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는 지구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저장하는 물질이다. 차세대 저장 장치로 주목받고 있지만 정보를 저장하고 불러오는 과정이 매우 느리다는 점이 해결 과제다. 미국 연구팀이 DNA 정보 저장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하오 얀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바이오디자인연구소 교수팀은 DNA의 합성 과정 없이 DNA 염기를 선택적으로 변화시켜 2진법(0과 1)으로 정보를 저장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결과는 23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공개됐다.
인류가 생산하는 데이터가 많아지면서 차세대 정보 저장 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DNA 저장 장치의 가장 큰 장점은 작은 공간에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론상 DNA 1g에는 수백 PB(페타바이트, 1PB는 1024TB)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현재 가장 발전한 반도체 회로 사이 간격은 1~2nm(나노미터, 10억분의 1m)지만 DNA 정보 단위인 염기 사이의 간격은 0.34nm로 훨씬 촘촘하다.
DNA는 화석에서 해독이 가능할 만큼 매우 안정적인 물질로 전원 연결 없이도 장기간 보관이 용이하다. 저장 장치로 널리 쓰이는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등 전자 저장장치 수명은 길어야 수십 년으로 전기를 계속 공급받지 못하면 정보가 사라지거나 변형될 위험이 있다.
DNA로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존 접근 방식은 0과 1로 된 디지털 정보를 DNA를 이루는 아데닌(A), 티민(T), 시토신(C), 구아닌(G) 염기에 대응하도록 바꾼 뒤 염기서열에 맞게 DNA를 합성하는 것이다. 다시 정보를 읽을 때는 DNA의 염기서열을 읽어내 다시 규칙에 따라 디지털 정보로 바꾼다. 합성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기 쉽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연구팀은 DNA를 처음부터 합성하는 대신 DNA 염기서열은 그대로 두고 염기를 선택적으로 바꾸는 '후성유전학' 방법으로 접근했다. DNA 염기에 메틸기라는 화학 작용기를 선택적으로 붙여 염기에 메틸이 있으면 1, 없으면 0으로 구분했다. A, T, C, G를 활용한 기존 4진법 대신 디지털 정보와 같은 2진법 체계를 활용한 것이다. 기록된 정보는 DNA 분석 장치로 다시 읽어낼 수 있다.
연구팀이 개발한 방법은 화학 반응 한 번에 350비트(bit, 정보의 가장 작은 단위)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었다. DNA를 합성하는 기존 시스템이 반응당 1비트를 저장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효율적이라는 설명이다. 연구팀은 DNA 700개를 만들어 약 27만5000비트 규모의 DNA 저장 장치를 만들었다. 바이트(byte) 단위로 환산하면 약 34.4KB(킬로바이트) 용량이다.
연구팀은 새로운 DNA 저장 장치로 중국 전통 문양 이미지와 판다 이미지를 저장했다가 다시 출력해 그대로 재현되는지 확인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오류 정정 알고리즘을 적용한 결과 원본 이미지를 정확하게 불러오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DNA 저장 장치는 아직 상업적으로 활용되기에는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과학자들은 DNA 저장 장치가 컴퓨터에 쓰이는 전자 저장 장치를 대체하기보다는 장기간 사용하지 않는 '콜드 데이터' 보관이나 극지방, 다른 행성 등 극한 환경으로 데이터를 이동·저장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
DNA로 정보를 저장하거나 활용하려는 노력은 꾸준히 진행 중이다. 올해 8월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와 존스홉킨스대 공동 연구팀이 DNA를 기반으로 검색, 저장, 삭제, 재저장, 계산 등 컴퓨팅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을 시연했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기업 바이오메모리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1KB 용량의 DNA 저장 장치를 판매하기도 했다.
<참고 자료>
- doi.org/10.1038/d41586-024-03443-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