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유일한 문명이 아니며 우주 어딘가엔 분명히 고도의 지적 외계문명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지구가 우주에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를 코페르니쿠스 원리라고 부른다.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끌어내린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의 근간을 이루는 논리다. 이 논리의 연장선에서 보면 지구는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으므로 지구에서만 문명이 탄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를 토대로 그동안 과학이 밝혀낸 법칙들을 적용해 구체적으로 외계 문명이 얼마나 많이 존재할 수 있는지 계산해 본 것이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프랭크 드레이크(1930~2022)가 1961년 고안해낸 드레이크방정식이다. 드레이크방정식은 1년 동안 우리 은하에서 탄생하는 별의 수, 별에 행성이 있을 확률, 행성에서 생명체가 탄생할 확률, 생명체가 지적 문명으로 진화할 확률, 그 문명이 우리에게 신호를 보낼 정도로 발전할 확률, 이 조건들을 만족하는 지적 문명이 존재할 수 있는 시간으로 구성돼 있다. 각 항목마다 어떤 값을 넣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온다. 따라서 정답이 따로 없는 방정식이다. 미국 세티(SETI, 외계 지적생명체 탐색 이니셔티브) 연구소에 따르면 “불확실성으로 인해 그 수는 1(지구)에서 수백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드레이크 자신이 추정한 외계문명 수는 1만개”다.
그러나 인류의 우주 탐사망에 외계 지적 생명체는 고사하고 단순한 생명체도 아직은 잡히지 않고 있다. 외계 문명은 진짜 있는 것일까? 있다면 미래에 우리 문명과 조우할 수 있을까?
문명 존속 기간은 최소 28만년 돼야
오스트리아과학원 우주연구소 연구진이 지난달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행성학회 유로플래닛과학회의(EPSC)와 미국 천문학회 행성과학부(DPS) 합동학술대회에서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건을 추가해 추정한 결과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가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우리 은하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기술 문명은 3만3000광년 떨어져 있을 수 있으며, 만약 그 문명이 우리와 같은 시기에 존재하려면 문명 존속 기간은 최소 28만년, 어쩌면 수백만년은 돼야 한다.
이번 추정은 단순히 생명체가 살 만한 환경을 갖춘 행성인지를 넘어 지구와 같은 기술 문명 번성에 필요한 대기와 지질 특징을 가진 행성의 존재 확률, 그러한 행성에서 기술 문명이 우리와 같은 시기에 존재할 확률을 모두 고려해 계산한 것이 특징이다.
연구진은 ‘어떤 환경을 갖춘 행성이 기술 문명으로 진화할 수 있는 생명체를 지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변이 될 수 있는 몇가지 핵심 요소를 뽑아냈다.
첫째는 대기다. 지구 대기의 대부분은 질소(78%)와 산소(21%)다. 이산화탄소는 0.042%로 미미하다. 하지만 이산화탄소는 생명 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산화탄소가 너무 적으면 생태계의 제1차 에너지 공급원인 광합성을 할 수 없고, 너무 많으면 온실 효과로 온도가 너무 높아지거나 독성이 높아져 생물권이 존속하기 어렵다.
연구진이 컴퓨터 모델을 돌려본 결과, 태양~지구 거리보다 별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거나 별이 어리고 밝기가 약하다면 이산화탄소가 최대 10%까지 높아져도 과열 없는 광합성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지구에선 앞으로 광합성이 가능한 기간이 앞으로 2억~10억년 남았지만, 이산화탄소가 10%인 행성에선 42억년, 이산화탄소가 1%인 행성에선 31억년 동안 생물권이 유지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소 수치도 적정선이 유지돼야 한다. 산소는 호흡뿐 아니라 불을 피우는 데도 필요한 원소다. 연구진은 연소가 필요한 금속 제련 등의 기술 문명이 번성하려면 대기 중 산소가 최소 18%는 돼야 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또 하나의 필수 조건은 판구조론 같은 지질학적 과정이다. 지각판의 이동은 탄소-규산염 순환을 통해 이산화탄소 수치를 적절하게 유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암석 행성엔 이런 지질학적 엔진이 없다. 이는 지구와 같은 대기와 지질학적 특징을 갖춘 행성을 찾을 확률이 매우 낮다는 걸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시간적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 지구에서 기술 문명이 등장하기까지는 45억년이 걸렸다. 인류가 기술 문명을 발전시킨 기간은 기껏해야 수천년이다. 따라서 종의 생존 기간이 길수록 우리와 동시에 존재할 가능성이 커진다. 연구진은 생물권의 수명을 기술 생명체가 진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기술 문명 종족의 가능한 수명과 비교했다.
우주 탐사망에 잡힐 확률은 희박
연구진은 모든 요소를 종합할 때 4천억개의 별이 있는 우리 은하에서 우리 문명과 같은 시기에 외계 기술 문명이 단 하나라도 존재할 수 있으려면, 생물권 존속 기간이 가장 긴 이산화탄소 10% 행성을 기준으로 최소 28만년은 존속해야 한다는 계산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그런 문명이 10개 있으려면 기술 문명의 평균 수명이 1천만년 이상이어야 한다. 연구진은 따라서 우리가 또 다른 지적 문명을 발견한다면 그 문명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되고 발전된 형태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이런 계산을 바탕으로 가장 가까운 외계 기술 문명은 약 3만3천광년 거리에 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 거리는 이런 문명이 우리 은하의 거주 가능 영역 전체에 걸쳐 무작위로 분포돼 있다는 가정 아래 나온 수치다. 연구진은 “태양계는 은하 중심에서 약 2만7천광년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외계 기술 문명은 은하계 반대편에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특히 이런 계산 수치는 최대값이라고 강조했다. 생명체의 탄생 확률, 광합성 발달, 다세포 생물로의 진화, 기술 발전 가능성 같은 다른 중요한 요소들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를 하나씩 추가할수록 외계 문명은 더욱 희귀해질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외계 지적생명체 탐사가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일깨워준다. 지적 생명체가 진화해서 기술 문명을 발전시키고, 우리와 만날 만큼 오랜 기간 존속할 확률 자체가 매우 낮을 뿐더러, 설령 있더라도 거리가 너무 멀다는 또 다른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연구진은 그럼에도 탐사는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계 지적 생명체를 실제로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탐사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구를 이끈 마누엘 셰르프 박사는 “만약 탐사에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우리 이론의 타당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고, 만약 뭔가를 발견한다면 역사상 가장 큰 과학 성과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