경제 성장은 끊임없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 둘째, 창조적 파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술 자체보다 제도와 문화라는 점이다. 작년과 올해 공동 수상자 6명이 역사 분석과 수리 모형을 통해 발견한 일관된 연구 결과다.모키어 교수의 대표 저서는 1990년 출간한 <부의 지렛대>와 2016년 쓴 <성장의 문화>다. 그는 일련의 저서를 통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중세와 계몽주의를 거쳐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기술 혁신이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역사를 추적했다. 특히 일찌감치 인쇄술, 화약, 나침반 등 기술 혁신을 이룬 중국이 아니라 유럽, 그중에서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발화한 이유를 제도와 문화, 축적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대표적인 사례가 명나라 초기부터 청나라까지 이어진 ‘해금령’이다. 해양무역 등 바다로 나아가는 모든 활동을 금지한 이 정책으로 이전까지 유럽을 크게 앞섰던 중국의 해양 기술은 수백년 동안 정체된다. 변화를 두려워한 황제들이 창조적 파괴를 막은 셈이다. 중국은 또 실용적 도구(예컨대 나침반)를 발명하는 데에는 능했지

    2025.10.20 17:45
  • [이슈프리즘] 제조업 공동화, 이번엔 진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본심은 결국 제조 일자리에 있었다.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공장의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가 새삼 일깨웠다. 사태 이튿날 트럼프가 미국에 투자하는 모든 외국 기업을 향해 쓴 트루스소셜 글엔 절실함까지 묻어났다. 그는 “미국에서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자국 인력을 ‘합법적으로’ 데려온다면 신속하게 법적 지원을 하겠다”며 “대신(in return) 미국인들을 고용하고 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렇게 거친 방식으로 쇠락한 제조업을 단기간에 부활시키는 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트럼프가 ‘메이드 인 아메리카’와 제조업 고용 창출에 얼마나 진심인지는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기분은 나쁘지만 어쨌든 우리 기업들은 미국에 투자해야 하는 처지다. 트럼프의 관세 압박이 두려워서만은 아니다. 어차피 미국에 시장이 있고 혁신 파트너가 있다. 신(新)냉전 시대 미국 중심 공급망에 올라타는 건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재명 대통령 스스로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 마당이다. 우리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반드시 성공해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가 수익이 돼서 돌아올 것으로 믿는 수밖에 없다.진짜 걱정은 국내 일자리다. 20여 년 전 우리 기업의 대중국 투자가 본격화할 당시 최대 공포는 ‘제조업 공동화’였다. 되돌아보니 기우(杞憂)였다. 국제통상학회장인 허정 서강대 교수가 최근 진행 중인 연구에 따르면 중국에 투자가 집중된 2000년대 초중반, 해외에 투자한 우리 기업은 국내 투자도 줄이지 않았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의 다국적 기

    2025.09.11 17:31
  • [이슈프리즘] 전장의 병사엔 과세하지 않았다

    19세기까지 미국과 유럽의 주요 국가 중 고소득자에게 높은 세율을 부과한 나라는 없었다. 산업혁명으로 빈부 격차가 크게 벌어졌고, 민주주의 발전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보다 더 많은 표를 행사하게 됐지만, ‘부자에게 누진적으로 소득세를 더 매기자’는 논의는 힘을 얻지 못했다. 세수는 대부분 소비세와 관세, 정액세(소득과 관계없이 같은 액수로 걷는 세금)로 거둬들였다. 고소득자에게 많은 세금을 거두기 시작한 것은 1·2차 세계대전 발생 이후다. 1913년 7%였던 미국의 최고 소득세율은 1차 세계대전 참전 1년 후인 1918년 77%가 됐다. 영국은 1908년 6%였던 최고 소득세율이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97.5%까지 치솟았다.미국 정치경제학자 케네스 스키브 예일대 교수와 데이비드 스타새비지 뉴욕대 교수는 2016년에 쓴 책 <부자 과세(Taxing the Rich)>에서 그 이유를 “대중을 동원한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공정성 서사’(narrative of fairness)가 힘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소득층은 전선에서 싸우며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는데, 부자는 후방에서 전쟁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서사는 고소득층에 급진적 누진 세율을 부과하는 명분으로 작용했다. 이런 ‘국가에 대한 의무’ ‘국민적 연대’ 서사는 전후에도 상당 기간 이어졌다.소득세 최고세율이 급격히 하락한 것은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가 등장한 1980년대다. 단순히 우파가 정권을 잡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좌파 정권이던 스웨덴과 프랑스에서도 감세가 이뤄졌다. 시장 중심의 새로운 공정성 서사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희생이 보상받아야 한다’는 프레임은 ‘노력한

    2025.08.04 17:48
  • [이슈프리즘] 이창용 총재의 이유 있는 오지랖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일본은행(BOJ) 총재를 지낸 시라카와 마사아키는 퇴임 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돌아봤을 때 경제 당국의 가장 큰 정책적 실수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일본 정부가 2001년 디플레이션을 선언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 이전까지 일본 정부는 디플레이션을 ‘물가 하락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2001년 3월엔 ‘경제 상황과 관계없이 물가가 하락 추세를 보이는 환경’으로 규정하고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처했다”고 발표했다. 이때부터 20여 년간 디플레이션은 일본 거시경제 정책 논의의 중심이 됐다.시라카와 전 총재는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신기루라고 봤다. 물가가 완만하게 하락하는 상황에서 경기 확장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물가 하락으로 부채의 실질 부담이 증가해 소비가 위축되거나, 실질 임금이 상승해 실업률이 치솟는 ‘디플레이션 스파이럴(악순환)’은 일어나지 않았다. 금융 안정이 유지됐고, 무엇보다 기업들이 임금을 낮춰 종신고용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물가 하락은 저성장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고 봤다.문제는 이미 사회 전반에 ‘일본 경제의 가장 큰 숙제는 디플레이션 탈출이며, 이는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서사가 형성됐다는 점이었다. 정치인은 물론 언론, 기업인 등 모두가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요구했다. 시라카와는 이런 서사가 고착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다. 일본 경제가 직면한 핵심 문제는 물가 하락이 아니라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 산업

