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2단계 입법이 임박한 가운데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신중론이 다시 불거졌다. 금융위원회가 연내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가상자산 가상자산 2단계 입법안을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확인하는 동시에, 한국은행은 통화 안정성을 이유로 단계적 허용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내놨다.
금융위원회는 20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올해 안에 스테이블코인 법제도 체계 등을 담은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2단계' 입법안을 확정해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해 연내 법안 제출과 시행령 준비를 병행하겠다는 구체적 계획도 밝혔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날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스테이블코인 허용은)주조차익 감소, 통화정책 유효성 저하, 지급결제시스템 신뢰 훼손, 금융안정 저해, 외환규제 회피 등 다섯가지 리스크 요인이 있는데 디지털자산 2단계 입법안에 충분히 잘 반영해 준비 중인가”라는 질문에 “제도설계 초기단계인 만큼 충분한 안정장치를 갖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 하에 관계부처와 꼼꼼히 하나하나 다 짚어보고 있다”고 답했다. 또 “법은 법대로 추진하지만 미리 시행령이나 후속작업 등을 선행적으로 준비해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또 “스테이블코인이 가상자산 거래에 쓰이지만 지급결제, 송금 등과 연계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 “전문가들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제도 도입 뿐만 아니라 확장성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열린 기획재정부 국장감사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간편결제는 은행 계좌나 카드 등 기존 금융망을 기반으로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자체적으로 결제와 가치 저장이 가능한 통화적 성격을 갖는다”면서 “결제 범위가 제한된 간편결제와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범용성이 높아 화폐 대체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또 “스테이블코인 문제는 통화정책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한국은행 의견이 강력히 반영돼야 한다”면서 “미국의 지니어스 액트 사례처럼 한국은행이 그 담당자로서 전원 합의제 정도 제도개선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은 한국은행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외환규제와 금융산업 구조, 통화정책 등에 미칠 광범위한 영향을 고려해 신중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편의 수단을 넘어 화폐 대체 가능성을 지닌 만큼 거시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금융권, 가상자산 업계는 지난해부터 스테이블코인 발행주체 관련 논의를 해왔으니 이견을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은은 통화 안정성을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가 은행 중심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빅테크를 비롯한 핀테크 업계는 글로벌 기준에 맞춰 원화 등 발행량에 대응하는 현물 유보금(준비자산)을 갖춘 경우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정부 일각에서 '신중론'을 재확인한 만큼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은 속도와 안정성 사이에서 치열한 줄다리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는 국제 규제와 정합성을 맞추고 투자자 보호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한국은행은 통화 안정성과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고려해 단계적 접근을 강조한다”면서 “국회 역시 양측 논리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을 주문하고 있어 논의 복잡성이 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과 빅테크의 이해관계 충돌도 변수다. 은행권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은행 중심 컨소시엄'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한국은행 입장을 공유하며 제도권 안착을 꾀하고 있다.
반면, 빅테크와 핀테크 업계는 글로벌 유럽 가상자산시장규제(MiCA) 규제와 유사하게 유보금 요건 충족 시 발행 주체를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입법 과정에서 협상과 타협이 필요한 상황이다.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이 국제 기준과 국내 현실을 절충한 '1차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시소 기자 siso@etnews.com,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