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치료는 국내 반려동물 임상에서도 항암, 수술과 함께 종양 치료의 주요 옵션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2019년 헬릭스동물종양센터(현 서울동물영상종양센터)가 국내 동물병원 최초로 방사선치료기를 들여온 데 이어 2022년에는 서울대 동물병원이 국내 대학동물병원에서는 처음으로 방사선치료기를 도입했습니다.
서울대 동물병원에서 방사선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최지혜 교수는 현재 연구년을 맞아 미국 UC DAVIS 수의과대학 방사선종양학과로 잠시 자리를 옮겨 더 큰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최지혜 교수(사진)와 국내외 반려동물 방사선치료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모처럼의 연구년에도 방사선치료 분야에 집중한다고 들었습니다
9월에 UC DAVIS 수의과대학의 방사선종양학과로 왔습니다. 익숙한 영상진단과로 가면 편할 것 같긴 했지만요(웃음). 내년 8월까지 꼬박 1년을 있을 예정입니다.
UC DAVIS 동물병원에 출근한 지는 한 달 정도 됐는데요, 이미 방사선치료 과정은 참관하고 있습니다. 워낙 바쁘게 돌아가는 곳이다 보니 빨리 좀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아요.
UC DAVIS에서 본 미국의 반려동물 방사선치료는 어떤가요?
미국의 수의방사선종양학은 이미 수십년 간 노하우를 축적했는데요, 생각보다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매우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종양 환자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수의사와 테크니션, 방사선물리학자의 역할을 어떻게 나누는지도 비슷하더라고요.
한국의 수의방사선종양학은 아직 영상의학과 안에서 분리되어 나오려는 단계인데, 미국도 미국수의방사선학회(ACVR)를 중심으로 방사선종양학이 같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UC DAVIS의 방사선종양학과는 담당 교수 3명과 전공의 2명, 테크니션과 방사선물리학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원이 충분할 때는 하루에 15마리까지도 방사선치료를 했다고 합니다.
서울대 동물병원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인력과 프로토콜이 자리 잡아서 하루에 4~5마리까지도 방사선치료가 가능해졌습니다.
서울대 동물병원에 방사선치료기를 도입하면서 초기 세팅에 심혈을 기울이셨던 게 기억납니다
방사선치료는 잘하면 환자에 대한 치료 효과도 좋고, 삶의 질도 올려주고, 보호자 만족도도 무척 높아요. 하지만 그만큼 더 주의깊게 접근해야 합니다. 앞으로 방사선치료를 도입하실 다른 동물병원에도 꼭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입니다.
수술은 잘못하면 금방 티가 나지만 방사선은 제대로 조사됐는지, 부작용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알기가 어려워요. 방사선 조사량이 같아도 어떻게 쏘는 지에 따라 치료 효과도 다르고, 주변 정상조직의 보호에는 더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체계적으로 세팅할 필요가 있다 보니 준비기간이 길어졌습니다.
그렇게 도입한 엘렉타(Elekta)사의 방사선치료기는 만족하시나요?
엘렉타의 Synergy 모델을 도입했는데요, 물론 만족합니다. 방사선치료를 해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발전이기도 하고요.
국내 반려동물 종양환자가 대부분 소형견이나 고양이라 방사선치료는 몇 mm의 문제가 됩니다. 미국은 대형견이 많다 보니 마진도 더 넉넉히 줄 수 있는데..한국에서는 정말 정밀한 조사가 요구되는 거죠.
엘렉타 Synergy는 부위별 선량 변조를 통해 정밀한 치료가 가능하면서 치료시간도 크게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방사선을 조사하는 시간은 2~3분이면 될 정도로 마취 시간을 줄일 수 있죠.
환자는 워낙 작고, 대부분 마취 부담이 있는 노령인데다, 종양도 상당히 커진 다음에야 치료하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에 걸맞은 장비인 셈입니다.
물론 더 좋은 방사선치료기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제가 은퇴하기 전에 가능하면 좋겠죠(웃음).
종양 환자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방사선치료가 어떻게 진행되나요?
서울대 동물병원은 가능한 표준적인 프로토콜을 쓰려고 합니다. 한 번에 조사하는 방사선량은 가능한 줄이면서 여러 번 실시하는 방식이죠.
16~20번을 실시해야 하다 보니 마취에 대한 부담이 있긴 하지만, 종양을 가장 많이 제거하면서 완치와 생명연장의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DRT(Definitive Radiotherapy)는 근치적 방사선 치료의 기본 프로토콜인데요, 마취 우려가 심한 환자에서 일부 변형하기도 하지만 가능한 DRT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종양이 너무 많이 퍼졌거나, 여러 이유로 근치적 치료를 목표로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완화적인 치료도 하지만요.
UC DAVIS에 와보니 여기도 DRT를 기본으로 하더라고요. ‘잘하고 있었던 건가’ 싶었죠. 여기서도 보호자분들이 걱정하시긴 하지만, 그 필요성과 장점을 잘 설명해드리면 대부분 따라오십니다.
일단 DRT를 개시하면 대부분 중단 없이 3~4주에 걸쳐 매일 방사선치료를 반복하게 됩니다. DRT 세션을 마친 후 필요에 따라 다시 실시한 케이스도 많아요. 그만큼 효과와 보호자 만족도가 높았던 거죠.
