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령자였던 스페인 여성 마리아 브라냐스 모레라의 장수 비결이 유전적 요인과 건강한 생활 습관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페인 백혈병연구소, 바르셀로나대 등 연구팀이 지난해 117세 168일이라는 나이로 별세한 브라냐스 모레라의 유전자와 생활방식을 연구한 결과를 최근 의학저널 '셀 리포츠 메디신'에 발표했다.
190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8세에 부모의 고국인 스페인으로 이주한 브라냐스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스페인 독감,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었다. 113세에 코로나19에 걸렸다가 회복했고 202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세계 최고령자였다.
그의 아들은 52세에 사망했지만 두 딸은 현재 92, 94세다. 다른 가족과 친척들은 알츠하이머, 암, 결핵, 신장질환, 심장질환 등 많은 사람이 앓는 질환으로 사망했다.
연구팀은 사망 1년 전 채취해둔 그의 혈액과 타액, 소변, 대변 등 샘플을 활용해 유전체와 전사체, 대사체, 단백질체, 미생물군 등 생물학적 프로필을 작성하고 분석했다. 브라냐스는 바르셀로나대 의과대학 유전학과 학과장인 마넬 에스텔러 박사에 "나를 연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연구팀은 브라냐스가 염색체 텔로미어(telomere) 소모, 비정상적인 B세포 집단, 백혈병이나 염증성 질환 위험을 높이는 클론성 조혈증 등 노화의 징후를 분명하게 보였다고 말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의 끝부분에 위치한 단백질 복합체다.
달랐던 점은 브라냐스의 텔로미어가 유난히 짧았다는 것이다. 텔로미어는 DNA 손상·재조합을 방지해 염색체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암세포와도 관련이 있다. 일반 세포에서 텔로미어는 시간이 지나면 점점 짧아지지만 암세포에서는 스스로 효소를 활성화해 짧아진 텔로미어를 계속 길게 늘려주며 분열한다. 연구팀은 브라냐스의 텔로미어가 짧아 세포 분열의 양을 제한해 암을 막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DNA 분석 결과 심장·뇌 세포를 질병과 치매로부터 보호하는 유전자 변이가 확인됐다. 몸 전체에 염증 수치가 낮아 암과 당뇨 위험을 낮췄고 콜레스테롤과 지방 대사도 원활했다. 에스텔러 박사는 "염증 수치가 높으면 노화가 빨리 진행된다"고 말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브라냐스의 신체 내 미생물군에 유익균인 비피도박테리움이 많은 것과 낮은 염증 수치가 관련이 있다. 연구팀은 "브라냐스는 요구르트를 하루에 3개씩 먹었는데 요구르트에 함유된 박테리아 덕분에 비피도박테리움이 많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즈는 "브라냐스는 장수를 예측할 수 있는 변이를 가진, 유전적으로 복권 당첨자였다"고 설명했다. 에스텔러 박사는 브라냐스의 생물학적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최소 10∼15세는 젊었다고 말했다.
유전자뿐 아니라 건강한 생활 방식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됐다. 브라냐스는 지중해식 식단을 따랐고 과체중이 아니었으며 흡연과 음주를 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 매일 한시간씩 걸었다. 그는 2001년 이후로는 혼자 살았지만 가족과 같은 마을에 살았고 늘 친구들이 곁에 있을 만큼 양호한 사교 생활을 했다. 5년 전까지는 피아노도 쳤다.
일부 전문가들은 브라냐스 사례를 해석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마쿨라타 데 비보 미국 하버드대 연구원은 "유전학과 대사 요인이 질병 발생 확률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질병의 인과관계는 절대적이라기보다 확률의 문제다"며 좋은 유전자와 건강한 미생물군만으로 오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또 유전학과 미생물군만으로 장수를 설명할 수 없으며 교육 수준, 생활 환경, 소득 수준 같은 사회경제적 요인이 기대 수명을 크게 좌우한다는 의견도 있다.
에스텔러 박사는 이번 연구가 고령자 건강을 위한 새로운 치료법 개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DOI: 10.1016/j.xcrm.2025.102368