    2025.06.26 17:35
  • 민·형법 뿌리째 흔드는 노란봉투법…대법원은 인정 않고, 원칙 지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8일 경제 분야 TV 토론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밀어붙일 것인가’라는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질문에 “당연히 해야 한다”며 “대법원 판례가 이미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노란봉투법을 인정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게 법조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민법·형법 등 기존 법체계와 충돌하고 산업 생태계를 붕괴시킬 수 있는 법안인 만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노란봉투법의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해 하청업체 근로자의 원청에 대한 교섭권을 인정하고 △근로자가 불법 쟁의행위로 회사에 끼친 손해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 등이다. 두 가지 사안 모두 관련된 대법원 판례가 나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후보 발언처럼 노란봉투법의 취지를 인정하는 것처럼 얼핏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디테일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부작위에 대한 모호한 형사 처벌사용자 범위 확대에 관한 판례를 살펴보려면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 하청업체의 일부 직원이 노조 설립을 추진했다. 그러자 해당 업체는 폐업 의사를 밝히며 노조활동 중단을 요구했다. 조합원들이 불응하자 업체는 실제로 회사 문을 닫고 노조 임원과 조합원들을 해고했다. 이후 비노조원을 중심으로 새로운 업체를 설립했다. 이에 해고된 노조원들이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및 부당 노동행위 구제 신청을 냈고, 중노위는 원청업체인 현대중공업에 구제명령을 내렸다.현대

    2025.05.28 17:36
  • [이슈프리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공정한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하는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는 자유주의 사상과 민주주의 제도 발전에 크게 기여했지만 수많은 후세대 철학자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존 롤스가 대표적이다. 롤스는 저서 <정의론>에서 “공리주의는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권리를 희생시킬 위험이 있다”며 “사회는 가장 불리한 사람에게도 공정해야 한다”고 했다. 마이클 샌델도 공리주의를 공격했다. 어떤 선택이 ‘행복을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만 따질 뿐 공동체적 정체성과 도덕적 가치를 무시한다는 점에서다.지역화폐 등 대국민 현금 지원의 경제적 논거로 ‘호텔경제학’을 내세웠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이번엔 도덕적 근거로 공리주의를 들고나왔다. 지난 21일 인천 유세에서다. 이 후보의 연설을 요약하면 이렇다.“나랏빚이 1000조원이 넘었다며 절대 빚을 지면 안 된다는 무식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1년 국내총생산(GDP)이 2600조원이다. 1000조원이면 국가부채가 50%가 안 된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울 때 다른 나라는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줘 국가부채가 110% 이상이 됐다. 반대로 한국은 국민에게 돈을 공짜로 주면 안 된다는 희한한 생각 때문에 빌려주기만 해 국가 대신 자영업자와 민간이 빚쟁이가 됐다. 이런 정책을 하는 사람이 서민과 대중이 아니라 보수 언론, 경제 관료, 대기업 임원 같은 힘센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힘센 소수가 아니라 힘없는 다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정치이고 국정이다.”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의 적정 수준에 관해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50%를 결코 넘으면 안 된

    2025.05.22 17:29
  • [이슈프리즘] '트럼프 똥볼'의 반면교사

    ‘깡통 걷어차며 걷기’(kicking the can down the road). 미국 정치권을 묘사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반드시 해결해야 하지만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과제를 기약 없이 뒤로 미루는 것을 뜻한다. 매년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를 상향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느라 홍역을 치르면서도 정작 재정적자 감축엔 뒷전인 모습이 대표적이다.더 이상 깡통을 걷어차지 않기로 결심한 건 도널드 트럼프다. 고질적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수십 년간 지속된 재정적자 탓에 미국 국가 부채는 감당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 못지않게 오래된 무역적자는 강(强)달러에 따른 수출 경쟁력 악화, 제조업 일자리 감소로 이어졌다. 트럼프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중 하나가 동맹까지 내동댕이친 초유의 상호관세다. 연간 수천억달러 관세를 거둬들여 재정적자를 줄이고, 미국에 공장을 짓도록 유도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시장의 평가는 참혹하다. 트럼프가 깡통 대신 ‘똥볼’을 찼다는 게 중론이다. 그가 포문을 연 무역전쟁에 세계 경제는 그로기 상태다. 미국 경제도 침체를 면치 못할 것이란 전망이 쏟아진다. 인플레이션으로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미국 중앙은행(Fed)은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다. 원하는 만큼 설비 투자가 늘어날지도 미지수다. 대공황급 침체 공포에 뉴욕증시에서만 수조달러의 시가총액이 증발했고, 미국 전역에서 ‘손을 떼라’(hands off)는 반(反)트럼프 시위가 번지고 있다.그런데도 트럼프는 요지부동이다. 확신범도 이런 확신범이 없다. 협상 상대국에 관세 인하의 대가로 미국 영구채 매입을 요구하자는 스

    2025.04.07 17:43
  • [이슈프리즘] 레이 달리오의 '경제 심장마비'경고

    레이 달리오가 요즘 다시 바빠졌다. 1260억달러(약 180조원)를 굴리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 운용사 브리지워터 창업자다.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미국이 당장 재정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로 줄이지 않으면 3년 안에 심각한 부채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부채 죽음의 소용돌이’(debt death spiral) ‘경제 심장마비’(economic heart attack) 등 무시무시한 표현을 동원했다.1975년 브리지워터를 세운 달리오는 전설적인 ‘글로벌 매크로’(거시경제 흐름을 활용하는 전략) 투자자다. 지난 50년간 크고 작은 부채 사이클을 직접 경험했다. 과거 500년간 세계를 호령한 제국들의 부채 사이클과 흥망성쇠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기도 했다. 그런 달리오가 자신의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최근 미국의 부채 증가 속도가 심각하게 걱정된다”며 도널드 트럼프와 의회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오는 9월에는 <국가는 어떻게 파산하는가>라는 제목의 새 책도 내놓을 계획이다.달리오의 계산에 따르면 현재 6% 안팎인 미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는 트럼프의 감세정책이 모두 현실화하면 7.5%까지 올라간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채권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면 국채 공급에 비해 투자 수요가 줄면서 금리가 치솟는다. 미국 정부는 이자를 갚는 데 더 많은 재정을 써야 하고, 어느 순간 기존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더 많은 국채를 찍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 달리오는 이런 ‘죽음의 소용돌이’가 먼 미래가 아니라 3년 안에 벌어질 일이라고 공언한다.달리오의 경고가 국내 독자에게 생소하게 들리는 것은 ‘남의 일’이

