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 위기에도 버티던 伊... 금 보유량 美·獨 이어 3위 '우뚝'

이탈리아 金 보유량 2452톤...현재 시세로 425조원 규모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이탈리아 중앙은행 금 금고 내부 보안실에 진열된 금괴.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이탈리아 중앙은행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이탈리아 중앙은행 금 금고 내부 보안실에 진열된 금괴.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이탈리아 중앙은행

국제 금값이 연일 최고가를 갈아치우는 가운데, 국가 부도 위험에도 불구하고 금을 꿋꿋하게 보유해 온 이탈리아에 관심이 쏠린다.

15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이탈리아가 미국, 독일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금을 비축한 국가라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은 2452톤(t)의 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3000억달러(약 425조원)로, 2024년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 13%에 해당한다.

로이터는 “이탈리아의 금 보유량은 1940년대 나치에 의해 약탈당한 매장량을 재건한 후 수십년간 이를 보호하고, 거듭된 경제 위기에서도 매각 요구를 거부해온 뚝심의 결과”라고 짚었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이탈리아 중앙은행 금 금고 내부 보안실에 진열된 금괴.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이탈리아 중앙은행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이탈리아 중앙은행 금 금고 내부 보안실에 진열된 금괴.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이탈리아 중앙은행

보도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금 사랑'은 수천년 전부터 이어져왔다. 이탈리아 반도를 지배한 에트루리아인들은 고대 로마보다 먼저 금을 주조했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 치하에서 주조된 금화는 로마 제국 화폐의 근간이 됐다고 한다.

현대의 '금 사랑'은 전시 경험에 기반을 둔다. 과거 독일 나치 세력이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의 도움 아래 이탈리아 국고의 금을 120톤가량 압류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날 무렵 이탈리아의 보유량은 20톤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탈리아는 제2체 세계대전 후 '경제 기적' 시기에 수출 주도 성장을 통해 비약적인 경제 회복을 이뤘다. 당시 달러화 유입이 급증했는데 이탈리아는 이 중 일부를 금으로 환전했다. 또, 1958년 압류된 금괴 4분의 3을 회수하면서 1960년까지 금 보유량은 1400톤으로 늘어났다.

이후 이탈리아는 수 차례 '금 매각' 시험대에 올랐다.

1970년대 오일 쇼크 당시 이탈리아는 사회 불안과 잦은 정권 교체로 인해 국제 투자자들 사이에 위험한 국가로 인식됐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영국이나 스페인과 달리 금융 위기 국면에도 금을 매각하지 않았다. 2008년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을 때에도 금을 팔지 않았다.

이탈리아 중앙은행 전 부총재 살바토레 로시는 자신의 저서 'Oro'(금)에서 “금은 가족의 은 식기와 같고 할아버지의 귀중한 시계와 같으며, 국제 사회에서 국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모든 위기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3조5000억유로(약 5814조원)인 국가채무를 줄이기 위해 금을 매각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 실현된 적은 없다. 내년에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37%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SDA 보코니 경영대학원의 스테파노 카셀리 학장은 “이탈리아은행의 그 역사적인 결정은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라면서 “세계 질서가 재편되고 시장 가격들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치솟고, 스테이블코인이나 가상화폐 같은 디지털 자산이 부상하는 지금, 중앙은행들이 가장 뜨거운 자산을 갖고 있다. 금을 팔지 않는 것은 옳은 결정”이라고 봤다.

한편,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과 독일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8133톤을, 독일 분데스방크는 3351톤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