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핵융합에너지 추진 계획의 불연속성으로 핵융합 산학계가 위기를 겪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핵융합에너지 상용화의 기반인 제조 생태계와 인력 양성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추진 계획의 충실한 이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핵융합 장치에 필요한 초전도 소재 전문 기업인 KAT 유성택 대표는 22일 서울 양재 엘타워에서 열린 '핵융합 핵심기술 개발전략 포럼' 패널 토의에서 "핵융합 분야 추진 계획이 불연속적이다보니 산업계에서 위기를 많이 겪는다"며 "KAT를 비롯한 관련 분야 기업들이 감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 프로젝트에 대응해 매출이 발생하는데 길게는 4~5년씩 '혹한기'를 보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 한국의 초전도 분야 제조 역량이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사업의 불연속성 때문에 포기하는 기업들이 많아진다면 나중에 우리가 2030년 이후 제조 생태계를 복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포럼은 핵융합에너지 조기 상용화를 위한 8대 핵심기술을 2035년까지 확보 계획이 담긴 로드맵 초안을 공유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됐다.
유 대표는 "다행히 이번 추진안에 그동안 산업계 목소리가 잘 반영된 것 같아 환영하지만 충실히 이행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왔다. 최은미 울산과학기술원(UN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대학도 산업계와 비슷한 실정"이라며 "제가 처음 핵융합 분야에 발을 들여놓을 때는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가 있었지만 이미 오래 운영됐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 장치가 없으면 지금 학생들이 핵융합 분야에서 비전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빨리 다음 장치를 개발해서 연속성 있게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국내 제조 역량을 봤을 때 가열장치 등 특정 기술에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정부 투자로 기반 기술을 만들고, 산업계가 고도화시키는 식으로 진행하면 8대 핵심기술 중 일부는 2035년까지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기존 원자력계가 핵융합에너지 상용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광식 한국수력원자력 기술혁신처장은 "미국 구글, 아마존 등과 선구매 계약을 맺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업들을 보면 아직 스타트업 수준으로 한수원에 설계와 운영 분야에서 협력 요청이 많다"고 말했다. 핵융합 분야도 궁극적으로 상업화가 목표기 때문에 상업 운전이 활발한 원자력업계와 협력할 부분이 있을 것 같다는 설명이다.
이날 청중에서는 "한국기계연구원 등 다른 연구기관에서는 민간과 기술을 공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는 아직 허들이 많은 것 같다"며 민간과의 기술 협력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윤시우 핵융합연 부원장은 인공지능(AI) 활용 방안에 대해 "AI 기반으로 KSTAR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며 "'KSTAR 에이전트'를 도입해 운전 효율성을 높이려고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개별 핵심기술 구현도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 하나의 장치에 통합해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번 포럼에서 제안된 의견을 바탕으로 로드맵 주요 내용을 수정·보완한 후 핵융합 분야 최고 의결기구인 '국가핵융합위원회'에서 추진 방향과 로드맵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