DRT와 달리 한 번에 조사하는 선량을 높이고 횟수는 줄이는 SRT(Stereotactic Radiotherapy, 정위적 방사선 치료)도 있습니다만, DRT와 비슷한 생존기간을 기대할 수 있다는 문헌상 근거가 있을 때만 고려하는 편입니다.
항암, 수술과 함께 다학제적인 접근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UC DAVIS 동물병원에 와보니 방사선종양학과 바로 옆에 내과 종양 파트가 있더라고요. 서로 방사선치료를 어떻게 시도할지, 항암과의 스케쥴을 어떻게 조정할지 등을 끊임없이 논의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고요.
서울대에서도 다학제적 진료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방사선치료로 가장 큰 혜택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가 두경부 종양인데요, 가령 뇌종양으로 인한 발작 환자가 오면 내과, 외과, 방사선치료까지 함께 협력합니다. 수술적 접근이 가능한 부위의 종양은 외과에서, 접근이 어려운 부위는 방사선치료로, 항암과 발작 관리는 내과에서 하는 식이죠.
보호자가 여러 과 진료를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스케쥴을 조정하는 일도 쉽지는 않지만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케이스가 있으신가요?
앞다리에 골종양이 있던 비글이 기억나네요. 이미 18살이라 무척 노령이었고, 다른 종류의 폐암까지 있어서 보호자분도 처음에는 연명치료를 고려하셨어요.
하지만 골종양으로 인해 다리가 너무 아프다 보니 걷질 못해서 환자의 삶의 질이 너무 낮아졌죠. 그래서 다시 방사선치료로 마음을 돌리셨어요.
위험을 고려해 2번만 하기로 하고 고선량 치료를 시도했는데, 놀랍게도 살짝 다리를 딛을 수 있게 되면서 환자의 활력도 좋아졌습니다. 보호자 분들도 감격하셨고요. 완화적인 치료로서 방사선치료가 잘 활용된 케이스인 셈이죠.
폐암까지 있는 노령 환자에서 마취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겠습니다
대학 동물병원의 탄탄한 전문가 집단이 협력해서 가능한 일이죠. 내과, 외과는 물론 마취통증의학과에서도 면밀히 참여한 성과입니다.
국내에서 방사선치료 저변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시나요?
지난해 처음으로 개최한 수의방사선종양학컨퍼런스에서 확인했듯 방사선치료 도입을 시도하는 동물병원은 더 늘어날 겁니다. 보호자의 니즈도 충분하고, 수의학 발전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으니까요. 곧 국내의 다른 대학 동물병원에도 (방사선치료기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만큼 학회를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어 좀더 표준적인 방사선치료를 실시하기 위한 고민을 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사선치료는 기계만 들여온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거든요. 전문인력이 반드시 필요하고, 의학물리학적 뒷받침도 필수적입니다.
현재로선 국내 수의과대학 중 유일하게 직접 방사선치료기를 운용하고 계시니, 관련 전문인력 양성에도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서울대 수의영상의학 대학원은 아예 트랙을 분리했다고 들었습니다.
방사선치료를 담당하려면 영상의학적 역량은 물론이고 종양의 생물학적 특성, 방사선물리학에 대한 이해도 필요합니다.
서울대에서는 4년 과정으로 보고 있어요. 1년반 정도 진단영상 분야에서 CT·MRI까지 배운 후 2년반에 걸쳐 방사선종양학과 관련된 공부를 하면서 실무도 배우는 거죠.
미국에서는 인턴 1년, 전공의 3년을 거쳐 미국수의영상의학전문의(방사선종양학)가 되는 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DACVR(Radiation Oncology)). 그 과정에서 내과의 종양학에 익스턴십도 하고, 병리학 수업도 듣는 등 다른 과목의 교육을 병행하면서 방사선종양학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게 되는 형태입니다.
한국은 현재 방사선종양학 전문인력 양성을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과도기인 셈이죠. 그 교육과정을 거친 전문인력이 배출되어 현장의 방사선치료를 담당하고, 또 차세대 인력 양성을 담당하게 되면 진정한 1세대로 자리잡을 겁니다. 제 역할은 그 분들이 표준화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방사선치료를 도입하면서 힘들었던 부분 중 하나가 동물환자에 맞춘 교육 자료가 너무 없어서 인의쪽 자료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인데요, 앞으로 업계와 협력해 교육 인프라를 개선하고 수의 분야의 교육도 표준화해나간다면 더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방사선치료 실시나 의뢰를 고민하는 보호자나 수의사분들께 전할 조언이 있다면
방사선치료도 수술, 항암과 마찬가지로 가능한 종양을 제거해 환자의 생존기간을 늘리는데 주 목적이 있지만, 뿐만 아니라 삶의 질 향상에도 큰 강점이 있습니다.
방사선치료를 받은 환자의 보호자 분들이 기뻐하는 부분 중 하나가 활력이 좋아진다는 점이에요. 늙어서 기운이 없었던 게 아니라 암 때문에 아파서 기운이 없었던 거죠. 방사선치료가 정상 기능을 유지하면서 종양을 제거하는데 효과적이기도 하고요.
완치나 종양 제거뿐만 아니라 방사선치료로 더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얼마나 통증이 줄어드는 지, 종양이 더 커지지 않고 완화된 증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는 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