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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오른쪽)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한미 관세 및 무역협상 후속 논의를 위해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디씨(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오른쪽)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한미 관세 및 무역협상 후속 논의를 위해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디씨(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관세협상의 3500억달러(약 500조원) 대미투자와 관련해 ‘선불’을 요구하는 미국에 맞서 우리 정부가 ‘분할납부’를 요구하면서 막판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본임 임기가 끝나는 2029년 1월까지 3500억달러 전액 현금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이렇게 할 경우 외환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며 분할 납부 대안을 꺼낸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3500억달러 ‘분할 납부’ 요구는 차선책의 성격이 짙다. 정부는 그동안 미국이 요구한 3500억달러 중 직접투자 비중을 5%로 정도로 설정하고 나머지는 보증·대출 등으로 채우려고 구상했다. 하지만 미국이 일본과 같은 전액투자 방침에서 물러서지 않자 약 10년 간의 분할납부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정부는 외환보유고의 85%에 이르는 3500억달러가 단기간에 미국으로 빠져나가면 국내 외환시장에 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미국을 설득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우리 정부의 분할 납부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직접 투자금액 3500억달러는 ‘고정’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한 정부 소식통은 “미국 입장에서는 할부를 해주면서 원금을 깎아주는 건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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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분할 납부 요구를 수용할지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실무 장관은 (전액 선불 투자가 어렵다는 한국 정부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데, 얼마나 설득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느냐 하는 부분은 진짜 불확실성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한국·일본과 관세협상을 거론하며 “한국은 3500억달러를 선불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고 거듭 주장했다.

최근 정부 안팎에서 거론되는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이나 ‘원화 계좌를 만들어 투자하는 방식’ 등은 선불-분할 납부 문제가 해결된 뒤 추가로 논의될 사안들이다. 선불-분할 납부 중 무엇으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현금 투자 액수나 통화스와프 체결 여부와 방식 등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통화스와프 문제가 협상 ‘본류’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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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3500억달러를 10년에 나눠내면 1년에 350억달러를 투자해야 하는데, 1년에 우리나라가 외환시장 충격없이 외부로 반출할 수 있는 외화 규모는 200억~250억달러 정도다. 이때 정부가 모자란 외화 대신 ‘원화 계좌를 만들어 투자하는 방식’ 등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양국의 조선업 협력 방안인 ‘마스가 프로젝트’(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가 이번에도 협상의 지렛대로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업 부흥에 공을 들이고 있는 만큼, 한미 간 진행되는 관세협상에서 이를 지렛대 삼아 우리 입장을 최대한 관철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7월 말 대미 수출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큰 틀의 합의를 한 것에도 마스가 프로젝트의 영향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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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 전까지 협상을 타결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달성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분위기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 16일 함께 방미길에 오른 것을 두고 막판 타결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이 나오지만 쉽게 예단하기 힘들다는 분위기다. 김 실장은 16일(현지시각) 오후 김정관 장관,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등과 함께 워싱턴의 상무부 청사를 찾아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과 2시간 협상을 벌였다. 김 실장은 협상을 마친 뒤 ‘진전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2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고 말하며 구체적인 답은 피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