    2025.02.20 17:25
  • [데스크 칼럼] 누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나

    많은 국민이 정치 뉴스를 외면하며 우울한 새해를 보내고 있는 건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으로 대한민국의 시계를 45년 전으로 되돌려놨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야 간, 국가기관 간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가 좀처럼 풀릴 기미가 없는 데다 언젠가 사태가 일단락된다고 해도 그 이후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서다. 이대로라면 양극단의 갈등이 더 격화해 심리적 내전이 물리적 내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상상이 머릿속을 맴돈다. 서점가에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이 역주행한다는 걸 보면 혼자만 느끼는 공포감은 아닌 듯하다. 민주주의 붕괴의 징후들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이 책의 저자들은 원래 유럽과 남미 등지에서 벌어진 민주주의 퇴행을 연구해온 정치학자다. 도널드 트럼프의 2016년 대선 승리를 지켜보면서 미국 민주주의도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꼈다. 이를 다루기 위해 2018년 쓴 책에서 저자들은 한국을 ‘온전히 살아남은 민주주의 국가’의 하나로 꼽았다. 이제 한국의 최근 사례를 넣어 개정판을 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현재 한국 정치의 모습은 책에 묘사된 민주주의 붕괴 국가들의 공통적 패턴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패턴은 이렇다. ‘기성 정당과 정치인들은 더 이상 아웃사이더 선동가를 걸러내지 못한다. 오히려 정치적 이해관계에 그들과 결탁하고 당의 주류 자리를 내준다. 유튜브 등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는 이런 현상을 가속화한다. 잠재적 독재자들은 총칼이 아니라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권력을 쥐고,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사법부를 길들이고 교묘하게 선거제를 바꿔 운동장을

    2025.01.07 17:29
  • [데스크 칼럼] 대통령도 집어삼킨 알고리즘

    섬뜩하면서도 어설펐던 12·3 비상계엄 사태의 전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1주일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도대체 왜”라는 질문에 누구도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말 2024년에 계엄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자신의 오판이 본인은 물론 나라 전체를 대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한 걸까. 추정 가능한 이유를 하나씩 배제하고 나면 답은 하나다. 이성적 판단이 결여된 상태. 윤석열 대통령은 무언가에 씌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서울대 법대를 나온 엘리트 검사 출신 대통령을 기이한 심리 상태로 몰아간 건 믿음으로 변해버린 어떤 가설이다. 북한을 추종하는 반국가 세력이 여론 조작과 부정 선거를 통해 국회를 장악했고, 이들이 줄 탄핵과 입법 폭주로 국정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없앤 더불어민주당이 대신 그 일을 맡은 경찰의 특수활동비마저 삭감하고, 검사는 물론 감사원장까지 탄핵하자 가설은 확신으로 변했다. 그 과정에서 유튜브 알고리즘이 확증편향을 강화했다는 게 현재로선 가장 합리적 추론이다. 확증편향의 방에 갇힌 대통령대통령이 쓴소리를 하는 기성 언론 대신 극우 유튜브 채널을 즐겨 본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는 계엄 선포 담화문, 1980년대에나 어울릴 섬뜩한 문체의 계엄 포고령은 실제로 대통령이 알고리즘의 피해자로 전락했다는 걸 여과 없이 보여줬다. 극우 유튜버들이 ‘배신자’로 규정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반국가 세력으로 분류돼 체포 대상 정치인에 포함된 것도 같은 이유

    2024.12.11 17:33
  • [데스크 칼럼] 전쟁 획책이라는 또 하나의 괴담

    시바 료타로의 소설 <언덕 위의 구름>의 실제 주인공 아키야마 사네유키는 1898년 미국과 스페인이 쿠바 앞바다에서 전쟁을 벌이자 미 해군 함선에 탑승해 참관할 기회를 얻는다. 주미 일본 대사관 무관 자격이었다. 여기서 그는 미 해군이 전함마다 무선 통신 장비를 싣고 본부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무적 스페인 함대를 제압하는 광경을 목도한다. 대형 해도(海圖) 위에 모형 함선을 올려놓고 시뮬레이션을 하며 전략을 가다듬는 ‘워게임’도 이때 배운다.몇 년 후 작전참모로 러·일 전쟁에 참전한 아키야마는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 발틱함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데 크게 기여한다. 우리에겐 한·일 합병으로 이어진 뼈아픈 역사지만, 최신 전쟁의 양상을 직관하고 전략·전술을 연구하는 게 중요한 이유를 일깨우는 고전적 사례다. 첨단 현대전 경험하는 북한군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여러모로 기분 나쁘다. 왠지 모르게 거슬리는 대남 오물풍선 같은 느낌이다. 돈이 급한 김정은이 루블화를 벌기 위해 어린 군인들을 총알받이로 보낸 것쯤으로 치부하고 싶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파병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첨단 핵기술을 전수받을 것이라는 관측보다 더 찝찝한 건 따로 있다. 북한군이 21세기 첫 국가 간 전면전을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1만 명이 넘는 파병 인원 중 장교가 최소 500명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동원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을 모두 동원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게 자폭 드론 등 무인기 기술이다. 값싼 무인기로 상대국의 전략적 요충지를 타격하고 전차와 함정에도 피해를 입히고 있다. 전자전

