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만연한 꿀벌 질병, 관납 약품 살포로는 개선 못한다

대한꿀벌수의사회, 꿀벌 질병 문제 주목..관납 약품은 자가치료로 오남용, 컨설팅 사업 호응은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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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꿀벌수의사회(회장 임윤규)가 국내 양봉의 질병 문제에 주목했다. 21일(화) 순천만생태문화교육원에서 열린 대한수의학회 추계국제학술대회에서 꿀벌 세션을 진행했다.

국내 양봉은 전염병에 특히 취약하다. 높은 사육밀도와 이동양봉, 차단방역이 불가능한 꿀벌의 특성이 결합되면서다. 한국양봉농협 동물병원 조사에서 가장 만연한 검은여왕벌방바이러스는 80%가 넘는 농가에서 검출됐을 정도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병원체를 진단하여 그에 맞는 처방을 한다’는 기본조차 요원하다. 지역별로 살포되는 관납약품은 남용으로 이어진다. 양봉농가 질병관리 지원사업이 도입됐지만 현장 호응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한국양봉농협 동물병원 허주행 수의사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양봉농가 1,825개소에서 채취한 검체 4,953건의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꿀벌 질병이 의심돼 왕진을 요청한 농장에서 임상증상을 보이는 꿀벌이나 애벌레를 채취해 정밀검사를 벌였다.

그 결과 가장 흔한 바이러스는 검은여왕벌방바이러스(BQCV)로 70~80%대의 유병률을 보였다. 세균·곰팡이 중에서는 노제마증의 원인체인 V. ceranae가 계절별로 13~51%의 가장 높은 유병률을 나타냈다.

여러 병원체의 복합감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허주행 수의사는 “2023년에는 전체 검체의 82%가 2종 이상의 병원체에 동시 감염되어 있었다”면서 “발생량이 많은 BQCV가 (복합감염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단일 농가의 노력으로는 전염병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목했다.

허주행 수의사는 “국내 양봉은 좁은 땅에 압도적인 사육밀도를 가지고 있다. 꿀벌의 활동반경 안에 다른 양봉농가가 없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날아다니는 꿀벌에 다른 가축처럼 차단방역을 기대할 수 없다. 개별 농장이 아무리 소독하고 사양관리를 잘한다 해도, 다른 농장의 꿀벌이 다녀간 꽃에 앉으면 질병 전파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동양봉이 많다는 점도 질병 측면에서는 불리하다. 꽃피는 시기에 맞춰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이동하며 벌꿀을 생산하는 농가가 전체 양봉농가의 22%에 달하는데, 봉군 수를 기준으로 하면 1/3에 육박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양봉농협 동물병원의 전국 조사에서도 지역별로 병원체 분포의 유의적 차이는 관찰되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전국적으로 꿀벌 질병이 연계되어 있는 셈이다.

한국양봉농협 동물병원 허주행 수의사

허주행 수의사는 양봉 농가를 위협하는 질병 문제에 대응하려면 최소한의 권역별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목했다. 꿀벌에는 농가별 차단방역도, 백신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농가 스스로 최대한 외부 접촉을 피하면서 위험성을 줄일 수 있는 양돈·가금과는 다르다.

그러려면 지역 농가들이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수의사를 통한 진단·처방이 보편화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동떨어져 있다.

아직 전국적으로 꿀벌을 진료할 수 있는 수의사가 많지도 않지만, 많아질 수도 없는 환경이다. 관납약품 살포와 결합된 자가진료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허주행 수의사는 “매년 연초에 지역별로 약품을 (관납으로) 무료 지급한다. 좋은 취지이기야 하겠지만, 진단 없이 약을 주니 농가는 경험에 의존해 자가진료한다”면서 “어떤 질병인지 제대로 진단하지 않고 일단 있는 약을 써보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운 좋게 맞아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보관하고 있던 다른 약을 써보고, 이런 남용을 반복하다 약제반응성이 낮아지고 수의사가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게 되는 악순환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날 세션에서 강연을 이어간 정년기 꿀벌동물병원장도 “농장에 약이 정말 많다. 다 국가에서 나눠준 약들”이라며 “우리나라 양봉은 이제야 수의학을 접목하려고 하지만 아직은 소수에 그친다. 대부분이 자가치료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농가에 쌓여 있는 약들의 문제를 지목한 정년기 원장

이 같은 문제를 줄이기 위해 수의사의 정기 방문진료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컨설팅 사업(양봉농가 질병관리 지원사업)이 생겼지만, 실제로 사업에 참여해 진료를 받는 농가는 극소수에 그친다는 것이 꿀벌수의사들의 지적이다.

아직 수의사 진료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떨어지는데다 꿀벌농가 대부분이 영세한데, 가금 컨설팅 사업과 마찬가지의 농가 자부담 금액을 요구하다 보니 순응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허주행 수의사는 “좁은 권역에서라도 먼저 진단을 제대로 하고 올바른 투약을 지도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눈앞으로 다가온 베트남산 벌꿀 관세 폐지와 늘어나는 수입산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양봉의 경쟁력 강화가 절실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한꿀벌수의사회도 수의사 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날 대한수의학회 세션 운영에 이어 이튿날인 22일(수)에는 순천 일원에서 자체 심화교육을 진행했다.

전국에 만연한 꿀벌 질병, 관납 약품 살포로는 개선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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