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산업이 잇따른 인력 구조조정으로 흔들리고 있다. 비만·당뇨 치료제 ‘위고비’로 잘 알려진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전 세계 인력 9000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미국 제약사 머크(MSD)도 런던 연구센터 건립 계획을 철회하고 연구인력 125명을 해고하기로 했다.
업계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바이오 연구거점이 미국으로 빠르게 이동할 가능성을 내다본다. 글로벌 바이오 고용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노보 노디스크, 직원 11% 감축…미국 관세 리스크도 부담
1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노보 노디스크는 글로벌 인력의 약 11%에 해당하는 9000명을 감원한다고 이날 밝혔다. 감원 대상 직원 중 5000명은 덴마크 본사 인력이다.
회사 측은 경쟁 심화와 위고비 판매 둔화, 미국발 관세 리스크 등을 구조조정 배경으로 꼽았다.
최근 경쟁사 미국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가 체중 감량 효과에서 우위를 점하며 시장 점유율을 확대했고 미국 내 조제약 판매와 제네릭 의약품 확산으로 매출이 감소한 것도 타격이 됐다.
이번 감원은 마이크 다우스다르 신임 최고경영자(CEO)가 취임 후 단행한 첫 대규모 조치다. 다우스다르 CEO는 앞서 연간 약 80억 크로네(약 1조 1191억 원) 비용 절감을 목표로 발표했다. 노보 노디스크는 또 올해 영업이익 성장률 전망도 기존 10~16%에서 4~10%로 낮췄다. 도우스트다르 CEO는 “장기적 성공을 위해 보다 민첩하고 유연한 조직으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MSD, 10억 파운드 규모 영국 연구센터 건립 철회
같은 날 MSD는 런던 킹스크로스 인근 벨그로브하우스에 조성 중이던 10억 파운드(약 1조 8815억 원) 규모의 ‘UK 디스커버리 센터’ 건립 계획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런던 내 바이오 연구인력 125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MSD는 영국 내 신약 연구개발 거점을 철수하고 다른 지역으로 연구 기능을 이전할 계획이지만 구체적 이전지는 밝히지 않았다.
MSD는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영국 정부의 높은 약가 환급률과 투자 매력 하락을 지적했다. 영국은 2023년 신약 매출의 23.5%를 환급받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이는 프랑스(5.7%), 독일(7%)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영국 제약산업협회(ABPI)는 “영국이 글로벌 연구개발 투자 경쟁에서 점점 뒤처지고 있다”며 “MSD의 철수는 국가 생명과학 비전에도 타격”이라고 평가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구조조정이 단순한 기업 실적 악화가 아닌 글로벌 제약사들이 규제·정책 리스크에 대응해 생산 및 연구 거점을 재편하는 흐름의 일환이라고 본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내 생산 확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어 유럽 과학 허브에서 미국으로 연구 기능 이전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는 유럽 전반의 연구·고용 환경이 약화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최근 5년간 인력을 75% 늘리며 확장하던 노보 노디스크가 대규모 감원으로 선회했고 같은 시기 영국의 생명과학 투자 매력도도 2017년 세계 2위에서 2023년 7위로 추락한 것은 유럽 전반의 연구·고용 환경이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R&D 투자가 미국 중심으로 재편될 경우 유럽과 아시아 연구자들의 고용 불안이 심화될 수 있다”며 “정책·규제 환경을 개선해 인재와 투자를 붙잡을 대책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