    2024.11.05 17:28
  • [데스크 칼럼] 처칠이 살아 있다면 뭐라고 할까

    뮌헨회담에서 아돌프 히틀러에게 속아 나치 독일의 전쟁 도발을 막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은 건 네빌 체임벌린 당시 영국 총리였지만, 히틀러가 은밀히 독일을 재무장시키며 유럽 정복의 야욕을 키울 수 있었던 데는 전임 총리인 스탠리 볼드윈의 책임이 컸다. 독일은 히틀러가 1935년 베르사유 조약을 공식 폐기하기 수년 전부터 이미 조약이 설정한 한도 이상으로 해군력을 복원한 데 이어 공군력도 비약적인 속도로 확장하고 있었다.윈스턴 처칠은 특히 공군력에서의 ‘힘의 균형 상실’을 우려했다. 1934년 공군 예산 증액안을 의회에 제출하면서 “독일은 이미 영국 공군력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강력한 공군을 갖췄고, 1936년쯤이면 독일 공군이 영국보다 강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볼드윈은 “독일의 실질적인 공군력은 영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처칠이 이야기하는 숫자는 상당히 과장된 것”이라고 일축했다."2차 대전은 불필요한 전쟁"볼드윈이 ‘처칠이 옳았다’는 걸 인정하는 데는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1935년 치른 총선에서 그는 재무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동시에 “대규모의 재무장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는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국방력 증대를 원하는 사람과 평화주의자의 표심을 모두 겨냥한 것이었다.이런 선거 전략은 적중해 볼드윈은 그해 총선에서 대승을 거뒀다. 국내 정치에 능통한 그는 나치의 위험을 알면서도 당시 영국 사회를 휩쓴 평화주의 바람에 편승하는 쪽을 택했다. 옥스퍼드대 학생들이 “어떤 경우에도 국왕과 국가를 위해 싸우지 않겠다”고 선언한 마당이었다. 볼드윈은 이후 &ldquo

    2024.10.06 17:58
  • 가치 외교가 공급망 강국 열쇠 … 국제질서 '새판 짜기' 주도하라

    이마누엘 칸트가 ‘영구 평화론’을 발표한 것은 1795년이다. 모든 국가가 공화정을 채택하고 각 공화정으로 이뤄진 국제연맹이 국제법을 제정해 세계 시민들이 국제법의 보호 아래 안전하고 자유롭게 교류하면 국제사회에 항구적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이론이다. 국제정치학에서 자유주의 사상의 이론적 토대가 됐지만, 불완전하게나마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현실 세계에서 구현된 건 그로부터 200여 년이 흐른 1990년대다. 냉전 종식 후 세계 패권을 거머쥔 미국이 전 세계 국가에 사실상 자유주의를 강요하면서다. 한국에는 천운이었다.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냉전 시기 자유 진영에 소속돼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를 다져온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성장하는 천혜의 환경을 제공했다. 그런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30여 년 만에 끝나가고 있다. 미국 일극 체제에 균열이 생기면서다.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가 지역 패권을 노리고 저마다 현상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은 자신들이 주창해 온 자유무역주의를 대놓고 부인한다. 자유무역 때문에 미국 내 제조업이 쇠퇴하고 공급망이 불안해졌으며 빈부 격차가 확대됐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지정학적 대변혁의 시기다. 한국은 선진국 문턱에서 갈림길에 섰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만들어 놓은 국제 질서 안에서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됐지만, 대변혁기에는 새로운 국제 질서에 적응하며 위기를 기회로 바꿔가야 한다. 필요하면 스스로 국제 질서의 새판 짜기를 시도하는 지혜와 용기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공급망을 구축하고 초일류 선진국으로 도약

    2024.09.25 18:25
  • 경제안보 핵심 '공급망 안정'…다자주의 외교 중심에 서라

    탈냉전기 세계 경제의 키워드는 ‘밸류체인’(가치사슬)이었다. 연구개발(R&D)과 기획, 원자재 및 부품 조달, 제품 생산, 유통·판매 등 부가가치 창출의 전 단계를 각국 기업이 나눠 맡았다. 자유무역이 확대되고 정보기술(IT)이 발달하면서 세계 경제의 효율성은 극에 달했다.이 같은 세계화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패권 경쟁을 거치며 밸류체인에서 ‘서플라이체인’(공급망)으로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지정학적 이유로 반도체나 핵심 광물을 안정적으로 조달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다. 신뢰할 수 있는 국가끼리 글로벌 공급망을 빠르게 재편해 나가는 이유다.대한민국은 글로벌 밸류체인의 최대 수혜국이었다. 자유무역 체제를 등에 업고 60년 만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초고속 성장했다. 이제 초일류 선진국으로 한 번 더 도약해야 하는 시점에 커다란 도전에 직면했다. 어떤 지정학적 불확실성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이를 위해서는 경제 안보에 초점을 맞춘 정교하면서도 과감한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미국 유럽 일본 등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새롭게 구축하는 공급망 안에 확실히 자리매김해야 한다. 중국과의 공급망 협력도 그런 기반 위에서 가능하다. 국제사회에서는 한국 경제 성장의 토양이 된 ‘규칙 기반의 다자주의 국제 질서’를 수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 사우스 국가 등과 긴밀히 협력하며 공급망을 다변화·안정화할 수 있다.과학기술 역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초격차 기술을 보유하고 모두

    2024.09.25 18:06
  • [데스크 칼럼] 경영권 프리미엄 '상속 재산' 아니다

    한국 대기업의 최대주주들이 자녀에게 주식을 물려줄 때 지분 가치의 60%를 상속·증여세로 내야 하는 건 안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50%의 최고세율에 20%의 할증이 붙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최대주주 상속세 할증 제도’는 1993년에 처음 도입됐는데, 나름 논리가 있다. 최대주주 지분에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있으니 일반주주 보유 지분에 비해 높은 가치를 적용해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논리적 허점이 한둘이 아니다. 한국에만 있는 상속세 할증경영권 프리미엄이 최대주주의 재산이라는 인식부터 그렇다. 개념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그 자체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이다. 본래 경영권 프리미엄이란 인수자가 생각하는 피인수기업의 가치와 현재 기업 가치의 차이를 말한다. 예컨대 A사가 시가총액 1조원인 B사를 인수하면서 “우리가 경영하면 1조2000억원짜리 회사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치자. A사는 1조2000억원을 기꺼이 지급할 것이고, 현 시가총액과의 차이인 2000억원이 바로 경영권 프리미엄이다.이 프리미엄을 최대주주만이 아니라 모든 주주가 나눠 갖도록 하자는 게 여야가 공히 추진 중인 의무공개매수제도다.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경영권 프리미엄이 최대주주의 재산이라는 잘못된 인식에 따라 기업 인수합병(M&A) 거래에서 최대주주 지분에만 프리미엄을 붙여왔고, 이런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정부·여당과 야당 모두 의무공개매수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똑같은 논리로 ‘최대주주 상속세 할증’도 폐지하는 게 맞다.이뿐만 아니다. 최대주주 상속 지분에 경영권 프

