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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자유 대한민국 수호 국민혁명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탄핵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자유 대한민국 수호 국민혁명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탄핵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윤 어게인’을 이뤄줄 것이라는 극우 진영의 ‘화물 숭배’(cargo cult)가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부정선거 음모론 세력과 연결된 반탄파(윤석열 탄핵 반대파) 장동혁 신임 대표가 선출되면서, 손을 맞잡은 한미 극우 세력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정치 개입을 ‘기다리는’ 식의 정치 공세가 잦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5일(한국시각) 한-미 정상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서의 숙청과 혁명”을 언급하자, ‘부정선거로 당선된 반미·친중 이재명 대통령을 내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을 복권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윤석열 지지자들 사이에서 극대화했다. 그러나 불과 3시간여 만에 “오해라고 확신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을 공개 철회하면서 윤 어게인 세력이 기다렸던 ‘화물’은 끝내 도래하지 않았다.

화물 숭배는 실재하는 신앙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남태평양 여러 섬에 비행장을 건설했다. 수송기가 올 때마다 신기한 물건들이 비행기에서 쏟아져 나왔다. 현대 문물을 접하지 못했던 섬 주민들은 ‘신의 선물’로 받아들였다. 종전으로 미군 비행장이 폐쇄되자 수송기는 더는 오지 않았고, 신의 선물로 여겼던 화물도 끊겼다. 그러자 섬 주민들은 나무로 비행기 모형을 만들어 화물의 재림을 기원하는 ‘화물 숭배’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섬에서는 아직도 해마다 가슴에 유에스에이(USA)를 쓰고, 성조기를 게양하며 기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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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성조기를 든 태극기부대의 등장을 두고 ‘21세기 화물 숭배’라는 분석이 나왔다. 2025년 윤석열 탄핵 국면에 다시 등장한 태극기와 성조기 조합은 외신에서도 언급할 정도로 기이한 숭배로 비친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1월 ‘윤석열 지지자들은 미국 성조기를 흔드나’,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왜 한국 시위대는 미국 국기와 트럼프 지지 구호를 사용할까’ 등의 서울발 기사를 썼다. 한국전쟁 때 미국의 도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미국 복음주의 개신교계와 연계된 한국 복음주의 대형 교회의 반공 이념, 전광훈 목사 등 극우 개신교 세력의 발호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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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 숭배 신앙을 다룬 다큐멘터리. 섬 주민이 미국 국기를 게양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Java Discover 갈무리
화물 숭배 신앙을 다룬 다큐멘터리. 섬 주민이 미국 국기를 게양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Java Discover 갈무리

여의도 밖에서 성조기와 함께 존재했던 ‘화물 숭배’의 징후들이 107석 제1 야당인 국민의힘 안에서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혐오와 분노, 이재명 정부의 외교 성과를 깎아내리려는 얄팍한 정치적 셈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도 있지만, 국민의힘의 극우화 퇴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정상회담 직전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숙청과 혁명”을 언급하며 “최근 들어 한국 사회 및 정치에 대한 불신이 미국 내에서, 또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치·사회·경제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불신의 원인이 국민의힘 소속이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였다는 사실을 외면한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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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이재명 민주당 정권이 보여준 독재적 국정운영, 내란몰이, 사법시스템 파괴, 야당에 대한 정치보복, 언론에 대한 전방위적 장악이 결국 미국의 눈에 ‘숙청’과 ‘혁명’처럼 비치고 있는 것 아닐까”라고 했다. 극우·보수진영이 불안해하는 사안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이를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로 트럼프 대통령을 받드는 듯한 태도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검찰 시절 측근이었던 주진우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 “이 대통령이 낙점한 특검이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고, 미국통 한덕수 총리까지 구속하려는 것은 ‘숙청’으로 비쳤을 것”이라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했다. 그러면서 “역대급 외교 참사” “한미동맹 역사상 최대 굴욕” 등의 말을 쏟아냈다.

외부에 국내 정치를 의탁하는 제1 야당의 화물 숭배식 정치 행태는 ‘신탁’에 빗대어졌다. 박상혁 민주당 원내소통수석부대표는 “마치 신탁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대한민국에 저주와 악담, 이재명 정부에 대한 모욕을 일삼는 이들의 행태가 너무도 부끄럽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