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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좋다면서요? 보고 싶은데 상영관을 찾을 수가 없네요.”
지난 7일 ‘사람과 고기’ 개봉 뒤 배급사 트리플픽쳐스의 강기명 대표가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다. 박근형·예수정·장용 주연 ‘사람과 고기’는 노년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리면서도 유쾌한 전복성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평단과 관객들에게 두루 호평받았다. 하지만 개봉 주말에 배정받은 90개 스크린은 일주일 만에 반토막 났다.
“스크린 수보다 회차가 문제예요. 상영 시간표가 아침 8시, 밤 11시30분인데 누가 보러올 수 있겠어요?” 멀티플렉스가 상영관을 빼는 논리는 숫자, 즉 좌석판매율 수치다. 애초 좌석이 판매되기 힘든 시간에 배치하고 좌석이 판매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관행이 여전하다. ‘사람과 고기’ 개봉 주말 좌석판매율은 20%. 악전고투에 비하면 적지 않은 수치다.
멀티플렉스들은 상영할 영화가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독립예술영화의 극장 문턱은 되레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극장이 힘들다는 이유로 상업영화 쏠림 현상이 더 심해진데다, 부족한 라인업을 채우기 위해 극장이 자체 배급하는 단독 상영작을 늘리면서 독립예술영화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더 좁아진 것이다. 지난해 설에 개봉한 ‘소풍’은 ‘사람과 고기’와 비슷한 소재의 작품이지만, 롯데시네마 단독 개봉으로 마케팅에 공 들이며 30만 관객을 넘겼다. ‘사람과 고기’는 개봉 2주가 지난 21일까지 1만5729명이 들었다. 이번주 들어 최강희, 유태오 등 배우들의 후원 상영회가 열리며 상영관 확대 캠페인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나란히 개봉한 ‘3학년 2학기’와 ‘3670’의 누적 관객 수는 각각 1만7000명, 2만명으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이다. 그럼에도 올해 개봉한 독립영화 가운데 성적이 좋은 편이다. 지난해 독립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누적 관객 수 3만명을 기록한 ‘장손’과 ‘3학년 2학기’의 홍보·마케팅을 담당한 조계영 필앤플랜 대표는 “멀티플렉스가 예전에는 가능성이 보이는 독립예술영화에 일반관을 열어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단독 상영작이나 재개봉 흥행작이 채운다”며 “스크린 수나 상영회차가 너무 줄어 이제 한국 독립예술영화는 극장 수익 창출이 아예 불가능해지겠다는 우려도 든다”고 짚었다.
‘3670’ 배급사 엣나인필름이 배급한 ‘여름이 지나가면’은 지난 7월 전국 58개 스크린에서 개봉했다가 일주일 만에 20개 수준으로 떨어졌다. 멀티플렉스는 거의 모든 상영관을 뺐다는 의미다. 하지만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꾸준히 높은 좌석점유율을 유지하고, 관객들도 상영관 확대를 계속 요청해, 개봉 두달이 지난 시점에 일부 멀티플렉스가 2주가량 상영관을 열기도 했다. 결국 개봉 석달 지나 관객 1만명을 돌파했다. 주희 엣나인필름 기획마케팅 이사는 “상업영화만큼 홍보비를 들일 수 없는 독립영화는 입소문으로 관객이 극장에 가기까지 2주 정도 걸리는데, 극장들이 그 전에 다 내린다는 게 문제”라며 “이걸 지켜주는 극장이 최소 수준만 있어도 의미 있는 관객 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예술영화관을 축소해온 멀티플렉스 사이에서도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있던 씨지브이(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가 이달 말 문을 닫는다. 올해 연간 극장 관객 수는 2010년대의 절반 수준인 1억명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극장들이 낡은 몰아주기 상영 방식을 고집하면서 정부에 앓는 소리를 하기에 앞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