    2024.09.01 17:42
  • [데스크 칼럼] 문빠, 개딸, 그리고 한동훈줌

    한동훈 신임 국민의힘 대표가 친윤(친윤석열)계인 정점식 정책위원회 의장을 유임시킬지는 길게 보면 부차적인 문제다.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할 건 따로 있다. 한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이 정 의장의 페이스북과 국민의힘 홈페이지에 몰려가 “꼰대짓 그만하고 사퇴하라”며 댓글 테러를 한 사건이다. ‘한동훈줌’ 혹은 ‘긷줌’이라고 불리는 한동훈 팬덤이 문재인의 ‘문빠’나 이재명의 ‘개딸’처럼 본격적으로 공격성을 드러낸 것이다.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이른바 ‘정치인 빠’의 특징을 강고한 결속력과 공격성으로 규정했는데, 한동훈 팬덤도 이제 이런 조건을 모두 갖췄다고 봐야 한다. 그동안 진보 진영에 머물러 있던 ‘빠’ 현상이 보수 정당에까지 전이된 셈이다. 문재인·이재명의 길 걸을 것인가한동훈줌은 주로 40~50대 아줌마로 구성된 한 대표의 팬덤을 일컫는다. 긷줌은 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사이트 DC인사이트의 갤러리 이름인 ‘기타 국내 드라마’를 줄인 ‘긷’에 아줌마의 ‘줌’을 붙인 말이다. 네이버카페에서 활동하는 팬클럽 ‘위드후니’도 한동훈 팬덤의 또 다른 갈래다.이들은 주로 한 대표 관련 기사에 좌표를 찍고 몰려가 그에게 유리한 댓글을 다는 식으로 활동한다. 이를 댓정(댓글 정화), 댓방(댓글 방어)이라고 부른다. 정 의장처럼 공격 대상으로 삼은 정치인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수백, 수천 개의 댓글 폭탄을 퍼붓기도 한다.전문가들은 한동훈줌은 개딸과 달리 아직은 팬클럽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한 대표의 인식도 비슷한 것 같다. 지난 전당대회 당시 토론회에서

    2024.07.31 17:51
  • [데스크 칼럼] 公營일 이유 없는 공영방송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와 KBS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한 여야 간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오는 8월 임기가 끝나는 방문진 및 KBS 이사들을 친여권 성향으로 교체하려는 정부와 이를 저지하려는 더불어민주당이 볼썽사나운 수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장면에 대다수 국민은 시큰둥해하지만, 여야는 절박하다. KBS, MBC를 장악하지 못하면 2년 후 지방선거, 3년 후 대통령 선거를 ‘차·포 떼고’ 치러야 한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같은 순진한 소리는 발붙일 공간이 없다. 야권은 진보 진영의 공영방송 영구 장악을 위한 방송 3법을 무조건 밀어붙일 판이다. 민간 경쟁 저해하는 공영방송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공영방송이 공영(公營)이어야 할 이유는 ‘주인이 없어야 정치권력이 방송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는 민간 사업자들은 수익성 때문에 제공하지 못하는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KBS1TV와 EBS를 제외한 한국의 ‘소위’ 공영방송들은 민영방송과 똑같은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 광고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게다가 KBS는 국민에게서 반강제로 걷은 준조세(수신료)를 KBS2가 그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투입한다. 맨주먹으로 싸워야 하는 민영 방송사 입장에선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지난해 KBS 매출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49.4%. 나머지는 광고·협찬 등 다른 방송사들과 똑같은 수익 구조다. 일본 NHK는 수신료 비중이 95%, 영국 BBC는 70%가 넘는다. 민간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진국 공영방송과 달리 KBS는 공영의 특혜를

    2024.06.30 17:37
  • [데스크 칼럼] 22대 국회 '기업 밸류업 특위' 꾸려라

    얼마 전 칠순을 맞은 집안 어른이 조카들을 모아놓고 몇 가지 당부를 했다. 첫째 노후 준비를 위해 월소득의 일정 부분을 적립식으로 주식에 투자할 것, 둘째 한국 시장이 아닌 미국 시장에서 할 것.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한국 증시는 국민의 자산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기 투자자가 빠져나간 주식 시장은 투기판으로 전락했다. 높은 자본 비용에 기업들은 혁신을 위한 투자도 하기 어렵다. 저성장과 노후 빈곤의 악순환이 불 보듯 뻔하다.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일만큼이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절실한 이유다. 저출생만큼 중요한 국가 아젠다한국 기업 주가 저평가의 원인은 저출생만큼이나 구조적이지만, 해법은 훨씬 명료하다. “투자자가 가장 싫어하는 건 불확실성”이라는 명제만 기억하면 된다. 해외 투자자에게 한국 투자를 꺼리는 이유를 물으면 십중팔구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서”라고 답한다. 뉴욕에 앉아서 온라인 기업설명회만 들어서는 한국 기업이 어떤 의사 결정을 내릴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룰에 따라 주주 가치 극대화를 위한 결정을 내릴 것이란 신뢰가 없다는 뜻이다.우리 기업인들이 유독 탐욕적이어서가 아니다. 비정상적인 세제와 규제 아래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해온 결과다. 한국의 대주주들은 주가가 오르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속·증여세를 각오해야 한다. 배당이라도 하려면 배당 수익의 50% 가까운 돈이 세금으로 나간다. 열심히 주가를 높이고 주주환원을 할 유인이 없다. 대주주와 소수주주 간 이해관계 불일치를 초래하는 근본 원인이다. 재벌에 비판적인 행동주의 진영

    2024.05.29 18:05
  • [데스크 칼럼] 영수회담 성공, 민주당에 달렸다

    하청 노조의 원청에 대한 교섭권을 인정하고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제한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이 2015년 처음 발의했다. 당시 19대 국회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제1당이어서 법안은 힘을 받지 못했다. 이듬해 시작된 20대 국회는 달랐다. 민주당이 제1당을 꿰찼고, 2017년에는 집권에도 성공했다. 21대 총선에서 압승한 2020년부터는 180석 ‘슈퍼 여당’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민주당 단독으로 얼마든지 통과시킬 수 있었다.하지만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이 법안은 국회에서 단 한 번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민주당은 야당이 되고 나서야 기다렸다는 듯 법안을 밀어붙였고, 작년 11월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한 정략적 노림수라는 평가가 많았다.진짜 궁금한 건 민주당이 대선 공약이었던 이 법안을 정작 여당일 때 뭉갠 이유다. 당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에선 파업 손배소 문제가 부각되지 않아 논의가 후순위로 밀렸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2022년 10월 파업을 벌인 하청 노조원에게 손배소를 제기하면서 논의가 다시 급물살을 탔다는 것이다. 민주당, 야당 되니 양곡법 강행하지만 법을 적용할 일이 생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정과제였던 법안을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결과에 책임져야 하는 여당이 산업 생태계에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법안을 추진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민주당이 여당일 때는 소극적이다가 야당이 된 후 밀어붙이는 법안은 이뿐만 아니다. 최근 야당이 일부 문구를 수정해 국회 본회의에 다시 직

