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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17년 만에 부활 '과기부총리' 다음 정부에서도 살아남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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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17년 만에 부활 '과기부총리' 다음 정부에서도 살아남으려면

2025.09.10 12:04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성장전략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세부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성장전략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세부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정부가 일요일 오후에 전격적으로 정부조직개편안을 내놓았다.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메가톤급 파격이다. 78년 역사의 검찰과 지난 18년 동안 예산권을 틀어쥐고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던 기획재정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정부 부처의 권력 서열 2위였던 교육부의 위상은 추락한다. 금융감독위원회도 쪼개지고 방송통신위원회도 새 옷을 입는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새로 생기는 기후에너지환경부에 에너지 정책 기능의 일부를 넘겨주고 산업통상부로 쪼그라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7년 만에 다시 부총리 부서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잠시 떠돌던 소문이 괜한 게 아니었던 셈이다. 이번에는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는 인공지능의 전담 부서가 부총리급 격상의 명분이다. 


어쩌면 과기부에게는 잔치판이라도 벌여야 할 정도로 반가운 경사다. 특히 새로 출범한 국가인공지능(AI) 전략위원회의 부위원장직까지 겸하게 된 배경훈 장관에게는 겹경사다.


과학기술계도 과기부의 부활을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난 정부의 갑작스러운 예산 삭감으로 활기를 잃어버렸던 과학기술계에게도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일이다. 부총리급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역사상 최대 규모인 35조 3000억 원으로 늘어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실질적인 전담 부서로 확실하게 역할을 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과학기술 연구·교육·산업화에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를 단단히 다져야 하는 상황이다.


● 기획예산처를 절묘하게 활용해야


언론이 과기부 총리의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의 심의·조정권에 주목하고 있다. 혁신본부가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연구개발 관련 업무를 예산 관리를 통해 총괄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적 권한과 과학기술 전문성을 가진 인력을 배치하고 예산 수립과 조정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구속력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심지어 혁신본부가 연구개발 예산 편성권을 가지지 못하면 과기부 총리가 반쪽짜리가 될 것이라는 더 적극적인 지적도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폐지했던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되살리는 일도 중요하다고 한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예산권이 과기부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수단인 것은 사실이다. 부처의 영향력은 예산에서 나오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산의 심의·조정권은 양날의 칼일 수밖에 없다. 


예산이 부처를 달래는 달콤한 사탕이기도 하지만 관련 부처에게 고약한 쓴맛을 남기는 독배(毒杯)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든 원하는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한(恨)을 품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예산권을 가진 부처가 인기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참여정부에서 과기부의 부총리 승격의 명분을 제공했던 것이 비(非)전문적이고 경직된 예산 통제로 악명이 높았던 당시의 기획예산처였다. 물론 예산 담당관이 무작정 연구개발사업을 홀대했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과학기술계의 입장에서 예산 담당관이 내세우는 예산 관리 지침이 시대착오적이고 비(非)과학적이라고 보였으며 그런 예산 담당관을 설득하는 일이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부총리급으로 격상된 과기부의 혁신본부가 바로 그런 악역(惡役)을 떠맡게 되었던 것이 2008년 과기부 폐지의 핑계였다.


이번에도 상황은 녹록치 않다. 이번 조직 개편으로 ‘19부 6처 19청 6위원회’로 운영되는 중앙행정기관이 거의 모두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규모와 성격은 천차만별이다. 


실제로 국가연구개발사업이라고 해서 모두 현대 과학과 기술을 기반으로 합리적·이성적 정책의 개발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예산을 부처의 이기주의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을 관리하면서 인심(人心)을 얻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나친 간섭은 금물이고 예산권을 현명하게 활용해서 우군(友軍)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인 억지가 될 수밖에 없다. 


자칫 너무 느슨하면 괜한 ‘퍼주기 논란’에 휩싸이게 되고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엄격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원성(怨聲)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결국 과학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정치적 포퓰리즘과 팬덤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투명성과 공정성도 충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총리실 산하에 새로 만들어지는 기획예산처를 절묘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할 수도 있다. 기획예산처의 예산 심의·조정의 전문성을 인정해 주는 대신 과학기술에 대한 혁신본부의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예산권을 틀어쥐고 괜한 힘자랑에 정신을 팔아버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권한’이 아니라 ‘결과’라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 다음 정부에서도 살아남아야


과기부의 부총리 부서 승격은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법이다. 부총리 부서 승격을 온전하게 반기기 어려운 것도 2008년의 아픈 기억 때문이다. 


참여정부에서의 부총리 부서 승격이 고작 3년 후에 ‘과기부 폐지’라는 독배(毒杯)가 되어버렸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의 과기부가 교육과학기술부라는 기형적인 모양으로라도 살아남게 된 것은 당시 김시중 전 과기처 장관을 비롯한 과학기술계 원로들이 온몸으로 저항한 결과였다.


당시 극단적인 과기부 폐지론이 힘을 얻게 된 배경은 흔히 혁신본부의 ‘갑질’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혁신본부는 사실상 ‘작은 기획예산처’였다. 겉으로는 혁신본부가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예산권을 넘겨받았다고 하지만 과학기술보다는 예산 관리에 대한 전문성이 훨씬 더 중요하게 평가되던 시절이었다. 혁신본부장에 기획예산처 출신을 임용했던 것도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2004년 10월부터 3년 남짓 이어졌던 참여정부의 과학기술부총리 시절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보다 아픈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황우석 사태가 불거졌다. 생명 복제 광풍(狂風)이 과학기술을 통째로 압도하던 시절에 벌어진 일이었다. 


요란하게 밀어붙였던 ‘우주인 배출사업’이 남긴 뒷맛도 씁쓸하다. 떠들썩했던 정부 출연연 개편도 아무 성과 없이 흐지부지 끝났고 과기부가 ‘국가 신동(神童)’을 뽑아 키우겠다고 법석을 떨기도 했다. 야심차게 밀어붙였던 나로호 사업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충분한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했다.


새로 등장하는 부총리급 과기부는 장수(長壽)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번 정부는 물론이고 다음 정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 한 번 과기부 폐지론이 제기된다면 과학기술계는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이 된다는 확실한 각오가 필요하다. 


과학기술부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줄 명분도 없고 목소리를 내줄 과학자도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의 부총리급 과기부에 대한 냉정한 복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부총리 부서 승격의 명분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강조하는 과학기술 정책을 언제나 국민이 수용해 주는 것은 아니다. 6T 기술과 창업 열풍(국민의 정부), 생명과학 기술(참여정부), 녹색성장(이명박 정부), 창조경제(박근혜 정부), 탈원전과 탄소중립(문재인 정부)이 모두 그렇다. 분명한 성과도 내지 못했고 다음 정권으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이재명 정부의 ‘인공지능’은 달라야 한다. 그러나 과기부를 부총리 부서로 승격하고 화려한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신설하며 인공지능 고속도로와 국가인공지능컴퓨팅센터를 설립하는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인공지능에 대한 과도한 투자를 합리화하기 위한 기초과학에 대한 영혼 없는 관심도 경계해야 한다. 과학기술에 대한 진심이 담긴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악마로 변해버린 과학자와 의사의 사회적 위상을 되찾아주는 노력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예산만 쏟아부는다고 과학기술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필자 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 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3200여 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질병의 연금술》《지금 과학》을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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