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생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유전자 교정 기술인 '크리스퍼 캐스9(CRISPR-Cas9)' 유전자가위는 한계가 있다. 아직은 세포의 모든 영역에서 유전자를 교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가 대표적이다. 세포의 에너지 공장으로 불리는 미토콘드리아는 수백개 이상의 유전자 돌연변이로 다양한 유전질환을 유발한다.
14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 변이를 정밀하게 교정하는 유전자가위 기술을 소개했다. 특히 김진수 KAIST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의 유전자가위 기술이 미토콘드리아 관련 난치 유전질환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크리스퍼 캐스9은 미토콘드리아, 엽록체 앞에서 맥을 못 춘다. 크리스퍼 캐스9은 표적 유전자를 찾아내기 위한 ‘가이드 RNA(리보핵산)’와 실제로 잘라내는 역할을 맡는 효소인 ‘캐스9(Cas9)’ 단백질로 구성된다.
가이드 RNA는 표적 유전자 데이터를 이용해 잘라낼 유전자를 식별하고 붙잡은 뒤 캐스9이 표적 유전자의 염기를 절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가이드 RNA가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에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중막을 가진 세포소기관이라 가이드 RNA가 침투하기 어렵다.
과학자들은 미토콘드리아에도 통할 수 있는 유전자가위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미토콘드리아는 콩 모양의 세포 소기관이다. 세포의 에너지 발전소로 우리가 섭취한 영양소를 연료로 삼아 에너지(ATP)를 만든다.
동시에 미토콘드리아 DNA에서 300개 이상의 돌연변이가 발현돼 질병을 일으킨다. 시력과 청력을 잃거나 근육 문제를 일으키거나 발작을 유발할 수 있는 광범위한 증상을 동반하는 다양한 불치병이 발생한다.
미토콘드리아 난치병 중 젊은 남성이 갑자기 실명하는 희귀질환인 레버유전시신경병증(LHON)이 대표적이다. 원인은 미토콘드리아 DNA의 특정 변이다.
2018년부터 크리스퍼 캐스9을 사용하지 않고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를 교정하는 기술이 차츰 개발됐다. 2018년 조셉 무구스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 교수팀은 박테리아 '부르콜데리아'에서 특이한 효소를 발견했다.
2020년 데이비드 리우 미국 하버드대 교수팀은 무구스 교수팀이 발견한 효소를 변형해 2세대 유전자가위 기술로 알려진 탈렌과 결합시켜 가이드 RNA가 없어도 DNA의 염기 C를 T로 바꾸는 기술을 개발했다. 2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이 크리스퍼 캐스9 개발 이후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이다.
탈렌은 가이드RNA 대신 단백질 자체가 특정 염기서열을 인식하게 구조를 설계한다. 이 과정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어 3세대 기술인 크리스퍼 캐스9에 밀렸지만 미토콘드리아에서는 오히려 장점이 됐다.
리우 교수팀의 성과는 반쪽짜리였다. DNA는 A, T, C, G 네 가지 염기로 구성된다. A와 T, C와 G는 서로 짝을 이뤄 연결돼 있다. A가 바뀌면 반대쪽의 T도 영향을 받고 C가 바뀌면 반대쪽의 G도 바뀐다는 말이다. 리우 교수팀이 개발한 기술은 C를 T로 바꾸는 도구로 C가 T로 바뀌면 반대쪽 G는 자동으로 A로 바뀐다. 'C에서 T' 한쪽 방향으로만 염기가 바뀌는 것이다. 한 방향 염기교정 도구인 셈이다.
2022년 김 교수 연구팀은 부르콜데리아 효소와 대장균에서 발견한 효소를 활용해 A를 G로 바꾸는 유전자교정 기술을 개발했다. 염기에서 A를 G로 바꾸면 T가 C로 바뀔 수 있다. DNA 염기 4개 중 절반을 고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계 최초로 두 방향 유전자교정 기술을 개발했다는 의미다.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의 40% 이상을 교정할 수 있는 기술이다.
김 교수 연구팀은 LHON, 여러 장기에 영향을 미치는 '멜라스(MELAS) 증후군', 발작을 유발하는 심각한 신경 질환인 '리 증후군(Leigh disease)' 등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 유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유전자교정 기술을 조정하고 있다.
네이처에 따르면 이런 유전자교정 기술이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의 유전자를 교정하고 임상을 시작하려면 훨씬 더 광범위한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삼는 유전자교정 기술이 나와야 한다. 현재 기술로선 일부 특정한 형태의 돌연변이만 교정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환자 치료까지는 10년 이상 걸릴 전망이지만 현재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질병 모델만으로도 약물 개발·기초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