    2024.04.28 18:18
  • [데스크 칼럼] 이재명은 왜 경제가 폭망했다고 하는가

    미국 경제는 나 홀로 질주 중이다. 지난해 성장률이 선진국 중 가장 높은 2.5%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사상 최저 수준이고, 치솟던 물가도 잡혀가고 있다. 피봇(금리 인하) 기대로 주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른바 골디락스 장세다. 의아한 건 내리막길만 타는 조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이다. 최근 갤럽 조사에서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40%였다. 그중에서도 경제정책 지지율은 37%에 그쳤다. 정치 양극화가 경제 인식 왜곡미국 정치권에선 “문제는 더 이상 경제가 아니야, 바보야”라는 말이 회자된다. 경제 성과와 대통령 지지율 사이의 상관관계가 크게 줄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슬로건으로 1992년 대선에서 승리한 빌 클린턴의 성공 공식이 더 이상 미국 사회에서 먹히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은 버락 오바마 정권 때 시작돼 도널드 트럼프 1기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인을 정치 양극화에서 찾는다. 경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이 실제가 아니라 정치 스펙트럼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것이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총선 프레임 중 하나로 ‘경제 폭망론’을 들고나온 건 그런 측면에서 과연 이재명다운 영민함이다. 정치 양극화라면 미국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한국에서 이 대표가 “경제가 폭망했다”고 하면 지지자들은 실제로 그렇다고 믿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일반적인 경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도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건 사실이지만, 폭망했다고까지 할 만한 수준인가”라며 의

    2024.03.28 18:09
  • [데스크 칼럼] 한국 증시 밸류업, 총선에 달렸다

    정부가 지난 26일 증시 밸류업 방안을 발표한 뒤 저PBR(주가순자산비율)주 주가가 하락한 건 차라리 다행스럽다. 내놓은 정책이 맹탕이어서가 아니다. 내용이 더 담겼더라도 주가는 빠졌을 것이다. 기업의 내재가치, 즉 펀더멘털은 바뀌지 않았는데 정부 정책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단기 급등했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공매도 한시 금지 조치 후 상한가로 직행한 배터리주가 이튿날 폭락한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정부의 말 한마디에 주가가 오르는 시장은 정상적이지 않다. 주가가 하락한 것은 어쩌면 시장이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제 핵심은 이해관계 불일치그럼에도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을 계획대로 계속 내놔야 한다. 단순한 주가 부양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시스템 장애가 녹아들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증시 활성화에는 필요조건에 불과하지만 저성장, 혁신 저하, 빈부격차, 연금개혁 등 다양한 구조적 문제를 풀 열쇠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정부 혼자 발버둥 쳐서는 해소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미스터 마켓’은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 지지부진한 주가 흐름이 보여준다.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은 이해관계 불일치다. 대주주와 소액주주, 전체 주주와 이사회, 납세자와 비납세자, 경영진과 금융당국 혹은 경영진과 수사당국 간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깔끔하게 일치하지 않는 게 핵심이다. 그런 복잡한 이해관계를 대체로 잘 일치시켜놓은 사회가 혁신을 통해 증시의 장기적 우상향을 이끌어온 미국이다.그런 측면에서 “과도한 상속세를 완화하면 기업인들이 마음 놓고 기업 가치를 높여

    2024.02.27 18:06
  • [데스크 칼럼] 갈등을 원하는 자 누구인가

    이틀 만에 일단 봉합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갈등은 ‘약속대련’이 아니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누가 이기고 지든 결과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패배하면 조기 레임덕이 불가피하고, 한 위원장이 지면 총선 필패가 자명하다. 그래서 여의도 문법에 익숙지 않은 두 정치 신인의 미숙함, 아직 버리지 못한 특수통 검사 기질이 여과 없는 갈등으로 표출됐다는 해석이 보다 설득력 있다. 어쨌든 갈등을 수습한 건 잘한 일이다. ‘분열은 공멸’이라는 목소리를 두 사람 모두 의식했을 것이다. 尹·韓 갈등으로 알게 된 것이번 사태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을 정면으로 언급해온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지난 17일 한 위원장이 깜짝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20일까지 수면 아래서 4일, 21일 이후엔 수면 위에서 3일 등 총 7일간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건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간 갈등이 생각보다 빨리 현실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전부가 아니다. 갈등을 원하고 부추기는 자가 누구인지도 드러났다. 정권의 운명과 나라의 미래가 달린 4·10 총선 결과보다 자신의 안위와 공천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다.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는 인터넷 매체 기사를 당 소속 의원 단체 채팅방에 올린 친윤계 의원이 대표적이다. 해당 의원의 단독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어쨌든 예전 같았으면 힘을 합쳐 연판장을 돌렸을 다른 친윤 의원들의 침묵에 그는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한술 더 뜬 건 대통령실 출신의 한 인사다. 22일 “한동훈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후배” 등 대통령실의 유화 제

    2024.01.24 17:47
  • [데스크 칼럼] 멈출 수 없는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

