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헬스케어 기업 SCL사이언스가 최근 KAIST와 ‘단일세포 빅데이터 웨어하우스’ 기술이전 협약을 체결하며 정밀의료 기반 신약개발 플랫폼 구축에 본격 착수했다. 개별 세포 수준의 분자 데이터를 대규모로 수집·분석할 수 있는 기반을 산업계로 이전한 첫 사례다. 향후 진단 마커 발굴과 신약 후보 탐색, 암 백신 개발 등 정밀의료 전반에 파급력을 미칠 성과로 주목된다.
29일 SCL사이언스에 따르면 이번 협약은 지난해 11월 출범한 SCL-KAIST 중개의학연구소의 주요 연구 과제를 산업계로 이전한 첫 번째 성과다. 지난 5일 기술이전 절차가 최종 체결됐다. 최정균 KAIST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팀이 기술 개발을 주도했다. 단일세포 수준에서 확보한 오믹스 데이터를 대규모로 수집하고 이를 인체 각 장기별로 정리해 표준화된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성과는 단일세포 오믹스 기술의 중요도와 맞닿아 있다. 단일세포 오믹스는 유전체, 전사체, 단백질체 등 세포 내 다양한 분자 정보를 개별 세포 단위에서 분석해 세포 간 이질성과 종양 미세환경을 정밀하게 해석할 수 있는 차세대 분석 기술이다.
기존 조직 단위 분석이 간과했던 미세한 차이를 포착할 수 있어 질환 발생 과정의 이해도를 높인다. 질환 진단 마커 발굴과 신약 후보물질 탐색, 환자군 특성 분류체계 마련에 활용할 수 있다.
특히 SCL사이언스는 이번 기술이전을 통해 단일세포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반 분석 역량을 결합해 신약개발 플랫폼 고도화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여기에 SCL그룹이 보유한 대규모 건강검진 및 검사 데이터를 접목하면 기초 건강 지표부터 분자적 특성까지 이어지는 다층적 데이터를 통합 분석할 수 있다. SCL 관계자는 "암 정밀의료와 암 백신 연구에서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SCL사이언스가 기술이전을 통해 특히 주목하는 영역은 암 백신 개발이다. 암 백신은 환자 고유의 면역체계를 ‘재훈련’시켜 암세포를 스스로 공격하게 만드는 치료 전략이다. 기존 항암제나 방사선·화학요법과 달리 인체의 방어 시스템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받는다.
백신은 암세포의 돌연변이에서 유래한 특이적 항원을 인식시켜 T세포 반응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한다. 특히 치료 효과와 동시에 재발 억제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연구와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
문제는 암 백신이 ‘만능 치료제’가 될 수 없는 구조적 난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암은 환자마다 유전적 변이가 다르고 종양 미세환경 또한 이질적이어서 동일한 백신이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효과를 내기 어렵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환자 개별 특성을 반영한 데이터 기반 접근이 필수적이다. 암 백신은 기존 치료법을 대체하기보다는 정밀의료 시대에 최적화된 차세대 맞춤형 항암 전략이다. 임상 성과를 좌우하는 관건은 결국 데이터와 분석 역량이다. 단일세포 오믹스 데이터는 이 과정을 지원한다.
유전체 데이터는 인공지능(AI)이 돌연변이 서열에서 신생 암항원을 탐색하도록 돕고 단백질체 데이터는 항원제시 단백질과 면역세포인 T세포의 수용체 결합 가능성을 예측한다. 전사체 데이터는 실제 면역 반응 유발 여부를 확인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단일세포 오믹스는 암 백신 표적을 정확히 찾아내는 지침서라 할 수 있는 셈이다.
여기에 SCL사이언스가 보유한 건강검진 데이터가 더해지면 임상 적용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 검진 과정에서 수집된 유전체 정보, 사람백혈구항원(HLA) 유형, 생활습관 데이터는 특정 환자군에서 효과적인 항원을 선별하는 근거가 된다. 동반진단(CDx) 기술로 발전해 암 백신의 반응과 부작용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다. 데이터 분석 역량과 임상 데이터를 모두 확보한 SCL사이언스가 암 백신 연구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협약은 개별 기업의 사업 성과를 넘어 정밀의료 산업 전반에서 파급 효과를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건강검진 데이터는 유전정보와 임상정보를 연결하는 허브로서 암, 심혈관질환, 대사질환 등 주요 질환의 조기 진단과 맞춤형 예측 전략 수립에 핵심적이다. 특히 암 백신을 포함한 차세대 정밀의료 기술은 방대한 데이터와 AI 알고리즘의 결합이 전제돼야만 실현 가능하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네오안티젠 기반 암 백신, 키메릭항원수용체(CAR)-T 세포치료제, AI 기반 신약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멀티오믹스 및 단일세포 분석을 바탕으로 한 정밀의료 임상시험이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첨단재생바이오법 개정과 규제 완화가 속도를 내면서 데이터 기반 정밀의료 연구가 본격화되는 추세다.
SCL사이언스의 이번 행보는 이러한 산업 흐름 속에서 국내 기업이 어떤 전략으로 미래 의료 패러다임 전환에 대응할 것인지 보여주는 사례란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단일세포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신약개발 플랫폼은 단순한 연구협력을 넘어 산업 생태계의 경쟁 구도를 새롭게 바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