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환자의 신체 내부를 살피는 데 사용해온 초음파가 암을 치료하는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초음파가 수술 없이 병든 조직을 파괴하는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기존 암 치료법을 보완하거나 대안이 되는 기술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모든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전략은 아니다.
젠 쉬 미국 미시간대 의공학과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초음파를 사용해 병든 조직을 분해하는 개념을 떠올렸다. 돼지 심장에 초음파를 적용한 첫 테스트에서는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초당 초음파 펄스(단시간 발생하는 초음파 신호) 수를 늘리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쉬 교수의 발견은 초음파 치료법인 ‘히스토트립시’ 개발로 이어졌다. 히스토트립시는 초음파를 이용해 생체 조직을 기계적으로 파쇄하는 비침습 치료 기술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23년 10월 간암 치료 기술로 히스토트립시 사용을 승인했다. 소규모 연구에서 히스토트립시는 간에 생긴 종양의 95%를 제거하는 기술적 성공을 보였다. 복통, 내부 출혈 등 부작용이 발생했지만 전반적으로 안전한 시술 방법이라는 점이 확인돼 지난 6월에는 영국도 히스토트립시 사용을 승인했다.
줄리 얼 스페인 라몬이카할보건연구소 연구원은 8일 BBC를 통해 “사람들은 초음파를 의료 영상으로 생각한다”며 “초음파는 수술 없이 종양을 파괴하고 전이된 암을 진압하는 치료 도구로도 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주변 조직 손상 위험 낮춰...모든 암에 적용할 순 없어
히스토트립시는 종양이 있는 생체 조직 내에 미세기포가 형성되도록 만든다. 미세기포가 팽창했다가 수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힘이 종양을 파괴시킨다. 이후 환자의 면역시스템이 파괴된 조각들을 청소하는 방식으로 치료가 이뤄진다.
신체 일부를 절개하는 외과적 수술이 아닌 비침습 과정이기 때문에 환자는 히스토트립시 치료를 받은 당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시술에 걸리는 시간은 1~3시간이다.
히스토트립시는 열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다. 초음파를 이용한 또 다른 치료 전략인 '고강도 집속 초음파'(HIFU)는 초음파를 모아 고온의 열을 발생시켜 종양이 파괴되도록 만든다. HIFU는 전립선암 치료 시 수술만큼의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열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종양 인근의 건강한 조직이 치료 과정에서 함께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
히스토트립시 치료 후 암 재발 가능성은 아직 불확실하다. 일부 연구자들은 체내에 파괴된 종양 조각들이 남아 새로운 암 성장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한 입증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히스토트립시는 모든 암에 적용 가능한 방법도 아니다. 뼈는 히스토트립시가 타깃 삼은 부위로 초음파가 전달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어 뼈 근처에 위치한 일부 종양은 제거하기 어려울 수 있다. 가스도 초음파를 차단할 수 있어 폐처럼 기체로 채워진 기관은 히스토트립시를 사용하기 어려운 부위다.
● 기존 암 치료와 병행하면 효과·부작용 개선
혈류에 미세기포를 주입하고 초음파로 자극하면 일시적으로 혈액-뇌 장벽이 열린다는 최신 연구 결과가 있다. 혈액-뇌 장벽은 혈액 내 독소가 뇌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지만 암 치료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이 장벽이 열리도록 만들면 약물이 뇌 종양 부위로 잘 전달되는 효과가 일어나게 된다. 히스토트립시를 뇌 종양 치료제 사용 시 병용해 사용하면 약물 전달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란 점을 시사한다.
디파 샤르마 캐나다 서니브룩건강과학센터 연구원은 “초음파와 미세기포의 조합은 약물 전달을 광범위하게 개선할 수 있다”며 “미세기포는 종양 혈관을 손상시켜 방사선 치료의 효과 또한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사선 치료 시에도 히스토트립시를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사선 치료는 장기적인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치료법이다. 히스토트립시를 병행 사용하면 조사하는 방사선량이 줄어들어 부작용 발생 위험도 줄일 수 있다.
쉬 교수는 “초음파가 암의 ‘마법적 치료법’은 아니다”라며 “다른 의학적 치료와 마찬가지로 단점이 있지만 기존 치료법과 결합하거나 대안으로 활용하면 환자들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