    ‘다극성 장애’ ‘제2차 냉전’ ‘반도체 전쟁’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한국경제신문이 매년 번역·출간하는 이코노미스트 ‘세계대전망’의 2024년 편은 그 어느 해보다 심란한 키워드로 가득하다. ‘비만 치료의 시대가 열린다’는 게 그나마 희망적일까. 목차와 소제목만 둘러봐도 예측 불가의 엄혹한 글로벌 정세가 내년에도 계속될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너무 잦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국내 정치가 골치 아프니 자꾸 해외로 나간다”고 한다. 해외에 가면 화려한 의전을 받으며 상대국 정상과 덕담이나 주고받을 것이란 냉소적 인식이 깔려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늘 듣던 말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누구보다 더 억울할 것 같다. 국내 정치도 암울하지만 국제 정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다단해졌다. 무엇보다 승패의 결과가 훨씬 더 엄중하다. 총선을 이기고 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엄혹한 국제정세 원팀으로 극복윤 대통령은 작년 5월 취임 후 총 16번 해외에 나갔다. 한·미·일 정상회의, G7·G20 정상회의, 유엔총회 등 다자 무대를 포함해서다. 돌이켜보면 버릴 순방이 하나도 없다. 북한의 핵 위협이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일과 함께 핵 억제력을 강화하는 건 생존의 문제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찾아가 우리가 그들과 함께한다는 점을 확인한 건 한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자유세계가 우리와 함께해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이자 요청이다.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 전략은 ‘럭셔리’가 아니다.정부와 기업이 호흡을 맞추는 ‘원팀 코리아’의

    2023.12.27 17:39
  • [데스크 칼럼] 정치가 최대 리스크인 나라

    기업가치, 즉 주가를 구하는 방식은 기술적으론 복잡하지만 개념적으론 단순하다. 어떤 기업이 미래에 창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잉여 현금 흐름을 적정 할인율로 나눠 현재 가치를 구하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할인율을 적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돈의 시간 가치, 그리고 불확실성을 주가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미래 현금흐름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수록, 즉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투자자들은 더 많은 할인율을 요구한다. “투자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건 불확실성”이라는 말의 이론적 설명이기도 하다. 사적 계약을 무력화하는 정치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포퓰리즘 정책과 발언을 보면서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에 더 많은 할인율(코리아 디스카운트)을 요구하는 이유를 절감하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의 미래 현금흐름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이른바 ‘초과이익’에 횡재세를 부과하겠다는 거대 야당의 발상부터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은 고금리·고유가의 혜택을 받은 은행·정유사뿐 아니라 앞으로 외부 변수에 의해 뜻하지 않게 많은 돈을 벌게 될 다른 업종 기업들에도 횡재세를 매기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의적 행세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표를 모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패닉에 빠진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을 떠나고 있다.도대체 어디서부터가 초과이익이고 그중 얼마를 회수하겠다는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한국에선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민간 기업의 사적 계약을 무력화하고 수익을 제한할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는 것이 투자자를 불안하게 하는 진짜 이유다. 더욱 기가 막힌

    2023.11.19 18:20
  • [데스크 칼럼] 통계 조작보다 더 무서운 신화 조작

    미국의 대통령선거 때마다 현지 경제 매체에 나오는 단골 기사가 있다. 1926년부터 현재까지 공화당과 민주당 집권 시기 S&P500지수 상승률을 비교하는 흥미성 기사다. 내용은 늘 비슷하다. 평균적으로 민주당 대통령 때 주가 상승률이 공화당 대통령 때보다 높다는 것이다. 기사는 팩트다. 그렇다고 미국의 투자자 중 이 기사를 진지하게 읽는 사람은 없다. ‘드디어 민주당이 재집권했으니 주식 보유 비중을 늘리자’고 주장하는 운용사나 자문사는 더더욱 없다.이유는 정권과 주가 상승률 사이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굳이 원인을 따지자면 세계 경제가 좋을 땐 민주당이, 안 좋을 땐 공화당이 집권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선거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경제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란 뜻이다. 진보 정권이 경제 잘한다는 文이 기사를 상기시킨 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평화는 경제”라며 주장한 진보 정권 우월론이다. 문 전 대통령은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대북 유화정책을 폈던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 때 모든 경제 수치가 보수 정권 때보다 좋았다고 주장했다. 1인당 국민총소득,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경제성장률, 물가, 환율, 무역수지, 외환보유액, 주가지수 등 웬만한 경제 수치를 모두 언급했다. 그러면서 “경제는 보수 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를 깨야 한다”고 했다.잠시 팩트 체크 본능이 꿈틀했지만 굳이 하지 않았다.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해서다. 복잡다기한 경제 현상을 대북 정책 하나로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않는가.특정 시점의 경제 규모와 무역수

    2023.10.10 17:43
  • MIT보다 들어가기 힘든 IIT…'인도 유니콘' 68개 탄생시켜

    “최대한 많은 젊은 인도인을 생산성 높은 우수 인재로 키워내고 준비시키는 것이 인도의 도전과제이자 기회입니다.”지난달 28일 인도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에 있는 인도경영대학원(IIM) 캠퍼스. 미국 유명 건축가 루이스 칸이 설계한 붉은색 벽돌 건축물이 인상적이다. 라구람 라잔 전 인도중앙은행 총재(미국 시카고대 교수) 등 수많은 세계적 인재를 배출한 학교다. 이곳에서 만난 바랏 바스커 IIM아마다바드 사무처장은 “IIM 같은 세계적인 학교가 배출한 엘리트들이 인도는 물론 세계의 경제·경영계에서 활약하면서 인도 경제의 부흥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14억 인구의 인도는 엘리트들이 이끄는 나라다. 이들 엘리트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인 1950~1960년대 인도 정부가 주도해 세운 교육기관들이 배출하고 있다. IIM을 비롯해 인도공과대학(IIT)과 국립디자인학교(NID) 등이 대표적이다.케사반 칸다다이 크리타AI 최고경영자(CEO)는 인도 벤처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스타트업이란 개념도 없던 1999년 회사를 창업했고, 2015년엔 아마존프라임 인도 대표를 지내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인도에 출시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를 ‘IIT 출신 기업가’로 기억한다. 칸다다이 CEO는 미국 정보기술(IT)매체 ‘레스트오브월드’에 “수많은 업적을 세웠지만 IIT 출신이라는 한 줄 앞에 모든 이력이 초라해진다”고 말했다.IIT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벤치마킹해 세운 공과대학이다. 인도 전역에 23개 캠퍼스가 있는데, 1950~1960년대 설립된 봄베이·델리·마드라스·칸푸르·카라그푸르 등 5개를 최고로 친다. IIT의 명성은 웬만한 미국 아이비

    2023.09.06 18:57
  • 모디, 지지율 75%…내년 3연임 자신감

    “2014년에 변화를 가져오겠다고 약속했고 여러분은 저를 믿어줬습니다. 이후 5년의 성과로 2019년 여러분이 다시 한번 저를 축복해줬습니다. 다음 5년은 ‘2047년 선진국’의 꿈을 위한 골든타임이 될 것입니다. 내년 8월 15일 여기 레드포트에서 더욱 큰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의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지난달 15일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77번째 독립기념일 연설 중 일부다. 내년 봄 총선에서 3연임에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자신과 인도국민당(BJP)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한 것이다. 모디 총리 지지율은 약 75%로 3연임에 성공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의원내각제인 인도는 5년마다 치러지는 총선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의 수장이 총리가 된다. 모디 총리가 이끄는 BJP는 힌두 민족주의 정당이다. 인구의 80%가 힌두교도인 데다 2014년 집권 이후 경제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제1 야당인 인도국민회의 지지율은 30%에 못 미친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정치적 안정성과 정책의 연속성을 인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꼽는 이유다. 다만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라는 별칭을 가진 인도는 중앙과 지방에서 매년 크고 작은 선거가 치러져 경제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한다는 지적도 많다. 모디 정부도 여전히 인구의 40%가 넘는 농민과 수공예 종사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데 상당한 예산을 쓰고 있다.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민주주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인도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라지브 쿠마 인도 선거관리위원장은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인도는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며 “정치적

    2023.09.06 18:54
  • "印, 과거 80개 부처서 공장 인허가…지금은 전담 공무원이 밀착마크"

    “보조금과 세제 혜택도 중요하지만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게 더 중요하죠.”최근 미국 마이크론의 반도체 후공정 공장을 유치한 인도 구자라트주 라즈 쿠마 장관(chief secretary)은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인도의 제조업 투자 유치 전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도는 반도체 공급망 육성을 위해 해외기업이 투자하면 투자 금액의 50%를 중앙정부가, 20%를 지방정부가 지급한다. 일부 외신이 ‘극단적’이라고 평가할 만큼 과감한 보조금이다. 그런데도 규제를 완화해 정책 투명성을 높이고 질 좋은 인프라와 인력을 제공한 것이 투자 유치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게 쿠마 장관의 설명이다.과거 인도에는 ‘라이선스 라즈(raj·지배)’라는 별칭이 있었다. 영국의 지배(British raj)에서 벗어나자 정부 허가의 지배를 받게 됐다는 자조적 표현이다. 기업이 제조 공장 하나를 짓기 위해서는 80개 정부 부처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1990년대까지 인도 경제가 발전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다.인도는 이 같은 인식을 불식하기 위해 ‘기업 활동의 용이성’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정치적 고향인 구자라트주가 대표적이다. 모디 총리가 10년 넘게 주 총리로 재직하며 규제 개혁과 인프라 확충을 밀어붙여 인도에서 가장 기업 환경이 좋은 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쿠마 장관은 “구자라트주는 법과 규제를 단순화해 투명성을 높이는 작업을 최우선으로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 번째로는 투자와 관련해 다양한 이슈가 생기면 문의할 수 있도록 전담 공무원을 두는 창구 단일화

    2023.09.05 18:20
  • '인도판 KTX' 만들고, 고속道 2배로…느려터진 '물류 혈관' 뚫는다

    지난달 20일 인도 구자라트주 주도 간디나가르의 기차역. 한국의 옛 비둘기호를 연상시키는 낡은 기차들 사이로 KTX급 최신식 열차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인도 서부 해안을 따라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까지 가는 반데바라트 익스프레스다. 2019년 운행을 시작한 반데바라트의 최고 속도는 시속 160㎞지만 열악한 인도의 선로 사정상 시속 130㎞까지 달릴 수 있다. 준(準)초고속 열차다. 약 500㎞ 떨어진 뭄바이까지 여섯 시간 넘게 걸렸지만, 열차 내부는 깨끗하고 서비스도 좋았다.열차 탑승 전 만난 프라디프 아히르카르 인도 초고속열차공사 수석프로젝트매니저는 “같은 구간을 2026년부터는 두 시간 만에 다닐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시속 320㎞까지 달릴 수 있는 인도 최초의 초고속열차 프로젝트가 이 구간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아히르카르 매니저는 “인도의 경제 중심지인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에서 뭄바이까지 그동안은 자동차로 여덟 시간, 비행기로도 공항 이동 시간을 포함해 서너 시간 걸렸는데 이를 대폭 단축하게 되는 것”이라며 “교통·물류 인프라 확충에 대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인도는 2047년까지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프라 확충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열악한 인프라가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돼 왔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3.3%를 각종 인프라 투자에 배정했다. 인베스트인디아에 따르면 이 중 7500억루피(약 12조원)가 항만을 개선하고 철도와 도로, 교량을 짓는 100여 개 물류 연결성 강화 프로젝트에 쓰이고 있다.인도 도로교통·고속도로

    2023.09.05 18:14
  • '세계 3위 탄소배출' 인도 "2030년 신재생에너지 50%로"

    구자라트주 메사나에 있는 모데라 태양사원. 11세기 태양신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힌두교 사원이다. 이 사원이 있는 모데라는 지난해 10월 마을 전체가 태양광 발전소로 변신했다. 주택과 관공서 지붕에 태양광 패널 1300개를 설치했다. 이 패널에서 생산된 태양광 에너지는 낮에는 마을 사람들이 전기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태양사원에서 6㎞ 떨어진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밤 시간을 위해 저장한다. 초과 생산량은 정부가 구입한다.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과거에는 전기료가 너무 비싸 밤에도 전등을 켤 엄두를 내지 못했다”며 “이제는 우리가 생산한 전기를 쓰고 남으면 팔고 있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열악한 에너지 인프라를 확충하고 기후 변화 목표도 달성하겠다는 인도 에너지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지난해 10월 기념식에서 “에너지 수요와 관련한 이런 노력을 확대해야 한다”며 “모데라의 성공 사례가 다른 마을에도 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인도는 세계 3위 탄소 배출국이다.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면서 지속 가능한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도전과제다. 인도는 2030년까지 에너지 수요의 절반을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목표다.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해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인도는 그린수소 생산의 허브가 되겠다는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모데라=유창재 정치부장

    2023.09.0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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